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조 재벌-2화 (2/300)

# 2

하이퍼 시스템 / 이건 현실이다.

버스의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휙휙 스쳐갔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첫째로 죽지 않고 살아난 것에 기뻐해야 할 거 같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고 살아났으니, 세상에 이런 일이.. 또는 서프라이즈 프로그램에 제보라도 하면 꽤 이슈가 되겠지?

하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다.

북한산 정상에서 어떻게 내려왔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다.

갑작스런 상황에 겁마저 덜컥 났고 그냥 집에 돌아가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정류장에서 버스가 오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주위에서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이 좀 있기는 했지만.

그것도 당연했다.

날벼락 맞고 살아났지만 그 충격의 흔적은 군데군데 있었다.

입고 있던 상의 중에 일부가 시커멓게 그을리고 탄 자국도 보였다.

누가 보면 화재현장에서 탈출한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겠다.

‘에휴- 망신살 뻗쳤네.’

버스에 탄 뒤에는 맨 뒤 쪽의 자리에 앉았고 이제는 좀 안정된다.

‘하이퍼 시스템 가동 중이라...’

머릿속에 기억나는 건 그것밖에 없었다.

처음에 눈앞에서 나타났던 메시지는 경악할 정도였다.

정신없이 북한산을 내려왔을 때 눈앞에 아른거렸던 메시지는 완전히 사라진 뒤였다.

나중에 또 보일까?

환영을 본 것만 같은 기분이다.

만약 누군가에게 이걸 말한다면 미친놈 취급받겠지.

정신병원을 예약해줄지도 모르고.

잠시 후 내가 내려야 할 정류장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

집으로 걸어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달동네에 위치한 허름한 집.

자가도 아니고 월세로 매달 꼬박꼬박 돈을 내야 하는 곳이다.

내가 돈에 집착하고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을까?

맞아.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급작스럽게 사망하고 난 뒤부터다.

집안에 있는 가장의 죽음.

그 뒤에 진행된 가난의 연속.

중학교 3학년 때까지는 그래도 행복한 생활이었다.

부자는 아니였지만.

이후에 돈이란 것이 사람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드는 것인지를 체험했다.

그전까지 나의 꿈은 학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가세가 기울고 가난에 허덕이는 생활을 하면서 돈과 관련된 것을 선택했다.

그것이 경영학과다.

경영학과의 전공과 공부란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걸고 열심히 파고 공부했다.

졸업한 뒤에 나름 괜찮은 기업에 취직하고 경력 쌓고 그 뒤에는 나의 꿈을 이룩해 보겠다는 기대감으로.

하지만 흙수전 신세에다가 알바로 전전하는 지금의 나에게는 그동안 뭘 위해 달려왔는지 자괴감이 든다.

끼익-

녹슨 철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주인 아주머니가 언제 어디서 눈에 쌍심지를 켜고 시비 걸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갑질은 돈 많은 상류층만 하는 건 아니다.

남들보다 좀 더 많은 권력.

좀 더 많은 재산을 가졌다는 이유로 갑질을 해댄다.

심술과 사악함이 얼굴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집주인 여자가 그중에 하나다.

월세 사는 사람이 집주인의 눈치를 보는 건 한국에서 집 없는 사람들이 겪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그래도 다행이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내 몰골을 보면 영락없는 이재민이나 피난민 꼴이다.

군데군데 시커멓게 타버린 상의와 흙이 진뜩하게 묻어있는 바지까지.

대충 보니 마른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을 쳐맞고 고통으로 흙바닥을 여러 차례 구른 듯 보였다.

그 때문에 팔이나 다리에도 군데군데 찢기고 멍든 곳이 있었다.

이런 몰골을 어머니가 봤다면 더 놀라고 말았을 테니까.

안그래도 지병이 있어서 몸 상태도 안좋으신 분이다.

하아...!

생각할수록 먹먹하네.

***

“겨우 살 것 같네.”

군데군데 타버리고 찢긴 옷을 버리고 새것으로 갈아입었다. 샤워를 하고 나니 이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가난에 찌들고 매달 월세를 걱정해야 하는 곳이지만 그래도 여기가 나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인 지애가 지내는 곳이다.

스위트홈이라고 하기에는 뭐하지만, 여기라도 없으면 당장에 길거리 노숙자 신세다.

첫 번째 목표는 졸업하고 번듯한 회사에 취직하면 몇 년 동안 미친듯이 벌어서 가족들을 허름한 월세방에서 탈출시키고 싶었다.

그리고 여동생인 지애한테도 대학등록금 걱정 없이 마음껏 공부도 시키고 유학도 보내주고 싶었고.

정말로 그러고 싶었는데.

제길!

그때 밖에서 날카로운 음성이 방안으로 파고든다.

“이거 봐요. 아줌마. 이번 달 월세는 내일까지 내세요.”

“하지만 본래 월세 내는 날짜가 다음 주까지인데.”

“그런 건 내 알 바 아니고 내일까지 내요. 안그러면 방을 빼던가. 돈도 없으면서 어디서 월세를 살아? 아니면 길거리로 나가던가.”

“조금만 기다리시면 제가 어떻게...”

한 명은 당당하게 위세를 잡고 다른 한 명의 음성은 애원조로 처량하다.

나도 모르게 분노가 솟구친다.

이미 여러 차례 목격했고 그때마다 참으며 넘어갔지만 오늘은 도저히 안되겠다.

“이것봐요 아줌마.”

“민아! 언제 온 거니?”

“조금 전에요.”

엄마를 향해 대답하며 주인집 여자를 쏘아보았다.

처음에는 아들인 내가 나서자 좀 당황한 듯 보이더니 기세를 높인다.

“쳇! 이제는 아들을 내세워서 어떻게 해보려고?”

“그건 아니에요.”

어머니가 당황했다.

다시 뭔가 말하려고 할 때 내가 손을 들어 말렸다.

여기서 더 이상 어머니가 저 뭐 같은 여자를 상대로 비굴하게 나가는 걸 볼 수가 없었다.

갑질도 정도껏 해야지.

“다음부터 월세에 대한 건 어머니가 아니라 저한테 말하세요.”

“그럼 아들인 너가 밀린 방세 낸다고? 듣기로는 이제 겨우 복학해서 알바나 하면서 지내는 처지라고 하던데.”

“남이야 알바를 하던 복학을 하던 아줌마가 상관할 일이 아니죠. 그것보다 아줌마 아들이나 간수 잘하세요. 지금도 동네 사람들한테 백수건달로 민폐나 끼치면서 다니던데.”

받은 만큼 돌려주는 거다. 이년아!

저 아줌마 아들이 머리 나빠서 허접한 사립대도 못들어간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고 다른데 특출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집에서 히키짓하는 아들 둔 주제에.

“어머니 말에 의하면 월세 내는 날짜가 다음 주까지인데 내일까지 달라고 하는 건 뭡니까?”

“그거야 집주인 마음이지. 네깟놈이 알아서 뭐하게?”

이거 완전히 미친년 아냐?

“이것 보세요 아줌마. 집주인이 무슨 큰 벼슬이라도 되는 건 줄 알아요? 그리고 세입자한테 월세 내는 날짜도 아닌데, 무턱대고 돈 달라고 생떼 쓰고. 진짜로 웃기네.”

“뭐 이런 게 다 있어?”

내가 강력하게 나가자 집주인 여자가 째려본다.

이제까지는 어머니를 상대로 온갖 갑질을 다해왔지만 나한테는 안 통한다.

“별 거지 같은 것들이 지랄이야!”

주인집 여자가 바닥에 침을 뱉으며 떠나갔다.

옆에서 지켜보던 어머니가 한숨을 쉬었다.

이번은 그냥 넘어갔지만 저 여자가 곱게 물러날 상대가 아니니까 말이다.

주머니를 뒤져서 어제 받은 월급봉투를 꺼내었다.

“어머니 이 돈 이번 달 월급 받은 것이니까, 나중에 월세 낼 때에 보태세요.”

“하지만 너도 힘든데. 넌 이제 복학했으니 공부도 해야 하는데. 그리고 나 때문에 아르바이트한다고 시간 뺏기면 안돼.”

어머니가 극구 만류하셨다.

저 말을 들을 때마다 속이 쓰리다.

다른 놈들에게 흙수저라고 놀림 받고 하는 것쯤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어머니와 여동생이 고통 받을 때에는 진짜로 자살하고 싶어졌다.

“걱정 마. 우리 아들. 이 엄마는 우리 아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졸업하는 게 소망이야. 그리고 좋은 회사에 들어가서 남부럽지 않게 직장생활하고 남들에게 떳떳한 사람이 될 거라고 믿어. 누구 자식인데.”

어머니의 말과 미소가 지금까지 나를 버티게 해주는 큰 힘이다.

저 믿음에 보답하고 싶다.

정말로.

그때 눈앞에서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하이퍼 시스템 작동개시!]

“어어...”

“아들. 왜그래? 어디 아픈 거야?”

“그건 아니고요. 잠시 머리가 어지러워서요.”

걱정하는 어머니를 향해 적당히 둘러대고 웃어보였다.

처음에는 하이퍼 시스템인지 뭔지 하는 게 그냥 환상이나 환영쯤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눈앞에 벌어진 현실이고, 이것은 엄청난 기회다.

좋아. 한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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