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3. 꿈 (9) (53/81)


53. 꿈 (9)
2023.01.10.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건물 바깥에는 마늘 냄새가 매캐하게 났다. 물론 정예 뱀파이어 부대는 드리프터만큼 마늘에 치명적으로 약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방해가 되는 건 사실이다.

거기다 트레나의 수하들에게 치명타였던 은침 폭탄까지 터졌다. 폭발하면서 사방으로 퍼지는 은침에 뱀파이어들이 애를 먹고 있었다.

“저것들, 무슨 방탄조끼라도 입었나 봐.”

엔지가 창가에서 바깥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솔론이 뱀파이어 하나의 얼굴을 앞발로 후려치다 말고 물었다.

“잘 안 먹혀?”

“응. 저번만큼은 아니야. 특수장비를 두르고 왔다 했더니 저 옷도 보통 옷이 아니야. 무슨 특수부대 옷 같잖아.”

엔지는 영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툴툴거렸다.

“하긴 한 번 당했는데 또 당하면 바보들이긴 하지.”

뱀파이어들이 바보들일 리가 없었다. 그랬으면 엔지의 일족도 그렇게 쉽게 뱀파이어들에게 당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는 몹시 울적해했다.

“이 폭탄 진짜 비싼 건데.”

“우리 헬리 형한테 나중에 청구해.”

“그냥 그렇다는 거지 우리가 돈이 없다는 건 아니야.”

“그래, 알아.”

쟨 영 싱거워. 엔지는 무심하게 대꾸하는 솔론을 한 번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물론 이미 그의 발아래에는 은침이 얼굴에 빼곡하게 박힌 뱀파이어가 쓰러져 있었다. 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의외로 솔론과 같이 싸우는 건 꽤 편했다.

‘같은 늑대라서 그러나……?’

생각을 하던 엔지는 흠칫 놀랐다. 같은 늑대라니, 뱀파이어 냄새를 풍기는 늑대가 어디 있어? 아니, 그래도 늑대는 맞잖아. 맞긴 맞는데……, 가까운 느낌도 확실히 드는데…….

“뭐 하냐?”

“은침 회수하잖아. 이거 뿌리면서 내려가려고.”

“너 참 알뜰하다.”

솔론은 그렇게 말하면서 은침을 함께 주워주었다.

“만지면 안 아파?”

“안 아프니까 줍고 있지.”

“너희랑 저놈들이랑 다른 게 뭘까?”

솔론의 오드아이가 무슨 소리냐는 듯 엔지를 휙 쳐다보았다.

“말 그대로 다른 게 뭐냐고. 차이점이 뭐길래 이런 일들이 일어난 걸까?”

“넌 이 와중에 그런 게 궁금하냐?”

“궁금하지.”

솔론은 줍고 있던 은침을 엔지에게 넘기는 대신 뒤로 휙 돌며 뿌렸다.

“크악!”

슬슬 접근하고 있던 뱀파이어들이 비명을 지르며 총을 쐈다. 하지만 얼굴에 은침을 맞은 지라 총은 엉뚱한 바닥만 푹푹 패이게 만들었다.

솔론과 엔지는 곧바로 도약해서 뱀파이어들에게 달려들었다. 조명에 길게 비친 그림자가 순식간에 늑대로 바뀌어 뱀파이어들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아드득, 아드득, 뼈가 갈리고 근육이 터지는 소리가 나는 이곳이 바로 지옥인지도 모른다.

‘……헬리 형에게서 말이 없어.’

솔론은 턱을 닦으며 다음 적을 상대했다. 말이 없다는 건 그럴 틈이 없다는 얘기겠지. 그래서 상황이 좋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고.

“엔지, 얼른 해결하고 우리도 내려가자.”

“지금 그러고 있잖아!”

“까먹고 있을까 봐.”

“너 좀 짜증 난다.”

뭘 새삼스럽게. 솔론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다음 뱀파이어를 후려쳤다. 엄청난 근육이 움직이면서 강한 힘을 실어 날린 팔은 쇠몽둥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대로 벽에 처박힌 뱀파이어도 만만치 않았다. 드리프터였다면 벌써 짜부라졌겠지만, 그가 상대하는 뱀파이어는 벽에 부딪치자마자 몸을 굴려 다시 일어났다.

‘아.’

솔론은 아래에 무수히 켜진 조명 때문에 거의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하늘을 힐끗 쳐다보았다. 밤이 어디까지 지나왔을까. 해가 지기 시작할 때 이 싸움도 시작했으니, 해가 뜰 때를 기다려야 하는데.

치직, 어디선가 무전 소리가 들리고, 적들은 무섭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여기에서도 이러는 걸 보면 아래층이야 알만하다. 솔론은 수하와 헬리가 내려간 계단을 등지고 섰다.

*

시온이 당장 바닥에 손을 짚었지만, 그전에 트레나가 그 손을 향해 총구를 들이밀었다.

“어딜.”

시온은 능력을 사용해 벽으로 붙으며 일단 피했다.

“애들이 총 무서운 걸 몰라. 뉴스도 안 봤어?”

일단 사람이 총구를 들이댔으면 피하든가 행동을 멈춰야 할 거 아냐. 트레나는 투덜대면서도 총을 조금 멀찍이 떨어트려 잡았다.

그녀도 이런 무기를 딱히 좋아하지는 않았다. 이건 엄연히 인간의 무기고, 뱀파이어의 무기는 따로 있으니까.

물론 이 총은 인간의 무기를 기반으로 뱀파이어의 근력에 맞춰 늑대인간용으로 개조된 역작이었다. 보통 사람이 쏘았다간 반동에 뼈가 부서질 정도로 훨씬 더 무시무시하고, 늑대인간들에게 치명적인 탄환이 따로 개발되어 장착됐다. 굳이 늑대인간들이 아니어도 뱀파이어 역시 맞으면 큰 부상을 입을 정도로 무서운 탄환이다.

하지만 트레나는 특별히 손맛을 즐겼다. 맨손으로 잡아 뜯어 입안으로 밀어 넣은 살을 꽉 깨물면, 그 안에 꽉 차 있는 향긋한 피가 가득 흘러나온다. 탄환 같은 쇠붙이가 들어가는 순간 어쩐지 비린 맛이 나는 느낌이라 그녀는 총도 싫어했다.

“움직이지 마.”

트레나는 총구를 당장 노아의 이마에 들이댔다. 그녀는 이 어린 아이들을 잘 안다. 그녀보다 어리고, 풋내나고, 경험도 부족한데 감히 그녀보다 높은 자리에 턱 앉았다. 그리고 질기게 살아남았다.

“머리가 날아가고 싶지 않으면.”

총구 아래 그녀를 올려다보는 강렬한 눈빛은 여전하지만, 그림자를 다루는 기술은 그녀의 기억보다 약하다. 그림자가 일제히 솟아오르는 순간 트레나는 방아쇠를 망설임 없이 당겼다.

탕!

끔찍한 소리가 났다. 원래 자리에서 그대로 발사되었다면 노아는 분명히 다쳤을 것이다. 그것도 머리를 다쳤으니 중상이었겠지만, 미세하게 방향이 틀어진 탄환은 다른 곳에 날아가 박혔다.

쏘기 직전에 다른 공격을 급하게 받아 어쩔 수 없이 잘못 쏘게 된 트레나는 잠깐 비틀거렸다. 샛노란 눈이 그녀를 똑바로 겨냥하고 있었다.

“날 봐.”

날 똑바로 보도록 해. 시온은 트레나를 매료시키려 애쓰며 다른 손으로는 밀어닥치는 뱀파이어들을 계속 붙잡았다.

솔직히,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계속 느끼던 거였지만, 시온은 유독 이 매료시키는 이능력을 마음먹은 만큼 다룰 수가 없었다. 드리프터 정도야 가능했지만 트레나만큼 강한 뱀파이어는 어림도 없었다.

“큭!”

그저 잠시 시간만 벌 뿐이다. 노아가 다리를 쥐면서 기어이 일어나 그림자로 공격할 만큼의 시간, 혹은 나자크가 비틀대며 일어날 만큼의 시간만 잠시 번다.

더구나 매료하는 데 신경을 쓰다 보면, 능숙하게 뱀파이어들을 벽이든 바닥이든 나자크의 손안이든 붙여놓는 능력마저 흔들렸다. 당장 붙여놨던 뱀파이어들이 꿈틀대며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 번에 두 가지를 완벽하게 잘할 수는 없는 걸까? 이 다급한 상황에서 꼭 필요한 능력인데 그걸 못한다. 시온은 너무 화가 나서 이를 갈았다.

“너 예전보다 많이 약해졌구나.”

트레나가 고개를 한 번 흔들더니 금방 매료에서 깨어나 그에게로 성큼 다가갔다.

됐다. 노아와 나자크가 일단은 피했으니 된 거다. 시온은 스스로에게 잘한 거라고 납득시키며 사납게 웃었다.

“당신은 말이 너무 많아.”

“루슬란!”

시온은 자신의 부족한 점을 메워줄 동료들이 이제 두 배가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그의 양옆에서 루슬란과 마한이 튀어나와 트레나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트레나라 해서 혼자인 건 아니었다. 당장 안개로 변한 그녀가 루슬란과 마한을 피하고, 대신에 그 뒤에서 총을 겨눈 정예 뱀파이어들이 맞섰다.

“조심해!”

시온은 안개를 눈으로 따라가면서 루슬란과 마한을 도왔다. 어느새 소년들의 몸에는 사소한 상처가 생기기 시작했다. 비릿한 피 냄새가 폭탄 때문에 터진 고약한 마늘 냄새와 함께 뒤섞여 모든 이의 코를 자극했다. 물론, 소년들과 뱀파이어들은 각기 다른 느낌으로 이 냄새를 받아들였다.

트레나는 안개인 모습을 오래 유지하지는 않았다.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매섭게 나자크를 후려쳤다. 그걸 노아가 그림자로 막아내고, 시온이 붙들었다. 그러다가도 주의를 다른 뱀파이어들에게 빼앗기면 공격을 막는 소년들의 급소를 트레나가 찔러왔다.

‘보통 수준이 아니야.’

시온은 트레나의 위협적인 속도에 결국 나자크가 다치는 걸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나자크!”

쓰러진 조명에 비친 그림자가 급히 일어나 트레나의 목을 틀어쥐었다.

“큭!”

안 돼. 노아는 스스로에게 타일렀다. 헬리 형이 생포해야 한다고 했어. 하지만 차라리 죽이는 게 안전할 것 같은데. 어떡하지?

탕! 탕!

망설이는 사이 총이 발사되고, 노아는 급히 안개로 변한 트레나를 내던지며 그림자 사이에 몸을 피했다가 도로 나타났다. 공격보다 방어에 급급하다. 누구라도 제발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자 노아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안 돼. 다들 자기 자리에서 애쓰고 있잖아.’

그러니까 그도 그의 몫을 제대로 해내야 했다.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해내야 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힘드냐. 1인분이 이렇게 힘든 거였냐.

부상을 입었다가 겨우 회복 중인 마한이나 루슬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에이씨, 늑대인간들한테 마음가짐에서 밀릴 수 없어!’

노아는 쇄도하는 안개를 간신히 피하며, 뱀파이어 하나를 은침과 마늘이 가득 깔린 바깥으로 집어 던졌다. 노아와 호흡을 맞추는 게 아주 익숙한 시온도 옴짝달싹 못 하는 뱀파이어들을 하나하나 꺾어가며 그림자에게 뱀파이어를 내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 호흡들이 거칠었다. 트레나가 너무 강력하다는 게 문제였다.

‘언제 저렇게 강해졌지? 무슨 피를 마셨길래 저래?’

노아는 급히 뒤로 물러나며 생각했다. 소년들은 점점 1층 출입구에서 2층으로 향하는 계단 쪽으로 밀리고 있었다. 물론 그 계단에도 뱀파이어들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거나 2층에서 내려오기도 해서, 소년들은 전체적으로 얼기설기 포위가 된 상황이었다. 지면 안 된다.

“조명.”

“그림자 막아라.”

뱀파이어들이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고저가 없어 더 섬뜩하게 들렸다. 눈을 아프게 하는 섬광탄이 여기저기에서 터지고, 총이 들이대졌다. 마한이 이를 악물고 총을 빼앗아 맞대응했다. 마구 쏘아지는 총에 뱀파이어들은 잠시 물러날 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뚫리지 않는 벽을 마주하는 느낌이다.

노아가 부리는 그림자의 영역이 점점 늘어나는 게 그 와중에도 고무적이었지만, 연막을 뿌려대며 마구 들어오는 뱀파이어들을 밀어내기엔 속도가 너무 느렸다. 성장이란 싸우기 전에 모두 마쳐야 하는 것이지, 싸우는 와중에 해봤자 소용이 없었다.

위층에서 가끔 내려오던 자카도 오지 못한 지 오래다. 시온은 숨을 몰아쉬며 필사적으로 노아를 지키고, 늑대인간 소년들을 지켰다.

“형!”

노아가 비명을 질렀다. 시온에게 안개화를 푼 트레나가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시온의 체구가 결코 작은 건 아니었지만 저렇게 단독으로 맞서는 건 위험했다. 아니, 이미 위험한 지경을 넘어섰다.

각 층에서 소년들이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림자를 일으켜 트레나를 공격하려 했지만, 노아에게도 달려드는 뱀파이어들이 너무 많았다. 그건 그들과 함께 싸우고 있던 늑대인간 소년들도 마찬가지였다. 혼자 감당하기엔 힘에 부칠 정도로 많은 숫자이자, 하나하나 다 강력한 적이었다.

그리고 절대 맡아서는 안 될 피 냄새가 다시 한번 났다.

“어.”

안 되는데. 나자크의 눈이 돌아갔다. 나이트볼을 하면서 워낙 상대를 잘 알게 되었던 늑대인간 소년들의 후각은 뱀파이어 소년들의 피 냄새를 예민하게 잡아냈다.

피. 너무 많은 피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시온의 옆구리에 틀어박힌 트레나의 손에서 손목을 타고 피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노아는 저 여자가 어떤 식으로 공격하는지 알았다. 재상의 사냥개 중 하나. 아무도 모르게 살육과 고문을 즐기던 쌍둥이 자매 중 동생. 맨손으로 장기를 뜯어내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이를 보는 게 취미인 정신병자.

꿈 안에 묻혀 있던 단편적이 기억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노아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붙잡았다.

“쟨 또 왜, 야, 노아야, 정신 차려!”

마한이 노아를 보고 고함을 질렀다. 그 소리를 어마어마한 통증 사이에서도 듣고 있던 시온이 움찔거렸다.

노아가 왜? 노아가 다쳤어? 막내가 다치면 안 된다. 그는 이깟 부상이야 견딜 수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데 노아는 다치면 안 되잖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마지가 너희에게 참 가르친 게 없었나 보구나.”

흐흥, 콧소리를 내어 웃으며 트레나가 속삭였다.

‘마지’. 시온은 눈을 크게 떴다. 그의 노란 눈에 트레나가 가득 들어왔다.

“아니, 내가 너무 일찍 죽였나?”

누군가를 몰살하는 건 트레나에게 너무나 익숙한 일이었다.

그 옛날 공주가 살아 있을 때나, 이 소년들이 살고 있던 보육원을 쓸어버린 때나, 지금이나 당연했다. 일방적으로 살육하고 폐허만 남겨뒀다. 그녀의 손에서, 혹은 다르단의 손에서 살아남은 존재는 없었다.

“아쉽네. 겨우 도망쳤는데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하고 죽다니. 하긴 마지가 거기까지밖에 못 되는 거겠지.”

약한 건 죽어야지. 간단한 법칙이었다.

“보육원 원장 노릇도 마지에게 그리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흘리듯 중얼거리던 트레나는 자신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시온과 다시 눈을 마주했다. 미동도 하지 않는다. 죽었나?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거릴 때였다.

콰득.

어둠이 1층을 가득 채우고, 그림자가 트레나의 허벅지를 감싸 무섭게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뼈가 부러질 만큼의 악력이었다. 그리고 노란 눈으로 그녀를 보고 있던 시온이 명령했다.

“내 몸에서 손 떼.”

트레나의 손이 명령에 반응해 힘없이 미끄러졌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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