소설리스트

1000조 재벌-31화 (31/300)

# 31

미친놈의 말을 들어라.

“저기요. 혹시 소식 들었어요?”

“뭔데요?”

“서홍철 전대 노조위원장께서 크게 다치셨데요.”

“설마 사고라도 나신건가요?”

“그게 아니라, 자신이 살던 동네의 골목길에서 칼에 찔렸데요.”

“어머 끔찍해라. 어떻게 그런 일이?”

“같이 있던 안성준 씨도 각목으로 두들겨 맞았다고 하고요. 조폭 같은 놈들 4명이 기습적으로 달려들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지금 어떻게 되었어요?”

“다행히 근처로 지나가던 사람이 신고 해서 구급차 출동하고 지금은 병원에 있대요.”

휴게실에 모여있던 직원들이 놀라고 있었다.

지금은 쫓겨난 상태지만 그래도 서홍철 전대 노조위원장은 그들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신입으로 들어오는 사람에게는 항상 따뜻하게 대해줬고 생산라인에서도 궂은 일을 도맡아했다.

뿐만아니라 조합원들의 각종 대소사를 챙겨주고 축하도 해주었다.

조합원들과 희로애락을 같이했던 사람.

그런 사람이 조폭들에게 습격당하고 칼에 찔렸다는 소식은 연민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들이 파업하고 회사를 엉망진창으로 만든 것이 정말로 잘하는 것인지 의심이 들 때도 많아요.”

“어쩐지 지금 최규식 노조위원장과 그 패거리들에게 속았다는 느낌도 들고.”

“맞아요. 조합비 사용에 대해 저번에 제대로 밝히라고 했더니 노조위원장한테 반항한다고 오히려 더 큰 소리를 내질 않나. 과거의 서홍철 노조위원장님하고 비교하면 너무나도 무식하고 개념이 없어요.”

“그게 소문에 의하면 최규식이 과거에 조폭세계에서 깡패짓을 했던 적도 있대요.”

“정말이에요?”

“확실하진 않지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렇데요.”

“어쩐지 인상도 더럽고, 평소 말하는 것도 되먹지 못하더니.”

한번 터져 나온 불만은 연속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파업 중인 KR-전지(株) 공장의 주변 담벼락에는 누군가가 붙여놓은 대자보도 있었다.

최규식 패거리가 그것을 발견하고 서둘러 찢어버렸지만 이미 상당수의 사람들이 그것을 읽어본 뒤였다.

대자보의 내용은 최규식이 과거에 영등포 일대에서 조폭생활을 했다는 것.

그리고 현재 조합비를 삥땅치며 착복하고 있다는 것 등까지.

조합원들이 보기에는 충분히 의심할만한 내용들이 있었다.

뭣보다 최규식과 그 패거리가 지금 KR-전자(株)의 노동조합을 자기들 멋대로 운영하는 부분까지 더해지며 여론은 급격하게 변해갔다.

***

“규식 형님. 이거 잘못하면 우리들 끝장나는 거 아닙니까?”

“씨끄러. 이 새끼들아. 내가 누구야? 최규식이야.”

패거리를 향해 최규식이 큰 소리를 쳐댔다.

하지만 표정은 완전히 굳어진 상태다.

서홍철을 죽이는데 실패한 사건이후.

그리고 조합원들에게 서홍철과 안성준이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전달되면서 분위기는 급반전했다.

사건 소식을 들은 정대현 사장은 서둘러 병원을 방문했고 이런 정대현 사장의 인품은 파업에 동참했던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흔들었다.

최규식 패거리는 그것을 실질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만약에 경찰조사가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규식 형님이 서창파니 뭔지 하는 조폭애들 움직여서 서홍철을 깨끗이 처리하기로 했잖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실패해 버렸으니.”

“병신 같은 놈들. 경찰이 조사한다고 우리들이 체포당할 일은 없어. 너희들은 그냥 평소에 하던 대로 하면 충분해.”

“그래도 왠지 불안합니다.”

“이 새끼들이......!”

최규식이 눈을 부라리며 노려보았다.

그러자 패거리가 찔끔하며 더 이상 반박을 못했다. 얼마 후 그들이 자가용 밖으로 나가자 최규식이 투덜거렸다.

“일단 저놈들을 고기방패로 세운 뒤에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는데. 서창파 새끼들이 쫄아서 못한다면 다른 놈들을 찾으면 되는 것이지. 어차피 돈주면 서홍철한테 칼침 놓을 놈들은 많으니까.”

최규식이 히죽거렸다.

하지만 이순간 스스로 무덤을 팠다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

“이 새끼는 확실히 안되겠군.”

마지막으로 내린 결론이다.

나머지 녀석들은 겁을 먹고 이제는 완전히 꼬랑지 내렸다.

그런데 최규식 이놈만은 끝까지 반항하고 있었다.

하긴 이렇게 나오는 게 더 좋지.

“그럼 이제부터 쓰레기 처리를 해볼까?”

최규식을 처리하는 걸 내 손으로 할 필요는 없었다. 이런 걸 전문으로 하고, 해본 경험도 있는 놈들이 있으니까 말이다.

***

“재덕아.”

“예. 형님.”

“너 당분간 잠수 타야겠다.”

“저번일 때문에 그런 겁니까?”

“만약의 사태란 것도 있으니까.”

천우식의 말에 박재덕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재덕은 천우식의 오른팔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믿고 저번의 일을 맡겼다.

하지만 실패했다.

실력이 나빠서 실패한 것이 아니라 운이 더렵게 없었다. 그리고 박재덕은 서창파에서도 솜씨 좋은 칼잡이다.

일단은 잠수를 태운 뒤에 몇 년 정도 지나서 다시 일선으로 복귀시키면 되었다.

“그런데 우식 형님. 최규식 그 새끼가 설마 우리한테 준 돈을 토해내라고 하지는 않겠지요?”

“이미 그런 낌새도 보이던데.”

“좆만한 새끼가 감히 어디라고.”

박재덕이 분노했다.

최규식은 과거에 서창파에서 정식조직원도 되지 못하고 밑바닥에서 깔짝대던 놈이었다.

실력도 없었고 깡다구도 별로였다.

그러던 놈이 몇 년뒤에 조직에 나타나서는 돈다발을 던지면서 민간인 한 명을 담가달라고 하였다.

서홍철이란 노인인데 그 정도 일은 간단했다.

평범한 노인을 없애는데 큰 거 다섯 장.

꽤 남는 장사다.

박재덕이나 천우식은 최규식이 잘난체하던 모습이 아니꼬왔지만 당장에 돈도 급했기에 일단은 수락한 것이다. 다만 쉬운 일이 이렇게 꼬일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그 때 천우식의 핸드폰으로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천우식 씨. 지금 박재덕과 김종태, 그리고 서홍철 살인미수 사건에 참가했던 4명을 잠수 태우려고 시도 중에 있습니까?”

“너 이 새끼 누구야?”

천우식이 고함을 질러댔다.

옆에 있던 박재덕과 다른 조직원들이 놀랐다.

“일단 진정하시고 이거부터 들어보시죠.”

잠시 후 녹음된 대화내용이 나왔다.

그것을 들으며 천우식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갔다. 자신이 얼마 전에 최규식과 전화통화한 내용이 그대로 나왔으니까 말이다.

“너 최규식이 똘마니야? 그 새끼한테 전해. 까불면 죽는다고.”

“최규식의 똘마니라. 그것보다는 최규식이 한국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해두죠.”

“원하는 게 뭐야?”

“방법은 알아서 하십시요. 영등포에서 각 잡고 있는 서창파의 실력이 허접은 아니라고 들었으니까. 다만 나로서는 최규식의 입이 무거웠으면 좋겠습니다. 아주 많이!”

“시체가 된 놈은 말이 없다는 그런 뜻인가?”

“그것은 알아서 해석하면 되겠지요. 다만 최규식 문제가 해결되면 경찰이 당신조직인 영등포의 서창파를 습격할일도 없을 것이고, 거기 있는 4명이 잠수 타지 않아도 될 겁니다. 조직원 4명이 잠수 타면 엄청난 손해지 않습니까? 그리고 최규식이 서홍철에 대해 살인교사 하면서 당신조직에 준돈. 그것도 토해내지 않아도 될 것이고. 이래저래 최규식이 사라지면 서로 간에 이익이 되겠지요.”

“협박이야? 너 내가 누군지 알고.”

“협박입니다.”

“뭐 이런 새끼가....”

천우식이 말하려는 찰나.

상대방은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우식 형님. 누구입니까?”

“미친놈. 하지만 그 미친놈의 말을 듣지 않으면 우리가 좃되게 생겼다.”

천우식의 말에 나머지 조직원들이 벙쪘다.

***

“서홍철 전대 노조위원장과 정대현 사장이 절친한 사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인 거 같군요.”

“그것 때문에 최규식 패거리가 서홍철을 KR-전지(株)노조에서 몰아내는 구실로 삼은 것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즉 정대현 사장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고.”

“물론 노조와 사측간에 대립이 극심한, 그리고 본래부터 사장이나 경영자가 생산직 노동자들을 무시하는 그런 분위기의 회사에서야 노조위원장과 사장이 서로 친할 수 없지만. KR-전지(株)의 경우에는 사장인 정대현이 생산현장에서 직접 뛰고 전대 노조위원장인 서홍철과 생사고락을 같이한 사이인데. 그런 걸로 트집을 잡다니.”

“자신들에게 불리한 것은 빼고 유리한 것만 골라서 선동하는 놈들의 전략에 휘말리면, 이런 현상도 나오는 법이지요.”

“선동이라. 그러고 보니 이번에 JSE-(K)쪽에서 그런 여론몰이 전략을 꽤 잘 이용한 거 같더군요. 물론 제대로 된 팩트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훨씬 잘 먹혔지만.”

“생산공장의 담벼락에 붙은 대자보는 어느 정의감 넘치는 조합원이 제대로 된 사실을 알리고자 했다는 소문이 있더군요.”

“그렇군요. 정의감 넘치는 조합원.”

박광석이 싱긋이 미소를 지었다.

대충 짐작은 하고 있지만 더 이상 캐묻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최규식을 포함한 패거리가 한꺼번에 사라진 것에 대해서도 파고들지 않았다.

최규식은 어느 날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최규식 집에 걸려온 전화를 아내가 받았는데, 최규식 본인이 직접 중국으로 간다는 것이었다.

그 뒤의 소식은 없다.

역시 영등포에서 각 잡고 있는 서창파가 나름대로 실력을 발휘한 것이다.

최규식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난 뒤에.

나머지 패거리들도 분위기를 파악한 듯 서둘러 퇴사했다.

더 이상 있어봐야 좋은 꼴 못보니까 말이다.

얼마 후에 최규식과 그 패거리가 얼마나 많은 비리를 저질렀는지 드러났다.

이제 KR-전지(株)의 조합원들은 자신들이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는 파업에 가담했던 조합원들도 빠르게 복귀했다.

뭣보다 정대현은 대인배답게 이전까지 파업에 가담했던 조합원들에게 어떤 처벌도 원하지 않았고 그것은 전대 노조위원장인 서홍철도 뜻을 같이했다.

끼익- 주차장에 차를 파킹한 뒤에 박광석과 같이 내렸다. 흰색으로 칠해진 빌딩의 위쪽에 <신진 세브란스 병원>이라는 간판이 크게 보인다.

박광석과 함께 KR-전지(株)를 갔는데, 그곳에서는 정대현 사장이 여기로 왔다는 말을 들었다.

이유는 자신의 절친인 서홍철 전대 노조위원장의 병문안을 위해서다.

정대현 사장은 바쁜 업무 중에도 시간을 내어 하루에 한 번씩 여기로 온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무엇입니까?”

박광석이 내 손에든 검정색 슈트케이스를 가리켰다.

“이것은 KR-전지(株)와 정대현 사장에서 날개를 달아줄 물건입니다. 다만 그전에 정대현 사장이 이것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만약에 정대현 사장이 당신의 조건을 만족시킬 수 없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렇다면 그 정도의 인물밖에 안되는 것이니, 미쓰모토에게 사냥감으로 던져주면 되겠지요. 어차피 미쓰모토에게 먹힐 운명이었으니.”

“냉정하군요.”

“그렇다고 해도 우리 쪽에서 손해 보는 건 없습니다. 미쓰모토가 원하는 걸 우리 쪽에서 갖고 있기에.”

“그러고 보니.”

박광석이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큰 퍼즐이 맞춰진걸 깨달은 거 같다.

하지만 퍼즐을 맞추고 주도하는 건 내 쪽이다.

그나저나 미쓰모토 놈들.

이번에 제법 머리를 굴린 건 사실이다.

적이지만 약간은 칭찬해주고 싶다.

다만 칭찬은 그것으로 끝날 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녀석들을 그냥 놔둔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리고 내머리 속에서는 앞으로 이 녀석들을 어떻게 요리해 먹을까를 생각중이다.

“여기 환자 중에 서홍철 씨를 찾는데, 병실이 어디에 있습니까?”

“서홍철 환자는 5층, 516호실에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데스크에 인사를 한 뒤에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 때 뒤쪽에서 간호사들이 수근거렸다.

“어머~ 키크다.”

“저 비율봐. 순정만화에 나오는 주인공 같애.”

“184cm, 아니 그보다 더 커보이는데.”

“모델인가봐.”

뭐랄까, 좀 어색하네.

그렇다고 키를 줄일 순 없잖아.

앞으로는 이런 시선들에도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 같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