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1. 꿈 (7) (51/81)


51. 꿈 (7)
2022.12.27.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반드시 해내야 하는 임무는 솔직히 너무나 크고, 트레나에겐 막연한 불안감과 냉정한 자신감이 이상하게 혼재했다.

그녀는 몹시 혼란스러운 가운데 어떻게든 스스로를 다잡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다르단 님, 고귀하신 태조를 생각하자고 계속 중얼거리는 건 결국 뱀파이어 소년들의 이능력이 너무 신경 쓰이기 때문이다.

“시야에 걸리는 놈은 없나?”

“예. 아직 없습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짜증나고 성가시다. 트레나는 그저 이번에 그녀가 겪어본 소년들이 ‘아직은’ 제 능력을 다 사용하고 있지 못하다는 걸 상기했다.

‘그래, 아직까지는 완전히 각성하지 못했어. 아직 미숙해. 그러니 각성하기 전에 잡는 거야.’

그리고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한 번 더 마음을 다진 그녀는 정면을 바라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그럼 됐어. 저놈들도 여기서 더 이상 물러날 수가 없는 거야. 새파랗게 어린 것들에게 당하기만 할 수는 없지.”

트레나에게는 저놈들을 아주 오래전에 상대해봤던 경험이 있었다. 그녀라고 그사이에 시간을 소홀히 보낸 건 아니었다.

그녀의 지시에 따라 뱀파이어들은 아주 신중하고 느릿하게 건물로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사이 마침내 해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이 주변은 어둠 속에 잠겨 들었다.

뱀파이어들의 움직임은 대단히 빠르고, 또 군더더기가 없었다. 군대처럼 움직이는 그들의 기세는 그저 묵직하고 살벌하기만 했다.

“늑대인간들에게는 이능력이 없다.”

그녀가 끌고 온 정예 뱀파이어는 칠십이 넘었다. 이 정도면 태조께서 최대한 지원해주신 것이다. 그리고 저 정예들은 자신들이 어떤 적을 상대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한편, 까맣게 밀려드는 뱀파이어들을 수하가 위에서 바라보니 무서울 정도였다. 척척 조를 짜서 빠르게 갈라지고, 날렵하게 움직이는 이들은 보통이 아니었다.

‘사람 죽이는 걸 제대로 훈련받은 게 분명해.’

소름이 오싹 끼쳤지만, 이미 각오하고 있던 일과 다시 맞닥뜨린 것뿐이다.

수하는 입술을 말며 긴장감을 내리누르려 애썼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곁에 있던 헬리를 돌아보았다. 그는 놀랍게도 웃고 있었다. 이런 일은 하도 겪어서 괜찮은 걸까?

“무서워?”

수하와 눈이 마주친 그가 이 긴박한 상황에서도 가까이 다가왔다.

“저 뱀파이어들 보통이 아닌 거 같아. 여태까지 상대했던 뱀파이어들이랑 전혀 달라.”

“우리가 상대했던 건 뒷골목 범죄자들이고, 이쪽은 군대에 가깝지.”

괜찮을까? 아무리 싸움에 익숙하고 제 한 몸 지키는 건 너끈하다 해도, 그건 평범한 일상에 가까운 일이었다. 저렇게 본격적인 군대는 상대해본 적이 없었다. 막연히 생각만 하고 각오한 것과, 직접 눈으로 보는 건 천지 차이다.

“하지만 괜찮아.”

“괜찮아?”

“응, 괜찮아.”

굳어버린 수하의 표정을 한 번 더 본 헬리가 픽 웃었다.

“저쪽도 불안해하고 있어.”

수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기에서도 생각이 읽혀?”

“다 읽히는 건 아니고 약간.”

그냥 단편적인 것만 읽히기 시작했다. 거리가 상당한 데도 생각이 읽히다니, 그가 품고 있는 능력이 이쯤이면 계속 더 성장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입 모양이 더 많이 보이고, 표정이 급한 건 눈으로도 보여.”

그는 검을 창가에 기대 세워놓은 채 중얼거렸다.

“그런데 저 레일건 마스터는 생각도 좀 시끄럽네.”

생각이 너무 시끄러워서 여기까지 단편적으로나마 들린다.

언제부터 이렇게까지 넓은 범위에 능력이 적용되었나? 하지만 헬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시온, 레일건 마스터는 우리의 이능력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모양이야.

그 말을 들은 시온은 불안해하기는커녕, 오히려 눈을 빛내며 벽을 슬금슬금 걸어 올라갔다. 어디든 중력을 무시하고 달라붙을 수 있는 그는 이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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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드디어 우리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나타났네? 그럼 꼭 붙잡아야지.

재미있어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지나치게 건물 가까이 슬금슬금 진입한 뱀파이어들 몇몇이 마치 못이 자석에 끌려가듯 벽에 딱 들러붙었다. 하지만 시온처럼 가볍게 발바닥이 붙은 게 아니라, 쥐가 끈끈한 쥐덫에 걸린 모양새처럼 사지를 감당하지 못했다.

셋 잡았어.

순간이 모든 걸 결정한다. 걸렸구나, 싶었을 때 어둠 속에서 눈을 노랗게 빛내고 있던 늑대인간 소년들이 손을 뻗는다. 곧장 와드득, 하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물러나!”

동료들이 당했다는 걸 깨닫자마자 뱀파이어들은 재빨리 벽에서 멀어졌다. 그들은 일단 내버려두고 마한은 덤덤한 눈으로 손을 털었다. 이쯤이야 늑대로 변하지 않고서도 해치울 수 있었다.

“이거 꽤 괜찮은데.”

인정하기 싫지만 시온과의 합이 상당히 좋았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사람을 벽이든 바닥이든 어디든 시온이 손을 대는 곳에 붙여버릴 수 있는지 아직까지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효율만큼은 뛰어났다.

뱀파이어들을 붙이면, 무력해진 놈들의 목을 늑대인간 소년들이 비틀어버리면 끝이었다.

“다 붙일 수 있어?”

마한의 질문에 시온은 미묘한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셋까지는 어떻게 해보겠는데 넷은 좀…….”

여전히 능력에 한계가 있다. 벽과 마주하고, 그 벽에 온몸을 던져 부딪쳐 깬 뒤 달려가다 새 벽을 또 만나는 식이다.

“됐어, 한꺼번에 셋이 어디야.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거야.”

기를 쓰고 한 놈을 겨우 제압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마한은 시온의 어깨를 툭 쳤다. 많은 걸 바라지 않는 그의 성격에 한 번에 셋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차고 넘쳤다.

“네 덕에 벽에 딱 달라붙어 있으니까 너무 쉽잖아.”

“……너한테 그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네.”

‘네 덕’이라니. 시온은 마한에게 어색하게 말하며 마한 뒤에 서 있는 카밀도 슬쩍 보았다. 하지만 카밀도 그 말에 딱히 반박할 생각은 없다는 듯 별말을 하지 않았다.

“나도 너한테 그런 소리 할 줄은 몰랐어.”

마한은 그렇게 말한 뒤 어서 이동하자며 손짓했다. 이런 식이라면 이 주변에 새카맣게 몰린 뱀파이어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물론 절대로 이렇게 쉽게 계속 이어질 리가 없다는 건 모두가 다 알았다.

헬리 형, 여긴 셋으로 일단 끝이야.

긴장감이 고조되는 사이 이미 피를 봤다. 또다시 아드레날린이 넘쳐나고, 절박하게 목숨 걸고 싸워야 하는 밤이었다. 밀려드는 숫자만 봐도 결국 개싸움으로 끝날 게 뻔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소년들도 피해가 크고, 체력소모가 어마어마할 거다. 칸과 헬리가 걱정하는 게 바로 그 지점이었다.

‘눈치챌 때가 됐는데.’

헬리는 저번 리버필드 시 습격 때와 마찬가지로 숫자가 만만치 않아 보이는 뱀파이어들을 보며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제일 큰 문제는 그때와는 달리, 저들은 드리프터들보다 훨씬 강해 보이는 뱀파이어라는 거였다.

저걸 어떻게 상대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제대로 교육받고 실전에 여러 번 투입된 게 분명해 보이는 뱀파이어들은 시온의 능력을 보자 벽을 깨버리고 그 파편을 이쪽에 날려 이능력을 쓸 면적을 줄여버리는 식으로 대응했다.

물론 이쪽에는 예전 리버필드 시 습격 때 빠졌던 늑대인간 소년 셋이 더 있다.

“진입해.”

밀고 들어오는 힘이 무지막지하다. 필요하다면 이 건물도 밀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

그사이 불이 꺼졌던 1층에는 낮은 불이 들어왔다. 마치 뱀파이어들을 유혹하듯, 바람에 일렁이고 있었다.

트레나는 불현듯 저게 뭐 때문인지 알아차렸다.

“1층에 조명부터 투입한다. 그림자 자체가 없게 조명을 더 끌고 들어가고, 조명탄도 발사해.”

“그림자 말입니까? 알겠습니다.”

“그림자를, 아니, 어둠 그 자체가 힘인 놈이 있어. 붙잡히면 짜증스럽지.”

트레나는 얼마 전에 부딪쳤던 그림자를 쓰던 뱀파이어 소년을 떠올렸다. 무리 중의 막내. 자존심도 강하고 그만큼 능력도 강해서 뱀파이어들의 시간인 밤마저 그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부딪쳐본 바로는 그 정도까지는 각성하지 못한 듯했다.

당장 안쪽으로 조명탄이 퍼부어지고, 아예 대낮처럼 주변을 밝힐 섬광이 터졌다. 지시사항이 잘 전달되었는지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태조께서 주신 놈들이니 알아서 잘했다.

태조 다르단의 피를 마셔 몸을 회복한 트레나는 뒤늦게 ‘그 피를 차라리 수혈받았다면’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깝고도 아까운 피였다.

하지만 이미 그의 피를 수혈받아 여기까지 왔던 트레나는 고개를 저었다. 피에 대한 집착이야 뱀파이어의 본능이고, 이제 와서 생각해봤자 소용없다.

“나도 진입한다.”

태조가 보내준 뱀파이어들의 특징은 이런 때 나온다. 그녀가 직접 키운 부하들이라면 당장 뜯어말렸겠지만, 이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절대복종만 했다. 그 누구도 그녀를 막지 않았기에 트레나는 가볍게 몸을 놀렸다.

1층은 밝게 만들어 그림자나 어둠을 전혀 쓸 수 없게 무력화한 뒤 막내 놈부터 붙잡고, 그다음에 튀어나오는 놈이 누구든 트레나가 그때그때 대처해야 했다. 지금 뱀파이어 소년들에 대해 정확한 정보가 있는 건 그녀뿐이니까.

“어어, 접근이 너무 빠른데? 신중함 어디 갔어, 신중함.”

뭐든 신중해야지. 중얼거리며 지노가 그녀의 앞에 당장 불이 치솟게 했다. 당장 트레나가 휙 뛰면서 뒤로 물러났다.

확실히 몸이 가벼워졌다. 폭발 여파로 많이 다쳤을 텐데 완전히 회복한 걸까?

부상을 입은 채로 상대했다면 소년들에게 훨씬 유리했을 거다. 그게 아깝긴 하지만, 지금 지노는 자신이 불을 움직이는 능력 자체가 상당히 늘었다는 것에 만족했기에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게다가 이미 회복한 걸 아쉬워해봤자 무슨 소용인가. 더더욱 경계해야 할 뿐이다.

“뒤쪽에서는 망설이지 않고 진입하고 있어. 우리도 움직이자.”

나자크가 중얼거리며 계단을 휙 뛰어 내려갔다. 동시에 2층 창문이 챙강챙강 깨지는 소리가 났다. 뭔가가 툭 던져지더니 쉬익, 하고 연기가 피어오른다. 뱀파이어들이 진입하려는 것이다.

“저 연기 마시지 마!”

자카가 보자마자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당장 늑대인간 소년들이 입을 틀어막고 물러났다. 누가 봐도 늑대인간들의 힘을 쭉 빼놓던 향초와 같은 기능을 하는 연기인 게 분명했다.

“물러나!”

물론 이쪽에서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자카가 성질을 내면서 빠르게 움직여 순식간에 연막탄을 도로 걷어내 바깥으로 던졌다. 화르륵, 지노가 피워낸 불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은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뱀파이어들이 동원하고 있는 무기는 특수부대 급이다. 언뜻 총까지 보였다. 늑대인간들을 잡기 위해 모든 방비를 다 마치고 온 거겠지.

“저 미친놈들.”

1층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안은 쨍하니 터지는 조명탄과 가까이 다가오는 커다란 조명에 이를 갈았다. 노아는 입술을 깨물며 자신이 부릴 수 있는 그림자가 자꾸만 적어지는 상황에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렸다.

망할, 가까이 있는 그림자가 거의 없었다. 점점 작아지는 노아 자신의 그림자뿐이다. 다가오는 조명들이 너무 밝아 섬뜩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저 빛 뒤에는 냉혹하고 차가운 뱀파이어 군대가 있겠지.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가만히 있자고 여기 온 게 아니다. 그들은 1층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야 했다.

1층에 이미 진입했어. 이놈들 지금 조명을 엄청나게 쓰고 있어. 전기를 어디서 끌어온 건지 모르겠네.

이안은 헬리에게 말을 전하며 몸을 날렸다. 여기에는 이안과 노아만 있는 게 아니었다. 오래도록 합을 맞춰 온 뱀파이어 소년들은 위기상황에서 즉시 서로를 위해 움직일 줄 알았다.

“뭐야, 너, 쫄았냐?”

아, 저 형 저럴 줄 알았어. 툭 튀어나와 천진한 얼굴로 노아의 속을 긁고 간 시온은 당장 조명을 방패처럼 든 뱀파이어 셋을 그 자리에 고정시켜버렸다.

이안이 튀어 나가 고정된 한 놈을 처리했다. 우당탕 소리가 나면서 조명이 떨어지고 깨졌다. 튀어 나가 바로 붙기 시작한 건 이안뿐만이 아니었다. 시온과 함께 움직이던 마한 역시 날렵하게 뛰어올라 뱀파이어들과 맞붙었다. 발바닥이 바닥에 딱 달라붙어 옴짝달싹 못 하는 뱀파이어는 급기야 총을 꺼냈다.

총은 인간 대 인간의 무기이기도 하지만, 짐승을 사냥하는 데 사용하기도 한다. 여태까지 뱀파이어에게 짐승 취급을 받았던 늑대인간 소년들의 눈이 더 매서워졌다.

방아쇠가 당겨지기 직전, 콰직, 하고 뭔가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으, 아아……!”

뒤이어 내질러지던 비명조차 중간에 뚝 끊겼다. 총이 맥없이 바닥에 뚝 떨어졌다. 감히 총부리를 들이댄 손목부터 꺾은 카밀은 표정 없이 목을 꺾어버린 뱀파이어의 시신을 다른 뱀파이어에게 밀쳐냈다.

손에 잡히는 모든 게 다 무기다. 뜨겁게 달아오른 조명 위에 묵직한 시신이 얹히자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타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한 번만 흩어놓으면 된다. 빡빡하게 밀어 넣어지던 빛들 중 하나가 뚫리고 크게 휘청이면, 그 틈 사이로 밤이 고개를 내민다. 노아는 그 작은 틈도 얼마든지 가지고 놀 수 있었다. 순식간에 그림자가 높이 솟아 춤을 추기 시작했다.

챙강, 챙강, 조명이 깨지는 순간 듣기 싫은 총소리가 울렸다.

탕!

위층에 있던 수하가 흠칫 놀라 몸을 굳혔다.

“저게 무슨 소리야?”

헬리가 검을 집어 들었다.

“총소리.”

미리 의논했던 대로 결국 총이 등장했다. 늑대인간들을 잡을 때 무기를 가리지 않는다는 뱀파이어들이 작정하고 온 것이다.

“자카가 움직이고 있어.”

이런 때는 탄환만큼, 아니, 그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자카가 바빠진다. 그리고 그만큼 소년들은 종족을 떠나 분노했다.

“누가 다쳤대?”

스르릉, 검을 뽑아 든 헬리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하지만 이 밤은 이제 시작이었고, 아침이 왔을 때 모두가 어떤 상태일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저 현실에 충실할 뿐.

“가자.”

그가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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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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