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달의 제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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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달의 제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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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달의 제단 (2)
2023.05.30.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처음에 수하가 했던 생각은 ‘뭐지?’가 아니었다. 의문을 표하기엔 겪은 게 너무 많았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납치당했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둔한 편도 아니었다.
계속되는 전투는 수하를 비롯한 소년들에게 훌륭한 반사신경과 감지능력을 기르도록 했는데, 수하는 붙잡히자마자 몸을 안개로 바꿨다.
바꿨으나 빠져나가지 못했다. 다르단은 안개인 그녀를 놓치지 않았다. 의외로 아프게 붙잡지는 않았지만, 떨쳐낼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수하를 들여다보았다.
“내가 붙잡을 수 있다는 걸 알지 않습니까?”
존댓말에 수하는 놀라 흠칫거렸다. 아주 묵직하고, 심지어 부드럽기까지 한 목소리였다.
‘이 사람, 뭐지?’
여태까지 안개가 되었던 수하를 붙잡는 데 성공한 사람은 딱 둘이었다. 헬리와 칸, 각각 소년들의 리더들이고 특별한 재능을 갖춘 소년들이다.
그런데 하나가 더 늘었다. 20대 극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외모는 어디 빠지는 데가 없이 수려했다. 그래서 언뜻 보면, 나중에 헬리가 나이를 먹으면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었다.
‘아냐, 달라.’
하지만 헬리에겐 저렇게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일을 정도로의 숨 막히는 기운이 없었다.
“기억이 없습니까?”
다르단은 수하를 보면서 동시에 그녀를 보고 있지 않았다. 올곧게 똑바로 수하를 바라보는 헬리와 비교하는 게 미안할 지경이었다.
“아, 기억이 없군요.”
그는 더더욱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알 게 뭔가. 다시 한번 수하가 반격을 시도했다. 안개화가 안 된다면, 그다음은 물리력이다.
그녀는 다르단을 걷어찼다. 그는 아주 매끄럽게 그녀의 공격을 막았다.
예상했던 바다. 수하는 그 공격이 먹힐 거라고 기대도 하지 않았다. 적을 상대하다 보면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에 대한 구분이 본능적으로 생긴다.
수하가 기대한 건 다르단이 그 공격을 물 흐르듯 막느라 잠시 생긴 틈이었다.
“많이 서툴러지셨군요. 아주 오래도록 공주님을 기다려왔지만 이런 일은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그는 중얼거리다가 멈칫거렸다. 그러곤 불쾌감과 의문이 잔뜩 떠도는 수하의 눈을 바라보았다.
수하는 이제야 그가 자신을 제대로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짜증 나고 역겹기는 매한가지였다.
“서툴러……?”
그럴 리가.
다르단은 고개를 모로 삐딱하게 기울였다. 그리고 그때였다.
쾅!
소년 중 가장 빠른 자카가 그들을 따라잡아 다르단이 수하를 꽉 잡고 있는 손부터 공격하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달려든 자카는 꿈쩍도 않는 다르단의 손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
“나는 신경 쓰지 마!”
수하가 소리를 질렀다. 다르단에게 붙잡힌 그녀의 손이 충격에 똑같이 부서진다 해도 일단 인질로 잡히지 않는 게 중요했다. 그러니 자카가 그녀를 고려하며 공격을 일부러 약하게 하는 건 결코 안 될 일이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르단은 한숨을 쉬었다.
“이건 전혀 달라지지 않았군요. 희생을 마다 않는 지배자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다른 한 손만으로 순식간에 자카를 멀리 밀쳐냈다.
“그러니 공주님은 지배는 관두도록 하세요.”
쿵, 하고 자카가 날아가 벽에 부딪히는 소리에 수하는 소리를 지르지도 못하고 눈을 크게 떴다. 다치면 안 되는데, 절대 다치면 안 되는 친구가 다쳤겠다. 어쩌지?
“지나치게 많은 것에 마음을 쓰는 것도 안 될 일입니다.”
중얼거리던 다르단과 수하의 눈이 마주쳤다. 그는 그녀를 집어삼킬 듯 바라보며 그대로 더 빠른 속도로 복도를 가로질렀다. 사람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속도였다.
그의 걸음이 멈추는 순간, 수하의 등 뒤로 문이 쿵, 하고 닫혔다. 그건 마치 지옥문이 닫히는 소리 같았다.
너무나 빠른 속도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수하는 이를 악물었다. 어지러워도, 토할 것 같아도 참아야 했다. 짐이 되지 말아야 한다.
그녀는 억지로 눈을 들었다. 그러곤 무심코 주변을 둘러보다 그만 경악하고 말았다.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온통 피투성이이다. 거대한 방인지 홀인지 모를 정도로 광활한 그곳에는 끔찍한 도구들이 널려 있었고, 늑대인간들의 털이 여기저기 흩어져 피에 잔뜩 젖어 있었다.
“약한 이들을 번번이 그리 돌보는 것도 번거롭고 귀찮지 않습니까?”
수하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인간에서 늑대로 변화하는 도중에 잘라낸 팔이며 다리가 박제되어 마치 전시라도 하듯 구석구석에 걸려 있었다. 끔찍하고 징그러운 곳이었다. 에스티발 시 물류창고도 이보다는 인도적이었다.
오토널에서부터 징그럽게 싫다는 느낌이 들더니 어쩐지. 이렇게 섬뜩한 고문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수하는 그만 고개를 숙이고 구토하기 시작했다. 괴로워하며 눈물까지 쏟아낼 정도로 심하게 구토하는 그녀를 보며 다르단은 한숨을 쉬었다.
“공주님을 모시기엔 변변찮은 곳이긴 합니다. 급작스러워 준비가 미비합니다. 잠시 참아주세요.”
중얼거리던 그는 수하의 손을 내려놓았다.
수하는 그 와중에도 급하게 뒤로 물러나다가 또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게 공주의 감정인지, 그녀의 감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르단이 징그럽게 싫은 거 하나는 확실했다.
수하는 몸을 비틀면서도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고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이 일을 어찌하나. 일단 기억부터 되돌리는 게 좋겠군요.”
수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구토하는 와중에 다르단이 기어이 다가가 그녀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저리 가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는 그녀에게서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
“기습이다!”
시끄러운 뱀파이어들의 목소리가 귀를 후벼 판다. 솔론은 외치던 놈의 목덜미를 물어 뜯어버렸다.
언제나 바르고 정직하고 예의 바른 태도를 강조했던 원장선생님 덕분에 소년들은 제법 바른 생활을 해왔다. 하지만 이런 때는, 아니, 이런 일이 계속해서 거듭 발생하는 때는 정말 쓰지도 않던 욕이 저절로 나왔다. 정말이지 이게 도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
“수하야!”
헬리는 눈이 돌아서 날뛰고 있었고, 히버널 성의 뱀파이어들은 에스티발 시나 프린태니어에서 겪었던 트레나의 수하들과는 격이 달랐다.
곧장 그들이 서 있던 홀 주변 통로가 온통 차단되기 시작했다.
“자카!”
맙소사. 자카가 따라갔나 보다. 그럼 통로가 차단될 테니, 자카 혼자 수하를 따라가는 것일 텐데,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솔론이 헬리에게 물었다.
“어느 쪽?”
“1시 방향!”
“내가 갈게.”
솔론이 내려가기 시작하는 차단벽 아래로 질주하여 홀을 빠져나갔다. 이대로 완전히 포위당해 퍼부어지는 개조 탄환에 잠자코 당할 수만은 없었다.
엔지는 냉정하게 매고 왔던 총을 꺼내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그의 총구는 아직 덜 닫힌 차단벽 아래, 저쪽에서 달려오고 있는 정규 뱀파이어 부대원들의 발목을 향했다.
“윽!”
짧은 신음과 함께 몰려오던 부대원들의 대열이 크게 흐트러졌다. 방화벽이 그대로 닫혔다.
엔지는 표정 없이 총구를 내리곤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 다 물러나!”
이안이 목을 뚝뚝 꺾더니 방화벽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포위는 결코 안 된다. 어떻게든 퇴로를 뚫어야 했다. 그는 방화벽을 부숴버릴 생각이었다.
지노가 재빨리 그의 곁에 섰다. 헬리는 수하가 지금 어디 있는지 찾아내느라 살벌하게 집중하고 있었고, 시온은 트리샤를 붙잡고 물었다.
“자,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빠져나갈 수 있는 곳이 있나?”
트리샤가 곧장 대답했다.
“3시 방향 방화벽이 약하다.”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이안은 3시 방향 방화벽으로 달려들었다.
“수하가 어디로 끌려간 거지?”
트리샤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마 실험실?”
“실험실은 어디야?”
“1시 방향 방화벽 너머.”
아, 그래. 그건 솔론과 자카가 따라갔다.
“3시 방향 방화벽을 뚫으면 실험실로 갈 길이 있어?”
트리샤는 잠시 생각했다. 쾅, 쾅, 이안이 방화벽을 부수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렸다. 벽은 너무나 두꺼웠지만, 분노에 찬 그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헬리가 고개를 퍼뜩 들었다.
“7시, 9시 쪽에서 몰려오고 있는데. 저쪽 방화벽을 열고 공격할 생각이야. 중무장했어. 무기는…….”
헬리는 잠시 방화벽 너머로 모이고 있는 뱀파이어들의 생각을 읽는 데 집중했다. 물론 의식의 다른 부분은 여전히 수하를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수하야, 어디 있어? 내 말이 들리면 대답해. 수하야!
“무기는 이미 우리와 같은 걸 들고 있어. 새로운 건 없네.”
평소보다 더 창백해진 그는 씹어 뱉듯이 말한 뒤 다시 수하를 찾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애가 바짝바짝 탔다.
자카, 내 말 들려?
이쪽도 대답이 없다.
“대답이 없어?”
칸이 물어오자 헬리는 조용히 고개만 저었다. 지그시 입술을 깨문 칸은 다음 상황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형, 3시 방향으로 뚫고 가서 돌아가는 방법은 없대.”
결국 수하가 끌려간 방향, 아마 자카가 따라간 1시 방향을 뚫어야 하는 모양이다.
지노가 그 말을 듣자마자 1시 방향 방화벽을 뜨겁게 달궜다가 다시 차갑게 얼리기 시작했다. 온도 차이를 이용해서 균열을 유도하는 방식이었다.
“일단 3시 방향은 계속 다 뚫어, 이안! 우리한테 퇴로가 필요하니까! 그리고 지노, 계속해! 거긴 분명히 뚫어야 해.”
“걱정 마.”
“공격 시작된다, 준비해!”
헬리가 날카롭게 말했다.
어둑한 홀 안에 어둠 그 자체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에서 보호받은 시온은 트리샤라는 애매한 짐덩이까지 달고 있었다.
매료가 풀렸다간 당장 그들을 공격할 테지만, 그렇다고 없애자니 이 히버널 성 안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존재다. 그래서 그는 이 와중에도 트리샤에게서 캐낼 수 있는 모든 걸 다 캐내고 있었다.
“지금 몰려오는 놈들은 우리가 마주했던 트레나의 군대와 똑같아?”
“똑같다.”
“좋아. 그럼 삼백 명이 채 안 된다고 했지.”
“고위 뱀파이어는 아주 희귀하고 드물다.”
“알아, 안다고. 너 그 말이 벌써 몇 번째인지 알아?”
“모른다.”
“아오!”
그리고 쾅, 하고 두 방향에서 방화벽이 아주 빠르게 올라가고, 탄환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
“자카!”
솔론은 빠르게 복도를 훑으며 달려가다 벽에 부딪혀 쓰러진 자카를 발견하곤 얼른 일으켜 세웠다.
“괜찮아? 다쳤어?”
“어깨 빠진 거 같아, 좀 맞춰봐…….”
“어디, 왼쪽? 참아.”
우득, 하고 뼈를 맞추고 부러진 곳은 없는지 확인하는 솔론의 손은 아주 단호하고 빨랐다. 이를 악문 자카는 겨우 숨을 토해냈다.
“장난 아니야. 그놈 미쳤어.”
“언젠 제정신이었냐? 일어나. 싸울 수 있겠어?”
“싸울 거야. 죽어도 다시 살아나서 싸울 거야. 수하는 저 끝으로 끌려갔어.”
아주 넓고 긴 복도 끝에 꽉 닫힌 거대한 문이 보였다. 오토널 시청 지하 신전 문만큼이나 거대한 문이었다.
“형만 왔어?”
“나도 간신히 온 거야. 방화벽이 싹 닫혀서 홀에 완전히 포위됐어.”
쿵, 쿵, 쿵, 요란한 소리가 홀 쪽에서 들렸다. 이안이 아마 방화벽을 때려 부수기 시작했나 보다.
그래. 막혔으면 뚫어야지. 단순한 논리에 자카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가던 길을 가기 시작했다.
“저쪽은 알아서 할 거야. 우리는 무조건 수하부터 구출해야 해.”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
자카와 솔론은 머리를 아주 맹렬히 굴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저 문을 열지? 저 안에 수하가 있는 건 확실하나? 다르단은 어떻게 하지?
그러다가 문득 두 사람은 얼굴을 굳혔다.
본디 기사란 지켜야 할 사람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법이다.
두 사람이 희생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그다음은 남은 사람들에게 맡기면 된다. 분명히 다른 형제들도 같은 생각일 거다. 단지, 그들은 자신의 희생은 아무렇지도 않아 하면서 서로의 희생에는 불같이 화를 낼 뿐이었다.
“……문, 열 수 있겠어?”
솔론의 물음에 자카는 소지하고 있던 폭탄을 꺼냈다. 엔지가 아주 좋은 걸 가르쳐줬다.
“해봐야지.”
문 가까이 온 자카는 솔론과 눈을 마주친 뒤 폭탄을 던졌다. 그게 제발 저 단단하고 거대한 문을 열어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폭탄은 그때 갑자기 열린 문 안으로 휙 들어가고 말았다.
“어?”
수하의 양팔을 억지로 붙잡아 감싼 다르단은 두 사람을 성가시다는 듯 본 뒤 싹 무시하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의 등 뒤에서 펑, 하고 폭탄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터졌다.
다르단의 실험실을 순식간에 날려버린 자카는 확인도 못 하고 곧장 다르단을 다시 뒤쫓기 시작했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