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7. 꿈 (13) (57/81)


57. 꿈 (13)
2023.02.06.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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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일건 마스터가 크게 당한 게 위기라는 걸 모를 뱀파이어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제대로 훈련받은 뱀파이어들로,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당장 트레나를 구출해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헬리에게 어마어마한 공격이 퍼부어졌지만, 그걸 가만히 내버려둘 소년들이 아니었다.

“윽…….”

트레나는 어떻게든 검을 빼내려고 애썼지만, 헬리는 그녀의 어깨를 발로 밟아 바닥에 쓰러트려버렸다.

마스터는 내가 붙잡았어. 계속 붙잡고 있을 테니 나머지를 해결해줘.

소년들에게 전달된 목소리는 희망이었다. 이 긴 밤이 어쩌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일찍 끝날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

당장 뱀파이어 소년들의 표정들부터 밝아졌다.

수하야.

더 신이 나서 똑같이 날뛰어보려던 수하가 멈칫거렸다. 헬리는 안개가 되어 여기저기 쏘다니고 있는 그녀를 정확하게 보고 있었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무 멀리 가지 마.

멀리 안 갔는데?

거기도 멀어. 더 가까이 와.

그닥 멀지 않은 것 같고, 이 정도 거리야 안개가 되면 금방 날아갈 수 있는 거리인데. 그녀는 잠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헬리를 공격하려는 뱀파이어들을 주먹으로 날려버리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헬리는 그 모습을 보곤 한숨을 작게 쉬었다.

되도록 내 손이 닿는 곳에 있었으면 좋겠어. 여긴 몹시 위험해.

그건 맞는 말이었다. 게다가 헬리는 수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전투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다. 그러니 아직까지 미숙한 수하는 그의 말을 얌전히 잘 듣는 편이 좋다는 걸 알았다.

도움이 되고 싶은 욕심은 굴뚝같았지만, 이런 때 방심하면 큰 화로 돌아온다. 그녀는 몸을 날려 뱀파이어들을 공격하는 칸을 한 번 본 뒤 헬리의 곁으로 바짝 붙었다.

자꾸 널 공격하려는 뱀파이어들이 눈에 띄어.

알아. 그러다가 나랑 멀어지지.

그런 놈들을 처리하려고 가다 보면 거리가 벌어지는 건 순식간이다. 헬리는 고개를 끄덕인 뒤 검을 잡은 손에 더 힘을 주었다.

“큭…….”

급기야 트레나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허우적거리며 헬리를 걷어차려고 했다. 어떻게든 이 귀찮고 성가신 놈을 떼어내는 게 1순위다.

‘그다음에 저 계집애를 인질로 잡고…….’

하지만 트레나의 말은 거기에서 툭 끊어졌다. 헬리가 이번엔 관통당한 그녀의 허벅지 상처를 짓밟았기 때문이다.

“아아악!”

“계집애가 아니라 공주님.”

어디서 감히 누굴 비하하고 있어. 헬리는 차갑게 분노하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응?”

“뭐?”

이쪽으로 오는 적들을 상대하던 수하와 마한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뭐라고?

신경 쓸 거 없어. 집중해.

그들에게 그렇게 의사를 전달한 헬리는 검을 쑥 뺀 뒤 수하와 마한이 미처 막지 못한 뱀파이어의 목을 꿰뚫었다. 그러곤 다시 트레나의 다른 어깨를 찍어 눌렀다.

이 모든 동작이 채 5초도 지나지 않아 이루어졌다. 트레나는 어마어마한 비명을 이를 꽉 깨물고 참았다.

‘날 죽일 생각이 없군.’

“없지.”

이젠 그녀의 속내를 낱낱이 읽어 내리기까지 한다. 생각이 훤히 들여다보이다니, 차라리 벌거벗은 채로 서는 게 더 나을 지경이었다. 그만큼 불쾌했다.

“그러면서도 부러워했잖아.”

헬리의 목소리는 이 시끄러운 굉음과 폭발음이 지속되는 곳에서도 조용히 트레나의 고막에 하나하나 내리꽂혔다.

이마저도 이능력인 건지, 아니면 의식이 어떻게 되어버린 건지 트레나는 더 이상 알 수 없었다.

“질투하고, 가지고 싶어 하고.”

언제나 차분하고 단정하던 헬리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욕심이 사나워서 결국 손대면 안 될 것까지 바랐지.”

그가 모든 걸 다 기억하게 된 건 아니다. 그저 이렇게 짐작하고 있는 것만 던져도 트레나의 무의식은 그때 기억을 조금씩 떠올렸다. 그러면 그걸 샅샅이 읽으며 짐작한 것이 맞았다는 확신만 가지게 될 뿐이었다.

‘손대면 안 될, 우리 다르단 님께 그런 게 어디 있어!’

트레나는 키아악,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반격하려 했지만, 복부의 상처가 너무나 욱신거리고 아파서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 그래. 재상이 그런 이름이었나.”

헬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조용히 현실을 그녀에게 들이댔다.

“너는 끝났어.”

그랬을 리가 없다. 끝났을 리가 없다. 트레나는 이렇게 크게 다쳐본 적이 너무 오랜만이라 자신이 감을 잡고 있지 못한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야, 내가……, 다르단, 태조께서 직접 챙겨주신 정예에, 그분의 피까지 마셨는데……!’

“아.”

이거 확실히 레일건 마스터는 드리프터들과는 급이 다르구나.

헬리는 바로 밀려드는 어마어마한 정보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리 새롭거나 신선해서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어쩐지 놀랍지도 않고, 이미 알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혹은 예상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소년들과는 달리 적으로 마주하는 뱀파이어들은 그렇게 피에 집착했으니까.

“그리 효과가 없었나 봐.”

이젠 뱀파이어들의 비명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아니, 효과가 있으니까 그나마 숨통이 붙어 있는 건가.”

어느 쪽이든. 헬리는 또다시 이쪽으로 손을 뻗는 뱀파이어를 검으로 막아냈다.

“뭐 좀 알아냈냐?”

그 뱀파이어를 앞발로 짓밟은 칸이 휙 고개를 돌려 물었다.

“알아내는 중이야.”

칸은 그 말에 대답하려다가 그에게 송곳니를 들이밀려는 뱀파이어를 걷어찼다.

“아, 진짜, 이놈들 끝이 없어.”

“끝이 있어.”

뱀파이어들이 대단한 기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물량과 자원도 풍부했지만, 무엇보다 경험이 많은 트레나의 지휘력과 공격능력 때문이었다.

확실히 그녀는 다른 뱀파이어들과도 차원이 달랐다. 하지만 안타깝고 매우 유감스럽게도 트레나는 심각한 부상을 세 군데나 입고 헬리의 검 아래에서 옴짝달싹도 못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2층 상황이 어떻겠는가.

“어라.”

2층에서 싸우던 자카가 불쑥 1층에 나타났다. 그것도 수하의 곁에 휙 나타나서 그녀가 걷어차버린 뱀파이어의 목뼈를 부러트렸다.

“우와.”

하지만 여전히 이 뱀파이어들은 죽이기가 힘들다. 이능력을 이용해 엄청난 속도로 뼈를 부러트리지 않고서야, 평소처럼 맨손으로는 몹시 힘들었다. 자카는 혀를 내두르며 손을 한 번 움직여본 뒤 1층을 둘러보았다. 그건 그렇고, 어쨌든 말이다.

“수하 너는 다친 데 없지?”

“난 멀쩡해!”

“그래. 너만 괜찮으면 됐어.”

뭔 소리야, 시온이 그렇게 심하게 부상을 입었는데! 수하가 고개를 들었지만 자카는 이미 그답게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어떻게든 트레나를 구하려고 하는 뱀파이어들을 막는 데 다시 집중했다.

그사이, 위층으로 올라온 자카는 그 와중에도 힘겹게 애쓰고 있는 지노를 도우며 주변을 다시 살폈다.

2층은……, 이제 슬슬 정리하고 내려가도 될 것 같아, 형.

그의 말에 당장 헬리가 반색했다.

그래? 그럴 수 있겠어?

지금 이놈들, 죄다 1층으로 몰려서 2층으로 올라오는 시도를 할 새도 없어.

그럴 바에는 차라리 바로 1층으로 가서 트레나를 어떻게든 구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저들 사이에 퍼진 게 분명했다.

하긴 무전기까지 들고 왔는데 당연하겠지. 여유가 있었다면 무전기도 탈취해서 어떤 통신이 오고 가는지 엿들었을 텐데, 프린태니어 시에 오고부터는 여유라곤 조금도 없었다.

그는 지노가 식은땀을 흘리며 버티는 걸 확인했다. 어찌어찌 내려가야 할 것 같은데.

“다 계단으로 몰아!”

마침 계단 근처에 있던 루슬란이 외쳤다. 옳은 말이다. 솔론이 뱀파이어를 계단으로 내던지며 달려갔다. 경쾌하게 펑펑 터지는 이안의 완력도 제대로 박자를 맞췄다.

“다치지는 말고! 조심히!”

대충 지혈이 끝났는지 타헬이 흥분한 형들에게 한마디 하더니, 몸을 일으켜 시온을 부축했다. 순식간에 자카가 반대쪽에서 시온을 붙들었다. 그는 슬쩍 타헬의 눈을 피해 시온의 주머니에 혈액팩을 쑤셔 넣던 참이었다. 자카의 손놀림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되는 대로 얼른 마셔.”

최대한 작게 속삭인 자카가 타헬에게 물었다.

“다 끝났어?”

“피는 멈췄어. 걸을 수 있겠어?”

타헬의 질문에 시온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고마워.”

“뭘, 별 걸 다…….”

살다 살다 꼴같잖던 드셀리스 주전에게 고맙다는 소리도 다 들어보고, 타헬은 역시 앞일은 모르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도 좀 더 1층으로 내려갈 수 있을까?”

안 될 게 뭐 있겠냐만, 괜찮을까?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타헬은 열심히 시온을 부축해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흐트러진 금발 아래 안색은 창백했으나 시온은 정확하게 앞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할 수 있었다.

“형, 어떻게 하려고?”

“……나도 말도 안 된다는 거 아는데.”

걱정 가득한 자카의 질문에 시온이 식은땀을 흘리며 웃었다.

“서 있기만 해도 싸울 수 있어.”

그리고 자카와 타헬이 서로를 보며 의아해하기도 전에 시온은 그 말을 직접 증명해 보였다.

약간 떨어진 곳에서 루슬란과 싸우고 있던 뱀파이어 하나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시온을 보았다. ‘보았으니’ 끝이었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시온은 노란 눈을 빛내며 뱀파이어를 사로잡았다.

“뭐, 뭐야?”

놀란 루슬란이 이쪽을 바라보았다. 뱀파이어는 굳어버린 듯 꼼짝도 하지 못했다. 마치 무언가에 붙들린 듯, 루슬란을 공격하려던 손마저 천천히 내려놓았다.

루슬란은 시온을 한 번 힐끗 본 뒤 완전히 공격 의지를 잃은 뱀파이어를 다시 공격했다. 반항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목숨 하나가 거둬졌다.

“……가자. 내려가자.”

당장 내려가자. 타헬이 눈을 빛내며 시온을 데리고 앞으로 더 나아가기 시작했다.

“어, 형? 괜찮겠어?”

뺨에 난 긁힌 상처를 쓱 문지르며 바쁘게 그림자들을 몰고 다니던 노아가 시온을 바라보았다.

“괜찮아.”

“맞아, 괜찮아! 가자!”

이건 된다는 생각에 눈이 반짝반짝한 타헬이 크게 대답했다.

“……내가 뒤를 정리할게. 내려가.”

어느새 혼자 단단하게 선 노아는 형을 한 번 보다가 먼저 가라고 손짓했다.

타헬과 자카가 시온과 함께 내려간다면 그 뒤는 노아가 책임질 거다. 이안도 슬쩍 내려다보다가 이쪽으로 점점 뱀파이어들을 몰아가기 시작했다.

엔지가 이안이 미처 쓸어내지 못한 뱀파이어를 상대하면서 점점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2층으로 밀려났던 소년들이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승기가 이쪽으로 기운 것이다.

“마스터부터 구해서……!”

“불가능합니다!”

카밀은 저거 참 듣기 좋은 소리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불가능하고 힘든 건 소년들이었는데, 저 뱀파이어들이 어쩔 줄을 모르면서 우왕좌왕하다니 이거만큼 신나는 일도 없었다. 몸이 좀 쑤시고 아픈 곳이 있었지만 괜찮다. 곧 회복할 것이다.

“내려온다, 저놈들 가만두지 마라!”

탕탕탕, 일단 늑대인간들을 붙잡기 위해 총알이 사정없이 날아왔다. 당장 시온의 눈이 그쪽으로 향했다. 자카가 총알을 걷어내고, 시온과 눈이 마주쳐 꼼짝도 하지 못하는 놈을 마한과 루슬란이 물어 뜯어댔다.

“저놈과 눈을 마주치지 마!”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은 뱀파이어 하나가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사실 보지 말라고 하면 더 시선이 가기 마련이다. 반사적으로 모아지는 시선을 시온이 하나하나 다 붙잡을 때마다 늑대인간 소년들이 날뛰었다.

그들이 쉽게 죽지 않는 뱀파이어들과 싸우는 사이 시온이 또 붙잡은 시선은 등 뒤에서 날아온 화염과 그림자가 대신 처리했다.

트레나는 이 멍청이들이 뭐하는 짓이냐고 악을 쓰고 싶었다. 동시에, 제일 멍청한 건 자신인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자괴감에 빠졌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간신히 숨만 쉬며 바닥을 기며 바르작거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어쩌다가?

“글쎄, 그건 모르겠고.”

헬리는 점점 그의 검이 처리하는 뱀파이어보다 위에서 내려온 동생들과 늑대인간 소년들이 처리하는 뱀파이어 숫자가 더 많아졌기에 훨씬 여유가 생겼다. 더구나 그의 곁에는 가까이에 바짝 붙여둔 수하가 종횡무진하고 있었다.

“사실 이제 와서 따져봤자 의미도 없어.”

그는 한가하게 말하며 수하와 시온을 눈으로 좇았다.

“그러니까 좀 더 생산적인 쪽을 생각해봐.”

시온이 트레나를 붙들어둔다면 얼마든지 그녀의 의식을 비집고 열어서 뱀파이어 소년들이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기억을 끄집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헬리는 완전히 꺼져서 쓰러진 조명 조각을 발로 쓱쓱 모아 치웠다.

겉으로 보기엔 아주 평온해 보였으나, 트레나의 생각을 꿰뚫고 있는 이상 그녀가 손가락이라도 잘못 까딱거렸다간 헬리는 곧장 사정없이 검을 내려찍을 예정이었다. 트레나 역시 극도로 긴장한 상태로 그를 노려보았다.

‘죽을 순 없어.’

누구나 다 바라고, 누구에게나 당연히 있는 생존본능에 헬리는 평온하게 웃었다.

“좋은 생각이야.”

죽지는 말아야지. 그래야 속을 다 읽어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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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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