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프린태니어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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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프린태니어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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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프린태니어 (10)
2022.11.01.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레일건 마스터 트레나는 회색 먼지를 뒤집어쓴 채 완전히 폭삭 무너진 건물을 멍청하게 쳐다보았다.
본능적으로 뒤로 멀찍이 거리를 벌렸으니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건물에 깔릴 뻔했다. 게다가 코를 찌르는 이 악취는 뭔가. 화끈대는 열기에 얼굴이 쓰라렸다. 마늘이다.
이미 그녀의 부하 중 상당수가 충격파에 휩쓸리거나 날아드는 파편과 은바늘에 맞고, 혹은 미처 피하지 못해 그대로 흙먼지와 부서지는 벽돌 사이로 사라졌다.
“마스터!”
거대한 폭발음에 고막이 멍해서 소리마저 잘 들리지 않았다. 이런 적이 얼마 만이던가. 트레나는 기억을 헤아리다가 접었다. 그녀를 잡은 부하가 고함치는 소리가 아스라하게 들렸다.
“잘 안 들려.”
트레나는 웅얼거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부상당하셨습니다! 어서 자리를 피하십시오!”
“아, 그건 들리네.”
자리를 피하긴 뭘 피해. 지금 사냥을 위해 데리고 나왔던 최정예가 반이나 날아간 마당에.
트레나는 여기저기 찢어지고 다친 부하가 부축하는 손을 거절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났다는 건 바꿔 말해 쓰러져 있었다는 거다. 아. 충격파에 조금 휩쓸렸구나. 이제야 기억이 났다.
“저기서 뛰어나온 놈들 있어?”
트레나는 본능적으로 머리를 감쌌던 팔을 쳐다보았다. 화상을 입은 듯 벌겋게 드러난 살에 은바늘이 가득 박혀 있었다. 그녀는 험악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함정이었군.”
뒤늦게 트레나의 입에서 다채로운 언어로 알록달록한 욕들이 쏟아졌다. 이 새파랗게 어린 것들이 감히.
그녀는 그러다가도 킬킬 웃었다. 부하가 우리 마스터께서 어디 머리를 다치신 게 아닌가, 하고 걱정할 정도로 배를 잡고 웃었다.
“영악한 것들. 그래도 머리는 돌아가네. 그래. 이래야 상대할 맛이 나지.”
에스티발 시 물류창고도 날리고, 이번엔 감히 트레나 앞에서 건물도 하나 날려버렸다. 이거 상대하는 재미는 있겠다. 재미는 있는데 분노와 위기감도 같이 왔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마스터,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지나가다가 휩쓸렸다고 하면 그만이야.”
그냥 슬쩍 넘어갈 정도로 레일건 마스터는 이 동네에 오래 있었다. 동네 터줏대감이자 토박이인 그녀가 방화, 혹은 폭발사건에 연루되었다고 누가 믿을까? 당장 레일건에는 경찰들도 단골로 드나들고 있었다.
사람 좋고, 공짜 술도 퍼주고, 늘 하하 웃기만 하는 오래되고 조금 촌스러운 옛날 술집 주인이 사건 현장 근처에 있었다고? 아이고, 큰일 날 뻔했네. 다친 곳은 없으시고? 경찰차로 레일건까지 태워다 드릴까요? 아, 다들 같이 외출하셨다가 휩쓸리셨구만. 그럼 조심해서 가십쇼.
그런 식으로 끝날 게 뻔했다. 사람들의 신용과 반복되어 쌓인 기억은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었고, 그 힘을 믿었기에 레일건은 프린태니어 시 구석을 일부러 오래도록 지키고 있었다.
트레나는 비틀대며 앞으로 한 발자국 내디뎠다.
“위험합니다. 불도 있고, 저 안에 무슨 폭발장치가 더 있을지 모릅니다. 은을 조심하셔야 합니다, 마스터! 더 나아가시면 안 됩니다!”
부하가 그녀를 황급히 뜯어말렸고, 그녀도 더 나아가지는 않았다.
“얼마나 당했어?”
“……파악 중입니다. 아니, 이제 파악을 해야 합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근처에 널브러진 익숙한 얼굴들이 둘이나 보였다.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들린다. 분명히 어린놈들이 부상자들을 죽이려 나섰을 거다. 트레나도 안다. 그녀라도 분명히 그랬을 테니까.
너무 서둘렀을까. 실책이었다. 명백한 자신의 실책 앞에서 트레나는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가 떴다.
이젠 어쩔 수 없이 마지막 방법을 써야 했다. 일이 터지면 상부에 보고하는 게 당연한 순서다.
“가야겠군.”
그녀의 언니 트리샤는 태조께서 어디에 계신지 말해주지 않으려고 의뭉스럽게 굴었지만, 트레나도 마음만 먹으면 언니를 거치지 않고 태조께 갈 수 있었다.
좀 방법이 귀찮고 번거로울 뿐이지만, 어쩌겠는가. 프린태니어 시에 있던 최정예 뱀파이어 절반 이상이 부상당했다. 개중에는 분명히 사망자도 있을 거다.
트레나는 당장 피를 줄줄 흘리고 살이 화끈대며 녹아내린 이 몰골 그대로 태조께 가기로 결정했다.
“추가 습격은 없는 모양이지?”
“예. 조심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 어린놈들이라 기대했는데 패기가 여기까진가.”
그녀였다면 거하게 터트렸으니 살아남은 잔당들을 싹 쓸어버렸을 거다.
멀리 하늘에 소방차 전조등이 번쩍거리는 게 보였다. 엉덩이 무겁기로 유명한 프린태니어 시 소방관들이 드디어 움직이나 보다. 어린놈들이 부른 거겠지. 어쩌면 그 어린 것들은 일반인들의 시선도 신경 쓰나 보다.
트레나는 거기까지만 생각하고 현장을 빠르게 떠났다. 시간이 없었다.
*
건물이 갑자기 폭발한 건 노후한 시설에 가스가 누출되어 우연히 그렇게 된 거라고 매듭지어질 예정이었다. 나머지 수상한 마늘이나 은바늘 같은 건 현장을 정리하러 간 소년들이 대충 해결하고 올 거다.
그렇게까지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마친 엔지는 뿌듯한 얼굴로 기지개를 켰다.
뱀파이어들과의 싸움에서 언제나 숫자로 열세였던 늑대인간들은 그들과 정면으로 붙는 방법 말고도 다른 여러 가지 묘수를 가지고 있었다.
엔지는 지금 막 현장에서 나온 소년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밤하늘에 소방차 사이렌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왔어? 수고했어.”
“마스터라는 인물이나 그 뱀파이어 여자는 못 잡았어.”
매캐한 마늘 연기 냄새를 몰고 온 칸이 고개를 흔들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지. 뱀파이어들이 얼마나 죽었어?”
자카는 냉정하게 머릿수부터 헤아렸다. 저쪽 전력이 얼마나 깎여나갔는지가 가장 중요했다. 이쪽은 지금 막 회복 중인 부상자 셋에 아직 전투가 서툰 수하까지 있어서 여러모로 불리하다는 걸 언제나 염두에 두고 싸워야 했다.
“최소 반 이상이야. 대충 눈으로 헤아리고 왔지만 분명해.”
칸의 대답에 엔지와 자카의 표정이 동시에 환해졌다. 목표했던 대로 됐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좋아. 잘됐네.”
이안은 뚝뚝 소리를 내며 목을 이리저리 꺾었다. 그의 곁에는 부상에서 슬슬 회복한 마한이 손목을 돌려보고 있었다.
가장 민첩하고 빠른 소년들과 힘이 대단한 소년들로 소수만 뽑아 구성된 습격대가 오늘의 마무리를 할 것이다. 기껏 어마어마하게 폭발도 일으켰고, 타격까지 주고 왔는데 그냥 지나가는 건 몹시 섭섭한 일이 아닌가.
“다 몰살하는 게 목표가 아니야. 생포만 하면 좋겠지만, 일단 전력만 가늠해보자.”
많은 건 바라지도 않는다며 엔지가 마한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마한은 대답 대신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상 입은 놈들은 다 죽여.”
지금 죽이지 않으면 언젠가 다시 그들의 목을 물어뜯을 뱀파이어들이다. 처리할 수 있을 때 빨리 처리해야 했다.
앳된 얼굴로 삶과 죽음을 논하는 엔지는 우리가 언제 여기까지 왔냐며 한숨을 쉬는 단계도 이미 지나버렸다. 이건 현실이고, 그들은 살아남아야만 했다.
“가자.”
칸은 뒤에서 수하를 데리고 나오는 헬리를 보며 고개를 까딱였다.
폭발 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자카와 엔지는 폭발이 있기 직전까지 그 근처로 모여드는 뱀파이어들을 지켜보았고, 또 정리하러 나온 형제들의 손을 빠져나간 잔당들이 폭발 후에 어느 방향으로 사라졌는지도 추적했다. 그걸 바탕으로 곧장 느긋한 밤 산책이 시작되었다.
“레일건 마스터는 나와 헬리가 상대할 테니까, 마주치면 곧장 뒤로 빠져.”
그건 수하도 포함된 당부이자 경고였다. 객기를 부려선 안 될 일이라고 다시 한번 말한 칸이 가장 먼저 밤하늘을 휙 날았다.
탄탄하고 날렵한 체구를 가진 소년들이 소리 없이 어둠 속에서 빠르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호흡 한번 흐트러지지 않고 어마어마한 속도로 이동한 뒤, 마스터의 명령을 받고 되돌아가던 뱀파이어들의 꼬리를 밟았다.
뚜둑!
물론 꼬리를 밟았다는 걸 아직까지는 들켜선 안 된다. 이안은 조용히 부상당했던 뱀파이어의 목을 꺾고, 근처 쓰레기통 안에 시신을 휙 넣어버렸다.
헬리. 이놈들, 아까부터 느낀 건데 확실히 드리프터들과는 달라.
어떤 점에서?
부상을 입었어도 뼈가 튼튼해. 꺾는 맛이 달라. 붙어보면 힘도 다르겠는데?
물어본 내가 잘못이다.
지극히 이안다운 표현으로 대답이 돌아오자 헬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물론 그도 지금 막 뱀파이어 하나의 목을 꺾은 후였지만 말이다.
사실 이안이 ‘뼈가 튼튼하다’고 말한 뱀파이어들은 드리프터들과 비교한다면 무척 불쾌해할 정도로 훨씬 뛰어난 이들이었다.
드리프터보다는 레일건 마스터 트레나에게 가까운 존재들이었고, 그래서 트레나의 수하로 오랫동안 활약했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가. 그들은 지금 지독한 폭탄에 부상을 당해 현장에서 빠르게 빠져나갔지만, 안타깝게도 길 위에서 걸려 소리도 없이 죽어가고 있었다.
레일건으로 향하는 뒷골목의 커다란 쓰레기통에 던져 넣어진 뱀파이어들의 시체에 불을 놓은 지노는 시체가 타는 모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확실히 드리프터들을 태울 때보다 시간이 더 걸려.’
웬만하면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주의인 그에겐 상당히 거슬리는 일이었다. 물론 완전히 연소될 때까지 절대로 꺼지지 않는 불을 놓은 거지만, 시간은 언제나 생명이다.
지노는 가만히 보다가 화력을 조금 더 높였다. 시체를 날름대며 핥는 불의 색이 휙 바뀌기 시작했다.
‘아, 너무 높였네!’
지노는 아차 싶어 다시 화력을 낮췄다. 그럼 또 원래 익숙하던 드리프터들을 태우는 온도다.
그는 한숨을 푹 쉬었다. 온도조절을 하는 폭이 좀 더 넓어진 건 좋지만, 조절은 아직 미숙하다. 도대체 어쩌다가 능력치의 폭이 넓어진 건지 알 수가 없단 말이야.
지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한 번 더 시도해보기로 했다.
“뭐하냐?”
뒤에서 들리는 마한의 목소리에 지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보면 모르냐, 시체 태우는 중이잖아. 대충 두고 가.”
“잘 타?”
“전혀. 드리프터들과는 달라.”
마한은 어깨에 걸치고 왔던 죽은 뱀파이어의 시체를 휙 던져 넣었다.
“그럼 더 센 뱀파이어네.”
드리프터들이 대다수였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은 점점 달라지고 있었다.
“쫄았냐?”
지노가 툭 물었다.
“좋다는 거지. 쫄긴 뭘 쫄아. 아, 저 짜증 나는 뱀파이어, 너네는 왜 맨날 시비냐?”
“내가 시비 안 걸었으면 네가 걸었을 거 아냐.”
“아.”
정확한 지적에 마한은 우뚝 멈춰 섰다.
“그건 그래.”
“거봐.”
여기 자카가 있었다면 둘 다 무슨 시답잖은 소리만 하는 거냐고 당장 인상을 썼을 거다.
하지만 시체를 태우는 동안 달리 할 게 뭐가 있을까. 더구나 나이트볼 경기장에서만 마주하던 얼굴이라, 이렇게 따로 마주해서 말하는 건 영 어색했다.
“다친 데는 좀 괜찮냐? 다닐 만해?”
“다쳐도 뱀파이어 때려잡는 데는 문제 없어.”
마한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일렁이는 불꽃의 색을 보다가 돌아섰다. 마침 헬리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레일건 진입 직전이야.
“오.”
지노도 고개를 들었다. 그 재미있는 일에 빠질 수야 없지.
순식간에 쓰레기통이 심하게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저 불이 얼마나 뜨겁길래 커다란 철제 쓰레기통까지 녹기 시작하는지 전혀 알고 싶지 않았던 마한은 얼른 그 자리를 떠나 레일건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빠른데. 함정 아니야?
지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헬리에게 물었다.
부상자가 많았던 건 사실이야. 이안이 확인한 바로는 폭발 현장에 시체가 꽤 많대.
그렇다면야 엔지가 일을 제대로 한 거다.
문제는, 레일건인데.
헬리가 숨을 가볍게 내쉬며 눈앞에 있는 술집 레일건을 바라보는 게 다른 소년들에게도 전달되었다. 이제 어떻게 할까?
어떻게들 생각해?
*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레일건의 반질반질하고 손때 묻은 등받이 없는 의자가 날아갔다.
어떻게 하긴. 일단 쳐들어가야지.
뱀파이어 소굴 한복판에서도 당당한 칸은 의자에 맞아 쓰러진 뱀파이어가 완전히 머리를 바닥에 떨어트리기도 전에, 두 놈을 더 처리했다.
그 여자는?
헬리의 물음에 안 그래도 주변을 계속 둘러보고 있던 칸은 바로 대답했다.
안 보이는데. 헬리 너는?
이쪽에서도 안 보여.
그렇다면 물어봐야지. 칸은 새로 붙잡은 뱀파이어에게 상당히 정중하게 물었다.
“마스터는 어디 있냐?”
“크윽!”
하지만 뱀파이어는 그의 손목을 붙잡고 오히려 복부를 걷어차려 했다.
나름 정중하게 물은 건데 싫다면야 어쩔 수 없지. 칸은 공격을 막아냈다. 콰당탕, 술집 안의 집기가 죄다 부서졌다. 술집 주인이 봤다면 진심으로 슬퍼할 만큼 허공에는 나무 조각이며 깨진 유리 파편이 마구 튀어 올랐다.
레일건 마스터가 바텐딩을 하던 곳은 상황이 더 심각했다. 진열해뒀던 술병이 깨져 술이 바닥에 줄줄 흘러내리고, 유리 조각이 깨져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물어봤는데 얘네 왜 대답을 안 하냐?”
칸은 주먹을 날리며 알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모르나 보지.”
뒤에 있던 마한이 심드렁하게 대답하며 천장을 쳐다보았다.
“위층으로 올라가 보는 건 어때?”
그때 그의 말에 대답하듯 쨍그랑, 하고 위층 창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음. 올라갔네.”
마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