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달의 제단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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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달의 제단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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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달의 제단 (5)
2023.06.20.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지노에 이어 능력을 잃은 건 어둠을 맹렬하게 펼치던 노아였다.
그걸 보자마자 시온은 당장 트리샤부터 망설임 없이 처리했다. 시온이 능력을 잃으면 가장 먼저 트리샤가 그들을 공격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달려!”
노아에 이어 괴력을 휘두르던 이안이, 빠르게 움직이던 자카가, 그리고 시온까지 이능력을 잃고 말았다.
트리샤가 자신의 부하들을 상대하다가 오히려 당하는 모습을 확인한 시온은 진땀을 흘리며 솔론을 돌아보았다.
“너는?”
“나도 마찬가지야.”
솔론은 무거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힘이 다 빠지고 늑대인간의 힘만 간신히 남아 있었다. 그래도 다른 형제들보다는 상황이 나았다. 창백하게 질린 이안마저 공황에 빠진 표정이었다.
“괜찮아. 아직 안 죽었어. 우리랑 손발 잘 맞출 수 있잖아.”
이안이 얼마나 당황했는지 훤히 꿰뚫어 본 나자크가 이안을 나지막하게 위로하며 어깨를 툭 쳤다.
“아, 저 지겨운 놈들.”
카밀이 뒤를 돌아보며 짜증을 냈다. 뱀파이어들은 소년들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신전까지 꾸역꾸역 밀려들고 있었다.
이렇게 도망만 쳐본 게 얼마 만인가. 그래, 여태까지 좀 운이 좋았지. 원래는 늘 이렇게 쫓기기만 하는 인생이었는데, 요 며칠 반격 좀 해봤다고 기분이 좋아서 도망치는 게 오히려 익숙하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오토널 시청 아래 지하 신전과는 달리 이 신전은 을씨년스럽긴 해도 달빛을 받기 위해 천장이 열려 있어서 상당히 쾌적했다. 그게 유일한 위로였다. 나머지 상황은 최악이었다.
“저놈들 잡아!”
“막아! 막으란 말이다!”
악을 써대는 뱀파이어에게 총을 쏴버린 지노는 계속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아, 이제 슬슬 한계가 다가왔다. 호흡이 가쁘고 목 안이 쩍쩍 갈라졌다. 겨우 이 정도 전력 질주를 했다고 숨이 턱에 차다니, 평소에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지금 이능력을 잃은 뱀파이어 소년들을 움직이게 하는 건 분노였다.
헬리는 평소보다 무겁게 느껴지는 검을 고쳐잡았다.
‘이능력이 없다면 어떨까, 좀 궁금하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알고 싶지는 않았는데.’
이능력이 사라진다면 뱀파이어가 아니라 완전한 인간이 될까, 그래서 이 괴로운 과거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하고 궁금해했던 적이 있었다.
그에게 의지하고 있는 동생들을 볼 때마다 그래선 안 된다고 수도 없이 마음을 고쳐먹었지만, 그도 가끔은 지고 있는 짐이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능력이 사라진다 해서 인간이 되는 건 아니었다. 그는 픽 웃으며 검을 들어 올려 뒤쫓던 뱀파이어를 막고 힘껏 목을 쳐버렸다.
이젠 평범한 인간이던 때가 아득했다. 이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최정예 뱀파이어들을 상대로 순수한 근력과 속도로는 결코 밀리지 않았다. 다만, 숫자로 열세일 뿐이다.
‘언제나 열세였지.’
주변을 둘러보니 늑대인간 소년들도 이런 상황에 익숙한 얼굴이고, 그의 형제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얼굴을 찌푸리며 뒤로 계속 물러나면서 뱀파이어들을 막고, 공격하길 거듭했다.
‘언제나, 그때도…….’
성을 넘어 신전까지 밀고 들어오는 놈들을 베고 또 베어내도 끝이 없어 절망했다.
같은 장소, 같은 느낌이다. 그 익숙한 느낌에 헬리는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형제들을 바라보았다.
그들 역시 혼란스러운 얼굴로 공격과 방어를 거듭하면서도 형제들을 힐끔거리다가, 어느 순간 뭔가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아, 그래. 그랬다. 그들은 이곳에서 며칠 내내 밤낮없이 피에 미친 뱀파이어들과 사투를 벌였다.
꼭 지금처럼, 아주 귀한 존재를 지키기 위하여.
*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이 왔다.
공주는 제단 위에서 그 어떤 빛보다 더 커다란 빛을 내며 빛나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빛을 피해 고개를 돌렸던 기사들은 간신히 고개를 다시 바로 했다.
공주가 마지막으로 치르는 의식이다. 기꺼이 마주해야 했다. 다만 그들은 이게 끝이 아니라 후일을 기약하는 의식이길 바랐다.
눈을 찌르는 듯 괴로웠던 빛은 희한하게도 똑바로 마주하자 간신히 볼 수 있긴 했다.
“막아!”
저 바깥에서 누군가가 고함을 질러대는 소리가 아스라이 들렸다. 하지만 알 바 아니었다. 기사들은 공주에게서 그들에게로 흘러드는 빛줄기에 집중했다.
“여태까지 날 충실히 지켜줬으니, 이제는 내가 너희를 지켜줄 차례야.”
노아는 그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 부하들을 지키는 것 또한 왕국의 주인이 해야 할 의무였다.
“내게 속했던 힘들을 너희 모두에게 나눠줄게. 잘 사용했으면 좋겠어.”
차분히 말하는 공주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으나, 그녀의 모습은 빛에 파묻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헬리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어떻게든 그녀를 똑바로 보려고 노력했다.
“이 힘은 영원히 너희에게 깃들어 떠나지 않을 거야. 기억마저 삼킬지도 몰라서 시도하지 않았던 일인데…….”
말끝을 흐렸던 공주는 웃었다. 아, 그래. 그녀가 웃는 게 보였다.
“우리는 아마 먼 세월을 넘어, 이 땅에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보게 될 거야.”
“그때까지 제가 공주님을, 모두를 찾겠습니다!”
마지가 줄줄 눈물을 흘리며 맹세했다. 공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해. 만약에 내가 먼저 기억하면 꼭 너희를 찾아낼게.”
“제가 기억하면 제가 먼저 공주님을 찾겠습니다.”
헬리는 다부지게 말했다.
억지로 웃던 공주가 그제야 환하게 진심으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때까지.”
안녕히.
마지막을 고하는 순간, 공주를 감싸고 있던 빛은 완전히 신전을 감싸고 뻗어 나갔다.
빛을 괴로워하는 뱀파이어들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다르단마저 미친 듯이 고함을 질러대며 막아야 한다고 달려가다가 빛과 충격파에 뒤로 나동그라질 지경이었다.
제단 위를 바라보고 있던 마지는 그 빛이 마치 자신을 아주 따사롭게 감싸주는 것 같다고 느꼈다. 전투와 불리한 전황으로 인해 지쳤던 몸에 이상하게 활력이 넘쳐나서 더 가득 쬐고 싶은 빛이었다.
하지만 바깥에 있던 뱀파이어들을 넘어뜨린 빛은 곧 사그라들었다.
마지는 끝이 났다는 것을 예감하며 급히 제단 위로 뛰어 올라갔다.
“오, 바르그시여…….”
그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공주와 기사들의 자리를 보며 왕국 수호신의 이름을 불렀다.
입은 탄식하였으나 손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그녀와 부하들은 재빨리 신전에서 사라졌다. 급히 헬리의 검까지 챙긴 마지는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단호하게 성을 뒤로한 채 왕국을 완전히 빠져나갔다.
그녀는 이제부터 공주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그때까지, 최선을 다해 준비하며 기사들을 찾고, 또 살아남아야 했다. 공주가 왕국을 되찾을 때까지.
‘그랬던 거구나.’
수하는 마지를 비롯한 이들이 서둘러 서로를 챙겨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다르단의 부하들은 그들을 쫓아가지 못한 채 여전히 쓰러져 있었다. 몇몇은 죽은 모양이다.
‘그래서 저대로 보육원을 만들어 숨어 있었던 거구나.’
마지가 아주 오랜 시간 후에 다시 나타난 기사들을 다 찾아내는 데 결국 성공했던 거다. 그리고 이능력을 가지게 된 소년들은 기억을 잃은 채 또 한 번 습격을 겪고 리버필드 시까지 흘러들어왔다.
그러면 수하는? 그녀 자신은 뭐란 말인가.
수하는 제단에서 사라진 공주를 보았다.
아무도 그녀를 찾아내지 못했지만, 수하만은 육신을 대가로 바치고 영혼이 된 공주가 아직까지 달의 제단 위에 서 있는 것을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꿈에서 공주는 수하 자신이었다. 다만, 수하가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공주의 안에서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공주가 행동하고, 공주가 말했다.
“아.”
이제 놀라 탄성을 지르는 건 공주가 아니라 수하였다. 공주의 푸르고 아름다운 영혼이 수하를 마주하고 있었다. 거울을 보는 기분이다. 둘은 속눈썹 길이마저 똑같았다.
“아, 그래.”
그거구나. 이제 알겠다. 수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공주도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네가 나구나.”
푸릇한 공주의 영혼이 수하에게로 스며들고 있었다.
수하는 오랜 전투로 인해 텅 비어 있던 속이 따뜻하게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잃어버렸던 기억을 되찾았다. 비어 있던 곳을 다 연결하고 나니 자신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겠다.
“내가 너고.”
긴 세월을 뛰어넘어서, 엄마한테 와서 태어난 거구나. 같은 영혼이었던 거다.
수하가 웃었다. 서서히 그녀에게 녹아들고 있는 공주도 웃었다.
웃은 뒤에 완전히 사라지기 전, 눈을 분명하게 마주쳤다.
그런데, 너. 뭐 잊은 거 없어?
드디어 모든 걸 다 이해했다는 충만한 기쁨도 잠시, 수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차.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거였더라?
공주는 다시 한번 살풋 웃은 뒤 완전히 수하에게 녹아들어 사라졌다.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시야가 흐릿해지고 까매졌다.
*
신전 안으로 뛰어든 소년들은 어차피 계속해서 뒤로 후퇴해야 했다. 그래야만 수하와 만날 수 있었으니까.
그들은 뒤에서 쫓든 말든 삽시간에 제단까지 도달했다. 평소에는 뱀파이어들이 얼씬도 하지 않는 제단 위에 사람이 있었다.
“저 새끼가……!”
다르단이다. 그리고 수하가 쓰러져 있었다.
당장 이안의 입에서 험한 말이 튀어나오고, 푸른 늑대 모습을 한 솔론이 무섭게 으르렁거렸다.
구해야 한다. 당장 구해야 했다. 소년들은 늑대인간이고 뱀파이어고 할 거 없이 당장 제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러곤 다시 뒤로 밀쳐졌다. 다르단이 빠르게 그들을 막아버린 탓이다.
다르단은 고고하게 서서 그들을 싸늘하게 내려다보았다. 말 그대로 몹시 귀찮아하고 경멸하는 시선이다.
“버러지만도 못한 것들이 목숨줄은 질겨서 여기까지 왔군.”
“수하야! 정신 차려!”
새파랗게 질린 노아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쓰러진 수하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에게 선명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뱀파이어 소년들은 저 빛을 본 적이 있었다. 신전에 다시 돌아오면서 점점 더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 친근한 장소가 기억을 불러내는 건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기억에 따르자면 저 빛은…….
“무능한 것들. 너희들은 언제까지 공주에게 의존만 할 생각이지? 언제나 그녀에게서 도움만 받았지, 한 번도 제대로 기사 역할을 한 적은 없었잖나.”
다르단이 내리꽂는 말을 무시한 헬리는 이를 갈았다. 그는 저 빛이 무엇인지 안다. 이젠 기억했다.
“의식을 다시 치르는 거야. 공주님이 우리에게 줬던 이능력이 그래서 사라진 거였어.”
“돌아갔다 이거야?”
되묻던 자카의 눈이 커졌다.
그게 무슨 소리인지 바로 알아챈 칸은 당장 다르단에게 달려들었다.
‘공주가 줬던 이능력이 사라졌다’는 뜻이 뭐겠나. ‘공주에게로 돌아갔다’라는 거지. 그리고 정황상 그걸 다르단이 의도한 게 틀림없었다.
칸의 경험에 의하면 이런 건 일단 막고 봐야 했다. 자세히는 몰라도 무조건 막아야 했다!
하지만 혼자 열네 명의 소년들을 상대하는 다르단은 그들이 제단 위에 발도 내딛지 못하게 했다. 그는 그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몇 번 부딪쳐보면 안다. ‘저건’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었다. 그것도 절대로 소년들의 전력으로는 절대로 상대하지 못할 괴물. 그리고 어처구니없게도 소년들을 향한 순수한 분노까지 있었다.
‘버러지들.’
이능력이 없어도 헬리는 다르단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언제나 ‘자신만이’ 공주를 이해하고 편안하게 해줄 거라 믿었다.
시끄러웠던 뒤에서는 마침내 다르단의 부하들이 들이닥쳤다.
“전부 죽여라. 필요 없다.”
다르단은 싸늘하게 명령했다.
당장 그의 부하들은 그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소년들에게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뱀파이어 소년들이 이능력을 잃었다 해도, 그들에겐 아주 강력한 힘을 가진 친구들이 있었다.
제단 아래에서 늑대인간들이 완전한 늑대 모습으로 변해 날뛰기 시작했다. 까맣게 몰려든 뱀파이어들이 늑대들을 사정없이 물어뜯어 댔다. 아수라장이지만 확실히 늑대인간들은 뱀파이어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큭……!”
어떻게든 수하를 잡으려고 다르단을 공격하던 헬리도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져 통증에 시달렸다.
“형! 수하야! 좀 일어나봐!”
너무 답답해서 소리를 버럭 지르면서도 시온은 문득 생각했다. 수하가 일어나서, 도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봤자 여기에서 다 같이 죽는 것밖에 없는데.
방금 전에 있었던 홀과는 달리 이곳에는 퇴로도 없었다. 아니, 분명히 원장선생님이 여기에서 빠져나가실 때 이용한 퇴로가 있겠지만 그들은 몰랐다.
“수하야!”
하지만 시온과 달리 헬리는 포기하지 않고 그 이름을 한 번 더 불렀다. 새카만 속눈썹이 늘어진 눈가가 꿈틀거렸다.
주변이 차갑다. 딱딱한 돌바닥이 그녀를 받치고 있었다. 감각이 선명해지자 수하는 자신이 울고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눈 아래로 눈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흐으…….”
눈물이 나는 건, 마지막까지 서로를 위하고 희생하려 했던 그 마음들이 얼마나 끈끈한 사랑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마지가, 여왕이, 공주가, 기사들이 전부 서로를 위해 기꺼이 몸을 내던지고 후일을 기약했다. 그렇게 애써 그러모은 희망이 여기까지 왔다.
“이게……, 이게 뭐야…….”
수하는 평소보다 훨씬 더 예민해진 감각과 빛이 환하게 나는 몸을 내려다보며 울먹였다.
“정신이 듭니까? 얼마나 기억이 납니까?”
다르단은 순식간에 따뜻한 눈빛으로 돌변해 수하를 일으켰다. 그 빠른 변화가 소름 끼쳤다.
시끄러운 소리에 수하는 제단 아래를 바라보았다.
맙소사. 아수라장이다. 이능을 잃은 뱀파이어 친구들이 자꾸만 밀려나는 와중에, 늑대인간 친구들이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었다.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지만, 아주 당연하게도 수적으로 불리했다.
게다가 헬리는, 특히 헬리는 계속 다르단에게 달려들었다가 제단 아래로 떨어지길 반복했다. 다르단이 성가시다는 듯 손을 휘두르자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헬리가 다시 제단 계단에 부딪혔다.
열린 천장 위로 어느새 마지막 의식을 치렀던 날처럼 새파란 달빛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기억이 다…….”
다르단은 말을 흐리며 그를 분명하게 쳐다보는 수하를 살폈다. 그러곤 확신했다.
“돌아왔군요. 축하드립니다.”
축하한다는 말조차도 그녀를 기만하는 것처럼 들렸다. 애초에 기초부터 뒤틀린 자이니 당연하겠다만.
“유감스럽지만, 그 힘은 공주님에겐 있어봤자 계속 가치가 없는 자를 위해 사용될 뿐입니다.”
다르단은 절차를 차곡차곡 밟았다. 기사들에게 나눠줬던 힘들을 다시 공주에게로 원위치시킨 뒤, 그대로 그가 모든 힘을 가져가려는 거다.
“그러니 내게 주셔야겠습니다. 매우 유감입니다.”
그것만큼은 몹시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린 그는 망설이지도 않고 곧장 다음 의식을 시작했다.
친구들의 피가 뿜어지는 제단 아래를 멍하니 보던 수하가 중얼거렸다.
“원래대로 돌아왔다고……?”
싸우는 사람들의 생각이 읽혔다. 다르단의 제멋대로 합리화된 연정인지, 혹은 집착인지 모를 속내도 다 읽혔다.
나만이 공주를 차지할 수 있어.
달빛을 따라 생긴 그림자들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이런 감각이었구나.
“저런, 재상.”
수하가 중얼거렸다.
“나를 협박하고 싶었으면 내 힘을 원래대로 돌리지 말았어야지.”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