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꿈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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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꿈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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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꿈 (6)
2022.12.20.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그리고 하나 더.”
지노의 말에 노아가 한마디 덧붙였다.
“그래. 나도 알아. 수하에게 꿈에 대해서 물어보는 건 좀……, 솔직히 대낮에 미친 소리 하는 것 같다는 거 알아. 그러니까 접는다 쳐.”
“접는다 치는 게 아니라 일단은 접어.”
헬리는 안 그래도 복잡하고 불행하고 힘들었던 소년들의 과거로 수하를 끌어들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녀는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
“아, 그래. 그렇다고 하고. 아무튼 그렇지만 다른 쪽에 물어볼 수는 있지.”
아마 노아만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닐 거다. 워낙 오래 붙어 있었던 형제들이야 척하면 척이다. 지노가 씩 웃었다.
“이미 우리를 아는 척한 뱀파이어가 있었지.”
레일건 마스터. 그녀가 남아 있었다. 헬리는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일단 잡고 보자고.”
꿈을 꾸기 전에는 그녀도 죽이겠다고 생각했지만, 목표는 생포로 바뀌었다.
소년들은 밀려들 공격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헬리는 도로 늑대인간 소년들이 모여 있는 식당 쪽으로 걸어갔다. 칸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를 빤히 보았다.
“여기가 레일건 마스터의 안방이니 곧 우리를 찾아낼 거야.”
칸은 헬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하는 바였다. 리버필드 시라면 소년들이 좀 더 유리하겠지만, 여기서 그들은 이방인이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
칸은 다시 한번 모든 소년에게 물었다.
“둘 중 하나지. 우리가 쳐들어가든가, 아니면 그들이 오든가.”
카밀이 뻔한 걸 왜 묻냐는 투로 말했다.
“근데 레일건은 우리가 이미 한 번 털었잖아? 경계가 아주 삼엄할 거라고. 거길 또 가는 건 바보짓이지. 게다가 언제 레일건 마스터가 돌아올지도 모르고.”
카밀의 결론에 어느새 식당 반대편 문에 기대 서 있던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결국 레일건 마스터가 우리에게 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네.”
부상에서 얼추 몸을 회복한 세 명의 늑대인간 소년들은 기대까지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날만을 기다려온 시온도 씩 웃었다.
“그럼 최선을 다해 환영해줘야지.”
밤에만 움직일 수 있는 뱀파이어들과는 달리 대낮에도 아무런 제약 없이 움직일 수 있는 소년들은 곧 활발하게 건물 여기저기를 오고 가기 시작했다.
어차피 습격이 있을 시간이야 뻔했다. 어둠이 깔린 저녁일 테니, 그전에 준비를 끝마쳐야 했다.
“이번에는 저쪽도 한 번 당한 게 있으니 신중하게 접근할 거야. 몇 명이나 끌고 올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데.”
하나도 기대도 안 된다는 투로 덤덤하게 말한 자카는 벽에 심어뒀던 전선을 만지는 중이었다. 저쪽에서는 이안과 수하가 불필요한 벽을 가볍게 허물었다.
“최소 백 명은 끌고 오겠지.”
엔지가 대꾸했다. 으, 상상하니 몸서리가 쳐질 지경이었다.
“에이, 그건 드리프터고. 백 단위까지는 안 되지 않을까?”
지나가던 타헬이 툭 끼어들었다.
“우리를 완벽하게 파악하지도 않았지만, 폭발 한 번으로 많이 날려버리기도 했고 또 레일건도 습격했으니…….”
자카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얼마나 올지는 알 수 없으니, 그저 최선을 다해 방비를 해둔 뒤 직접 마주할 수밖에.
위험한 일이었지만 언제나 이랬다. 실제로 맞닥뜨리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적을 내내 상대해왔다.
“……조금만 왔으면 좋겠는데.”
숫자는 제일 크게 ‘최소 백’이라고 불러놓고 엔지가 말을 흐렸다.
목숨을 건 전투가 계속되면 겪는 이들은 심신이 피폐해진다. 그걸 잘 알기에 칸과 헬리를 중심으로 모두가 서로를 적극적으로 보살피고 챙기고 신경 썼지만, 동시에 서로를 많이 걱정했다.
“좋게 생각해야지, 뭐. 마스터를 생포하면 좀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을 거 아니야? 그럼 너희는 동족을 구할 수 있는 거고, 우리는 조용히 리버필드 시에서 살고…….”
“그거 말고 더 중요한 게 또 있잖아.”
자카의 말을 끊은 엔지가 픽 웃었다.
뱀파이어 소년들이 저들끼리 공유하고 신경 쓰는 비밀이 또 하나 있다.
마스터가 그들을 아는 척하는 걸 보면 대충 감이 오기는 하지만 비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늑대인간 소년들도 그들의 모든 걸 뱀파이어 소년들에게 말해주지는 않는다. 그저 서로의 선은 넘지 않을 뿐이었다.
“뭔지는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그것도 잘 해결되면 좋겠네.”
머리 쓰는 방식에서는 손발이 척척 맞는 엔지를 힐끗 보던 자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작업을 지속했다. 다만 그들 사이에 흐르는 공기가 그리 불편하거나 무겁지는 않았다.
*
프린태니어 시는 리버필드 시보다 훨씬 빨리 어둠이 찾아왔다. 그래서 레일건 마스터가 둥지를 이곳에 틀었나 보다.
수하는 창가에 앉은 헬리가 바깥을 내다보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만약에 헬리가 꿈을 꿨다면 어떤 식으로 행동했을까?’
수하는 헬리의 얼굴도 쳐다보지 못할 지경이었다가 이제 간신히 좀 익숙해졌는데, 언제나 침착하고 어깨에 진 짐이 많아 보이는 헬리는…….
‘그런 꿈을 꿀 리가 없겠지.’
에휴. 결국 이건 레일건 마스터를 좀 더 털어봐야 하는 일일까?
수하는 솔론을 알아봤던 레일건 마스터가 그녀는 알아볼지 궁금했다.
만약 수하도 알아본다면, 그땐 어쩔 수 없이 뱀파이어 소년들에게 그녀가 꾼 민망한 꿈을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 그건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이리저리 시선이 헤매던 수하는 헬리를 다시 쳐다보았다.
헬리한테만 조금만 보여줄까? 아니, 헬리한테는 죽어도 못 보여줘. 안 돼. 헬리는 특히 안 돼.
“아.”
그때 그가 중얼거렸다.
“왔다.”
저 멀리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새카만 옷을 두른 뱀파이어들이 천천히 접근하고 있었다. 또다시 기나긴 밤이 시작되고 있었다.
*
한 번 크게 당했던 이는 그 기억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레일건 마스터 트레나는 정말 저 외따로 떨어진 건물에 놈들이 있는지 없는지 수십 번 확인했고, 신중하게 접근하라고 또 수십 번 말했다.
“폭탄과 불을 사용하는 놈들이다.”
건물이 무너질 정도로 커다란 폭발 가까이 있다면 뱀파이어들도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또 비슷한 짓을 할 게 분명하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해.”
섣불리 전부 다 다가서지 말고 정찰을 할 몇몇이 가까이 다가가고, 각개격파하는 식으로 한두 놈씩 끌고 와야 했다.
“그냥 멀리서 우리가 다 터트린 뒤 빠져나오는 놈들을 잡는 건 어떻습니까?”
“저번에 그렇게 하려다가 오히려 당했지.”
트레나가 대꾸하며 복잡한 눈으로 건물을 바라보았다. 3층 건물은 아주 넓었다.
그녀는 뱀파이어들이 말없이 주변을 확인한 뒤 기름을 두르기 시작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당했으면 똑같이 갚아주는 게 트레나의 성격이라, 불과 폭탄에는 똑같이 불과 폭탄으로 상대할 거다.
게다가 뱀파이어 소년들이 가지고 있는 이능력에 대항하려면 별의별 짓을 해도 모자랐다. 마침 건조한 대기에 주변은 바싹 말랐고, 불을 지르기도 딱 좋았다.
“안에 있는 건 확실합니다.”
정찰하고 온 뱀파이어의 보고에 트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 샐 틈 없이 바짝 조여 막아. 아무도 빠져나오지 못하게 해.”
“예.”
넓게 떨어져서 불을 피우며 점점 안으로 좁혀가는 식으로 포위할 거다. 그리고 똑같이 폭발시켜주지.
트레나는 기억을 더듬어 뱀파이어 소년들이 가지고 있던 이능력을 떠올렸다. 어떻게든 놈들을 잡아내야 했다.
안에서는 이 상황을 보고 있는 건지, 아니면 보지 않는 건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뱀파이어 하나가 기름통을 들고 콸콸 쏟아붓기 시작했다. 불을 붙이면 또 큰일이 날 정도로 부으려는데, 갑자기 펑 하는 소리가 났다.
“뭐야!”
“아악!”
깜짝 놀란 트레나가 그쪽을 바라보았다. 기름통을 들고 있던 뱀파이어의 전신에 불이 붙었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허우적댔다.
“어디서 날아온 거야?”
“날아온 게 아니라 갑자기 붙었습니다!”
불을 피해 떨어진 뱀파이어 하나가 말했다.
“조심해야지, 정신 안 차려?”
트레나는 악 소리를 질렀다. 이것들이 태조 님 아래에서 굴렀으면 정신머리 하나는 똑바로 박혀 있을 줄 알았는데 불을 붙일 때도 모르나!
“아아…….”
비명을 지르던 뱀파이어가 결국 바닥을 굴렀다. 하지만 잘못해서 이미 쏟고 있던 기름 쪽에 가버렸고, 그 근처가 온통 불바다가 되어버렸다. 아직 기름을 다 두르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트레나는 욕을 쏟아놓고 말았다. 차라리 기름을 두르는 짓을 하지 말고 그냥 접근했어야 했나, 하는 뒤늦은 후회가 들었다.
‘이능력에 대항하는 게 언제나 쉬운 일은 아니었지.’
트레나는 옛 기억을 더듬으며 이를 갈았다.
건물 안에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지노는 손목을 한 번 돌려보면서 이리저리 움직여보았다.
불덩어리를 날리는 게 아니라 단순히 기름통 입구의 온도를 순식간에 높이는 게 되는 거였구나. 점점 응용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지는 중이다.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지노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계속해서 전투를 겪다 보니 이렇게 된 건가? 싸우면 싸울수록 전투 감각이 예민해지고 불도 더 다양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어, 한 놈 더 붙었다.”
옆에 있던 시온이 오, 하고 입술을 동그랗게 오므리며 감탄했다.
슬금슬금 접근하는 꼴이 짜증 나서 지노가 시작한 일이 조금 커졌다.
뭐, 소년들에겐 이득인 일이었다. 안 그래도 몰려드는 놈들이 생각보다는 적지만 더 만만하지 않아 보여서 모두가 긴장하는 중이었으니까.
“와, 쟤네 가차 없네. 아예 버리는 거 봐.”
불이 붙은 놈들은 그냥 내버려 두고 가까이 가서 도와주지도 않는다. 시온은 뭐 저런 놈들이 다 있냐며 혀를 내두르다가 문득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늑대인간 소년들과 눈이 마주쳤다.
“왜! 뭐! 우린 안 그래!”
“……아무 말도 안 했어.”
나자크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눈으로 말했잖아!”
돌아오는 건 씩 웃는 얼굴뿐이다. 에이 씨, 약 올라. 시온은 고개를 휙 돌리곤 투덜거렸다.
“우리가 뭐 저렇게 인정 없는 줄 아냐? 저놈들이 이상한 거지 우린 저런 놈들을 계속 피해서 살아왔다고. 완전 다르다니까.”
“그래, 그래, 알았어.”
나자크는 폭발하는 짜증에 고개를 열심히 끄덕여주었다. 시온이든 지노든, 저들과 같은 식으로 엮이는 걸 진심으로 싫어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우린 정말 똑같은 줄 알았다고.’
드셀리스 아카데미에 갑자기 뱀파이어들이 등장해서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른다.
잔혹하고, 인간을 그저 먹고 폐기하는 음식 정도로 생각하는 뱀파이어들이 고등학생 행세를 하다니. 너무 끔찍해서 어떻게든 제거하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는데, 어쩌다 함께 싸워보니 저놈들은 생각보다 훨씬 인정 있고 나름 늑대인간들을 배려하고 구할 줄도 아는 놈들이었다.
“불 더 붙었어?”
투덜거리기도 열심히 투덜거리고, 기웃거리기도 열심히 하는 시온이 다시 목을 빼고 지노에게 물었다.
“아니. 둘로 끝이네. 그럼 더 붙여봐야지.”
펑, 펑, 하고 불이 붙는 소리가 나자마자 트레나가 건물을 휙 노려보았다.
“저것들 지금 안에서 기다리는 중이야. 나올 생각이 없으니 진입해야 한다.”
“예!”
“접근할 때 조심하고, 조명을 켜서 그림자가 있는 곳을 피해! 건물 곁에 붙으면 안 된다!”
불을 사용하는 붉은 머리 소년 하나가 있었지. 거기에 더해 그림자를 움직이고 조종하던 가장 막내 놈도 만만치 않다. 거기에 더해 뭐든, 마음만 먹는다면 천장에도 사람을 붙여버리고 거꾸로 매달 수 있는, 그래, 시온이라는 놈도 있었다!
빠르게 쏟아지는 트레나의 말에 뱀파이어들은 질린 얼굴을 애써 감췄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된다니, 상대가 무척 까다로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상대는 보육원을 습격할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자란 소년들이다.
당장 여기저기에서 섬광이 번쩍거렸다.
“버티는 게 목적일까요?”
“아니, 그건 아니다.”
트레나는 저 어린놈들이 그녀에게 볼일이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갑작스럽게 부하들에게 붙은 불은 부하들의 실수 때문이 아니라, 저번에 숲에서 본 불덩어리와 같은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불을 다루는 그놈이야. 그 붉은 머리카락.’
트레나는 옛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천천히 접근하지.”
장기전으로 가는 건 안 된다.
시간이 없어, 트레나. 알고 있잖아.
귓가에 서늘한 태조의 목소리가 아직까지도 선명했다. 그 목소리는 자꾸만 그녀를 재촉했다.
감히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실수를 저질렀다. 어서 만회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트레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녀라고 빈손으로 온 건 아니다. 번쩍거리는 조명이 건물을 무섭게 비추고, 뱀파이어들은 그림자가 나타나지 않게 섬광을 계속 터트렸다.
“진입!”
뱀파이어 소년들의 저 특별한 이능력과 마주하는 건 트레나도 정말 내키지는 않았다. 그들의 능력은 특별한 수준을 이미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되도록 놈들을 생포해야 했다. 그래야 저놈들을 잡아다 태조께서 실험을 하실 것 아닌가.
늑대인간들보다 훨씬 더 바르그의 피에 가까운 존재들.
반드시 생포해야 했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