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이녀석 토끼네.
삐이익! 삑!
주위를 맹렬하게 울리는 호각 소리.
그것을 듣자 습격했던 4명이 움찔했다.
설마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일부러 신속하고 은밀하게 하려고 주위에 있는 가로등까지 다 깨버렸는데.
“뭐야?”
“어떤 새끼가....”
욕설을 퍼붓는 찰나.
이번에는 강력한 플래시 불빛이 자신들을 향해 비추어졌다. 눈이 순간적으로 멀어버렸고 혼란에 빠진 것이다.
“여기 살인이다. 조폭놈들이 사람을 죽인다. 경찰아저씨. 여기 살인자 놈들이 있어요.”
삐이익! 삐익 호루라기 소리가 연달아 터지고 경찰을 부르는 외침까지 나왔다.
자신들을 비추는 플래시 불빛은 강력했고 누가 누군지 알 수조차 없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아무리 배짱 좋은 조폭이라도 간이 콩알만 해진다.
“재덕 형님. 어쩌죠?”
“씨팔. 다 틀렸다. 튀어!”
4명중에 나이 많은 중년 사내가 소리쳤다.
여기서 어물쩡거리다가는 끝장이기 때문이다.
후다닥! 타닥!
4명이 서둘러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안성준이 악에 바쳐 소리친다.
“이 개새끼들. 죽여버린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안성준도 쫓아가지 못했다.
각목에 난타당해서 비틀거렸고.
허벅지에 칼침을 맞은 서홍철도 살펴야했기 때문이다. 플래시를 비추고 호각을불어 습격자들을 쫓아낸 인물이 말했다.
“지금 즉시 119 불러오겠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안성준이 서홍철을 살피면서 정면을 봤을 때.
조금 전까지 자신들을 구해줬던 인물은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엄청 빠르네.”
안성준이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서홍철의 허벅지에 흐르는 피를 막기 위해 자신의 와이셔츠를 찢어서 붕대로 만들었고, 그것을 칭칭 감았다.
급박한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응급처치를 하는 능숙함이 있었던 것이다.
***
삐뽀. 삐뽀-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
현장으로 출동한 경찰차들의 경광등 불빛이 사방으로 흘러갔다. 갑작스런 경찰차의 출동과 엠블런스의 난립에 주변 사람들은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비켜주세요. 환자가 지나갑니다.”
“대체 무슨 일이래요?”
“저기 골목길에서 누가 칼에 찔렸대요. 한사람은 칼에 찔리고 다른 사람은 두들겨 맞고.”
“그래서 죽었대요?”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라고 하네요.”
“저곳은 밤에 가로등도 켜있고 우범지대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긴 거에요?”
“누가 일부러 깨놓고 거기서 습격했다고.”
“어머 끔찍해라. 그런 건 조폭들이나 하는 수법 아니에요?”
“경주댁도 문단속 잘해요. 요즘 세상이 얼마나 흉흉한데.”
아줌마들 몇 명이 모여서 수근거렸다.
사람들 사이를 헤치면서 구급차로 실려가는 두 명의 모습이 보였다.
조금 전 조폭들에게 죽을 뻔 하다가 살아난 서홍철과 안성준이다.
“이 정도면 충분하군.”
두 명이 119 구급차에 수송되는 걸 확인했다.
조금 전 사건이 벌어진 현장에는 경찰들이 출동해서 조사를 펼치고 있었다. 저기서 딱히 증거가 될만한 것들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번사건에 관련된 증거들을 엄청나게 수집해 놓았다.
지금쯤 최규식 녀석.
똥줄이 타겠군.
잠시 확인해볼까?
스마트폰을 꺼낸 뒤에 이어폰을 연결했다.
지금부터 재생할 도청녹음을 다른 사람이 들으면 곤란하니까.
이런 모습은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 스마트폰으로 그냥 음악을 듣는 걸로 생각될 뿐이다.
이어폰을 귀에 꽃은 뒤에 스내쳐-어플을 실행했다.
그러자 꽤 많은 숫자의 음성파일들이 나온다.
이 음성파일들은 스내처-어플로 도청장치를 만든 최규식의 스마트폰의 통화내용.
그리고 녀석이 스마트폰을 소지하고 있을 때 주위에서 일어난 대화들이 자동으로 저장된 것들이다.
따라서 스내처-어플로 목표대상의 스마트폰을 도청장치로 만들어 놓으면, 내가 직접 감시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자동으로 녹음되고 저장되는 편리함이 있었다.
녹음된 음성파일들 중에는 최규식 녀석이 이틀 전 불륜관계의 여자와 섹스를 하면서 헐떡거리는 녹음내용도 있는데.
이 자식 토끼네.
15초 동안 헐떡이더니 끝.
아무튼 토끼든 거북이든 네놈은 이제 끝이다.
녹음파일 중에서 최신 것을 실행했다.
뚜우우- 전화음이 잠시 들리고 최규식이 스마트폰을 받았다.
“규식이냐?”
“예- 우식 형님. 어떻게 되었습니까?”
“씨팔. 다 틀렸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네놈이 준 돈 받고 재덕이랑 나머지 애들 3명 보내서 서홍철이란 그 영감탱이 담가서 끝장내려고 했는데. 갑자기 주변에서 방해자가 끼어들어서 실패했다.”
“그게 가능합니까?”
“재덕이랑 애들도 준비 철저히 했다. 가로등도 깨놓고 어둠속에서 기다려서 확실하게 찬스를 잡아서 칼침도 놓았는데, 주변으로 어떤 미친 새끼가 지나가다가 경찰에 연락하고 호루라기 불고 난리치는데. 거기서 어떻게 더 하냐?”
“그럼 서홍철 그 새끼는 아직도 살아있는 겁니까?”
“재덕이랑 애들이 제대로 담그지 못했으니 살아있겠지. 그나저나 너 때문에 우리 애들 졸라게 위험하게 됐다. 똘마니 중에 한 놈이 거기에 연장 떨어뜨리고 왔다. 종태라는 놈인데 아직 별 단 녀석은 아니라서 경찰이 조사해도 지문이나 이런 건 확실히 나오지는 않겠지만 잘못하면 우리 쪽 애들 모두 달려 들어가게 생겼어.”
“그럼 이대로 끝나는 겁니까?”
“당연하지.”
“영등포에서 각 잡고 사는 서창파의 우식 형님이 한번 실패했다고 그냥 포기하는 겁니까? 저번에 준 돈에서 몇 장 더 얹어줄 테니 이번에는 서홍철 그 새끼 끝장내 버리십쇼. 돈으로 안되는 게 있습니까?”
“이 새끼야. 돈으로 안되는 것도 있어. 너 때문에 잘못 나섰다가 지금 우리 애들 다 잠수 태우게 생겼는데. 그것만 해도 얼마나 손해인 줄 알아?”
“아 진짜.... 우식 형님.”
“당분간 우리 쪽에 연락하지 마. 그리고 너도 잘못하면 딸려들어가니까, 잠수 타던가 다른 방법 사용해.”
우식이란 사내가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최규식이 혼잣말로 떠들기 시작했다.
“씨팔새끼. 그래도 서창파 대가리라고 좀 대우해 주었더니 일처리도 제대로 못하네. 그나저나 이 새끼한테 퍼부은 돈을 어쩌나? 미츠모토(Mitsumoto)-쪽에서 이번 일 실패한 걸 알면 가만있지 않을 건데. 아! 씨팔. 제대로 꼬이네.”
최규식이 광분하고 있었다.
조금 전 도청내용을 통해 요긴한 정보들을 챙겼다.
영등포 서창파의 우식이란 오야붕.
서홍철을 죽이기 위해 습격한 놈들 4명중에 두 명은 재덕이란 녀석과 신입인 종태.
종태녀석은 습격현장에 연장.
즉 사시미칼을 떨어뜨리고 왔다고 했으니, 지금쯤 경찰들이 그것을 증거물로 수집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츠모토(Mitsumoto)라는 이름.
보기에 특정인물의 이름은 아니고 일본내의 조직이나 회사라는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미츠모토라는 명칭이 낯설지 않다.
스마트폰으로 서둘러 검색을 해보니.
“역시 이런 내막이 있었군.”
나의입가에 냉소가 스친다.
***
“개 같은 새끼. 내 손으로 이 자식의 목을 비틀어 버리고 말겠습니다.”
“그럼 살인죄가 되는데요. 이제 겨우 일 좀 하게 만들어 줬는데, 당신이 살인죄로 감방 들어가게 되면 곤란하죠.”
“그렇긴 하지만.”
내 말에 박광석이 식식거리며 겨우 진정했다.
주식분석, 기업분석, 투자분석에 최고의 실력을 자랑했던 그였다.
자신이 선택한 회사의 자본과 기술, 그리고 각종 재무재표, 그 외에도 다양한 요인들을 분석해서 기업의 가치를 측정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KR-전지(株)의 가치는 상당히 높았다. 몇 년 안에 충분히 코스닥의 빅히트가 되고도 남을 만큼의 수준이다.
하지만 박광석이 분석하지 못하는 건 사람이다.
사장인 정대현의 성격과 인품, 그의 경영철학과 능력까지는 잘 분석했다. 하지만 KR-전지(株)를 폭락으로 만든 것은 전혀 다른 원인이었다.
내부의 적-
그리고 외부의 적-
이 두 개의 세력이 동시에 공세를 펼쳤고. 박광석은 내부의 적과 외부의적이 누구인지 알아낼 수조차 없었다. 만약에 그가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평생동안 밝혀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정보는 어떻게 알아낸 것입니까?”
“우리 쪽 JSE-(K)투자는 단순한 투자회사의 수준이 아닙니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박광석 당신이 상상조차 못할 방법도 쓸 수 있습니다.”
“......!”
나의 대답에 박광석이 침을 삼켰다.
신비주의도 하나의 전략이다.
그것도 공포와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동반한 신비주의.
그것은 박광석 같이 이쪽 계통에서 닳고 달은 인물조차도 두려움을 느끼도록 만들수 있다.
내가 최규식을 감시하고 도청하는데 사용한 스내처 어플-
이것을 박광석에게 말해줄 필요는 없다. 비밀정보를 어떻게 얻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비밀정보의 내용이 무엇이냐가 중요한 것이니까.
“최규식 그 놈에 대해 어느 정도 의심은 하고 있었는데 이 정도까지 비열하게 나올 줄이야. 이정보면 당장 경찰에 연락해서 그 놈을 체포하거나 구속시킬 수 있습니다.”
“그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나의 말에 박광석이 눈만 껌벅였다.
경찰에 신고 해서 될 수준이었다면 오래전에 해버렸지.
그리고 경찰이 개입되면 지금 KR-전지(株)에 관계된 여러 가지 부분들이 껄끄러워진다.
일부러 소동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
필요하다면 경찰이든 뭐든 끌어들일 수 있지만 이번은 아니다.
그리고 최규식에 대한 부분은 조용히 해결할 방법도 있다. 녀석이 스스로 무덤을 파놓았기 때문에.
“최규식에 대한 부분은 조용히 처리할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이미 사전작업도 진행 중인 상태이고.”
“그럴 수가.”
“그것보다 KR-전지(株)의 주식을 확보하는 작업은 어느 정도 진행되었습니까?”
“먼저 타겟을 KR-전지(株)의 대주주들을 공략하는 방법으로 진행했습니다. 전략실장님께서 말한 대로 현재의 시장가격에서 10% 정도의 인센티브를 추가하니 대부분은 얼씨구나 좋다고 내놓더군요. 어차피 갖고 있어봐야 폭탄이고 재수 없으면 휴지조각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니까요.”
“확실히 현재 KR-전지(株)의 가치는 정크(Junk)수준으로 내려간 상태니까요.”
박광석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노련하다.
내가 강조한 부분.
현재의 장세에 큰 파급과 소동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조용히 매입하라는 핵심을 제대로 지켜낸 것이다.
“그렇게 해서 대략 25%까지 확보를 했습니다. 나머지 5%는 통상적인 주식매입 방법을 통해 진행될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미츠모토(Mitsumoto) 놈들도 자신들이 실수했다는 걸 깨닫겠군요.”
“아마도 주식매입을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날뛸 겁니다. 하지만 그 때에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지요.”
박광석이 미소를 지었다.
일단 박광석의 재빠른 솜씨로 30%까지 확보하는 건 가능하다. 현재 KR-전지(株)에서 최고 대주주는 정대현 사장이다.
그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이 전체물량 중에서 40% 정도다.
그나마 KR-전지(株)가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겨우 버티고 있는 건 정대현 사장이 최대 주주라는 이유도 있었다.
나의계획은 정대현 사장으로부터 30%의 주식을 인계받아 총 60%를 만드는 것이다.
나의 JSE-(K)가 KR-전지(株)의 최대 주주가 된다 해도 회사의 경영에 크게 관여할 계획은 없다. 어차피 자잘한 경영에 간섭해봐야 효율성도 떨어진다.
단지 큰 물줄기만 정해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미쓰모토 녀석들이 KR-전지(株)를 노렸을 줄이야. 대체 그 놈들이 그렇게 한 이유가 뭡니까?”
“자신들의 독점권을 계속 유지하고 이후에 경쟁자가 될 상대를 미리부터 밟아놓기 위한 목적이었을 겁니다. 당신의 예측대로 KR-전지(株)는 그럴 만큼의 역량을 갖추고 있었으니까 말이지요.”
“이번에는 놈들의 계략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이대로 쉽게 포기할 녀석들은 아닙니다.”
“저로서는 오히려 그쪽을 바라고 있습니다. 이대로 그냥 끝나면 재미없지요.”
“왠지 기대가 됩니다.”
박광석이 주먹을 쥐었다.
미쓰모토가 결코 쉬운 상대는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녀석들이 적수를 잘못 만났다.
하긴. 이래야 더 재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