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
엄청난 개이득
Yes, I can(나는 할 수 있다).
전에는 이 말이 실감나지 않았는데 요즘은 다르다.
AI(인공지능)의 업그레이드 완료 후에 주어지는 보상과 선택.
거기서 나는 신중한 고민 끝에 영어배우기를 선택했다.
영어권에서 태어나거나 원어민이 아닌 경우.
한국인에게 영어는 죽을 때까지 따라다니는 컴플렉스다.
한국이 영어광풍에 있다는 게 결코 빈말도 아니고.
이런 걸 제외하고도.
영어를 잘하게 되면 이득이 꽤 많다.
그중에서 토익 고득점 스펙은 취업에 유리한 편이다.
그리고 영어 잘하면 회사 내 승진에서도 남들보다 더 좋은 점수를 받는다.
이런 일상적인 부분 말고 나에게는 다른 상황으로 중요했다.
현재 내가 보유한 재산은 12억-
이것도 아껴 쓰면 나와 가족들이 편안하게 지내는데 충분하다.
그런데 기왕에 날벼락 맞고 살아남았고.
하이퍼 시스템이란 최강의 AI(인공지능)까지 합체한 상태에서 이 정도로 만족할 수는 없지.
앞으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좀 더 공격적인 투자를 비롯해서 사업과 모험을 할 필요가 있었다.
또한 장소도 꼭 한국만으로 한계를 정할 필요도 없다. 전세계를 무대로 한다면 스케일 자체가 틀려진다.
그러려면 역시나 한국어만 할 줄 알아서는 안된다. 최소한 전세계 공용어라 불리는 영어를 불편함 없이 할 수 있다면 더 많은 활동이 가능해진다.
영어몰라도 비니지스 가능하고 정 안되면 통역을 쓰면 되지라는 말도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직접 영어를 하는 것과 통역을 통해 간접적으로 듣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통역을 대동하기 힘들거나 아예 구해지지 않은 경우도 생기니까.
지금 당장은 제 2외국어, 제 3외국어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일단 영어 하나만 제대로 내 것을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그에 따라 보상메뉴를 영어로 선택했다.
조금 후면 나는 원어민 같은 수준의 영어를 쓸 수가 있다....라는 희망은 개뿔.
“뭐야? 메뉴선택과 동시에 곧바로 영어를 술술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
<강민 유저가 선택한 영어메뉴를 통해 영어학습 능력이 일정 부분 향상됩니다. 본인의 노력과 진행 상황에 따라 최소 1-2개월부터 최대 12개월까지 걸립니다. 다만 현재 선택된 메뉴를 통해 중급 능력의 영어사용자까지는 도달할 수 있습니다.>
하아... 그래, 쉬운 게 없구나.
“그럼, 중급능력이면 어느 정도 수준인 거야?”
<토익 8~900점대 사이. 일상회화(Daily Conversation) 가능. 보통의 영어 듣기와 말하기가 가능해지는 수준입니다. 중급수준을 빠른 시간 안에 달성하시면 상급으로 넘어갈 기회가 주어집니다.>
처음에는 기대감이 무너져서 허탈했다.
그러나 AI(인공지능)의 설명을 듣고 보니 이것도 대박이다.
지금 내 토익실력이 600점도 겨우 턱걸이할 수준이다.
영어 듣기 말하기는 물론이고 원어민 앞에서 영어로 말도 못하고 버버거리는 상황이다. 그런데 중급 정도만 되면 영어 때문에 멘탈붕괴될 상황은 나오지 않는 것이다.
솔직히 영어정복 한답시고 몇 년 동안 영어학원 다녀도 간단한 문장조차 말하지 못하는 경우도 태반인데 이 정도면 진짜로 괜찮은 거다.
까짓것 한동안 영어를 미치도록 파보자.
***
“와아- 강민 형 미드(미국드라마) 팬이세요?”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영어공부 좀 해놓아야 할 거 같아서.”
“그러고 보니 형은 영어울렁증이 있었지.”
이 녀석이 나의 아픈 곳을 콕콕-찌르네.
그래도 이 녀석이 밉지는 않다.
나를 선배랍시고 잘 따르는 녀석이고 이 녀석을 통해 도움받은 것들도 있으니까.
한 가지 분명한 건.
이 녀석은 나보다 영어를 더 잘한다는 것이다.
영어권국가 유학파 그 정도 수준은 아닌데.
그래도 영어학원 다니면서 연습했고 외국인 친구도 몇 명있고 영어회화도 곧잘 하니까.
종수 녀석이 내 옆으로 오더니 노트북 화면을 확인했다.
“호오~ 미드 프렌즈 보시네.”
“미드 중에서 유명하다면서?”
“맞아요. 그런데 이거 옛날 거에요. 시즌 종결된 지 꽤 되었는데.”
“그래도 미드 보면서 영어실력 늘리려면 프렌즈 보는 게 좋다고 하던데.”
“그건 정답이죠. 어차피 시트콤 드라마라서 일상회화도 많이 나오고 내용도 재밌어요.”
“그건 맞는 거 같다. 완전 코미디야.”
“그래도 강민 형이 미드를 찾아서 보다니 신기하네요.”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이 추천해줘서 말이야. 그리고 드라마 대본도 이렇게 있고.”
A-4 용지로 뽑은 드라마 대본을 보여주었다. 단기간에 실전 영어실력을 올리기 위해 내가 아는 영어능력자를 통해 조언을 받았다. 얼마 전에 내 눈앞에서 직접 실력을 목격한 김세연이다.
미드 프렌즈를 추천해준 것도 김세연이었다.
기특한 녀석.
세연이를 통해 영어를 제대로 공부하는 방법을 여러 가지 배웠다.
영어공부에는 왕도가 없고 지름길이 없다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좀 더 쉽고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들은 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영어교육이란 것이 무조건 시험위주였다. 그것도 문법과 독해, 단어에만 집중된 상태였다.
듣기와 말하기, 그리고 실전회화를 등한시했다. 그 결과로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도합 6년 동안이나 영어를 배웠는데도.
간단한 일상회화도 못하고 영어울렁증에 걸린 나 같은 사람을 만들어낸 것이다.
하긴 한국에 영어울렁증 걸린 사람이 나뿐인가?
내 주위에도 제법 많은편이고 우리과에도 여러 명 있다.
어쨌든 세연이가 가르쳐준 영어공부 방법과 AI(인공지능)을 통한 영어학습 향상의 스킬이 접목되면서 놀라운 상황이 벌어졌다.
첫 번째로 과거에는 전혀 들리지도 않았던 영어단어의 발음들이 또렷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간단한 문장들은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곧바로 이해가 되었다.
그 뒤에는 미드 프렌즈의 대본을 보고 직접 스피킹 연습을 해보는 것.
그것을 반복해서 하자 발음도 향상되고 있었다.
이렇게 되자 영어공부 자체가 재밌어졌다.
그것을 위해 하루일과 중에 상당한 시간을 영어공부에 투자하고 있기는 하지만 실력향상이 되면서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종식이 넌 미드 많이 보는가보네. 혹시 미드 폐인?”
“앗 그 말은? 그리고 진짜로 미드 폐인까지는 아닙니다. 하지만 사실 반쯤은 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아니 그것보다 그냥 매니아 정도로 해두죠.”
종식이가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녀석의 말에 따르면 처음에는 영어공부 하려고 미드에 관심을 가지고 봤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 드라마 신작만 나오면 꼬박꼬박 챙겨본다고 했다.
확실히 한국 드라마보다 재밌고 잘 만드는 게 사실이지.
한국드라마는 발암제.
그에 반해 미국 드라마는 항암제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한국 드라마 보고 열 받고 발암생긴 거 미드 보고 항암제로 고친다고 하니까.
물론 한국드라마도 가끔 괜찮은 수작들이 나오지만 대부분은 주부들을 타겟으로 제작된 것들이다.
“글고보니 강민 형도 영어공부 시작한 거 같은데 다음 달 토익시험 접수해요.”
“토익시험?”
“예. 토익시험 매달 있잖아요. 토익시험 본 적 한번도 없어요?”
“없지는 않아. 다만 시험 점수가....”
그래 이 자식아.
대학교 1학년 때 토익시험 봤는데 점수가 610점이었다. 이놈아!
마음 같아서는 종수 녀석을 상대로 헤드락을 걸어서 응징을 가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런데 지금 접수 가능해?”
“물론이죠. 우리학교에서도 토익시험 보는 학생들 많아서 학교에서도 접수 받아요.”
“그럼 한번 해볼까.”
“저도 가는데 같이 해요.”
종수 녀석의 재촉에 일단 접수해 보기로 했다.
접수비용도 크게 비싼 건 아니다.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영어공부에 동기부여를 위해서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접수를 마친 뒤에 기분이 좀 묘했다.
만약에 토익시험에서 점수가 개판으로 나오면 어쩌지?
하지만 이미 쏘아진 화살이고 부딪쳐 보는 거다.
***
끼익- 편의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카운터에 있는 알바생이 인사를 한다.
“어서오세요.”
어라? 알바생이 바뀌었나?
저번 주에 있던 녀석이 아니네.
카운터에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애가 있었다.
머리를 뒤로 묶은 모습과 계란형의 가름한 얼굴형이 나름 귀엽다.
“혹시 새로운 알바생이세요?”
“그런데 누구시죠?”
“여기서 일하는 동수는 어디에?”
“아. 동수 오빠 친구분이세요?”
처음에는 나를 향해 어색한 표정이더니 이제는 바뀌었다. 하긴 편의점에 들어온뒤에 물건도 안사고 알바생한테 이것저것 물어보는 사람이니 당연하겠다.
“동수 오빠는 잠시 뒤쪽에서 재고정리하고 있어요.”
“그렇구나.”
어쩐지 녀석이 안보인다 싶더니.
얼마후 창고 쪽에서 땀을 닦으며 동수가 나오는 게 보였다.
“점장님도 너무하시네. 아무리 야간 알바 쪽이 그래도 좀 한가하다고 하지만 신입알바생까지 있는데 창고정리를 시킬 줄이야.”
“대신에 점장님이 창고정리는 따로 챙겨주신다고 했잖아요.”
“하긴 그렇지만.... 아! 강민 형 왔네요. 요즘 형 얼굴 보기도 힘들어요.”
“복학해서 공부도 좀하고 이것저것 다른 것도 좀 하느라고 말이지. 그런데 전에 있던 알바생은 어떻게 된 거야?”
“아, 대진이 녀석. 집에 갑자기 일이 생겨서 그만뒀어요.”
“크윽. 1주일 동안 내가 열심히 가르쳐 놨더니 얼마 하지도 않고 그만뒀네.”
“그 대신에 새로 들어온 신입알바생이 소민이 저 애죠. 소민아 인사드려. 우리 편의점 왕고참인 강민 형이야. 편의점 알바의 프로페셔널!”
“야! 그 소개 멘트. 저번에도 써먹더니 질리지도 않냐?”
동수 녀석을 향해 투덜거렸다.
하지만 녀석 말대로 내가 이곳 신개동역 3번출구쪽 DS-마트 편의점에서 가장 왕고인 것은 사실이다.
이 편의점은 내가 다니는 대학가에 있었다.
때문에 여기 편의점에서 1학년 때부터 알바생으로 일했다.
대학교 1학년 때, 그리고 군대가기 전까지도 일했고 제대 후에도 여기에서 일했다.
지금은 편의점 알바를 그만둔 상태지만 학교 근처라 가끔씩 들린다.
또한 여기에서 일하는 동수 녀석과도 꽤 친하다보니 편의점에서 물건 살 일이 생기면 동수 녀석 얼굴도 볼 겸.
그리고 편해서 자주 오는 것이다.
조금 전 말한 대진이 녀석은 내가 알바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점장형님이 새로 뽑은 신입알바생이고 내가 가르쳤다.
그런데 집안사정으로 얼마 못가 그만두고 새로 들어온 신입알바생이 전소민이라는 나름 귀엽게 생긴 여자 알바생이다.
그래서인가.
동수 녀석 입이 귀에까지 찢어지네.
하긴 땀 냄새 풀풀 나는 수컷하고 같이 알바하는 것보다 상큼하고 귀여운 여자알바생이랑 일하는 게 더 즐거운 법이니까.
그런데 내가 여기에서 몇 년 동안 알바했지만 여자알바생이랑 일한 경우는 한번도 없었는데.
동수 녀석. 나보다 더 땡잡은 경우잖아!
부러운 짜식.
“강민 형. 힘들게 고생하는 동생들과 후배들을 위해서 그냥 맨손으로 있는 거에요? 기왕 왔으니 한턱 쏘셔야죠.”
“이 자식! 벼룩의 간을 빼먹을 놈이네.”
“형 요즘 벤처 투자회사에서 일하잖아요. 그것 때문에 알바도 그만둔 거고.”
“정규직도 아니고 그냥 알바 같은 거야.”
“그래도 저 같은 편의점 알바랑 비교가 돼요? 그러고 보니 형 이전에 비해 확실히 달라져 보이네요. 옷 입는 것도 그렇고 얼굴에도 부티가 팍팍나고.”
“누가 들으면 내가 진짜 떼부자라도 된 줄 알겠네. 그냥 형편이 좀 좋아진 거 뿐이야.”
동수 녀석을 향해 대답하며 웃었다.
그런데 인간적으로 옷이 날개란 말이 사실이다.
12억이란 거금이 생긴뒤에 엄청난 사치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여러 가지 바뀌었다.
더 이상 이전처럼 빈티 팍팍 나는 옷을 입고 다니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고가의 명품옷을 사 입는 경우는 아니지만 적당한 수준만 갖추어도 사람이 확 달라 보인다.
그중에 첫 번째가 옷차림이니까.
요즘은 디자인 쌈박한 캐주얼 옷들은 저가로도 충분히 구매가 가능하다. 또한 심플하면서도 깔끔하게만 입으면 순식간에 달라진다.
“글고보니 강민 형 키가 전에보다 더 커진 거 같은데. 설마 구두 안에 키높이 깔창 넣은 거 아니죠?”
“지금은 운동화다. 이 녀석아!”
동수 녀석을 한대 쥐어박았다.
그런데 키가 커졌다고?
군입대할 때 신검으로 받은 나의 키가 176cm 정도였다.
한국에서 남자키 180cm 안되면 루저니 뭐니 하던 사회적 이슈와 사건도 있었다.
동수 녀석의 경우 나보다 좀 작아서 이전에 같이 일할 때에는 내가 살짝 내려다보던 상황이었는데.
지금 보니 전에보다 더 아래로 보였다.
군대 가서 키가 1-2cm 정도 커진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20대 초반의 키는 평생을 간다.
그런데 동수 녀석이 나보고 키가 커졌다고 하는 건 결코 헛말이 아니었다.
설마 이것도 하이퍼 시스템이란 AI(인공지능)의 영향인가?
전에 비해 키가 커졌다면 이것도 엄청난 대박이고 개이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