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미션 컴플리티드(Mission Completed).
“강민 형. 저보다 일찍 왔네요.”
“그래도 오늘이 시험날인데 지각할 수는 없잖아. 그런데 시험준비는 좀 했어?”
“나름대로 한다고는 했는데....”
종수 녀석의 말끝이 흐려진다.
나와 다르게 종수는 매달마다 토익시험을 본다.
1년에 한두 차례 토익시험을 보는 건 접수비도 크게 부담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매달시험을 본다면 1년에 12번이다. 그 정도면 토익시험 응시비용도 꽤 나올 텐데.
“너 저번 달에도 시험 봤다면서.”
“그래도 이번 달은 또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그리고 토익은 자주 보는 게 좋대요. 그래야 토익시험 감각이 죽지 않으니까.”
“누가 들으면 토익에 통달한 900점대의 고득점자인 줄 알겠네.”
“안그래도 토익점수 때문에 스트레스인데 형까지 나를 괴롭히다니. 그나저나 언제쯤 900점대를 받아보나.”
“저번 달에는 몇 점 나왔는데.”
“765점요. 이번 달에는 진짜로 800점대에 들어가야 하는데. 강민 형 우리 같은 문과는 취업시에 최소 800점대가 되어야 그나마 원서라도 넣어볼 수 있어요. 그리고 900점대면 일단 토익점수로 먹고 들어갈 수 있고요.”
“그럼 800점대 이하는?”
“그 점수로 지원해봤자 입사원서에서 대부분 커트당하죠.”
종수가 대답하며 한숨을 쉬었다.
신입사원 채용에서 기업들이 영어점수 안본다고 뉴스 기사나 공개 인터뷰 등에서 말하지만 그건 전부 거짓말이다.
단지 기업이미지 때문에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뿐이다.
그리고 신입사원 채용에서 영어점수 나쁘면 종수 말대로 입사원서에서 커트라인 당하고 면접까지 갈수도 없다. 요즘은 면접에서 영어테스트까지 있을 정도다.
“그래도 시험장소가 소명중학교로 걸려서 다행이네요.”
“여기가 뭐 특별한 게 있어?”
“당연하죠. 서울에서 토익시험 응시생들한테는 중요해요. 특히 토익리스닝 할 때 스피커 상태가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어요. 안그래도 토익리스닝 때 영어발음 잘 안들리는데, 스피커 상태까지 안좋아봐요. 진짜로 그날은 초죽음이에요.”
역시나 매달 토익시험 치는 녀석이라 내공이 다르구나. 다만 시험 점수는 700점대에 머물러 있지만.
종수 녀석과는 저번 달 초에 우리학교에서 토익시험을 같이 접수했다. 그 때문에 시험장소도 같은 곳으로 배정받은 것이다.
“지금부터 사람들 엄청나게 들어오네요.”
“토익시험보러 이렇게 많이 올 줄이야.”
시험보러 오는 응시생들의 상당수가 대학생들이다. 그 외에 직장인들도 꽤 보이고.
토익시험이 주말에 있다 보니 저렇게 직장인들도 충분히 응시할 수 있는 것이다.
“강민 형은 어때요? 준비 좀 하셨어요?”
“네가 가르쳐준 토익시험 요령이랑, 그리고 토익문제집 좀 사서 풀어보고 했어.”
“형도 저처럼 토익스터디에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하시면 이번 달에 점수 더 잘 나올 수 있는데.”
“그것도 괜찮지만 이래저래 바쁜 것도 있어서.”
녀석을 향해 대답하며 웃었다.
종수 녀석은 우리학교에 있는 여러 동아리들 중에 토익스터디에 가입해서 공부하고 있었다.
그 동아리의 목적은 오로지 토익공부다.
이전에 내가 만난 세연이가 가입한 토킹어바웃(Talking About)이란 영어동아리와는 성격이 좀 틀리다.
토킹어바웃은 영어를 즐기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고 토익스터디는 오로지 토익 고득점을 목표로해서 모인 것이다.
영어공부는 세연이 말대로 즐기면서 해야 하는데.
그런데 토익 고득점만을 목표로 공부하면 금방 지치고 자괴감이 생긴다.
“그런데 네가 며칠 전에 말한 그 토익시험 요령이란 게 나름 효과는 있는 거야?”
“당연하죠. 토익시험 보는 응시생들은 그런 요령쯤은 다 터득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토익리스닝 준비방송 나올 때 토익 독해(R/C)의 Part-5 부분을 최대한으로 많이 풀어라는 거 말이지?”
“예. 그것도 있고요. 토익리스닝(L/C)에서 Part-1부터 시작해서 Part-4까지 넘어갈 때마다 준비방송 하거든요. 그 때도 짬을 내서 토익독해의 문법문제인 Part-5, 하고 Part-6를 짬짬이 풀어놓으면 좋아요. 그게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이거든요.”
종수가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듣고 보니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이전에 토익시험 봤을 때 토익리스닝은 영어가 들리지 않아서 반쯤 포기했다.
그리고 토익 독해(R/C)는 문제를 풀 시간이 부족해서 쩔쩔매었다.
시간이 좀 있었다면 풀수 있는 문제도 시간 부족으로 꽤 놓쳤으니까.
하지만 그 때는 애초부터 기초실력이 부족해서 몇 문제 더 푼다고 해서 점수가 크게 달라질 것도 아니었지만.
하지만 지금 종수가 알려준 토익시험 요령은 나름대로 유용하게 쓸 수 있었다.
지금은 영어울렁증도 극복했고 오늘 시험에 대해서도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이 컸다.
얼마후 응시생들과 함께 내가 배정받은 교실로 향했다.
“강민 형, 토익시험 잘 보세요.”
“너도 이번에는 목표한 점수를 딸 수 있을 거야.”
종수를 향해 손을 흔들어 준 뒤에 교실로 들어갔다.
교실 안에는 응시생들이 꽤 있었다.
그리고 책상 위에 토익문제집을 펴놓고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었다.
배정된 책상에 앉아서 컴퓨터용 연필과 수험표, 그리고 토익책을 올려놓았다.
어제 호진대학교에 있는 벤처팀인 유비콘(Ubicon)을 다녀온 뒤에 시간을 내서 조금씩 풀어보았다.
문제집을 풀어본 결과로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실전은 또 다른 법이니까.
요즘은 며칠에 한 번씩 정도 호진대학교에 있는 유비콘(Ubicon)을 찾아갔다.
거기로 가는 이유는 새로 만들어질 모바일앱인 마이포토(My Photo)의 개발 진행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서다.
폭망해버린 이전의 마이포토앱의 경우.
최병관을 팀장으로 하는 유비콘은 거의 1년의 시간을 들여 개발해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이 폭망이란 게 문제였지만.
하지만 1년 동안 모바일앱을 개발하면서 쌓였던 노하우나 축적된 경험들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때문에 새로 개발될 마이포토(My Photo)가 신개념의 혁신 적인 모바일앱이기는 하지만 개발기간은 과거에 비해 월등하게 단축될 수 있었다.
팀장인 최병관의 말에 따르면 2개월 정도면 개발이 가능하고 나머지 15일에서 한 달 정도는 테스트다.
그 뒤에는 곧바로 앱스토어(App Store)에 공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속한 JSE-(K) 투자에서 넉넉한 자금이 공급되는 상태였기에 최병관부터 팀원들의 사기도 꽤 높았다.
모바일앱 개발을 위해 밤낮으로 작업하는 중이었고 피곤함을 잊은 듯한 모습이다.
이제는 유비콘의 팀원들도 느끼고 있었다. 새로운 모바일앱인 마이포토를 완성시키면 자신들에게 대박이 떨어질 것을 확신한 것이다.
‘아무튼 유비콘의 일은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으니, 지금은 토익시험에 집중하자.’
몇 차례 숨을 내쉬면서 정신집중을 하였다.
잠시 후에 스피커에서는 토익시험이 실시될 예정이니 응시생들은 시험장으로 들어가라는 방송이 나왔다.
드디어 시작이다.
***
“으허어엉~ 강민 형. 저를 죽여주세요.”
“죽고 싶으면 그냥 자살해.”
“인간적으로 너무하네요.”
종수 녀석이 투덜거렸다.
오랜만에 쳐본 토익시험.
처음에는 좀 떨렸지만 이번에는 나름 준비도 많이 했다.
그리고 종수 녀석이 가르쳐준 토익시험 요령법.
이것도 꽤 유용하게 써먹었다.
확실히 영어울렁증을 극복해서 그런가?
이전에 비해 한결 여유가 있었다.
처음에 시작된 토익리스닝 문제를 풀면서 나의 영어실력이 꽤 늘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요즘 토익리스닝은 과거에 비해 더 어려워졌다.
이전에는 주로 미국식 악센트가 전부였다. 그러나 지금은 영국식, 유럽식, 그리고 호주식까지 다양한 영어발음과 악센트가 나온다.
따라서 영어발음과 문장에 귀가 제대로 뚫린 상태가 아니라면 들어도 혼란에 빠진다.
하지만 토익리스닝 문제를 풀면서 제대로 들렸고 내용들도 충분히 이해되었다.
그래서 토익리스닝(L/C)은 문제없이 풀어나갔는데 역시 토익독해(R/C)파트는 단기간에 되는 건 아니었다.
문법파트인 Part-5와 Part-6는 무난했는데 독해지문이 많은 Part-7 에서는 시간이 부족했다.
결국 문제를 다 풀지는 못했고 몇 개는 되는 대로 찍어야했다. 하지만 이 정도 수준도 나에게는 놀라울 정도다.
하시의 말대로 영어훈련을 통해 중급까지 되면 토익시험에서 800점대 수준의 점수가 나온다고 했다.
솔직히 이 정도만 나와줘도 감사할 정도다.
군대가기 전 1학년 때 토익 600점도 못나왔던 수준에 비한다면 엄청난 발전이니까.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시험 어려웠어?”
“당연한 거 아니에요? 저번 달보다 더 어려웠어요. 특히 토익리스닝(L/C) 부분은 들어도 이해안되고.... 끄아아악!”
종수 녀석이 발작하고 있었다.
토익리스닝이 그렇게 어려웠나?
대부분 다 들리던데.
“하지만 L/C 파트 많이 어렵지 않던데.”
“진짜예요? 그럼 Part-4에서 80번부터 83번까지의 내용이 대체 뭐였어요?”
“그거 비행기에서 기장이 2시간 뒤에 공항에 착륙한다고 승객들에게 설명하는 거 아니었어? 그 외에 여러 가지 주의사항과 착륙할 공항에 대한 설명. 그리고 몇 가지 내용들도 있었지. 뭣보다 그건 토익시험에서 자주나오는 유형 중에 하나잖아.”
“허어억- 하지만 발음이......”
“미국식 악센트가 아니라 호주식 악센트라서 듣고 이해하기가 까다롭기는 하지.”
내 말에 종수 녀석이 놀라고 있었다.
믿기 힘들다는 표정.
“강민 형, 미국 드라마 열심히 보더니 진짜로 영어귀가 뚫린 거에요?”
“그런 것도 같고.”
“으아아아~ 부럽다. 난 이번 달 시험도 망했는데. 으허허헝~”
짜식이. 그렇다고 울 것까지야.
***
“거시경제에서 메이나드 케인즈가 이룩한 업적은 혁명적이라고 볼 수 있지. 그전까지 수많은 경제학자들은 주로 아담스미스의 경제이론과 리카르도의 비교우위 등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자유경쟁을 바탕으로 한 경제이론을 최우선으로 하였지. 즉 모든 경제활동을 시장에 맡겨두고 방임해야 한다는 것이었지. 하지만 케인즈의 경우에는 경제주체 중에서 국가, 즉 정부의 활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케인즈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교수님의 강의.
하지만 강의실에서 수업드는 학생들의 표정은 무덤덤하다.
그중에는 강의내용을 따라가지 못해 반쯤 멘붕상태에 빠진 경우도 있었다.
경영학이란 학문은 기본적으로 경제학이란 큰 분야에서 파생된 것이다.
그렇기에 경영학과는 경제학의 여러 이론들에 대해서도 배워야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거시경제학은 수많은 학생들을 지옥으로 빠뜨리고 멘붕을 일으키는 과목이다.
경영학과 선배들이 말하기를 거시경제학이 어렵다고 하더니 허풍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나도 절벽에 막힌 듯 반쯤 멘붕을 일으켰지만 지금은 그래도 조금씩 개념을 잡아가고 있었다.
이제는 조금씩 알아갈수록 오히려 재미도 느끼는 중이다.
띠링~ 스마트폰의 벨소리가 작게 울렸다.
일부러 음향을 줄여놓은 상태다.
메시지 아이콘에 숫자가 표시되었고 확인을 해보았다.
[미션 컴플리티드(Mission Completed)!]
단순하지만 임팩트있는 문장.
보낸사람은 유비콘 벤처팀의 최병관이었다.
저 내용이 의미하는 뜻은 하나다.
드디어 킬러앱(Killer App)이 완성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