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6. 꿈 (2) (46/81)


46. 꿈 (2)
2022.11.22.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에이, 뭐야…….”

안개가 된 수하를 잡을 수 있는 소년을 찾는 데 실패했다. 다들 예상했던 대로라며 아무렇지도 않아 했는데, 유일하게 실망한 사람이 바로 수하 본인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안개가 된 모습으로 바닥에 푹 가라앉아 버렸다. 가만히 보고 있던 시온이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무도 널 못 잡는다니까.”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우린 그 무서운 여자 뱀파이어를 잡아야 한다니까. 또 안개가 되어서 도망가면 어떡해?”

그게 너무 걱정이 되고 신경 쓰이는지 가만 생각하던 수하는 이윽고 결론을 내렸다.

“내가 쫓아가야겠다.”

“그건 아니지! 쟤가 제정신이 아니네.”

시온이 결국 고개를 흔드는 사이, 헬리는 안개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나도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있는데 수하 네가 왜 위험하게 레일건 마스터를 상대해?”

팔짱을 낀 채 그들을 보고 있던 칸도 끼어들었다.

“그래. 나도 있는데.”

일부러 칸은 빼고 말하는 헬리의 의도를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꾸역꾸역 더 열심히 끼어들었다.

웬만한 일에는 동요하지 않는 헬리가 수하의 일에는 평소와는 달리 예민하게 반응하는 게 꽤나 재미있었다. 혹은, 칸 역시 헬리를 계속 긁어 보고 싶었다. 묘한 일이었다.

지금도 헬리는 칸의 말에는 반응도 보이지 않고서 수하에게 내내 손만 내밀고 있었다. 곧은 눈이 안개가 된 수하의 눈을 뚫어지게 똑바로 쳐다보았다.

‘쟨 어떻게 내 눈을 바로 찾는 거지?’

괜히 심장이 덜컥 떨어지는 느낌이라, 수하는 시선을 슬며시 피했다.

하지만 헬리는 기어이 그녀의 시선이 가는 곳으로 따라가며 손을 흔들었다. 어서 잡고 일어나라는 뜻이다. 안개가 된 수하라도 그에겐 똑바로 보이는 게 분명했다.

“너희 둘은 내가 제대로 보여?”

수하는 괜히 말을 돌렸다.

“안개가 아니라 원래 모습으로 보이는 거야?”

헬리는 고개를 흔들었고, 칸이 뒤에서 입을 열며 다가왔다.

“그냥 감만 잡을 뿐이야. 여전히 안개인데.”

안개가 된 수하를 잡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소년들은 어수선하게 자리를 잡고 저마다 각자 일을 하거나 잡담을 하기 바빴다. 그 잡담이란 것도 결국 앞으로 있을 전투에 대한 논의가 대부분이었다.

칸이 빠져나온 자리에 선 이안과 카밀이 무너진 숙소와 레일건 쪽을 내내 주시하고 있었고, 노아는 그림자를 가지고 놀며 안개가 된 수하를 잡아보려고 열심히 연구 중이었으나 내내 실패했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도 감으로 아는 거야?”

“나는 감이야. 어떻겠다, 하고 예상을 하는 거지. 지금은 쪼그려 앉아 있는 것 같고.”

칸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럼 헬리는? 수하의 눈이 여전히 손을 내밀고 있는 헬리에게로 향했다. 아차. 그녀는 그의 손 위에 뒤늦게 손을 내려놓았다. 당장 헬리는 그 손을 잡고 일으켰다.

“바닥이 차잖아.”

“으응.”

수하는 그의 손에서 얼른 손을 뺀 뒤에야 다시 본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어쩐지 헬리와 눈을 마주치기가 곤란해서 괜히 시선도 피했다. 잠깐 잡았던 손이 화끈거리는 게 불이라도 나는 것 같았다.

“난 대충 보여.”

헬리는 뒤늦게 대답했다. 그는 수하가 시선을 피하고 있어도 그녀를 언제나 바르고 곧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보여?”

깜짝 놀란 수하가 고개를 홱 들었다.

“보인다고? 내가 안개가 아니라 이런 모습으로 보여?”

“안개인 네 모습이 보이는 거지. 내가 눈썰미가 좋은 편이라.”

“그게 시력이 좋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닐 텐데.”

칸이 픽 웃으며 끼어들었다. 그건 맞는 말이라 수하는 헬리를 이상하다는 듯 눈썹을 모으며 빤히 쳐다보았다.

그 반응이 이해가 되면서도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귀엽기까지 해서, 헬리가 웃으며 물었다.

“왜, 내가 수상해?”

“아니, 수상한 게 아니라!”

화들짝 놀란 수하가 양손을 내밀어 흔들며 고개를 내저었다.

“충분히 수상한데.”

칸은 깐족대는 걸 잊지 않았다.

“그냥 흐릿하게 보여.”

안개 사이에, 머리카락이 긴 여자의 형체가 흐릿하고 아주 어렴풋이 보였다. 눈을 가늘게 뜨고 집중하지 않으면 금방 놓쳐버릴 것 같아서 오히려 헬리가 조마조마했다.

뭐 때문에 그녀를 알아차릴 수 있는 걸까. 그는 노아도 함께 꾸었던 꿈을 떠올렸다. 아마 그 꿈 때문이겠지. 그저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자세한 건 이미 알고 있는 눈치인 사람을 잡아서 물으면 될 일이고.’

그런 점에서 레일건 마스터는 상당히 경솔하다고 볼 수 있었다.

뱀파이어 소년들은 밤필드 보육원 선생님들의 죽음으로 인해 끝내 알지 못한 그들의 과거와 수많은 비밀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알아내려 했다. 그러니 소년들을 아는 이가 있다면 세상 끝까지 추격해서 심문하고, 머릿속을 읽어내고야 말 것이다.

“그러니까 그 뱀파이어는 걱정하지 마. 나와 칸이 잡으면 되니까.”

그거야 다행이긴 한데 수하에게는 또 다른 고민이 있었다. 정확하게는 레일건에 갔다가 생긴 고민이다.

꿈에서 만난 사람이 현실에 존재할 가능성은 의외로 높을 거다.

친구들과 가볍게 웃은 수하는 그렇게 생각하며 어떻게든 레일건에서 얻은 새 고민을 털어내려 애썼다.

보통 유명인이나 연예인이 꿈에 나오는 일이야 평범했다. 생각지도 않은 사람이 나왔다고 오히려 당황하는 일도 있으니, 괜찮았다.

하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이 꿈에 등장했는데 사실은 현실에도 있는 사람이라면?

수하는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결국 내가 이상한 건가?’

뱀파이어 소년들은 그녀가 특별하다고 말해줬다. 그래서 여태까지 내내 입에 달고 살았던 ‘이상하다’는 단어는 잠시 잊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다시 사용하게 됐다. 뱀파이어 소년들이 불을 다루거나 그림자를 다루고,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건 최소한 그들이 ‘뱀파이어’라는 조건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수하는?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냥 평범한 인간이 맞았다.

평범한 인간이 안개로 변하고, 웬만한 뱀파이어들을 때려눕힐 정도로 강한 이유가 뭘까?

“그럼 레일건 마스터는 어디로 간 걸까?”

소년들이 두런두런 말하는 소리가 들리자 수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노아는 복잡한 얼굴로 헬리의 말을 듣다 가능성을 말했다.

“혼자 튄 건가?”

“그런 건 아닌 것 같아. 지원을 요청하러 간 것 같고, 그리고…….”

헬리는 떠나온 레일건 쪽을 바라보았다. 완전히 뒤집어 엎어놓고 떠난 레일건에 아직 도착하지 않은 레일건 마스터의 부하들이 많았다. 그들이 레일건에 오면 엉망이 된 술집을 보며 당황하고, 또 분노할 것이다.

“내가 붙잡아서 읽은 놈이 그리 마스터에게 가까운 놈은 아니었어. 간신히 방문 앞만 지킬 정도인 거지, 핵심적인 정보는 어렴풋하게만 알아.”

“아니야, 그래도 이렇게 알아낸 게 어디야?”

노아는 고개를 흔들었다.

“솔론이 그랬잖아. 그 여자가 우리를 알고 있는 것 같다고. 그 점에 대해서 더 알아내고 싶었는데, 레일건에 계속 있으면서 나타나는 놈들을 붙잡아다가 머릿속을 읽을 수도 없고.”

중얼거리던 헬리는 문득 구석에 앉아 있던 수하와 눈이 마주쳤다.

어라. 그녀가 시선을 피했다. 아주 자연스럽게 다른 쪽으로 시선을 옮겼지만 헬리는 그녀가 시선을 분명히 피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무슨 일이지?’

잇따른 전투와 계속되는 긴장 상태가 피곤한가? 그거야 당연한 일일 거다.

아니면 레일건이 불쾌했나? 늑대인간들의 신체를 박제해서 걸어놓은 게 불쾌하긴 어마어마하게 불쾌했다. 덕분에 마한과 칸 등 레일건에 다녀온 늑대인간 소년들의 기분이 상당히 저조했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던 헬리는 결국 뒷마무리는 이안과 자카에게 맡긴 채, 수하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움찔 놀란 그녀는 그와 지금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기분인 게 분명했지만, 헬리는 모르는 척 태연하고 뻔뻔하게 그녀의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오늘도 하루가 길었다, 그치?”

“응.”

말을 시키니 또 곧잘 고개를 끄덕인다.

“힘들어?”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 힘들어. 힘든 건 너희지.”

수하는 그렇지 않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새로운 숙소는 더더욱 경비가 삼엄했고, 늑대인간 소년들과 뱀파이어 소년들은 너나 할 거 없이 눈에 불을 켜고 주변을 경계했다.

“수하야.”

헬리는 묻고 싶지 않았던 것을 물어야 할 때가 왔다는 걸 직감했다.

그녀의 말간 눈이 그를 겨우 바라보았다.

 
눈을 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함께 마주 봤으면 좋겠어. 보고 웃어줬으면 좋겠어. 하지만 그건 안 되는 걸까? 말하지 못하는 수많은 바람이 그의 안에서 부서졌다.

어쩌면 수하는 그녀가 바라던 대로 평범하게 살다가, 평범하지만 그녀를 아껴주는 남자와 행복하게 사는 게 최고일지도 모른다. 앞날이 과거만큼이나 불투명한 뱀파이어와는 어울리지 않는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온 게, 아니, 나와 만난 게…….”

하지만 이미 그에겐 공주님인데. 오늘 레일건에서 본 재상의 사진으로 다시 한번 더 확실해졌는데, 수하가 싫다면 그는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야.”

“어?”

뜻밖에도 자신을 강하게 부르는 수하의 목소리에 헬리는 도리어 얼빠진 소리를 냈다.

“나 여기 온 거 후회도 안 하고, 딱히 싫다는 생각은 요만큼도 안 했으니까 이상한 거 물어보지 마라.”

그는 멍하니 수하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알았어?”

“가서 네 표정이 어떤지 거울 봐. 그 표정으로 거기까지 말했으면 뻔하지.”

하하. 헬리는 그만 웃어버렸다. 눈이 화사하게 접히자 수하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쟤는 무슨 얼굴에 자체 조명이라도 달았나, 왜 웃으면 더 반짝반짝거리지? 보는 사람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괜히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한번 힐끔거리니 그는 조금 수줍게 고개를 숙이며 연신 웃기만 했다. 좋은 건가? 좋은 거지?

“왜?”

“네가 날 그 정도로 파악한 줄은 몰랐어. 내가 표정 변화가 별로 없어서 다들 잘 모르거든.”

수하는 새삼스럽게 룸메이트 알렉스가 헬리에 대한 소문을 들뜬 목소리로 말해주던 걸 떠올렸다. 어쩐지 그때가 무척 오래된 것처럼 느껴진다.

“응. 너 그래서 왕자님이라며. 절대로 다가갈 수 없는 선을 쫙 그어버리는 왕자님.”

“아니, 그런 거 아닌데……. 진짜 아니야.”

헬리는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열심히 흔들었다. 윤기 도는 검은 머리카락이 함께 찰랑거린다.

“너는 아닌 거 알잖아, 그치?”

얼굴을 가까이 내밀고 그렇게 물어보는 건 치사한 거 아니냐……. 수하는 가까이 다가온 헬리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바로 항복하기로 했다.

“아, 알지.”

“그렇지?”

그가 활짝 웃었다.

신기했다. 수하가 대체 뭐라고 저렇게 웃다가, 또 바로 아니라고 고개를 열심히 흔들다가, 또 웃을까? 그녀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고 헬리는 멀리서 바라봐도 좋을 만큼 환하게 빛나는데.

“네가 우리와 함께 온 걸 후회하는 줄 알고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어.”

헬리는 한숨을 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여기까지 와서 그런 말을 하는 건 너무 치사하고 무책임하잖아.”

한번 함께하기로 했으면 끝까지 같이 있어야지.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거고, 의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던 수하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럼 만약에 최악의 상황이면, 다 같이 죽어야 하는 건가?’

아니, 그건 좀 지나치게 극단적이니 생각을 관두자. 죽기도 싫고 어차피 더 생각할 수도 없었다. 옆에서 헬리가 자꾸만 그녀와 눈을 마주치려고 애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일건 마스터의 방에서 뭘 발견했는지 이안과 칸이 이야기를 나누고, 오늘 나서지 않은 소년들이 그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는 사이, 구석에 있는 두 사람은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무책임한 것과는 별개로 후회는 할 수도 있잖아.”

“그럴 수도 있지만 아직은 아니야.”

야무지게 대답하니 헬리는 또 뭐가 그렇게 좋은지 푸스스 웃는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 와중에 헬리가 한결같이 수하를 대하니, 그걸로 그나마 의지가 되었다. 모든 게 바뀌어도 그는 바뀌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럼, 뭔지 물어봐도 돼?”

“뭘?”

“걱정하고 있는 게 있잖아.”

“내가?”

수하가 되묻자 헬리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더니 웃었다.

“억지로라도 들어야겠다는 뜻으로 물어본 건 아니었어.”

고민이 없는 척하고 싶다면 그건 그거대로, 수하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궁금해서.”

안개화 능력으로 소년들을 도울 건 없는지 열심히 고민하고, 그녀를 붙잡을 수 있다면 마스터도 붙잡을 수 있을 거라고 적극적으로 나서던 수하가 왜 의기소침해졌는지 궁금했을 뿐이다. 언제나 신경 쓰고 있기도 했고.

헬리는 머뭇거리는 그녀의 곁에 그냥 앉아만 있었다. 프린태니어 시 어느 건물에나 있는 벽난로의 장작을 살피고, 수하의 무릎에 담요도 덮어주었다.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흐르는 사이, 어느덧 소년들이 하는 이야기는 레일건 마스터 방에서 찾은 남자 사진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걸 가져왔어. 아무래도 이놈이 마스터의 윗선인 듯싶어.”

흑백사진을 본 노아가 당장 움찔거렸다.

헬리 형, 저거, 저놈 재상 맞지?

헬리는 노아만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다른 형제들의 표정을 살폈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