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오토널 습격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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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오토널 습격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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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오토널 습격 (2)
2023.03.21.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프린태니어 시에서 며칠간 레일건을 둘러싼 어마어마한 화재와 폭발은 매우 유명했다.
워낙 조용한 도시라서 그런지, 안 그래도 심심했던 이들이 시 외곽과 레일건에서 차례로 터진 일에 호기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시경은 가스폭발이라는 다소 심심한 이유를 원인으로 지목할 뿐이다.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걸 아는 몇 안 되는 이들 중 하나인 트리샤는 손을 덜덜 떨었다. 햇볕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온몸을 검은색으로 감싼 그녀는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 같았다.
“시신은 시경 검시소에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문제가 생기기 전에 빠르게 빼돌리겠습니다.”
혹시라도 보통 인간과 다른 뱀파이어의 특징이 바깥에 나오면 곤란하다. 검시관을 처치하고 일을 덮는 쪽으로 움직여야 했다.
트리샤는 일단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처참한 광경 앞에서 말을 잇지 못했다.
“어떤……, 어떻게……, 누가……?”
“알아보는 중입니다.”
“아니, 아니야.”
트리샤는 부지런히 싸움의 흔적을 읽었다. 땅을 갈아엎다시피 해서 지워진 흔적이지만, 그래도 급하게 정리된 터라 남아 있는 흔적들이 있었다.
‘이건 정예들의 흔적인데?’
이상하다. 트리샤는 검게 탄 바닥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곳곳에 그녀도 아주 잘 아는 뱀파이어 정예부대의 흔적이 보였다.
‘……그렇다면 더 문제잖아.’
뒷덜미가 싸늘했다. 정예부대까지 투입되었는데 뱀파이어들이 살아 있는 흔적이라곤 조금도 없다고? 도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살아 있는 이가 아무도 없나?”
적어도 그녀의 동생, 트레나만은 살아 있어야 했다. 그녀는 충분히 살아 있을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고, 트리샤는 동생을 아주 잘 알았다. 정예들이 싸그리 전멸한다고 해도 트레나는 어떻게든 악착같이 살아남을 거였다.
쌍둥이 자매는 여태까지 그렇게 다르단의 곁을 지켰고, 그렇게 뱀파이어 세력을 늘려나갔다.
“레일건은?”
“그곳 역시…….”
트리샤는 불에 타서 반쯤 무너진 3층 건물을 노려보다가 돌아섰다.
“여기, 샅샅이 수색해서 뭐가 나오는지 찾아봐. 레일건으로 간다.”
“예.”
잿더미를 뒤적이는데 시간을 쓸 만큼 한가한 사람이 아니었던 트리샤는 빠르게 이동했다. 그리고 똑같은 광경을 또 보았다. 불에 타고, 반파되어버린 오래된 술집 레일건에는 예전의 반짝거리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주변을 다 수색해.”
트레나가, 동생이 죽었다.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기 시작하자 믿고 싶지가 않아졌다.
인간의 수명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긴 시간을 살아온 동생은 어떤 압도적인 힘에 의해 죽었다. 아니, 정말 죽었을까? 죽음에 가까운 치명상을 입고도 살아서 언니의 도움을 기다리는 거 아닐까?
찾아내면 마구 비웃어줄 자신이 있었다. 그게 자매간의 우애가 아니겠는가.
“뭐가 나오든, 하나도 놓치지 말고.”
혹은 시신이라도 수습해주는 게 우애였다.
트리샤는 고개를 떨어트렸다. 잔뜩 젖은 잿더미를 뒤적여봤자 나오는 건 아무것도 없을 거다. 알고 있었다. 트레나는 죽었다.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반복해서 말해야 수년 후에나 겨우 납득할 사실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트리샤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다르단에게 보고해야 하고, 정예부대가 얼마나 차출되어 얼마나 여기에 투입되었는지, 뭐 때문에 그런 건지 다 알아내야 했다.
오토널에서 하던 일을 전부 멈추고 온 트리샤는 망연자실하게 무너진 레일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를 멀리서 작은 카메라가 비추고 있었다.
*
“자, 이쪽이 바로 우리의 새로운 적이야.”
자카가 스크린을 툭 쳤다.
“우와, 똑같이 생겼어.”
또 똑같이 생긴 적이라니. 저번 싸움에서 얻은 부상은 분명히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데도 쑤시는 느낌이다. 나자크는 질색했다. 하긴 어떤 적이 새로 나타난다고 해도 그는 공평하게 또 똑같이 질색하며 짜증을 낼 성격이었다.
“쌍둥이야. 이쪽이 언니. 저번에 죽인 쪽이 동생.”
이런 정보야 헬리가 죽은 트레나의 머릿속을 샅샅이 뒤져 알아낸 것이기 때문에 늑대인간 소년들도 이미 공유받은 바 있었다.
자카는 레일건과 프린태니어 시 외곽, 전투 장소에 심어놨던 소형카메라가 톡톡히 일을 해낸 결과물을 보고 잠시 팔짱을 꼈다.
“레일건 마스터 트레나에 따르자면. 정확하게 그 여자의 머릿속을 들여다본 결과로는, 이쪽의 이름은 트리샤. 우리가 이제 가야 하는 오토널 시의 시청에 있어.”
“바꿔 말하자면 시청은 뱀파이어들이 다 장악했다는 얘기군.”
카밀이 결론을 내리자 자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장은 인간인데, 그 시장을 바로 이 트리샤가 조종하나 봐.”
딱히 놀랍지도 않은 이야기였다. 늑대인간 중에서도 동족을 배신하고 뱀파이어에게 붙은 놈들이 있는데, 인간이라면 더더욱 뱀파이어의 편이 되기 쉬웠다. 적당한 회유와 무시무시한 협박이면 충분하다. 늑대인간 소년들은 실제로 그런 인간들을 꽤 보았다.
“지금 트리샤는 프린태니어 시에 있어. 아예 다 수습을 하고 가려는 모양이야. 반면에 우리는 오토널 시에 근접해 있지.”
“……수습을 다 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
엔지의 중얼거림에 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신 확인하고 옮기려면 적어도 이틀은 걸릴걸? 원래 행정이란 게 느리기 마련이잖아.”
더구나 소년들은 착실하게 불을 낸 뒤 다 탄 걸 확인한 후 경찰을 부르는 것까지 잊지 않아서 사안이 상당히 커진 상태였다.
뱀파이어들은 그 습성대로 적당히 어둠 속에서 살길 원하니, 이 일을 조용히 수습하려면 애 좀 먹을 거다. 아, 물론 당연히 애먹으라고 한 짓이었다.
“그렇지만 반응이 너무 빠른데. 분명히 휴대폰은 우리가 다 확인했잖아. 따로 걸린 전화는 없는데, 어떻게 알고 바로 온 거지?”
가만히 듣고 있던 루슬란이 물었다.
트리샤의 반응속도가 빨라도 너무 빨랐다. 헬리는 그 말에 대답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쌍둥이끼리 유대가 남다르더라고.”
헬리의 기억에 의하면, 그 쌍둥이들은 처음부터 그랬다. 그래서 둘을 한 몸처럼 쓸 수 있어서 재상이 거둬들였다. 저들끼리 으르렁거리는 건 서로의 경쟁심을 자극해서 더 좋은 결과를 끌어올릴 수 있으니 더 이득이라나. 헬리가 보기엔 아군끼리 경쟁하는 건 정말 쓸데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안다는 거야? 그것도 이능력인가?”
“이능력이라기보단 본능인 모양이야. 나도 별로 이해하고 싶지 않아.”
헬리라고 뱀파이어들을 이해하고 싶은 건 결코 아니었다. 그가 고개를 가로젓는 사이, 타헬이 아, 하고 손뼉을 쳤다.
“아, 쌍둥이들끼리는 유대감이 강해서 서로의 죽음을 바로 알아차린다고 그러잖아? 나 티브이에서 봤어.”
“그래, 그런 거.”
“그럼, 뭐 그렇다 치고. 이게 기회이긴 한데, 어쩌지?”
아니, 기회이긴 하나? 칸은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트리샤가 떠난 사이 오토널 시 시청을 급습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건 하필 ‘시청’이라 인간들이 얽힐 가능성도 크고 또 그만큼 위험했다.
하지만 트리샤가 돌아온다면? 돌아오면 돌아오는 대로 골치가 아프다.
“일단 시청부터 살펴보자. 어쨌든 쳐들어가야 하는 거잖아. 저번처럼 오는 걸 기다렸다가 당하는 것보다야 우리가 가는 게 낫지.”
그 말에는 모두가 동의했다. 방어를 하는 건 당분간 사양이었다.
“계속 오토널 시 시청에 뱀파이어들이 얼마나 있는지,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확실하게 확인하고……. 시간은 없지만 최선을 다해봐야지. 총은 어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들에겐 정예 뱀파이어 부대를 털어온 전리품이 있었다. 그 무기들을 분석하면 다음 습격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잘하면 응용해서 우리가 써먹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시간이 더 있었으면 탄환을 마늘이나 은으로 바꿀 수 있었을 텐데, 그럴 정도의 시간은 없어서.”
엔지가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어쨌든 인간이 아니라 늑대인간들을 잡으려고 만들어진 총이잖아. 바꿔 말하자면 그 정도의 근력과 회복력을 가진 존재는 총으로 제압이 가능하다는 거지. 뱀파이어들한테도 상당히 치명적인 무기야.”
“그거야말로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마한이 사납게 웃었다. 증오스러운 뱀파이어들이 휘두르는 무기에 그놈들이 도리어 당하는 꼴을 보는 것만큼 통쾌한 일도 없을 거다.
“총이야 충분히 가져왔으니까 초반에는 상당히 잘 써먹을 수 있어. 사격이야, 뭐……. 여기 있는 사람 중에 사격 못 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거고.”
배우면 웬만한 건 다 평균 이상으로 잘하는 소년들은 특히 전투 감각이 아주 뛰어났다. 그러니 명중률에 대해서는 엔지도 걱정하지 않았다.
“시청을 살펴본 후에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해도 늦지 않아.”
어차피 그때는 뭐가 되었든 간에 결정을 내려야 할 거다. 소년들과 수하에겐 허락된 시간이 별로 없었다.
“헬리. 잠깐 나 좀 보자.”
칸이 헬리에게 고개를 까딱이며 바깥으로 나오라는 몸짓을 했다. 어차피 두 사람은 계속 리더 역할을 해왔으니 따로 이야기할 일들이 많았다.
동생들이 저들끼리 시청을 살필 사람들을 뽑는 걸 보며 헬리가 그를 따라 나갔다.
“뭐, 언제 얘기해줄지는 모르겠지만 네 성격에 언젠간 얘기해줄 거라고 생각하는데.”
뭐가 많이 함축된 갑작스러운 이야기지만 헬리는 용케 알아듣고 웃었다. 수하와 뱀파이어 소년들이 나누었던 이야기를 칸도 어느 정도는 눈치채고 있는 것이다.
하긴 전투할 때 1층에서 트레나가 떠들어대던 걸 들은 늑대인간 소년들은 다 ‘뭔가가 있구나’라고 짐작은 하고 있을 거다. 그저, 모두가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있으니 일부러 캐묻지 않을 뿐이다.
“응. 지금은 좀 말하기가 그래. 네가 짐작하고 있는 게 맞고……, 우리도 사실 다 알지는 못해서 답답한데, 섣불리 이야기했다가 오해할까 봐 말을 조심하고 있어.”
“오해는 무슨……, 옆구리까지 뚫려가면서 싸웠는데 우리가 설마 너희가 그쪽 뱀파이어들이랑 한통속이라고 생각하겠냐?”
칸은 헬리가 뭘 걱정하는지 잘 알았다.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고, 솔직히 우리도 전부 그놈들이 늑대인간들한테 한 짓을 용납할 수가 없어. 우리……, 우리를 키워준 원장선생님한테도 똑같은 짓을 했으니까.”
“그럼 그걸로 우리는 공동의 원수를 가지게 된 거니까 됐어.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지금 이렇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복잡해.”
분명히 이때쯤이면 다음 시즌 나이트볼 리그를 준비하며 땀을 흘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다가 리버필드 시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왔을까?
칸은 잠깐 리버필드 시의 아름다운 나이트볼 구장과 자유로운 선샤인시티스쿨을 떠올렸다. 그러곤 다시 삭막한 오토널 시의 쓸데없이 웅장한 시청 건물을 떠올렸다.
“급습이 낫겠냐?”
듣고 있던 헬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훨씬 낫지. 경찰이 출동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말이야 쉽지, 시청인데…….”
“뱀파이어들의 습성을 알잖아. 분명히 그 뒤에 뱀파이어끼리만 다니는 공간을 만들어놨을 거야. 게다가 하나 더 걸리는 게 있는데.”
“뭔데. 아, 그런 건 좀 회의할 때 재깍재깍 꺼내놔라.”
쟨 무슨 생각이 그렇게 많아? 칸은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래도 저놈은 원래 저런 놈이라고 납득하는 자신을 보면, 아무래도 그도 헬리의 성격에 많이 익숙해진 모양이다. 잘 알아놨다가 나중에 나이트볼로 한 판 붙을 때 잘 써먹어 줘야지.
“그 시청, 지어진 지 꽤 오래된 건물이야. 짐작일 뿐이지만, 아예 기초를 쌓을 때부터 뱀파이어들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어.”
“그럼 지하에 있을 거다?”
“뱀파이어잖아. 햇빛은 싫어하고, 지독하게 창백하지.”
“누가 들으면 너는 아닌 줄 알겠다, 뱀파이어 소년?”
“나는 햇빛을 좋아하고 그리 병적으로 창백하지도 않아, 늑대인간 소년.”
칸은 픽 웃다가 말았다.
“지하라. 까다롭네.”
“그래서 아까 말을 안 했어. 지하로 들어가서 살펴봐야 한다면…….”
헬리는 미간을 찌푸리고 입을 다물었다. 그의 말을 칸이 대신 받았다.
“수하가 가겠다고 하겠지.”
가장 효율적이고 뛰어난 정찰꾼, 안개로 변해서 사방을 소리와 기척, 그리고 아무런 제한 없이 쏘다닐 수 있는 존재. 수하는 기꺼이 자원할 거다.
“저번 싸움 때 상당히 실력이 발전한 거 같던데, 그래도 말릴 거야?”
“웬만하면.”
“‘웬만하면’이 아니라 끝까지 말리겠지. 보통 힘을 가진 게 아닌 것 같던데.”
“그럼 네가 수하더러 가보라고 하지 그랬어?”
지하 이야기가 없어도, 어쨌든 여기 있는 사람 중 정찰을 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바로 수하다.
“나도 말 안 해.”
“거 봐.”
헬리는 심란한 얼굴을 하며 팔짱을 꼈다.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나랑 수하가 같이 가는 게 낫겠어.”
칸은 놀랍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픽 웃었다.
“그래, 네가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짜증 나.”
“뭐가?”
“네가 그런 말을 할 줄 알았다는 게 짜증 난다고. 이 재수 없는 뱀파이어야.”
예전에도 들었던 욕이지만 헬리는 픽 웃었다. 그 욕에 전우애와 우정이란 게 듬뿍 담겼다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이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