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제대로 걸려들었군.
“규식 형님. 그 새끼들 대체 뭡니까?”
“투자회사인지 뭔지에서 온 놈들이라고 하잖아.”
“새파랗게 어린 새끼가 감히 규식 형님을 뭘로 보고. 그 자리에서 박살을 내주지 그랬어요?”
“그랬다가는 오히려 사측놈들에게 약점만 잡히려고? 하지만 뒷골목에서 만나면 가만 안둔다.”
“하긴 규식 형님이 왕년에 어둠의 세계에서 좀 놀았던 분이시니.”
“내가 주먹으로 영등포에서 날리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도 그 때가 그립다. 시팔! 룸싸롱 가면 계집년들이 그냥 홀라당 다 벗었는데.”
최규식이 M자로 벗겨진 머리를 만지며 아쉬움을 달랬다. 지금 있는 동생들을 상대로 자신이 왕년에 조폭세계에서 놀았다고 뻥을 쳤지만 실제는 전혀 아니다.
원래는 정규조직원도 되지 못한 허접에 불과했다. 그러나 여기 있는 녀석들은 주먹세계의 근처도 가지 못했기에 그런 뻥을 쳐도 충분히 통했다.
“오늘도 뭐빠지게 외쳤더니 목이 컬컬하네요. 그리고 투자회사인지 뭔지 하는 놈들이 와서 완전히 기분 잡쳤는데.”
“그렇다면 한잔 땡기러 가야지. 단란주점, 룸싸롱? 어디로 갈래?”
“돈 있슈?”
“조합비는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야. 그리고 기웅이 네가 총무니까 적당히 대충 꾸며놔.”
“키킥. 그러면 되겠네요.”
장기웅이 히죽거렸다.
노조위원장 최규식을 포함해 여기 있는 5명은 KR-전지(株)의 노조간부로서 권력을 마음껏 행사하고 있었다.
이전 노조위원장이었던 서홍철과 그의 지인들을 쫓아낸 뒤에는 모든 것이 자기들 멋대로였다.
“그런데 규식 형. 서홍철 그 새끼 손좀 봐줘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 놈 때문에 생산직에 있는 애들 중 일부가 우리 쪽에 반기를 들고 사측에 협조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직도 30% 정도가 생산라인에 참가하고 있으니 문제로군. 전면적으로 중단을 시켜야 하는데.”
“서홍철 그 놈을 일단 작살내야 더 이상 까불지 못할 겁니다. 규식 형님이 과거에 그쪽 세계에 있었고, 지금도 아는 애들이 있을 테니 적당한 기회를 봐서 박살내놓는 겁니다. 아예 없어지면 더 좋고.”
“크크큭! 맞아. 늙은 영감새끼. 재수 없어.”
나머지 녀석들이 동조했다.
그러자 최규식이 나섰다.
“걱정 마라. 내 쪽에서 아는 애들 있어서 충분히 처리할 수 있으니까.”
“역시 규식 형님이십니다.”
“그런데 이번 일 잘되면 우리에게도 한몫 떨어지는 게 확실합니까?”
“당연하지.”
“여기에서 좃빠지게 일해봐야 목돈 챙기기도 힘든데, 이번 기회에 제대로 한탕 하는 거죠.”
“얼마 안남았어. 지금 회사주가가 얼마인지 알아? 2년 전에 비해 20배나 폭락했어. 조금만 더 내려가면 저쪽에서 손을 쓸 예정이고, 그러면 너희들도 최소 몇 억씩은 챙길 거다. 아니 그것보다 더 많을 수도 있지.”
“역시 규식 형님의 솜씨는 대단하군요. 어떻게 그런 걸 생각해내신 겁니까?”
“내가 계획한 것이 아니지. 어차피 나와 너희들은 시키는 대로 하면서 나중에 한몫 챙기면 되는 거니까.”
“맞습니다.”
최규식 패거리가 히죽거리며 좋아했다.
그러나 최규식은 지금 자신들이 대화가 모두 도청되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
이런 이야기를 회사 내에서 나눌 수는 없었다.
그래서 회사 밖에 나와서 장소도 최규식의 자동차 안에서 이야기를 한 것이다.
하지만 최규식은 강민이 심어놓은 도청장치를 결코 피할 수 없었다.
그가 자신의 스마트폰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 동안에는 언제든지 강민이 그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
“멍청한 놈. 결국 걸려들었군.”
조금 전까지 최규식과 패거리가 하는 대화를 모두 체크했다. 중요한 대화는 녹음까지 마친 상태다.
지금 녀석은 자신의 스마트폰이 도청기로 변해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를 거다.
녀석이 해커수준의 IT 천재라 해도 알아내기 힘들다. 도청기로 변한 스마트폰을 완전히 분해해도 알아낼 수 없으니까.
스내쳐(Snatcher).
이것이 얼마 전 내가 KR-전지의 노조위원장인 최규식에게 일부러 다가가면서 몰래 작동시킨 어플이다.
녀석은 나의 속셈조차 알아채지 못한 채 내가 내민 손을 뿌리쳤다.
어차피 네놈하고 악수하려고 한 것도 아니었어.
그냥 너의 근처에 다가갈 구실을 만들었을 뿐이지.
스내쳐는 나의 스마트폰에 깔려있는 어플이다.
그리고 얼마 전 하시의 업그레이드 보상을 통해 얻은 개인스킬이다.
보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개인스킬의 메뉴들 중에서 이것을 발견하자 신속하게 선택했다.
그것도 당연했다.
지금 현대사회에서 스마트폰이나 핸드폰은 필수다.
이 스내쳐 어플은 대상이 스마트폰이든, 2G 폰이라 해도 적용된다. 기본적으로 2G 폰에도 프로그램이 깔려있으니 말이다.
대신 스내쳐 어플을 통해 상대방 스마트폰을 도청기로 만들기 위해서는 제한사항이 있다. 일단 나의 정면에 위치해야 하고 거리도 최소 3미터 이내가 돼야했다.
즉 먼 거리에 있는 상대에게는 아무리 스마트폰을 갖고 있다 해도 소용없는 것이다.
그런 단점이 있지만 이것은 그 단점을 월등하게 넘을 정도로 유용했다.
일단 스내치 어플을 작동시켜 상대방의 스마트폰을 도청기로 만든 뒤에는 언제 어디서든 추적과 도청이 가능했다.
그리고 상대방의 스마트폰이 도청기로 작동하는 원리도 크게 어렵지 않다.
스마트폰의 스피커는 기본적으로 주변의 음성을 받아들이는 마이크 기능까지 같이 있었고 이것이 도청기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
때르릉- 자명종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러자 박광석이 자리에서 튕기듯이 일어났다.
이전까지 그는 모든 것을 자포자기한 채 살아갔다.
그래서 아침에도 늦잠을 자거나 침대에서 하루종일 뒹굴기도 하였다. 한동안은 게임에 빠져 1주일 동안 씻지도 않고 지낸 적도 있었다.
그 결과 2년이란 짧은 시간에 그의 모습은 10년이나 늙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그의 삶을 확실하게 바꾸어줄 구세주를 만났으니까.
“좋은 아침이군.”
창문을 열어 한껏 시원한 공기를 들이킨 뒤에 스스로에게 중얼거렸다.
잠시 거울을 보았다.
지난 2년의 세월.
자신이 얼마나 비참하게 살아왔는지 얼굴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박광성. 이제부터 너는 다시 태어나는 거다.”
욕실로 가서 샤워를 시작했다.
침실로 돌아온 뒤에 옷장에서 슈트를 꺼내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입어보는 것이다.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에 주식과 투자의 세계에 뛰어든 그에게 슈트는 전투에 참전하는 갑옷과도 같다.
“그럼 시작해볼까?”
박광석이 주먹을 쥐었다.
그에게는 맡겨진 임무가 있었다.
쉽지는 않은 일이다.
하지만 어떻게 하는지 방법은 알고 있었다.
***
“광석이형. 정말로 오랜만입니다.”
“사실 형의 연락을 받고 꽤 놀랐어요.”
카페로 들어온 두 명이 박광석의 맞은 편 테이블에 앉았다. 두 명을 바라보는 박광석의 눈빛이 그윽하다.
두 명은 박광석이 만든 투자동아리인 메디치의 후배들이다. 두 명다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박광석과는 3살 정도 아래다.
뭣보다 박광석에게 두 명은 자신의 수제자들이나 마찬가지다.
지난 2년간 박광석이 모든 것을 실패하고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에도 2명의 후배들은 그를 믿고 따라줬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지금부터 하려는 일에는 충분한 적임자들이었다.
“그런데 광석 형. 뭔가 좀 달라진 거 같네요.”
“맞아. 전에는 진짜로 폐인처럼 하고 다녔는데.”
후배들이 놀라고 있었다.
지금 박광석의 눈빛은 살아있었고 옷차림마저 예전에 <주주클럽> 최강 네임드였을 때의 모습으로 부활한 것이다.
“너희들에게 먼저 묻겠는데.”
“어떤 겁니까?”
“지금부터 한국 증권가에 역사적인 사건 하나를 만들려고 하는데, 너희들이 참가할 생각은 있는 거냐?”
박광석의 말을 듣자 두 명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들은 박광석이 결코 헛말이나 하려고 자신들을 불러낸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형님의 그 말을 기다렸습니다.”
“역사적인 사건이라. 그렇다면 더욱 빠질 수 없지요.”
두 명이 호기있게 대답했다.
그러자 박광석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그는 두 명을 여기로 불러낼 때부터 어떤 대답이 나올지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박광석이 후배들을 향해 설명을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눈동자는 커지고 있었다.
이것은 엄청난 건수였다.
자신들에게 주어질 보수를 떠나서 이런 일에 참가한다는 자체에 흥분된 것이다.
“광석 형님도 알다시피, KR-전지(株)의 주식이 현재 시장에서 똥값으로 취급받는 상황이지만, 30% 이르는 물량을 확보하려다 보면 장세에 상당한 파장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 부분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어. 그래서 지금의 장세에 최대한으로 영향을 끼치지 않으면서 단기간에 물량확보를 하는 것이 중요하지.”
“그런 방법이 있습니까?”
“통상적인 주식매입이 아닌 각개격파다.”
박광석이 대답하더니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었다. 두툼한 서류가 탁자 위에 놓였고 두 명이 훑어보더니 놀랐다.
“이것은?”
“그래. 현재 KR-전지(株)의 주식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대주주들의 명단이다. 어차피 지금 KR-전지(株)의 주식을 보유한 대주주들은 매일 불안에 시달리고 있지. 이미 증권분석가들 사이에서는 이후에 KR-전지(株)의 주가가 더 폭락하면 아예 상장폐지가 될 가능성도 많다고 하니까. 그렇게 되면 대주주들이 갖고 있는 주식은....”
“한순간에 휴지조각이지요.”
“그들 입장에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있는 셈이지. 그래서 첫 번째 단계는 대주주들을 타겟으로 매입하는 것이지. 각개격파식으로. 다만 서류처리에 대한 부분은 최대한으로 끌어라. 그러면 시장에서도 눈치챌 가능성은 더 많이 줄어들지. 어차피 나중에는 알게 되겠지만 그 때에는 상당부분 작업이 완료된 상태니까. 다만 대주주들도 그냥 무턱대고 내놓지는 않을 거다. 10%, 즉 현재 시장매매가에서 10%를 더 추가하면 그들도 빨리 처분하려고 할 테니까.”
“역시 광석 형님의 실력은 녹슬지 않았군요.”
“그런데 이런 똥값이나 마찬가지인 KR-전지(株)의 주식에 대해 관심을 가진 세력이 누구입니까? 설마 이렇게 대량매입으로 단기간에 주가를 상승시켜 시세차익이라도 노리는 졸부라도 있는 겁니까?”
“졸부라. 후후! 나에게 이번 일을 맡기고 지원해주는 스폰서는 단기간의 시세차익 따위나 노리는 허접이 아니다. 그야말로 진짜로 엄청난 거물이다.”
“거물이라니? 광석 형님이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보니 진짜인 거 같은데.”
“너희들. 유비콘(Ubicon) 알지?”
“당연하지 않습니까? 얼마 전까지 이름조차 없었던 IT-벤처기업이었는데. 지금은 한국의 IT-산업과 모바일앱 분야에 혁명을 가져온 기업으로 인식되지 않습니까?”
“맞아! 유비콘에서 개발한 마이포토(My Photo)앱을 나도 써봤는데 진짜로 끝내주던데. 한국에서만도 3300만 다운로드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으니까. 그중에 90%가 유료전환이 되었고. 모바일앱에서 이런 경우는 거의 불가능한 수치라고 하니까. 그리고 이제는 한국만이 아니라 영어버전의 마이포토앱도 출시되어 해외에서도 1억6천만의 다운로드를 갱신했을 수준이야. 물론 지금도 해외에서의 판매와 다운로드 숫자는 급속하게 증가하는 추세니까,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수익을 거둘지는 전문가들조차도 예상하기 힘들 정도지.”
유비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두 명은 열변을 토하였다. 그만큼 유비콘이 한국의 IT-산업과 투자가들에게 일으킨 충격은 상당했기 때문이다. 박광석은 그런 후배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광석 형. 그 유비콘이 지금 우리들이 맡은 일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겁니까?”
“조금 전에도 말했듯이 우리들의 뒤에 있는 스폰서가 바로 유비콘의 신화를 만든 인비저블 핸드(Invisible Hand)다.”
순간 두 명의 표정이 굳어지며 이마에도 땀이 맺혔다. 선배인 박광석만큼 배짱과 담력이 두둑한 두 명이었다. 그러나 지금 자신들이 들은 이야기는 엄청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