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8. 오토널 습격 (7) (68/81)


68. 오토널 습격 (7)
2023.04.25.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야, 이……!”

“아, 잘못했다고!”

이안이 욕을 하기도 전에 지노는 얼른 외치면서 냅다 달렸다.

3층이 어느새 조용해지고, 아래로 내려가 보니 2층도 조용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뜻이다.

소년들은 가장 빠른 속도로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이곳에 득실대던 뱀파이어들이 지하 2층으로 몰려간 게 분명했다. 아니면 적어도 지하 2층에 있던 뱀파이어들이 경계태세에 들어갔거나.

‘그렇지만 어쨌든 총소리는 날 거였다고!’

맞는 말이었다. 그들이 쏘지 않았다면 뱀파이어들이 쐈을 테니까. 하지만 지노가 불만을 입 밖으로 내봤자 얻는 건 없다.

칸은 자신이 해줄 말을 대신해준 이안 덕분에 머릿속으로 계속 헬리를 찾을 수 있었다.

헬리, 헬리? 우리 2층에서 내려가고 있어. 거긴 어때?

제발 대답해라, 제발. 칸은 이렇게 따로 떨어져서 움직일 때가 제일 짜증이 났다.

물론 숫자로 열세이니 조를 이뤄 여러 가지 작전을 수행하는 건 필수였지만, 심리적으로는 리더로서 몹시 불안했다.

무엇보다 지금 막내인 타헬도 보이지 않았고, 헬리 쪽에는 수하도 있다. 이래저래 그쪽이 더 불리한 상황이었다.

너네 빨리 내려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당장 내려가고 있던 소년들의 머리를 후려치는 헬리의 반응에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잠깐 내쉬었다. 일단은 살아 있구나.

이놈들이 왜 위에서 내려와? 지금 아래, 위, 다 난리야! 우리 포위당했다고!

아이고, 조금만 기다리십쇼. 곧 갑니다.

지노 네가 사고 쳤지?

……어떻게 알았지?

아니었으면 너도 똑같이 화내고 있었겠지.

와, 이 예리한 형 같으니. 지노는 눈알을 굴렸다.

쟤네가 먼저 총을 쏘려고 했어.

그래, 어련하겠어. 빨리 내려오기나 해.

옙.

하여튼. 헬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싶은 심정으로 뱀파이어를 한 놈 더 베어냈다.

“아, 아아악!”

굳이 급소를 찌르지 않아도 그의 검은 정예 뱀파이어들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절대로 회복되지 않고, 검고 진득한 피가 마구 흘러내리며, 상처가 벌겋게 타들어 가게 만드는 지독한 검이었다. 엄청난 고통이 함께 동반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원장선생님이 이럴 걸 알아서 이 검을 나한테 맡기신 건가?’

아니, 어쩌면 헬리가 그 전부터 가지고 있던 검일 수도 있다. 손에 착 감기는 느낌과 편안한 무게는 그의 추측에 신빙성을 더해주기만 했다.

검은 그와 한 몸이 된 것처럼 움직였다. 그래서 마구 밀려드는 뱀파이어들도 순식간에 낙엽이 쓸리듯 우르르 넘어갔다.

“당장 연락해!”

“이놈들이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온갖 욕설과 고함이 난무했으니 일단 잠입은 이쯤에서 망한 게 분명했다. 하지만 헬리는 그 와중에도 ‘연락’이라는 말을 잡아내고 눈이 번쩍 뜨였다.

“자카!”

의식을 전달할 새도 없었다. 그냥 냅다 이름부터 불러 외쳤다.

눈치가 빠른 자카는 당장 어딘가로 연락을 한다는 그놈부터 찾아서 때려눕혔다. 물론 자카의 스피드가 실린 주먹은 때려눕히는 정도가 아니라 절명하는 수준이었다.

헬리는 그것만 확인한 뒤 몸을 틀어 타헬에게 달려드는 놈을 찔러버리며 뒤를 확인했다.

‘수하는?’

저 계단 끝에 노아가 다스리는 어둠이 사납게 일렁이고 있었다. 그것들은 늑대인간과 뱀파이어 형제들의 모습을 하고 사납게 입을 쩍 벌려 적을 씹어 삼켰다.

넓은 부분을 커버하는 노아의 이능력이면 어둠 속에서 얼마든지 버티는 게 가능했다. 더구나 낮은 조명도 있으니 그림자로 간단히 장난을 치는 것도 아주 쉬웠다.

“니들끼리 싸워.”

그리고 무심한 얼굴로 간단하게 명령하는 시온도 있었다. 그는 정예 뱀파이어 셋의 눈을 탁, 탁, 탁, 단숨에 한 번씩 쳐다보는 것만으로 그들의 의식을 제압한 뒤 오히려 뱀파이어들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곤 곧장 다른 적들이 움직이지도 못하게 바닥에 붙이고, 자신은 천장으로 올라가서 공격하기 시작하니 뱀파이어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앞장서서 길을 뚫는 건 수하였다.

쾅!

가볍게 내지른 주먹에 뱀파이어들이 와르르 나가떨어졌다.

“어, 그렇게 세게 때린 거 아닌데?”

뭐야, 뭐가 잘못된 거야? 수하는 괜히 자신의 주먹을 한 번 내려다보다가 어깨를 으쓱거리곤 앞으로 더 나아갔다. 힘이 센 거야 어쩔 수 없지.

그녀는 지금 퇴로를 뚫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맡았다. 힘이 세면 문도 부술 수 있고 좋지, 뭘 그래?

“잠깐, 아가씨, 잠깐만……!”

이상하게도 뱀파이어가 그녀에게 대화를 시도했지만, 잠깐은 무슨.

쾅!

다시 경쾌한 소음이 일어났다. 덕분에 타헬과 엔지가 헬리와 함께 뒤로 슬슬 물러날 수 있었다.

“아, 진짜, 이놈들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몰려오는 거야?”

이미 늑대의 모습으로 변한 타헬이 격하게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그렇지?”

“아마도.”

엔지는 이 와중에도 하하, 웃으면서 뱀파이어의 가슴을 밀쳐 넘어뜨렸다. 우지끈,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뱀파이어의 갈비뼈가 완전히 박살 나면서 내려앉았다. 그대로 사망이다.

“이씨, 분명히 나자크 형이야.”

“어? 난 카밀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냐. 나자크 형이 또 사람 좋게 웃다가 어어어 하는 사이에 일이 벌어진 게 분명해.”

말이 오고 가는 와중에 퍽, 퍽, 하고 두들기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왔다.

“타헬이 예리하네.”

헬리가 중얼거렸다.

“내 말이 맞지? 거봐, 그럴 줄 알았어.”

오기만 해봐라. 한마디 해줘야지. 씩씩대는 타헬은 형들이 있어서 그런지 용감하게 싸웠다.

‘지노가 나자크랑 움직였지, 아마?’

그러니 분명히 둘이서 함께 사고를 쳤을 거다. 뭐, 총을 가지고 들어갔으니 결국 이렇게 될 거였지만.

타헬과 노아, 두 막내의 상황을 시시때때로 확인하고 있는 헬리는 그 두 녀석이 빨리 오기만을 바랐다. 지금 이 좁은 계단에서 위아래로 밀어닥치는 뱀파이어들을 막아내는 게 힘에 부쳤기 때문이다.

“더 내려와!”

엔지가 헬리에게 외쳤다.

“저쪽 문 막아! 이것들 여기에서 다 죽여!”

뱀파이어들도 서로 악을 쓰며 문을 막으러 달려갔다. 분명히 폐쇄시키면 옴짝달싹도 못 할 구조일 거다.

헬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누구 마음대로?

“이쪽으로 몰아!”

탕!

뱀파이어들은 누가 가장 약한지 본능적으로 안다. 가장 어려 보이는 타헬에게 당연히 총알이 퍼부어졌다.

자카가 일단은 잡아채서 총알을 흘려버렸지만, 이 좁은 곳에서 무차별 난사를 하면 피할 수가 없었다.

쾅!

길을 뚫는 수하도 점점 더 절박해지고 마음이 조급해졌다. 안개가 되었다가 다시 사람이 되었다가, 종횡무진하고 있는 그녀는 친구들의 몸에 생채기가 나는 걸 분명히 보고 있었다.

피가 떨어지는 게 이젠 무섭다. 누구도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두가 다 소중했다. 한 명도 잃고 싶지 않았다.

탕! 탕! 탕!

절망적인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새파랗게 질린 수하가 뒤를 돌아보았다. 안 돼!

탕! 탕! 탕!

안 된다고 고함을 지르기도 전에 총격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마찬가지로 뒤를 돌아본 뱀파이어들이 이번에는 그쪽으로 총구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이런, 이쪽에도!”

“지원병력이다!”

“이 새끼들 어디에서 이렇게 튀어나오는 거야!”

탕, 탕!

아무런 감정 없이 방아쇠를 당긴 지노는 마지막 말을 남긴 놈부터 머리를 날렸다.

“어디서 튀어나왔긴, 지들만 지원군이 있는 줄 아나? 하여튼 뱀파이어 새끼들, 영 마음에 안 들어.”

같이 일단 챙겨왔던 총부터 소모하기로 하고 방아쇠를 당겨보던 카밀이 삐끗했다. 지금 뭘 들은 거지?

“너도 뱀파이어 아니냐?”

“나는 진짜고 저것들은 흉내만 낸 거야.”

어디선가 찌릿한 전기가 그들을 공격했다. 하지만 지노는 그쪽은 바라보지도 않고 불덩이를 날렸다. 하긴 저렇게 이능력 차이가 큰데 누가 봐도 이쪽 소년들이 진짜 뱀파이어라고 판단할 법했다.

“야, 지노야, 여기 보일러실이다, 좀! 제발 좀!”

이안이 투덜거리며 개머리판을 휘둘렀다.

“파이프 쪼개는 너도 만만치 않아.”

지노가 씩 웃으면서 앞으로 전진했다. 3층부터 1층까지 뛰어내리다시피 해서 거리를 주파한 그들은 보일러실을 꽉 채우고 있던 뱀파이어들의 뒤를 치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선 이능력을 쓰든가, 아니면 총을 쏘든가,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어차피 싸우기에 적합한 장소가 아니었다.

하지만 뱀파이어들이 이 정도로 우왕좌왕하는 건 그만큼 이들이 급습에 당황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곳은 뱀파이어들의 근거지. 자신들의 안방에서 이 정도로 밀린다면, 승산은 소년들에게 있었다.

“보일러 조심하고 머리만 노려! 앞에 있는 놈들 다 처리해야 해!”

“예, 예.”

칸의 지시에 마한이 심드렁하게 대답하면서도 빠르게 움직였다.

총은 이럴 때 아주 효과적인 무기였다. 물론 저쪽에서도 총알이 날아오고 있었지만, 이미 인간의 능력보다 훨씬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가진 소년들은 쏘기 전에 맞춘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구체화시켰다.

비명도 지르지 못한 뱀파이어들이 털썩털썩 쓰러졌다. 앞으로 나아가니 시커먼 뱀파이어들 사이로 빛나는 검을 쥔 헬리가 저 멀리 보였다.

“어, 형, 안녕.”

지노가 손을 흔들었다. 어이가 없어진 헬리는 그냥 웃으면서 검만 휘둘렀다. 피가 튀고 살점이 찢긴다. 여긴 또다시 익숙한 지옥이었다.

“자카, 뒤로 가서 수하를 도와줘.”

“예, 예, 갑니다.”

언제나 전천후로 투입시킬 수 있는 가장 빠른 무기지요. 자카는 중얼거리면서 계단 위쪽에서 아래쪽까지 단숨에 이동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헬리는 말 안 해줘!”

수하가 뱀파이어 둘을 날리며 물었다.

“형은 지금 말할 정신이 없어. 이제 막 뒤에 애들이 다 와서 저쪽은 좀 할 만해졌거든.”

그런데 여기도 상태가 아주 나쁜 건 아니다. 자카는 뱀파이어의 목을 움켜쥔 노아가 어둠 속에 놈을 그대로 파묻는 광경을 보다가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여기 분위기는 또 왜 이래?

“엄청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괜찮네?”

“걱정은 무슨.”

자카의 말에 수하가 픽 웃었다.

“시온 봐. 쟤 날아다녀.”

시온은 천장이 무슨 바닥이라도 되는 것처럼 룰루랄라 산책을 하는 걸음으로 한가하게 걷고 있었다. 그의 걸음마다 저 계단 끝에서 쏟아져 나오는 뱀파이어들이 쓰러진다. 자카 역시 느끼고 있었다. 그들의 이능력이 한 단계 더 높이 올라섰다.

자카는 잠시 빠르게 움직여서 뱀파이어 다섯을 한꺼번에 끌어다 놓았다. 그러면 노아가 그들을 바로 처리했다. 계단 위편에서는 푸른 늑대가 뛰어 내려와서 뱀파이어를 강하게 쳐냈다. 딱딱한 돌벽에 부딪친 뱀파이어가 주르르 미끄러졌다.

“어, 솔론도 왔어?”

“이쪽이 위험할 거 같아서.”

뱀파이어들을 돌파한 솔론에겐 미세한 상처들이 보였지만 그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다는 듯 앞을 바라보았다.

“저긴가?”

계단 끝에는 보일러실로 가는 길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웅장한 복도가 놓여 있었다. 천장이 무시무시하게 높았다. 장엄한 기둥이 복도 끝까지 양쪽에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었고, 그 기둥 뒤에는 거대한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안 돼!”

뱀파이어들이 부르짖기 시작했다. 마치 그들이 절대로 발을 들여선 안 될 곳에 왔다는 반응 같았다.

“놈들이 절대로 신성한 곳에 진입하지 못하게 해라!”

“야, 제대로 온 거 같다?”

수하의 중얼거림에 솔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지 말라고 하면 더더욱 최선을 다해 돌파해야지! 푸른 늑대의 오드아이가 번쩍거리며 빛났다. 늑대가 사납게 울부짖는 소리가 어두운 복도 안에 울려 퍼졌다.

숨이 턱에 닿을 지경이었다. 계단에서 싸우는 건 죽을 맛이다. 지형적인 이점도 없고, 치고 들어오는 적들은 끝이 없다. 저 복도 끝에서 거대한 문이 열리고, 자꾸만 뱀파이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아직까지 헬리를 비롯한 뒤쪽의 소년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지도 못했다. 하지만 수하는 이를 악물고 싸웠다.

‘내가 잘 버텨야 해.’

그래야만 했다. 이상한 책임감이 그녀를 꽉 붙들고 있었다. 예전 직업이 공주라서 그런가? 갑자기 불현듯 스치는 생각이 어이가 없어서 수하는 픽 웃어버렸다.

공주가 그녀인지 솔직히 불분명했다. 꿈에서 움직이는 수하에 가까운 존재고, 심적으로는 좀 멀게 느껴지기만 했다.

그녀는 뱀파이어들을 걷어찬 뒤 복도에 발을 내디뎠다. 기둥 뒤에 걸려 있던 그림이 좀 더 눈에 들어왔다.

“……어?”

저건 그러니까, 공주의 초상화가 아닌가?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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