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오토널 습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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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오토널 습격 (1)
2023.03.14.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레일건 마스터 트레나의 쌍둥이인 트리샤는, 여러모로 동생과 달랐다.
외모는 쌍둥이라서 아주 똑같았지만, 머리 모양이나 즐겨 입는 옷차림, 그리고 즐기는 술 종류부터 선호하는 분위기와 취향까지 모든 게 다 달랐다.
때로는 대립하기도 했고, 유능한 자매답게 서로 경쟁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두 사람은 한배에서 태어나고 같은 피를 나눈 가족이다. 피가 터지게 싸우는 만큼 서로를 사랑하고 아꼈다. 남들이 보기엔 징그럽게 끈끈한 우애였다.
그래서 트레나와 똑같으나 아주 깐깐하고, 화통한 구석이라곤 조금도 없는 행정관료에 가까운 트리샤는 불길한 느낌을 받자마자 그 즉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레일건에 전화를 수십 번 걸었으나 받지 않는다면, 직접 가서 왜 받지 않았는지 확인하면 된다. 아니, 사실 트리샤는 예감하고 있었다.
“트레나가 죽었어.”
“예에?”
그녀를 수행하던 뱀파이어는 그게 말이나 되냐는 표정을 지었지만 트리샤는 그냥 알았다.
그녀의 쾌활하고 대책 없으며 혼돈 그 자체인 아름다운 자매가 죽었다. 몸 한구석이 잘려나간 이 느낌은 아주 분명하게 그 사실을 알려왔다.
선팅을 짙게 한 검은 차는 햇볕을 가르며 나아갔다. 혹시 뱀파이어인 그녀가 햇볕에 다칠까 봐 안쪽 창문에도 가림막을 꼼꼼하게 걸어둔 참이었다. 트리샤는 낮에 움직이는 무모한 짓을 할 정도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트레나가 죽었다고.”
트레나를 죽일 수 있는 건 이 세상에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가 죽는다면 길고 긴 수명이 마침내 다해서 시간이 그녀를 죽였거나, 혹은 삶이 너무 재미가 없어져서 트레나 자신이 죽음을 선택했든가, 또는 자매의 강대한 주군인 다르단이 그 목숨을 거두기로 결정했다는 뜻이었다.
그 세 가지 외에는 없었다. 첫 번째는 불사인 뱀파이어에게 불가능했고, 두 번째는 트레나의 성격상 상상할 수 없었다. 세 번째는 다르단께서 지금 그런 결정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트리샤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어째서, 어떻게 동생이 죽었는가.
“저, 트리샤 님. 너무 미리 걱정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일 아닙니까.”
“확인되지 않았다는 게 문제인 거야. 프린태니어가 언제부터 이렇게 조용했지?”
프린태니어에서 대답이 재깍 날아오지 않았던 날은 없었다.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걸 알고 있던 뱀파이어는 입을 얌전히 다물었다.
트리샤는 까탈스럽고 피곤한 상사였지만, 신경이 날카롭다 해서 부하들을 쪼아댄 적은 없었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까지 예민하게 군다면 웬만하면 입을 다물고 몸을 사리고 있는 편이 나았다.
자동차는 국경을 넘어 아주 빠르게 프린태니어 시까지 질주했다.
“더 빨리 가.”
프린태니어 시는 가까운 곳에 있어서 자동차로 반나절이면 얼마든지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거리였지만 트리샤는 성에 차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당장’ 레일건 앞에 서 있길 원했다. 자동차는 그녀의 주문대로 더 속도를 높여 날아갔다.
*
“하지 마.”
수하는 그녀를 향한 각양각색의 눈동자 일곱 쌍을 보며 일단 경고부터 했다.
“오.”
장난기가 가득한 지노가 입술을 동그랗게 오므렸다.
“너어는 특히 하지 마.”
수하는 눈을 부릅떴다.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저는 결백해요. 억울해라. 지노는 자신은 결백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때 가만히 있던 노아가 끼어들었다.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 너 공주면…….”
“아악!”
결국 수하는 귀를 막으며 진저리를 쳤고, 헬리는 하하 웃으면서 노아의 입을 틀어막았다.
“수하가 민망하다잖아.”
“아니, 사실이잖아, 읍.”
공주님이라서 공주님을 공주님이라 했던 것인데 공주님을 공주님이라 부르지 않는다면 뭐라 할까요? 노아는 정말이지 억울했다.
“어으, 진짜 미쳤어.”
하지만 어깨를 움츠린 수하는 소름이 돋은 팔뚝을 문지르며 부르르 떠는 중이었다.
저렇게 싫나? 솔론은 픽 웃으며 한가하게 몸을 등받이 의자에 기댔다.
그들은 지금 막, 헬리와 몹시 민망해하는 수하로부터 수하 역시 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참이었다.
“그렇게 싫냐?”
“좀 이상하단 말야!”
처음에 꿈을 꿨을 때는 베개를 실컷 두드려 패서 결국 사망 선고를 내린 전적이 있는 수하는 진심으로 질색했다.
“너네야말로 민망하고 이상하지도 않아? 어?”
드셀리스 아카데미 왕자님들이란 말을 하도 듣고 살아서 그런가, 뱀파이어 소년들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태평한 표정들이었다. 수하는 너무 부끄럽고 민망한데 말이다.
“뭐……, 차라리 잘됐다 싶은데.”
솔론은 무심히 중얼거렸다. 아니, 저건 무심한 게 아니다. 함께 싸우고, 나누는 시간이 많다 보니 솔론이 저 정도면 꽤나 즐거운 거라는 것도 알게 됐다.
“하나도 안 보이고 뭔지도 모르던 때보다는 훨씬 명확해지고 깨끗해졌잖아. 안 그래?”
아, 명백한 정답이었다. 민망한 건 차치하고, 눈앞이 환하게 트이는 기분이긴 했다.
“수하 네가 뱀파이어가 아닌데도 이능력을 가지고 있는 이유도 설명이 되잖아.”
그녀를 오랫동안 가장 고민하고 힘들게 만들었던 힘도 이젠 왜 가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묵직하던 마음에서 뭔가가 굴러떨어지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결 가뿐했다.
“근데 그러면, 가만 있어 봐. 수하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이안이 턱을 문지르며 심각하게 물었다.
“너 그럼, 혹시 우리와 다른 꿈을 더 봤을까 봐 묻는 건데. 또 다른 뱀파이어들을 봤어? 그러니까, 저번에 본 레일건 마스터나, 그 재상이나…….”
“아냐. 쌍둥이랑 재상이 다야.”
이안은 수하가 고개를 흔들며 대답하자 안도의 한숨인지 뭔지 모를 것을 내쉬었다.
“그래, 그럼 일단 다행이네. 일단은 우리가 상대해야 할 굵직한 적 중의 하나는 처리를 한 거잖아.”
“그렇게 따지자면 남은 건 레일건 마스터의 쌍둥이랑 재상인가?”
자카가 하나하나 손가락을 꼽았다.
딱 둘. 하지만 둘에게 딸린 뱀파이어들의 숫자는 어마어마하겠지. 생각만 해도 막막하다.
“거기에 뭐가 더 없길 바라야지.”
헬리가 딱딱하게 대답하다가, 멍하니 쿠션을 끌어안고 있는 시온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시온?”
“아, 어?”
“왜 그래? 어디 안 좋아?”
최근 싸움에서 가장 큰 부상을 입었던 시온은 혈액팩 몇 개를 연거푸 들이켠 후에 경이로운 회복력을 보이고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걱정과 관심을 가득 받고 있었다.
당장 헬리의 질문에 수하를 포함한 일곱 쌍의 눈이 그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들어가서 쉴래?”
“아니, 아니야.”
시온은 그런 게 아니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난 괜찮아. 그냥…….”
그는 쿠션에 턱을 꾹 눌렀다.
“원장선생님이 보육원에서 결국……, 돌아가셨구나, 싶어서.”
아마 돌아가셨을 거라고 막연히 추측하던 것과 확인사살을 당하는 건 차원이 다르다.
그것도 원장선생님을, 그들에겐 부모나 다름없는 스승을, 죽인 사람 입으로 확인받는 건 정말 끔찍했다.
헬리가 트레나의 머릿속을 뒤진 뒤 사실이라고 한 번 더 못을 박았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건 사실이다. 원장선생님은 그들을 지키다 돌아가셨다.
“난 이번에 꿈에서 선생님을 봐서, 조금 기대했나 봐.”
이번에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레일건 마스터도 봤고, 재상도 봤으니 원장선생님도 어디엔가 살아 계시지 않을까? 사실은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헛된 희망을 품었다.
지노가 시온의 숱 많은 금발 머리카락을 툭툭 쓰다듬어주었다.
“다 끝나면 보육원으로 돌아가서 우리가 제대로 묻어드리자. 대충 손 보고 오긴 했는데, 그래도 가서 할 일이 많아.”
시온은 쿠션에 아예 얼굴을 묻고 고개를 끄덕였다.
묵직해진 분위기에 수하는 바닥에 앉아서 가만히 생각했다.
그녀 역시 마지, 혹은 원장선생님이 죽었다는 게 몹시 애석했다. 꿈에서는 그녀가 아주 의지하는 스승이기도 했고, 현명한 존재였으며, 동시에…….
“그 무서운 뱀파이어들을 제외하면 꿈이랑 지금이랑 이어지는 존재인데.”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리던 수하는 무심코 고개를 들다가 화들짝 놀랐다.
“아, 깜짝이야……!”
시온을 도닥여주는 줄 알았던 소년들이 죄다 그녀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또 왜?”
“아니, 방금 한 말. 누굴 얘기하는 거야?”
이안의 질문에 수하는 눈동자를 도로록 굴렸다.
“어, 그러니까…….”
“원장선생님?”
알면 뭐하러 물어보냐. 이안이 물어봐 놓고 대답까지 하자 수하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렇지, 맞아……. 솔직히 원장선생님은 다 알고 계시는 눈치였는데.”
이안은 수하의 결론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쌍둥이와 다르단을 제외하면 원장선생님이 꿈과 현실을 잇는 유일한 아군이었다. 돌아가셨으니 물어보고 싶은 건 많아도 못 물어본다는 게 문제지만.
“도대체 그 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어.”
왜 그들은 다시 아이들로 돌아가서 과거인지 혹은 꿈인지를 깡그리 잊고 보육원에서 지냈던 건지, 그럼 공주였던 수하는 어떻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왜 수하와는 떨어져 있어야 했던 거지?
이안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머리가 터질 것 같아서, 그냥 관둬버렸다. 지금 끙끙대봤자 더 알아낼 수 있는 건 이게 전부였다.
여기 있는 여덟 명은 생각보다 훨씬 깊게 연결되어 있고, 같은 과거를, 그래, 아마 과거를 공유하고 있다.
그리고 공동의 적을 반드시 꺾어야만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그들이 죽는다.
“……그러니까 우리는 피할 수가 없는 거야.”
솔론은 씁쓸하게 웃었다. 죽음을 피하기 위해, 혹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계속해서 전진, 오직 전진뿐이다.
“그래도 한 명 늘어서 다행이네.”
진심으로 그들의 비밀을 공유할 사람이 늘어서 기뻤다. 솔론은 괜히 턱을 긁적거리다가 말했다.
“어쨌든 환영한다고 해야 하나.”
“그럼 뭐 여태까지는 환영한 게 아니었단 말이야?”
그런 거였어? 수하가 ‘이놈 봐라’ 하는 표정을 지었다.
“여태까지는 어쩌다 알게 되어서 합류한 ‘좋은’ 친구고, 지금부터는 뭐, 공주님이냐?”
수하는 이젠 비명을 지르는 대신 시온이 안고 있던 쿠션을 빼앗아다 솔론에게 냅다 던졌다.
“와, 얘 이젠 사람을 막 때려.”
“진짜 때리는 게 뭔지 알고 싶어?”
“아닙니다. 잘못했습니다.”
야무진 주먹이 쓱 내밀어지자 솔론은 웃어버렸다.
과거에 점점 가까이 가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 그런 거구나. 우리는 연결되어 있었던 거구나. 알게 되니 훨씬 마음이 홀가분했다.
아마 솔론만 그런 게 아닐 거다. 소년들은 이 와중에도 전부 표정이 밝았다.
“근데, 선샤인 애들은 뭐 해?”
“총을 분해해보고 있어. 나도 좀 가보려고.”
시온이 바깥을 보며 묻자 자카가 자리에서 슥 일어나며 대답했다.
뱀파이어들에게서 탈취한 총은 보통 물건이 아닌 게 확실했다. 앞으로도 수도 없이 마주할 총인데 분해라도 해서 어딜 어떻게 강화한 건지 알아내야 했다. 다음 전투를 하나하나 착실히 준비해야 했다.
수하는 입술을 말고 가만히 생각하며 숨을 한 번 크게 내쉬었다.
“오토널에는 쌍둥이가 있는 거지?”
“모르지. 분명히 레일건 마스터가 어떻게 된 건지 지금쯤이면 알았을 텐데, 프린태니어 시에 갔을지도.”
지노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 쌍둥이들은 좀……, 소름 끼치는 구석이 있었잖아. 지들끼리 연결되어 있다고 해야 하나?”
지노의 말에 당장 노아가 질색했다.
“으, 걔넨 늘 세트로 다녔어. 둘이 붙어 있으면, 와, 그걸 어떻게 잡냐.”
“다행인 건 우리가 하나를 이미 잡았다는 거지.”
팔짱을 끼고 있던 헬리가 중얼거렸다.
“그렇지. 둘을 한꺼번에 잡는 건 불가능한데 진짜……, 하나라도 잡은 게 어디야?”
말을 하던 시온은 옆구리가 쑤셔오는 기분에 미간을 찌푸렸다.
“근데 우리, 이걸 어떻게 다 알고 있지?”
꿈에서 쌍둥이 자매가 싸우는 방식이나 성격을 구체적으로 본 것도 아닌데, 그냥 알았다.
“하나를 기억하면 계속 떠오르기 시작하는 거겠지, 뭐. 난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을란다. 이미 겪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복잡해.”
이안이 중얼거리며 바깥을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늑대인간 소년들이 총을 분해하고 있는 쪽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문제는 이걸 쟤네한테 어떻게 설명하냐는 건데……. 중요한 정보이니 공유를 안 할 수도 없고.”
수하는 자신의 존엄성 문제와 정보, 그리고 늑대인간 소년들에 대해 생각하다가 그냥 포기했다. 공주니 어쩌니 하는 얘기를 다 알게 된다 해도 이젠 뭐 어쩔 수가 없었다.
그때 자카가 움찔거리며 고개를 홱 돌렸다.
“어, 왔다.”
“뭐가?”
자카는 대답하는 대신 창문을 열고 아래에 있던 늑대인간 소년들에게 소리쳤다.
“신호가 잡혔어!”
순식간에 늑대인간 소년들이 뛰어 올라왔다. 갑자기 넓은 거실이 소년들로 꽉 찼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엔지가 물으며 빠르게 거실 한쪽에 있던 모니터 앞에 앉았다.
“아……. 왔네.”
모니터에는 그들이 레일건 마스터와 싸웠던 폐허가 보였다. 그 폐허 앞에 선 여자도 보였다.
“레일건 마스터잖아?”
타헬이 기겁을 하며 외쳤다.
“아니야. 쌍둥이야.”
헬리는 고개를 저으며 정정했다. 지노가 완전히 불태워버린 곳에 혹시 몰라 카메라를 심어놓고 왔는데 역시나. 뱀파이어들이 그곳에 왔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