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
어라! 여기 장난아니네.
“제법 흥미로운 생각과 견해인데.”
대략 10페이지에 이르는 기사.
정확히는 기사라기보다 칼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처음에큰 큰 기대없이 펼쳤다가 나도 모르게 몰입하며 끝까지 읽었다.
도서관에서 이런 식으로 잡지를 몰입해서 읽은 것도 오랜만이네.
원래 도서관이란 지식을 탐구하고 쌓는 곳이란 목적이 있다. 그런데 요즘 대학교 도서관은 다른 방식으로 바뀌었다.
특히 학생들이 열공하는 도서관 열람실의 경우에는 아침부터 일찍 오지 않으면 자리를 못 잡을 정도다.
그런데 도서관의 열람실에 책가방으로 자리만 잡아놓고 공부 안하는 애들도 있기는 하다. 도서관 민폐족인데 도서관 이용자들 모두의 공적이다.
이런 민폐족들이 간혹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너무나도 열공하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다.
공시족부터 시작해서 취업준비족, 그리고 영어스펙을 준비하는 부류까지.... 다양하다.
오전강의가 끝나서 오후에 왔더니 역시나 열람실에는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일단 정기간행물 코너에서 잡지들을 뒤적이며 시간을 좀 보냈다.
그중에서 나의 흥미를 끄는 잡지가 보였는데, <월간(月刊) 가제트>-라고 노트북이나 스마트폰등의 IT-기기에 대한 잡지였다.
유비콘에 대한 투자 등을 하면서 이쪽 분야에도 관심이 생겼기에 천천히 훑어보았다.
그러던중 꽤 흥미있는 칼럼을 발견한 것이다.
처음에는 IT-관련쪽의 기자가 쓴것인가 했는데 아니었다.
하긴 이 정도의 전문적인 칼럼수준과 분량이라면 일반기자의 수준을 넘어간 것이니까.
특히 도표와 차트.
그리고 그래프등을 통해 논리적으로 펼치는 주장과 설명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다.
뭣보다 그 칼럼에서 가장 중요하게 주장하는 핵심은 이거였다.
[지금의 IT-산업을 포함해서 모든 전자산업의 발전속도가 과거에 비해 점점 더 정체되고 있다. 그 원인중에 가장 큰 것은 바로 배터리의 발전속도가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그래프도 있었는데.
적색과 청색의 그래프였다.
적색은 IT-산업제품과 기술의 발달.
그리고 청색은 배터리의 효율과 용량, 기타 등등의 발전 그래프다.
두 개를 시각적으로 비교해 놓은 것을 보니 확실히 와닿았다.
IT-기술은 초기부터 가파르게 올라가는 중이지만 점차로 둔화되었다.
그에 반해 배터리 기술을 나타내는 청색은 발전곡선 자체가 너무나도 완만했다.
이 정도로 엄청난 차이가 날 줄이야?
이런 불균형과 차이는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는데 충분한 조건이란 뜻이다.
주식투자에서 시간에 따라 개별주식의 상한가와 하한가의 차이가 클수록 그 차액을 통한 이익이 큰 것과 비슷한 것이다.
“정대현이라. 일단 기억해둘 만한 인물이네.”
처음에는 몰랐는데 칼럼을 쓴 정대현은 현재 한국의 배터리 산업계에서 활동하는 인물이었다.
“KR-전지(株)의 사장이었군.”
나에게는 낯선 기업의 명칭이었다.
따라서 한국에서 유명한 대기업은 아니다.
아마도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의 사장쯤 되는 거 같은데 자신이 하고 있는 분야에 대한 식견이 제법 뛰어났다.
특히 <월간 가제트>처럼 전자와 IT에서도 하드웨어쪽을 중점으로 다루는 잡지에 이렇게 괜찮은 칼럼을 낼 정도의 수준이라면 실력은 충분히 증명되는 것이다.
수첩을 꺼낸 뒤에 칼럼에 있는 그의 약력을 포함해서 몇 가지를 기록했다.
***
“여권하고 비행기표는 잘 챙기셨죠?”
“물론이지. 이미 확인했는걸.”
송재동이 대답하며 웃었다.
매사 꼼꼼하고 빈틈없는 사람이니까.
인천공항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한국의 관문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인천공항은 세계에서도 탑클래스에 들어가는 곳이다.
몇 년 동안 전세계 공항서비스 1위를 차지한 경우도 있었으니 말이다.
과거에 국제공항이 김포공항 하나밖에 없었을 때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이다.
그만큼 지금도 해외로 출국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목적은 저마다 틀리다.
어떤이들은 해외여행으로.
그 외에 비지니스 목적으로 떠나는 사람도 있었고.
해외유학이나 어학연수등으로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국으로 입국하는 외국인들의 숫자도 상당할 정도다. 인천공항에 오면 서울이 국제적인 도시란 사실을 실감한다.
“그나저나 네덕분에 이렇게 해외여행까지도 하게 되다니.”
“출장겸 해외여행이라 생각해 두십시요.”
“그렇지. 일이 먼저니까.”
“다만 시간은 넉넉하니까, 이것저것 둘러보고 오셔도 됩니다.”
“일단은 미국부터군.”
“그렇습니다.”
송재동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송재동은 내가 요청한 일들을 진행시키기 위해 미국을 시작으로 몇 개국을 돌아볼 예정이다.
그것을 위한 경비는 모두 JSE-(K)투자에서 지불하기로 되어있었다.
“이것은 JSE-(K)투자의 법인카드입니다. 해외에서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ATM에서 인출하셔서 써도 됩니다. 한도는 상당하니까 여행경비에 불편한 점은 없을겁니다.”
“이미 자네가 준 돈만도 꽤 되는데.”
“만약의 사태란 것이 있으니까요.”
“기왕이면 너도 같이가면 좋을텐데.”
“그러고는 싶지만, 여기서 당분간 해야 할 일이 좀 있어서요.”
“하긴 지금 자네의 위치라면 몸이 열개라도 부족할 테니까.”
송재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송재동의 말이 결코 과장은 아니다.
시야가 커지고 넓어지면서 수많은 기회들이 존재했다.
그중에는 지금 당장 손에 잡을 수 있는 것들도 있었고 이후에 좀 더 준비를 통해 만들수 있는 부분도 있었다.
“특허와 지적재산권에 대한 부분은 재동 선배 혼자만의 힘으로는 쉽지 않을 겁니다. 따라서 미국에 있는 특허쪽 전문변호사를 통해서 일처리를 하는 게 더 수월하실 겁니다.”
“확실히 그렇네. 너의 연락을 받고 미국 특허청과 관계기관에 대한 것들을 좀 알아보고 조사도 했는데, 역시나 한계가 있더군. 대신 미국에 있는 지인을 통해 제법 실력 좋은 특허전문 변호사를 소개받았네. 대형 로펌등에서 일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처리가 칼 같고 실력도 좋은 편이라고 하니까.”
“그 정도면 충분히 안심할 수 있겠군요.”
얼마 후면 전세계의 배터리 산업계를 뒤흔들 엄청난 신제품이 나올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서는 나름대로 사전준비가 필요했다.
그중에 핵심은 특허부분이다.
신제품으로 나올 배터리는 웬만해서는 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최신기술이 적용되지만 무조건 안심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내가 송재동을 시켜서 미국의 특허청에 등록하고 법적인 장치를 마련할 부분은 원천기술쪽이다.
기술특허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고 핵심이 바로 원천기술이다.
원천기술의 특허와 지적재산의 권리를 제대로 잡고 있으면 이후에 제품복제나 기술유출이 생겨도 충분히 방어가 가능했다.
물론 그전에 보안을 신경 써야 한다는 부분도 있지만 말이다.
“일단 배터리 기술의 특허부분은 그렇다치고, 나머지 부분에 대한 것들은 좀 의외로군.”
“지금 당장은 설명해 드리기 힘들지만, 나중에 차차 아시게 될 겁니다. 그것보다 재동형님이 전에 마이애미와 플로리다를 가보고 싶어 하셨잖아요. 이번 기회에 거기도 한번 다녀오세요. 거기가서 근사한 호텔잡고 1주일 정도 푹 쉬시면 이제까지 쌓였던 스트레스도 풀고 재충전도 하실수 있을겁니다. 나중에 저도 기회되면 가보고 싶은데, 미리 가셔서 이것저것 사전정보도 알아오시면 좋고.”
“그런가? 먼저 일부터 끝내놓고 가야지.”
하지만 표정을 보니 벌써 마이애미 비치에서 느긋하게 모히또를 마시고 있는 거 같다.
미드 CSI를 보니까 마이애미 해변이 꽤 멋지던데 나도 나중에 가볼까 생각중이다.
카리브해의 멋진해변과 수영복을 입은 잘빠진 백마누님들. 캬~ 죽인다.
그 때 스피커에서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18:30분에 뉴욕으로 출발하는 아시아나 417편의 탑승객들께서는 탑승수속이 시작되오니 준비해 주십시요.”
“이제 가야될 거 같군.”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요.”
송재동을 탑승수속 하는 곳까지 배웅해 주었다. 그가 갖고 있는 짐은 많지 않았다.
수화물로 부칠 캐리어 1개와 항상 갖고다니는 노트북용 가방이 전부다.
얼마 후 탑승수속대로 향하던 송재동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의 표정이 꽤 밝았고 활기차 있었다.
미국에서의 일은 송재동에게 맡겨두면 충분한 거 같고.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다.
***
“일단 사전체크를 좀 해볼까?”
노트북을 열고 인터넷 브라우저를 켰다.
국내 최대의 포탈사이트인 세이버(Saver)로 접속하였다.
세상의 정보들 중에 90% 이상은 인터넷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인터넷을 정보의 바다-라고 부르는 것도 결코 과장은 아니다.
나머지 10% 이내의 것들은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는 것들이다.
어차피 보통 사람들이 그런 정보에 관심을 가질 가능성도 없고 접근할 방법도 없다.
흔히 말하는 ‘알면 다쳐~’라는 정보들이 그런 것등에 속한다.
하지만 그 외에 대부분의 정보들은 인터넷을 잘만 이용하면 충분히 얻는 게 가능했다.
내가 운영하는 JSE-(K)투자는 기본적으로 투자회사다.
투자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하지만 제조업 분야에서 직접 나서서 하는 것은 그닥 좋은 방법이 아니다.
대신에 앞으로 JSE-(K)투자는 여러 가지 다양한 기술적인 특허와 지적재산권을 소유하게 될 가능성은 많았다.
이번에 내가 송재동을 미국으로 보내서 특허와 지적 재산권에 대한 부분을 처리하게 한 것도 그런 이유다.
비록 JSE-(K)가 직접 제품생산과 제조업분야에 참가하지 않더라도.
JSE-(K)가 보유하고 있는 특허와 지적재산권을 이용해서 얼마든지 시장을 주도하는 마켓리더(Market Leader)로서의 일은 해낼 수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대상을 찾는 것이다.
잘못된 대상을찾고 지원하게 되면 돈은 돈대로 잃고 현재까지 쌓아온 위치마저 흔들릴 수 있었다.
그래서 신중하게 결정해야 했다.
일단 후보로 오른 회사가 하나 있다.
얼마 전 내가 <월간 가제트>잡지의 칼럼을 통해 깊은 인상을 받은 정대현 사장과 KR-전지(株)다.
잠깐 살펴보니 코스닥에 등록된 회사다.
대규모 자본금을 갖고 유명한 대기업들이 주로 코스피(Kospi)에 상장된 회사들인 것에 비해. 코스닥은 상당수가 중견기업과 중소기업 그 외에 벤처회사들이 상장되어 있다.
과거에 한국의 주식쟁이들에게 코스피는 메이저리그, 그리고 코스닥은 마이너리그- 이런 식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것도 많이 사라졌다.
그럴 것이 코스닥에도 이제는 과거와달리 코스피에 있는 대형회사들 못지 않게 엄청난 규모와 유명세를 갖고 있는 기업들이 군데군데 있었기 때문이다.
주식쟁이들.
소자본이나 현금등으로 단기투자에 집중하는 개미투자자들 중에서 주식에 미쳐있는 사람들을 이렇게 부른다.
예전에는 이런 사람들이 각자 따로 놀다가 이후에 인터넷 커뮤니티의 발전을 통해 정보교류와 기타 등등의 목적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세이버(Saver)에는 국내 최대의 포탈사이트답게 주식하는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가 꽤 있었다.
그중에서도 대표격인 <주주클럽>이 가장 유명하다.
주주클럽의 맴버들을 향해 사람들은 이렇게도 말한다. 주식빼고는 뭐든지 잘하는 사람들의 모임.
꽤나 비아냥대는 말이었는데 정작 주주클럽의 맴버들도 여기에 화를 내지 않고 대부분 인정한다.
하긴 자신들도 그걸 아니까.
뭣보다 <주주클럽> 같은 주식동아리나 커뮤니티의 정보들은 반쯤은 한귀로 흘려듣거나 걸러야한다.
팩트없는 정보들이 난무하고.
어떤 목적을 갖고 선동하는 정보들까지 다양하다.
그럼에도 여기를 확인하는 건 나름 이점도 있었다. 일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고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등의 분석과 필요한 것들을 캐내는 것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들어가본 평가는.
어라! 여기 장난 아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