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7. 오토널 습격 (6) (67/81)


67. 오토널 습격 (6)
2023.04.18.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시청 문이 닫히고 직원들이 퇴근할 시간이 되면, 그제야 청소부들이 움직인다. 지노는 붉은 머리카락을 가리는 볼캡을 푹 눌러쓴 채 픽 웃었다.

‘어처구니가 없네.’

여긴 보는 사람이 질릴 정도로 경비가 심했다. 바꿔 말하자면 분명히 뭔가가 있다는 얘기다.

그럼 열심히 털어줘야지. 지노는 청소도구를 가득 담은 수레를 천천히 밀며 3층 복도를 지나갔다.

2인 1조로 움직이는 청소부들은 오늘도 마지막 먼지 하나까지 싹 털어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렇다. 이 세상에서 쓰레기만 양산해내는 저놈의 뱀파이어들을 때려잡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지하 2층에 수상한 곳이 있대. 진입했다고 일 끝내는 대로 내려오래.”

갑자기 휙 등장한 자카가 빠르게 말했다.

“그리고 앞방에 뱀파이어 넷이 있어.”

“드리프터?”

“아니, 정예에 가까워.”

자카는 다시 휙 사라졌다. 그렇단 말이지. 지노는 한가하게 대충 마른걸레와 비닐이 얹힌 수레를 밀고 전진했다.

그는 소화전을 힐끗 보다가 그냥 지나갔다. 그가 수레를 밀고, 함께 가는 나자크는 딱딱한 양 문을 휙 열었다.

안을 지키고 있던 정장 차림의 뱀파이어 넷이 그들을 쳐다보았다. 겉으로 보기엔 경호원들로 보였지만, 사실은 드리프터들보다 훨씬 강한 고위 뱀파이어들이었다.

“아이고.”

탕! 탕!

“수고가 많으십니다.”

탕! 탕!

지노의 유쾌한 말이 끝나자마자 머리에 총을 맞은 뱀파이어들이 부들부들 떨며 쓰러졌다.

 
급소를 맞았지만 죽지는 않는다. 늑대인간들이었다면 바로 죽었겠지. 짜증이 나니 나자크는 뱀파이어들의 목을 완전히 꺾으며 확실하게 죽였다.

“오, 이거 확실히 쓸 만하네. 무식하게 커서 그런가?”

청소도구 수레에는 사실 저번 싸움에서 탈취한 정예 뱀파이어 부대의 무기들이 가득했다.

일단 집히는 대로 들어서 한 손으로 쏘는 말도 안 되는 짓을 한 지노는 소총을 보며 감탄했다.

“온다.”

나자크는 대답하지 않고 저편 문을 노려보았다. 총소리를 듣고 달려온 뱀파이어들이 문을 활짝 열자마자 다시 쓰러졌다.

점점 여러 전투를 거치면서 감각이 날카롭게 다듬어지고 있는 지노와 나자크는 실수 하나 없이 계속 명중만 시켰다. 그리고 완전히 목을 꺾는 것도 언제나 잊지 않았다. 확인사살이란 건 참 중요하다.

“꽤 괜찮은데?”

지노는 나자크를 보며 순수하게 감탄했다.

“너도 만만치 않아.”

나자크는 빙긋 웃었다.

“경기장에서 볼 때는 참 재수가 없었는데.”

“누가 할 소리.”

안쪽에서 또 경호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노는 사정없이 총을 갈겼다.

확실히 총을 쏘는 건 그와 맞지 않는 일이었다. 직접 가서 불을 휘두르면서 싸우는 게 더 적성에 맞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직까지는 웬만하면 체력을 아껴야 했다. 오늘 이곳에서 무엇과 맞닥뜨릴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뱀파이어들 역시 총을 꺼내기 시작했다.

“으아악!”

하지만 죄다 총을 떨어트리기 시작했다. 총을 순식간에 벌겋게 달아오르게 해서 집어 들지도 못하게 한 지노가 그대로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퍼억, 하고 개머리판으로 후려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어딜.”

어디서 누구한테 총을 쏘려고. 지노가 뱀파이어를 직접 때려잡는 난투극에 기꺼이 합세한 나자크가 투덜거렸다.

“그냥 쏘지, 뭘 때리냐?”

“너도 솔직히 이쪽이 더 맞잖아, 왜 이래?”

“안쪽에서 또 뭐가 튀어나올지 어떻게 알고 그래?”

“그거야 이놈들을 방패 삼아 막으면 되는 거지.”

지노는 나자크도 이미 알고 있는 답을 하며 청소 수레를 발로 밀었다.

수레는 그대로 안쪽으로 더 굴러가기 시작했고, 나자크와 지노도 수레를 따라 달려갔다.

고풍스러운 장식이 가득한 방들에는 일일이 다 카펫이 깔려 있었고, 수레가 굴러가는 소리는 거의 나지도 않았다. 벽마다 걸린 액자에는 누군가의 초상화나 풍경 같은 오래된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그곳을 소총을 쥐고 가로지르는 청소부 차림의 소년들만큼 이질적인 것도 없었다.

“이쪽이 시장 사무실로 통하는 거 맞아?”

“몰라. 일단 다 때려잡아야지.”

지노는 단순하게 대답했다.

“아, 진짜 나도 모르겠다. 우리 둘밖에 없는데.”

나자크는 고개를 흔들며 이제 막 열리는 문을 향해 총을 쏘았다.

“셋이야.”

그러곤 옆에서 갑자기 들리는 말에 힉, 하고 놀랐다.

“자카, 너는 기척 좀 내고 다녀!”

나자크의 잔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문을 열고 달려 나오던 뱀파이어 둘이 갑자기 지노와 나자크 뒤편으로 날아갔다. 그런 뒤 다시 모습을 드러낸 자카가 주먹을 툭툭 털었다.

“내가 기척을 내고 다녀서 뭐하게?”

무심히 대꾸한 그는 다시 또 사라졌다.

“쟤 가버렸냐?”

“아니.”

지노는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제부터 우리한테 합류한 거야.”

뭐, 그렇다면야 편하지. 나자크도 이제 슬슬 뱀파이어 소년들과 함께 다니고, 또 함께 싸우는 일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서로의 싸우는 스타일이 어떤지 알게 되니 손발을 맞추는 것도 더 쉬워졌다.

나자크는 슬슬 멈추기 시작한 수레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자카가 빠르게 문을 열고, 나자크가 그대로 이쪽으로 향하는 뱀파이어의 가슴을 걷어차며 내려섰다.

“공격이, 컥!”

정예 뱀파이어 부대와 밤새워 싸워본 경험도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지노는 서둘러 외부에 연락하려는 놈들부터 바로 공격했다. 트리샤에게 연락이 가는 것만은 무조건 막아야 했다. 최대한 연락이 가는 걸 늦춰야 한다.

그런데, 막는 게 가능할까?

시커먼 정장을 입은 뱀파이어들이 사방에서 와르르 달려 나오기 시작했다.

탕!

이쪽으로 날아오는 총알을 일단 피한 지노가 사납게 웃었다.

“이야, 우리가 제대로 오긴 했나 보네?”

“저것들을 다 죽일 생각을 하니 지친다, 지쳐.”

“어어, 벌써 지치면 어떡해?”

“정신적으로 피로하다고.”

하지만 육체적으로는 전혀 아니다. 나자크는 벌써 시체가 된 체격 좋은 뱀파이어 하나를 총알을 막는 방패로 삼았다.

“야, 우리 아무래도 잠입하는 건 끝난 것 같지?”

“이미 끝났지.”

“으, 헬리 형이 싫어할 텐데.”

시체를 적들에게 집어 던진 나자크는 십여 정의 총을 한꺼번에 달아오르게 하며 심드렁하게 중얼거린 지노를 돌아보았다.

“너는 너네 주장이 그렇게 무섭냐?”

“무서운 게 아니라, 너는 너네 주장 말이 안 중요하냐?”

“……중요하지. 아씨, 나도 칸 형한테 한소리 들을 거 같은데?”

“그냥 쟤들이 먼저 덤볐다고 해. 우리가 먼저 쏜 거 아니라고 하고.”

천연덕스럽게 말을 주고받을 동안 벌써 우아한 갈색 카펫 위에 어마어마한 숫자의 시신이 쌓였다. 정성스럽게 걸어놨던 초상화에도 총알구멍이 뻥뻥 생기고, 백 년 전 디자인으로 만들어 놓은 콘솔 테이블에도 구멍이 나서 나무속이 보기 싫게 드러났다.

“형들이 그걸 믿겠냐?”

어마어마한 속도를 그대로 실은 채 뱀파이어 셋을 들이받아 한꺼번에 쓰러트린 자카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너는 혼나지 않을 거 같아?”

지노의 침착한 지적에 자카는 얼굴을 찡그렸다.

“……쟤네가 먼저 쐈다고 할게.”

합의가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솔직히 프린태니어 시에서 정예 뱀파이어 부대를 상대할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적은 숫자지만, 어쨌든 육안으로 봤을 때 셋이 상대하기엔 터무니없이 많은 십여 명의 뱀파이어들이 계속 안쪽에서 나왔다.

또다시 프린태니어 시 전투를 재현하는 건가? 나자크가 비틀린 웃음을 지었을 때였다.

“크억!”

와당탕, 하고 뱀파이어들의 뒤편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더니 뱀파이어들이 이쪽으로 균형을 잃고 굴러오기 시작했다. 일단 걷어차서 뼈를 부러트린 지노가 앞을 바라보았다.

“뭐야?”

웬 뚱뚱한 남자를 어깨에 메고 나오던 이안이 지노를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너야말로, 뭐하냐?”

지노와 나자크와 마찬가지로 청소부 차림인 이안의 곁에서 카밀이 튀어나와 뱀파이어들을 살육하기 시작했다. 그들만 있는 게 아니라 칸과 솔론도 보였다. 루슬란과 마한도 설렁설렁 걸어오다가 눈을 크게 떴다.

“뭐야, 시장 확보했어?”

여기가 시장실로 가는 길이 맞긴 했나 보다. 역시 경호가 삼엄한 쪽을 두들기면 백 프로다.

“어, 근데 이게 뭐냐?”

대답은 칸이 대신했다. 그의 날카로운 질문에 나자크가 슬그머니 눈을 피했다. 물론 소년들은 이 와중에도 뱀파이어들을 처리하는 손과 발은 쉬지 않았다.

“야, 이렇게 되면…….”

칸은 한숨을 쉬었다.

“자카, 먼저 지하로 내려가 줄 수 있어? 이쪽에 전력이 몰려 있는데 지하에서 여기 일을 알았다간 그쪽이 불리해질 거야.”

“알겠어.”

자카는 대답만 남기고 서둘러 사라졌다.

“우린 여길 빠르게 돌파해서 지하로 내려가자.”

어쩌다 보니 인원이 이쪽에 더 많이 몰리게 되었다. 혹시 헬리와 수하 쪽이 고전하고 있을까 봐 걱정이 된다. 칸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

수하는 왔던 길을 돌아보았다. 후방을 맡은 노아가 왜 그러냐고 눈으로 물었다.

“아니, 누가 쫓아오나 신경 쓰여서.”

“아직까지는 조용해.”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계단에는 카펫이 깔려 있지 않았다. 때문에 발소리가 필연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수하의 생각에는 그녀가 얼른 가서 처리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데, 헬리는 그녀를 막았다. 그는 아래에서 읽히는 생각들이 정확하게 몇 개인지 헤아리고 있었다.

“……피 마시고 싶다고 하는 놈이 너무 많은데.”

뱀파이어들이란. 죄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니 구분이 안 된다. 헬리는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내가 간다니까.”

“그 방법을 언제까지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언제까지긴, 계속 쭉 쓸 수 있지.”

하지만 수하를 보며 검지를 입술 앞에 세워 보인 헬리는 시온을 보았다.

몇 명이나 매료시킬 수 있어?

어, 글쎄?

뜻밖의 질문을 받은 시온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정예는 셋까지는 힘들었어. 제일 힘들었던 건 당연히 레일건 마스터였고.

하지만 성공했지.

이젠 슬슬 점점 실력이 늘어나는 뱀파이어 소년들의 이능력을 써먹을 때가 됐다.

헬리는 계단 아래쪽에 있는 뱀파이어들의 생각을 한 번 더 읽어본 뒤 결론을 내렸다.

“……공간이 많아. 최소 열 명은 돼. 그러니까 노아가 내려가서 그림자로 묶어. 지금처럼 최소한의 조명은 켜놨으니까 그림자를 움직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향초를 켜놨는지 반드시 확인하고, 시온이 바깥에 연락하려는 놈들을 막고 향초를 끄게 해. 엔지랑 타헬은 일단 가만히 있어 보자.”

엔지와 타헬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향초가 피워져 있다면 그들은 손을 제대로 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시온이랑 같이 수하가 내려가. 안개로 변해서. 최대한 열 명을 처리하는 게 관건이지만…….”

헬리는 말을 하다 말고 움찔거렸다. 뒤편에서 자카가 나타나 이쪽으로 걸어왔기 때문이다.

“시장은 확보했어. 확보했는데…….”

말을 제대로 못 하는 걸 보니 뻔했다. 헬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

“3층에서 이미 총격전이 벌어져서 2층에 있던 놈들이 뛰어 올라오거나, 아니면 이쪽으로 내려오고 있어. 내가 제일 먼저 왔어. 아마 3층은 다 제압될 거야.”

“자카, 엔지, 타헬, 나와 함께 후방을 맡아. 여기서 버틸 수 없어. 수하야, 어서 가. 우리는 도망친다 해도 무조건 앞으로 도망쳐야 해.”

당장 시온과 노아, 그리고 수하가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헬리는 마침내 검을 뽑아 들며 아직까지는 조용한 보일러실 출입문을 노려보았다.

인간들이 다 빠져나간 시각, 각각 동쪽과 서쪽으로 넓게 뻗은 시청 건물에 뱀파이어들이 얼마나 득시글댈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프린태니어 시에서 여러 번 전투를 치러내고 온 소년들은 이번에도 이곳에서 살아남고야 말 것이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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