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
양민학살
“병관 형! 이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요.”
“팀장님. 우리들의 권리를 이렇게 침해당해도 되는 것입니까?”
“유비콘의 지분문제는 그렇다 쳐도 앱개발에 대한 부분까지 간섭을 받다니. 이건 우리를 상대로 갑질하겠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나머지 5명의 팀원들이 저마다 불만을 터뜨린다. 그것에 반해 최병관은 시종일관 침묵을 지켰다.
이런 반응이 나올 줄 예상했는데, 딱이네.
갑작스런 상황이 벌어지자 동수 녀석이 움츠러 들었다.
“강민 형, 이거 분위기가 갑자기 삭막해지네요.”
“겨우 이 정도 갖고 뭘 그래.”
“하지만.”
나의 대답에 동수가 고개를 내저었다.
한순간에 유비콘 팀원들에게 원수가 되어버린 상황이다. 지분문제에 대한 부분은 특별한 충돌없이 잘 넘어갔다.
팀장인 최병관을 포함해서 나머지 팀원들도 자금압박으로 후달리던 상황이다.
따라서 몇억이란 돈이 지원된다고 하니 마다할 까닭이 없다.
그들도 자신들이 개발해낸 마이포토-어플이 중박은 커녕, 쪽박을 차는 상황에서 다음번까지 버티기 힘들다는 걸 예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다른 것에서 나왔다.
공대생들이 그렇듯, 기술과 개발쪽에 관련된 사람들은 자신들이 진행 중인 프로젝트와 그 결과물에 대해 상당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이건 기술적인 자부심이라고 해야겠다.
그리고 유비콘에 모여있는 팀원들은 컴퓨터와 프로그래밍, 그리고 앱개발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최고라는 자부심도 갖고 있었다.
때문에 자신들이 진행 중인 개발분야와 진행에 대해 외부인이 간섭하거나 끼어드는 걸 죽기보다 싫어한다.
특히 나 같은 비전공자가 자신들이 진행 중인 일에 대해 이것저것 참견하는 걸 못참는 경우도 생긴다.
“예상대로의 반응이군요.”
“당연하지. 저 녀석들은 그야말로 컴퓨터 하나에 목숨을 건 상황인데. 그리고 프로그래머라는 자부심도 대단하고.”
최병관도 이해한다는 표정이다.
그자신도 컴퓨터에 목숨 걸고 지금까지 살아왔으니 말이다.
그래서 시야가 좁아지고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유비콘이 지난 1년 동안 피땀 흘려 개발하고 출시한 모바일앱인 마이포토(My Photo).
그들이 마이포토에 가지는 애정과 정성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나의 솔직한 평가는?
쓰레기다!
아니 쓰레기보다 더 못한 것이다.
최병관의 경우, 지난 1년 동안 유비콘 팀원들과 마이포토-앱을 개발한다고 갖고 있던 돈을 대부분 써버렸다.
길어봐야 1~2달 안에 최병관은 파산이고 유비콘은 공중분해 될 것이다. 팀원들 5명이 나를 향해 적대적인 눈길로 쏘아보았다.
“여기 있는 최병관 팀장님을 통해 여러분들의 지난 이력을 포함해서 어떤 실력과 일들을 해왔는지도 들었습니다. 나름대로 IT와 프로그래머로서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알겠더군요.”
“컴퓨터에 컴자도 모르는 투자회사의 전력실장과는 다르지요.”
“하하. 그 정도까지는 아닐 겁니다. 저도 업무 때문에 오피스 프로그램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를 쓰니까요?”
“지금 장난하는 겁니까?”
나의 대답에 5명이 발끈했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유비콘이 지난 1년 동안 개발해서 출시한 모바일앱인 마이포토에 대한 저의 평가. 아니 일반 스마트폰 유저들의 평가는 냉혹합니다. 지난 몇 달 동안 다운로드가 채 200도 안되는 상태. 그리고 몇 개 올라온 리뷰 등도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지요. 이게 현재 여러분과 유비콘이 있는 위치입니다.”
“......”
나의 말에 팀원들 5명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들 나름 프로그래머라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현실은 냉혹하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마이포토-앱이 완전히 나쁜 건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 상태로는 폭망인 건 사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건 개발자와 스마트폰 유저들간에 엄청난 생각 차이가 있어서 그런 겁니다. 보통의 스마트폰 유저들은 이런 걸 원하는데 개발자들은 잘 모른다는 것이죠.”
“그럼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원하는 게 어떤 겁니까?”
“좋은 질문입니다. 역시 처음에 비해 그래도 대화가 통하기 시작하네요.”
그렇다고 저들 5명의 인원들이 나를 향해 호의적으로 바뀐 건 아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시작이다.
“일단 유비콘이 개발한 마이포토와 같은 스마트폰용 사진편집앱을 사용하는 유저들의 요구사항과 몇 가지 부분에 대해 시장조사를 해보니 특이한 게 있더군요. 가장 일반적인 생각은 기존의 사진편집용 앱들이 대부분 비슷해서 그저 그렇다는 것. 그리고 뭣보다 스마트폰 화면상에서 2차원과 평면으로만 편집되는 것의 한계가 있다는 것.”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닙니까? 스마트폰 화면이 무슨 입체영상으로 구현되는 것도 아니고.”
“확실히 그렇죠. 하지만 스마트폰과 모니터의 평면화면에서도 입체적인 영상과 이미지를 구현하는 건 이미 나와 있습니다.”
“그게 3D 랜더링 기술인데. 그건 어디까지나 CG(컴퓨터 그래픽) 등이나 다른 전문분야에만 사용되는 것일 뿐이지. 스마트폰의 사진을 편집하는데 사용하기에는 적용이 어렵습니다. 솔직히 그런 게 된다면 진짜로 엄청난 것이긴 한데.”
“3D 랜더링이라니. 설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야? 그게 모바일앱의 프로그램 상으로 가능할 수나 있어?”
5명의 팀원들이 저마다 웅성거렸다.
내 쪽에 있던 최병관도 놀라고 있었다.
“어디서 그런 아이디어를 얻은 것인가?”
“제가 속해있는 JSE-(K) 투자회사도 나름대로 시장조사를 하고 고객의 니즈가 무엇인지에 대해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가....”
대답을 듣자 최병관이 고개를 저었다.
이것을 통해 유비콘에 투자를 할 JSE-(K)가 결코 만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확실히 기발한 아이디어와 개념인 건 사실인데. 그것은 현재의 모바일앱 개발의 진행과 프로그래밍의 상황을 모르는 상태에서나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솔직히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건 미국의 실리콘밸리에 있는 IT쪽 프로들도 해낼 수 없어요. 가능했다면 그쪽에서 먼저 나왔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알고 있는 제임스D라는 친구는 전혀 불가능은 아니라고 하더군요.”
“대체 그 제임스D가 누구입니까?”
“제가 속해있는 JSE-(K)의 본사쪽 사람입니다. 다만 주로 온라인에서만 활동하고 일하는 편입니다. 여기 그의 메신저 주소가 있으니, 원하시면 지금 여기서 실시간으로 채팅은 가능할 겁니다.”
“아무래도 제임스D라는 친구도 프로그래머인가 보군.”
최병관이 흥미를 나타냈다.
그것은 나머지 팀원들도 마찬가지.
유비콘 팀원들이 나에게 전달받은 메시지 주소를 입력한 뒤 접촉을 시도했다.
***
“병관 형. 이거 엄청난데요.”
“외국의 프로그래머들 중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천재들이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장난이 아닙니다.”
“아. 수준 차이 너무 나서 자괴감이 생길 정도네.”
조금 전까지 기고만장했던 5명의 팀원들.
이제는 좌절감으로 헤매는 중이다.
당연하지.
조금 전 저들이 채팅으로 상대한 존재가 누구인데.
전우주적인 코즈믹 AI에서 파생된 하이퍼 시스템이란 최강의 인공지능이다.
대충 보니 하시가 저들 5명을 상대로 적당히 놀아준 거 같다.
“도대체 제임스D라는 사람은 누구길래 이런 엄청난 능력을 갖고 있는 건가. 저 정도 실력이라면 굳이 우리를 향해 이런 정보를 알려줄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개발해도 될 것인데.”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제임스D는 더 큰 프로젝트에 매달려있는 상태라 모바일앱을 개발할 시간이나 틈은 없는 상황입니다. 제임스D도 어느 정도 개념을 알고 있고 그것을 창안했지만 실제로 본인이 개발을 하는 건 또 다른 문제이니까 말이지요.”
“그건 맞는 말이네.”
내 말에 최병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자신도 프로그래머로 조금 전 하시가 제임스D라는 가명을 통해 알려준 개념이나 설명들이 독창적이고 획기적이란 사실은 직감했다.
하지만 그것을 실제적인 모바일앱으로 개발하고 완성해 내는 건 또 다른 문제이고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제임스D라는 친구가 담당하고 있는 프로젝트라면 규모가 꽤 큰거 같은데. 대체 어떤 것이길래....”
“펜타곤(국방성)과 관련된 극비의 프로젝트라는 사실만 말해줄 수 있습니다. 더 이상은 기밀사항이라. 그리고 너무 알려고 들거나 노출되면 비극이 생길 수도 있어서.”
“그, 그렇군.”
내 말에 최병관의 표정이 굳어지며 겨우 대답했다. 유비콘 팀원들이나 최병관이 제임스D에 대해 쓸데없이 관심 가지거나 파고드는 걸 미연에 차단하기에는 쓸만한 방법이다.
이것으로 조금 전까지 기세등등하던 팀원들과 최병관까지 완전히 나의 페이스로 만들었다.
하긴 멋모르고 우쭐대는 프로그래머를 박살내는 건, 그것보다 몇 배나 월등한 프로그래머의 등장을 통해 제압하는 것도 괜찮은 수단이니까.
“그럼 좀 전에 하던 협상을 계속 진행하는 것도 좋겠군요.”
“당연히....”
최병관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것으로 망해가던 유비콘이 되살아날 방법이 생겼으니까 말이다.
그냥 살아나는 수준을 넘어, 전세계의 모바일앱 시장을 진동시킬 킬러앱(Killer App)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
<강민 유저의 덕분에 오랜만에 유쾌한 시간과 경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유쾌한 시간과 경험? 내가 보기엔 일방적인 양민학살이던데.”
<양민학살? 그건 무슨 뜻입니까?>
“이를테면 게임의 초고수가 하수를 갖고 노는 거.”
<그럼 제가 유비콘 팀원들을 상대로 양민학살을 한 것이군요>
“그래도 너무 심하게 하지 않아서 다행이긴 했으니 그 정도면 충분하지. 그런데 내가 저번에 말한 것들은 확실하게 넣었지?”
<그 보험이니 뭐니 하는 거 말입니까?>
“그래. 사람의 일이란 건 모르니까 만약을 대비해야 한다는 부분도 있어서. 다만 유비콘 팀원들이나 최병관을 보니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은 같지만.”
<강민 유저가 요청한 보험 부분에 대한 것은 제대로 처리했습니다. 저에게 양민학살 당한 유비콘의 팀원들이 그 부분을 알아챌 가능성은 없습니다.>
하시(하이퍼 시스템)의 설명을 들으니 나름 안심된다. 나의 경우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신뢰를 최대한으로 갖고 싶어 한다.
하지만 맹목적인 신뢰와 믿음은 아니다.
유비콘이 나의 생각과 뜻대로 계속해서 움직이고 활동한다면 그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생각이다.
하지만 배신한다면?
유비콘을 하루아침에 망하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것이 내가 하시에게 말한 보험이다.
하시를 통해 꽤나 충격적인 퍼포먼스를 펼쳤기에.
JSE-(K)가 유비콘을 향해 투자금을 대고 지분에 참여하는 것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현재 JSE-(K)는 유비콘(Ubicon)의 지분 80% 정도를 소유한 상태다.
그것을 위해 투자한 자금은 6억 원 정도.
이렇게 투자된 자금은 개발비를 시작해서. 이후에 새로운 마이포토(My Photo) 모바일앱이 출시된 뒤에 진행될 사업비까지 모두 포함된 것이다.
새롭게 개발되고 출시될 마이포토(My Photo)가 지각변동을 일으킬 엄청난 킬러앱이 될 가능성은 충분했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서는 홍보부터 시작해서 마케팅, 그리고 다양한 활동들이 필요했다. 여기에도 돈이 들어간다.
좋은품질의 제품이 제대로 팔리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과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강민 유저>
“뭔데?”
<언제 또 양민학살할 기회가 있습니까? 이거 생각보다 재밌고 유쾌한데요. 또하고 싶습니다.>
이 녀석 봐라.
완전히 재미 들렸네.
그렇다면 세계 최고의 IT-기업 중에 하나인 비플(Bipple)의 프로그래머들 상대로 양만학살 시켜볼까?
잠시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아무래도 그만두는 게 좋겠지?
나중은 몰라도 지금 당장은 안돼지.
그래도 비플(Bipple)의 창립자인 스테판잡스가 나름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사람이다.
안그래도 그 사람 요즘 건강이 안좋아서 언제 죽을지 모른다고 하던데.
만약 자기회사의 프로그래머들이 개박살나는 꼴을 보면 진짜로 화병 때문에 급사할 수도 있겠다.
생각만 해도 전세계 헤드라인을 장식할 뉴스가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나중을 위해 미뤄두는 것이 좋겠다.
그런데 비플의 창립자인 스테판잡스가 일선에서 물러나니까, 비플도 그저그런 기업으로 변해가는 중이다.
하긴 창립자인 스테판잡스가 뛰어난 거였지.
비플이 뛰어난 건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투자한 유비콘의 최병관은 제 2의 스테판잡스가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열정과 능력도 뛰어난 편이고.
이제부터는 킬러앱(Killer App)을 통해 제대로 날아오르는 것만 남았다.
그리고 유비콘이 대박 치면.
나도 당연히 대박인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