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꿈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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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꿈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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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꿈 (8)
2023.01.03.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조명이 무참히 흔들렸고, 그 사이에 생긴 그림자를 노아가 휘둘렀다. 소년들의 그림자가 뱀파이어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오, 괜찮은데?”
타닥, 달려 들어온 루슬란이 순수하게 감탄하자 집중하고 있던 노아가 괜히 머쓱해 했다.
“요즘 본 게 너희가 싸울 때 움직이는 거라서, 좀 해봤어.”
“근데 우리는 일단 목부터 뜯어.”
“목?”
노아는 눈을 깜빡거리다가 그림자를 움직였다. 새카맣게 일어난 그림자가 뱀파이어에게 입을 쩍 벌리고 달려들었다. 목표는 목이었다. 으직, 하고 뭔가 부서지고 으깨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이렇게?”
“그렇지.”
루슬란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만 아는 정도로 약하게 웃었다. 동족을 잡아다 사람 취급도 안 하고 마구잡이로 죽이는 뱀파이어들과 외국에서 싸우는 상황에, 뱀파이어 소년과 웃고 있다니. 루슬란이 생각해도 말이 안 되기는 했지만 지금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다.
불이 화르륵 일어나고, 뱀파이어들 몇몇이 벽에 들러붙어 버둥댔다. 그림자가 그들을 학살하고, 실제로 늑대인간들이 달려들었다. 이미 아비규환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상황이 소년들에게 유리한 게 결코 아니었다.
“피해!”
탕탕, 총구가 그들을 향했다. 조명이 하나 흔들려 깨지면 곧장 뒤이어 대체할 다른 조명이 밀고 들어온다. 정예 뱀파이어들의 진영에 빈틈은 없었고, 생긴다 해도 곧장 메워졌다.
“보통이 아니야.”
여태까지 상대했던 드리프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한 놈들이다. 쏟아붓는 무기의 차원부터가 달랐다.
노아와 함께 서로를 붙잡고 일단 피한 루슬란이 이를 갈았다. 소름 돋은 뒷덜미가 서늘하다. 그는 총이 너무 싫었다. 싫지만 싸워야 한다. 싸워서 이겨내야 한다.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도 수십 번을 싸워 여기까지 왔다.
흉터가 가득한 손을 뻗어 다가오는 뱀파이어의 다리를 움켜쥐고 악착같이 잡아당겼다. 루슬란 위로 새카만 그림자가 쏟아져 내렸다.
*
2층 역시 가끔 고함소리가 들리고, 총소리가 들렸다.
“아, 이 정신 나간 놈들.”
가만히 보고 있던 지노의 입에서 저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드리프터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던 셈이다.
총까지 들고 무장한 뱀파이어들은 이능력이 아니라면 상대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아니, 이능력을 가지고도 상대하기가 버거웠다. 드리프터와 비교할 수 없는 근력을 가진 단단한 신체를 앞세운 뱀파이어들은 웬만한 이능력을 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저놈들도 아주 조금씩은 이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헬리의 말에 지노가 인상을 썼다.
뭐?
단지 우리에 비해 훨씬 약하고 지속시간도 짧아. 무시해도 될 정도 같긴 한데 지금 상황에선…….
흐려지는 헬리의 말을 지노가 받았다.
뭐든 다 조심해야지.
한마디로 여태까지 상대해온 놈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거지. 그거야 맞닥뜨리자마자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고. 별로 새롭지도 않다. 하하. 지노는 신경질적으로 웃는 자카와 눈이 마주쳤다. 자카뿐인가. 늑대인간 소년들은 죄다 어마어마하게 분노하고 있었다.
“조심해. 드리프터들 중에도 가끔 이능력을 쓰는 놈들이 있지만 장난 수준이잖아? 근데 이놈들은……, 제법 무시할 정도는 아닌가 봐.”
“알아. 고마워.”
칸이 최대한 뒤로 빼놓으려 했지만,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싸움에 끼게 둘 수밖에 없었던 타헬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안다고? 지노와 자카가 싸우다 말고 동시에 타헬을 돌아보았다. 어떻게 아는데?
“자주는 아니지만, 저런 놈들을 봤어. 너희는 설마 처음 보는 거야?”
어떻게 늑대인간들보다 뱀파이어에 대해 더 모를 수 있는지, 이 와중에도 타헬은 새삼스럽게 또 신기해했다.
“아니, 그건 아니야.”
그 와중에도 잠시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움직여서 날아드는 탄환까지 다 잡아다 우르르 바닥에 쏟아버린 자카가 대답한 뒤 또 사라졌다.
“봤는데 왜 몰라?”
타헬은 더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너보다 어릴 때 봐서 기억이 희미해.”
이번엔 탄환 대신 뱀파이어 하나를 휙 끌고 왔다. 자카의 너무나 빠른 속도에 잠시 눈앞이 핑그르르 돌아 어지러움을 느낀 뱀파이어는 헛구역질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전에 오만상을 찌푸린 타헬이 놈의 목을 꺾었다.
“으윽. 토하려고 했어.”
끔찍한 걸 볼 뻔했네. 질색을 한 선샤인시티스쿨 막내를 참 신기하다는 듯 본 지노는 고개를 흔들며 타헬의 뒤를 총으로 겨누는 뱀파이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어? 악!”
치익, 하고 타는 냄새가 여기에서도 난다. 순식간에 갑자기 달아오른 총의 온도를 이기지 못하고 뱀파이어가 총을 떨어트렸다. 타헬이 곧장 놈에게 달려들어 그를 바닥에 때려눕히면, 지노가 숨을 끊었다. 말을 할 정도의 여유가 아직까지 있다는 게 다행일까. 하지만 이 여유도 곧 끝난다.
“계단부터 막아!”
소년들은 한 군데 뭉치지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흩어지지도 않았다. 자카를 비롯해 빠르게 이동이 가능한 소년들은 여러 층을 오고 가면서 싸웠고, 덕분에 어느 한 층이 쉽게 무너지지 않고 간신히 균형을 유지했다.
그러니 일단 서로 돕는 걸 차단하려면, 침입한 뱀파이어들 입장에서는 이동 경로부터 막아야 했다.
“어딜!”
내가 그러라고 2층을 다 때려 부순 줄 아나! 이안이 당장 1층에서 2층으로 올라오는 계단으로 뛰어올랐다. 그의 폭발적인 힘 앞에서는 중장비마저 무용지물이다.
자카가 발사된 탄환이 목표물에 명중하기 전에 탄환을 수거하고, 지노가 총을 아예 들지도 못하게 온도조절을 하는 편이라면 이안은 그냥 총을 우그러뜨렸다. 그다음에 튀어나오는 뱀파이어의 이빨마저도 하관을 통째로 붙잡고 부숴버리면 그만이다.
“저놈한테 가까이 가지 마!”
이안의 행동반경 안에 들어가서 붙잡히면 그걸로 끝이다. 뼈까지 부수는 완력에 적들은 치를 떨다 못해 공포를 느꼈다.
사실 꽤 오래 살고, 드리프터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한 뱀파이어라 해도 지금은 알고 있던 상식이 파괴되는 느낌을 외면할 수 없었다. 압도적이고, 말로 설명할 수도 없고, 존재해서는 안 되는 힘이 눈앞에 있다. 더러는 혐오감과 공포감을 느꼈고, 더러는 힘에 대한 욕망을 느꼈다.
“으악!”
오늘 열심히 부숴놓은 벽의 잔해, 바꿔 말해 시멘트와 벽돌 덩어리를 잔뜩 쌓아놓은 곳에 뱀파이어들은 쓰레기처럼 던져졌다. 기둥만 남기고 벽을 부숴서 널찍하게 터놓은 2층은 괜찮은 싸움터였다.
덕분에 소년들은 서로를 어느 정도 눈으로 확인하며 싸우고, 때때로 서로 돕는 게 수월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쪽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게 아니었다.
이러다 지치겠어.
자카가 가장 먼저 빠르게 알아차리고 헬리에게 말을 건넸다.
드리프터들을 상대할 때보다 힘이 훨씬 많이 들어가는데 숫자가 너무 많아. 아무래도 안 되겠어.
레일건 마스터는?
1층에 이미 진입했어.
2층을 대충 정리하면서 내려갈게.
곧바로 3층에서 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뱀파이어들이 굴러 내려왔다. 묵직한 타격감과 빠른 속도, 거침없이 질주하는 힘 그 자체.
“조심해라.”
그 와중에도 막내 타헬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들여다보는 건 잊지 않은 칸이 동선에 걸리는 뱀파이어들을 쓸어내면서 1층으로 내려갔다.
“난 괜찮아!”
괜찮다고! 잘하고 있단 말이야! 타헬이 그의 등에 대고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댔지만 이미 칸은 2층을 가로지르면서 1층으로 향하는 계단 앞을 지나고 있었다.
“큭!”
하지만 그도 수월하게 내려가지는 못했다. 여기저기에서 늑대인간들의 힘을 빼놓는 향을 담은 연막이 펑펑 터지고 있었고, 이렇게 되면 뱀파이어 소년들이 더 많이 움직여야 했다.
일곱 명의 공백을 나머지 일곱 명이 완벽하게 메울 수는 없다. 그렇게 빈틈이 생기는 순간 뱀파이어들은 절대 놓치지 않고 바로 파고든다.
쾅!
드리프터들과 충돌할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커다란 굉음이 여기저기에서 들렸다. 나자크는 부딪쳐오는 충격에 이를 악물었다. 확실히 힘들다. 전력을 다해 싸워도 끝이 없는 적들이 계속 진입하고 있었다.
더구나 저쪽은 한 개 조가 손발이 척척 맞았지만, 이쪽은 여태 으르렁거리며 나이트볼로 라이벌이었던 뱀파이어 소년들과 합을 억지로 맞춰야 했다.
‘그래도 할 수 있어!’
힘이 들지만 리더인 칸이나, 나이트볼 라이벌이었던 이안을 상대할 때만큼 버겁지는 않았다. 다만 힘이 많이 들어갈 뿐이다. 초반부터 밀리면 안 되는데.
“힘 빼.”
“뭐?”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자크는 ‘그게 말이 되냐’고 묻고 싶었으나 그럴 힘도 없어서 짧게 되물었다.
“힘 빼라고. 귀 다쳤냐?”
으드득, 으득, 으드드득, 그리 유쾌하지 않은 소리가 발을 타고 스멀스멀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끅, 끄윽……!”
발목부터 그림자에 감겨 다리가 전부 부서진 뱀파이어가 쓰러졌다. 나자크는 말을 얄밉게 하는 노아를 쳐다보았다.
“초반부터 너무 힘 빼지 마. 내가 받쳐줄 테니까.”
“말이나 좀 예쁘게 해라.”
“이 정도면 충분히 예쁘게 하는 거야.”
하여튼 뱀파이어들 싸가지 하곤. 고개를 흔들었지만 노아를 노려보지는 않은 나자크는 질주하는 그림자를 따라 달려나갔다. 뒤에서 노아가 외쳤다.
“조명만 적당히 치워줘!”
“알았어!”
밀린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포기하지는 않을 거다. 늑대인간 소년들에게는 생존문제가 너무나 절실했고, 뱀파이어 소년들에게는…….
“뱀파이어는 생포해!”
노아는 시온을 쳐다보았다. 시온 역시 같은 눈으로 노아를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 이 새끼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는 생각, 나만 하는 거 아니지?
시온의 질문에 어디엔가 있을 헬리가 대답했다.
네가 그 말 제일 마지막으로 했어.
아, 내가 마지막이야? 그럼 맞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이놈들 내가 다 죽여버린다.
시온은 살벌하게 이를 갈며 바닥에 손을 댔다. 당장 나자크를 피하던 뱀파이어 셋이 바닥에 당겨지며 쓰러졌다. 드리프터보다 훨씬 버겁고, 몸 안 깊숙한 곳에서 잊고 있던 오싹오싹한 느낌을 일깨우는 이놈들을 예전에 마주친 적이 있다. 그건 과거 기억이 희미한 뱀파이어 소년들이 머리로 기억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기억하는 공포였다.
‘얘들아, 뛰어!’
‘뒤돌아보지 말고 뛰어!’
보육원 선생님들이 외치는 소리는 결국 뚝 끊어졌다. 비명조차 들리지 않는다는 게 더 끔찍했지. 그때 보육원에 나타난 뱀파이어들이 바로 이놈들이다. 알 수 있었다.
다 죽이면 안 되지. 좀 살려둬 봐.
아, 형은 지금 그런 여유가 있어? 난 없어!
시온이 짜증을 내며 뱀파이어들을 쓰러트리고, 그들이 쏘려고 하는 총을 벽에 붙여버렸다. 그러곤 날렵하게 뛰어올라 총을 낚아챈 뒤 개머리판으로 뱀파이어를 내리쳤다. 뻑, 하는 소리가 요란하다.
빈틈이 있고, 합이 굳이 맞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다. 쥐어짤 수 있는 모든 힘을 다 동원해서 이기고 살아남을 것이다. 능력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온몸으로, 주먹이 부서지면 이로 물어뜯어서라도 이길 거다.
시온의 눈에는 복수심이 가득했다. 모든 뱀파이어 소년들이 그랬다. 그들은 그래서 물러날 수 없었다.
“연막탄 더 퍼부어!”
“몰아붙여, 후방에서 8조 대기!”
쾅, 쾅, 부딪치고 폭발하는 소리가 요란하다. 바깥에서는 엔지가 던진 은침폭탄이 터지고 있었다. 이러니 총을 들고 들어오지.
탕! 탕!
때론 지나치게 선명한 총소리가 귀에 들어올 때가 있다. 아, 이건 확실하다. 틀림없다. 불길한 확신을 주는 소리가 귀에 반드시 꽂힌다. 시온은 뒤를 돌아보았다.
“노아야!”
비틀거리는 노아의 앞을 거대한 남자가 막았다. 조명에 밝게 빛나는 베이지색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나자크!”
이 미친놈아, 피해! 시온이 악을 썼다.
탕!
급기야 선명하게 피가 튀었다. 눈으로 보고, 그보다 훨씬 더 빨리 후각으로 피 냄새를 맡은 시온의 눈앞에 총을 든 트레나가 들어왔다. 그녀의 눈은 벌레를 보듯 그들을 내리깔아보고 있었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