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
얼짱각도? 얼짱포즈?
“니가 보기엔 어떠냐?”
하시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사실 이 녀석의 평가를 물어보는 게 가장 중요하거든.
<지극히 원시적인 수준의 프로그램이지만 그래도 운영체제와의 조합이나 속도개선을 위한 여러 가지 흔적들이 보이는군요. 현재의 인류가 아직도 이 정도 수준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한계라니....>
너 이 자식 지금 비웃고 있지?
하긴 전세계적인 IT-대기업들의 프로그래머라도 저 녀석 앞에서는 그냥 우습게 보일 수밖에 없겠지.
<그런데 이런 초초초~ 원시적인 프로그램을 나에게 보여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자식! 초초초~ 원시적인 프로그램이란 건 대체 무슨 뜻이야?”
<말그래도 너무 원시적이라서 초초초~ 로 강조한 겁니다.>
그래, 잘났다.
세이버 카페의 게시글들을 검색하다가 대박예감을 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장담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내가 컴퓨터 공학자나 전문적인 프로그래머는 아니지만 대신에 다른 분야에서는 감각이 있다.
바로 고객의 니즈(Needs)가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지.
나 같이 일반적인 스마트폰 사용자가 원하는 게 뭔지를 파악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시 네 말대로 초초초~ 원시적인 프로그램이긴 하다. 그런데 이게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들을 편집하고 보정, 그리고 필터링하는 마이포토(My Photo)라는 모바일 앱이거든. 하지만 이 어플이 지금은 다른 비슷한 부류의 어플리케이션들과 크게 차별성도 없고, 스마트폰 유저들에 대한 흡인력도 없어.”
<그이유는 당연합니다. 원시적인 데다가 제대로 못만들어서 그렇습니다.>
최병관이 저소리 들으면 진짜로 자살하고 싶겠다.
“일단 네 말대로 그렇긴 한데. 지금 이 상태에서 프로그램을 조금만 손보면 될 거 같거든.”
<해당 프로그램이 너무나도 원시적이라 저의 소립자 알고리즘을 접목시킬 수는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0과 1이라는 2진법의 단순한 구조로부터 파생된 알고리즘에 저의 소립자 알고리즘을 접촉시키는 것 자체만으로 자존심이 땅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너 자존심 만빵인 AI(인공지능)이다.
하지만 조금 전 하시의 말을 통해 어느 정도 이해도 되었다.
내가 컴퓨터 공학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인류가 사용하는 컴퓨터가 0과 1이라는 2진법을 기초로해서 만들어진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런데 하시 녀석의 AI(인공지능)은 소립자 알고리즘을 사용한다고 했는데.
일단 나의 지식영역을 넘어가는 상황이라 어떤 것인지 상상도 안된다.
그러고보면 미래와 차세대의 양자컴퓨터니 뭐니 하는 것도 저 녀석한테는 원시적이고 우습게 보이겠네.
“내가 원하는 건 그다지 복잡한 건 아니야. 이 마이포토라는 앱에 한 가지 기능이 더 추가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지.”
<어떤 것입니까?>
“예를 들면 3D 랜더링 같은 거. 그러니까 평면으로 찍혀진 사진을 입체적으로 보이게 한다든지 그런 기능 말이야.”
<그거라면 특별히 어려울거 없습니다. 저의 자존심에 어떤 상처도 생기지 않고, 그리고 저의 소립자 알고리즘에 어떤 영향도 받지 않고 가능하니까 말이지요. 지금 당장 강민 유저의 마이포토- 어플을 입체영상과 화면이 가능하도록 조정해 드릴까요?>
“아니, 내걸 해달라는 게 아니라.... 그것보다 가능하다는 뜻이야?”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건 하시 네가 직접 어플의 프로그램을 바꾸는 게 아니라 간접적인 방법을 사용해야 되는 부분이야.”
<그렇다면 기초적인 프로그램의 소스 제공은 가능합니다. 다만 강민 유저가 그것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요. 성공 가능성 0.1% 이내로 분석됨>
“그래. 나 컴퓨터 무식쟁이다. 그리고 어차피 내가 할 게 아니라서 크게 상관없어. 난 그냥 굿이나 보고 떡만 챙기면 되니까.”
<분석 중...... 의미 불명.>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
AI(인공지능) 녀석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건 이런 방법이 최고라니까.
이 녀석이 진짜로 똑똑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때로는 그 엄청난 똑똑함과 효율성이 오히려 약점이 되기도 하는 법이다.
아무튼 이걸로 마이포토(My Photo)-어플이 대박 칠 가능성은 충분히 갖추어진 것이다.
***
“재동 선배. 정말로 고맙습니다. 선배 덕분에 일이 순조롭게 처리되어서 다행이네요.”
“고맙긴 뭘. 나야말로 요즘 일이 없어서 변호사 폐업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그래도 다행히 너를 통해서 이렇게 괜찮은 일거리를 맡게 되어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송재동이 웃었다.
그래도 얼마 전에 만났을 때에 비해서는 표정도 좋아졌고 얼굴에도 여유가 넘친다.
한국에서는 ~사자 들어가는 직업이 돈을 많이 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의사, 판사, 검사, 변호사를 포함해서 그 외에도 기타 등등까지.
과거에 법대를 졸업해서 사법고시에 붙으면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있었다.
그리고 집안에는 엄청난 경사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법대생의 메리트가 과거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그래도 SKY에 속하는 명문대 법대생은 여전히 선망의 대상인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학교가 인서울(In Seoul)에 속하는 대학이라 해도 명문대 축에는 못들어간다. 그리고 우리학교 법대에서 배출하는 사법고시 합격자들의 숫자도 상당히 적은 편이다.
송재동은 우리학교의 위치에서 본다면 사법고시에 합격한 소수의 법대졸업생들에 속한다.
그래서 법대 후배들 중에는 사시합격한 송재동을 부러워한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하늘 위에 하늘이 존재하고 강을 따라 내려가면 바다라는 큰물이 존재한다.
학교에서 볼 때는 뛰어난 법대졸업생, 그리고 사시 합격생이었지만 현실은 좀 달랐다.
한국의 사법고시에서는 SKY-쪽의 명문대생들이 사시 합격생들의 8~90%를 차지할 정도로 막강한 인맥파워로 되어있었다.
사법고시에서 상위권 합격자들은 대부분이 SKY-쪽에서 배출되고 기타대학의 합격생들은 겨우 합격선에 턱걸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송재동도 사법고시를 합격하고 변호사가 되었지만 이쪽계열에서 제대로 성공하는 게 얼마나 힘들고 장벽이 많은지를 깨달았던 것이다.
한국에서 ~사자 들어가는 직업 중에 하나인 변호사는 돈을 많이 번다.
하지만 그것은 SKY-같은 명문대를 졸업하고 국내의 대형로펌(법률회사) 등에 들어가서 일하는 선택된 변호사들에 한정된다.
송재동처럼 어려운 사법고시 합격하고 변호사가 되어도 주류에 편입되지 못한 아웃사이더격인 법조인은 제대로 버티기 힘들었다.
송재동의 실력이 나쁜 게 아니다.
그가 갖고 있는 타이틀과 배경이 부족한 것이다.
재동 선배의 소식을 듣게 되고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그의 상태는 꽤 나빴다.
조금 전 말대로 변호사 폐업까지도 생각하고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하려는 일이나 여러 가지 목적에는 송재동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지.”
“어떤 겁니까?”
“처음부터 회사를 한국에 안만들고 외국에 본사를 만든 뒤에 다시 한국에 자회사를 두는 방식을 취한 이유가 뭐야?”
“그건 전에도 말했듯이 저와 파트너십 관계에 있는 로버트 하시(Robert Hasi)-께서 그렇게 요청하고 있어서요.”
“맞아. 네가 외국에서 만났다는 그 사업파트너를 말하는 것이구나.”
“예. 돈과 재산은 꽤 있는 분이신데, 전면으로 나서는 걸 싫어하시는 터라.”
나의 말에 송재동이 고개를 끄덕였다.
송재동의 솜씨는 뛰어났다.
나를 통해 오랜만에 일거리를 받았고 보수도 상당했다. 내가 송재동을 향해 불법행위를 해달라고 부탁한 건 아니다.
일종의 법 테두리속에서 어느 정도 용인되는 부분을 이용해서 나의 목적에 맞게 회사의 설립과 파트너십, 그 외에 여러 가지 다양한 부분들의 문제를 처리하도록 한 것이다.
“어차피 국내활동과 비지니스에 대한 부분은 한국법률에 따라 규제되고 세금관련이나 기타 부분도 그렇게 적용되니까, 크게 문제는 없을 거야.”
“처음부터 세금포탈이나 기타 등등의 위법활동이 아니라, 사업의 편의성 차원에서 그렇게 한 것이니까요.”
“어느 정도 이해되는군. 그리고 너와 파트너십 관계의 인물이 외국인이라는 특성때문에 이런 부분은 원만하게 처리되었어.”
“역시 재동 선배의 일처리 솜씨는 대단하시네요.”
“나야 이걸로 먹고 살아야 하는 처지라.”
“현재는 한국지사인 JSE-(K)의 활동이 주로 진행될 예정이지만, 앞으로는 전세계를 무대로 커나가게 될 것입니다. 이후로도 재동 선배의 역할이 중요하게 될 거 같네요.”
“세계를 무대로? 갑자기 그런 말 들으니 엄청 부담되네.”
“어차피 재동 선배 능력좋은 건 저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틈틈히 국제법에 대해서도 공부해 두세요. 반드시 필요할 때가 오니까요.”
“네가 1학년 때 처음 우리들이 만났는데, 그 때에 비해 많이변했네.”
“그 때는 군대가기 전이었고 저도 뭘 모르던 상황이라서요. 하지만 군대 가서 생각도 많이했고 그 뒤에 경험하고 알게 된 것들도 많았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졌다고 해야겠죠.”
“아무튼, 앞으로도 잘해보자.”
“고기를 앞에두고 떠들다가 다 타버리고 말겠어요. 어서 드세요.”
불판에 있는 등심을 뒤집으며 송재동을 향해 소주잔을 건네었다.
***
“와아~ 오빠. 수트 잘 어울려!”
“그런데 지애 넌 저번에 내가 휴가받아 왔을 때, 군복도 잘 어울린다고 했잖아.”
“그건 그냥 오빠 위로해 줄려고 한 말이었고. 지금은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헤헤~”
지애가 배시시 웃었다.
그런 뜻이었냐?
그냥 오빠를 위로해 줄려고.
하긴 군복이 잘어울린다는 말이 그닥 좋은 느낌은 아니다.
군복 잘어울린다 => 말뚝 박아라!
이런식으로 들릴 수도 있으니까.
오늘은 강의가 없는 날이다.
하지만 아침부터 일찍 준비했다.
지애 말대로 제법 그럴듯하네.
수트를입은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았다.
중저가 브랜드의 캐주얼 양복이지만 나름 디자인이 심플하면서 깔끔하다.
경영학과를 선택하면서 비지니스맨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비지니스맨에게 수트는 전쟁과 전투에 나가는 갑옷과 마찬가지다.
총성없는 전쟁과 전투.
그것이 비지니스의 세계이고 여기는 나의 피를 끓게만드는 뭔가가 있었다.
얼마 전 동수와의 만남과 호진대학교에서 겪었던 일들. 거기서 나는 본능적으로 돈 냄새를 맡았다.
그것도 아주 큰거다.
오늘부터 대박을 성공시키기 위한 본격적인 과정에 들어가는 것이다.
“가만있어봐, 오빠. 내가 넥타이 매줄게.”
“그러면서 넥타이로 목 조르려고?”
“불쌍한 여동생을 교살범으로 몰아가네. 그냥 오늘만 특별히 해주는 거야.”
“눈물이 나도록 고맙구나. 그런데 뭐랄까 공짜가 아니란 느낌이드네.”
“당연하지.”
“도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
“그건 지금 말할 수 없어. 비밀이야. 나중에 기회되면 말해줄게.”
지애가 대답하며 혀를 살짝 내밀었다.
뭔가 좀 불안한데.
하지만 지금은 사랑스런 여동생이 오빠를 위해 넥타이를 매주겠다는데 그냥 순순히 받아야지.
“이제 되었어.”
“그럼 밥이나 먹자.”
“잠깐 있어봐. 이것도 기념이니까.”
지애가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사진을 찰칵하고 찍었다. 뭔가 포즈를 영 어색하게 취한 거 같은데.
“오빠는 셀카도 안찍어? 표정이나 자세가 이상해.”
“그럼 지금부터 얼짱각도나 얼짱포즈를 연습해야 하는 거야?”
“그거 하지마. 오빠는 차라리 안하는 게 더 좋을 거 같아.”
“진심어린 충고 고맙다.”
하긴 내가 연예인도 아니고 무슨 얼짱각도나 얼짱포즈냐?
그래도 왠지 연습해보고 싶은데.
야! 집어쳐라. 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