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프린태니어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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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프린태니어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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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프린태니어 (9)
2022.10.25.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레일건 마스터 트레나는 아주 긴 시간을 살아온 1세대 뱀파이어였다.
고귀하신 최초의 뱀파이어에게서 귀중하고도 붉디붉은 피를 받아 뱀파이어가 된,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존재.
그녀는 뱀파이어가 된 순간부터 피를 즐겼고, 뱀파이어가 되기 전부터 살육을 즐겼다. 파괴와 폭력은 그녀의 본능이나 다름없었다.
그녀의 쌍둥이 언니 트리샤는 우아하고 젠체하길 좋아해서 깔끔을 떨었지만, 사실 쌍둥이의 기질이야 비슷했다.
“에스티발 시 물류창고에 붙잡혀 있던 늑대인간은 십여 명입니다. 열다섯 명가량 되었던 것 같은데 서류까지 전부 불에 타서 정확하지 않습니다.”
공을 세우는 것에 눈이 멀어 관리하고 있던 거대한 창고 하나가 날아갔다는 건 몰랐던 트레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최초의 뱀파이어 태조께서는 지금도 그들을 위해 더 큰 힘을 찾아 헤매고 계신데, 그분의 목표에 걸림돌이 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트리샤가 알면 배를 잡고 웃겠지.’
물론 여태까지 트리샤가 백 년에 한 번 실수를 할 때마다 신나게 웃어줬던 트레나다. 그녀는 자신이 했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이를 악물었다. 쌍둥이 언니의 짜증 나고 재수 없는 반응과는 별개로, 늑대인간들의 이송에 차질이 빚어졌는데 그걸 몰랐다는 건 너무 커다란 실책이었다.
“그래서 에스티발 시 물류창고에 이송되어야 할 늑대인간들을 둘 곳이 사라졌습니다. 그 때문에 이송하던 배 안에서 소란이 일어 드리프터들이 당황한 틈을 타 탈출한 늑대인간들이 몇 있다고 합니다.”
“그걸 왜 내가 이제야 아는 거지?”
“죄송합니다.”
당연히 숨기던 놈이 있었으니 이제야 알게 된 거다. 애초에 덜덜 떨면서도 프린태니어 시 레일건 마스터에게 이 일에 대한 제보를 하겠다는 놈이 왜 있었겠나.
트레나는 적어도 자신이 그때 직접 나가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일찍 이야기를 들어서 조사를 시작했으니 망정이지, 물류창고에서 늑대인간들을 받아 하역하던 반장이 더 뭉개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땐 꼼짝없이 태조께서 하시는 원대한 일에 차질이 빚어졌을 거야. 큰일 날 뻔했어.’
물류창고에서 이쪽으로 이송되었어야 할 늑대인간들이 당장 사라졌으니 그건 그거대로 큰일이었다.
그러니 프린태니어 시를 돌아다니는 저 건방진 늑대인간 소년들부터 통째로 잡아다 태조께 바치자. 더 신선하고 혈기 넘치며, 보통 늑대인간들보다 훨씬 능력이 뛰어난 듯했으니 태조께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정말 죄송합니다, 마스터.”
부하들은 그녀가 물건을 파괴하다 못해 자신들의 목을 꺾어버릴까 봐 극도로 두려워하며 연신 빌었다.
“지금은 아직 늦지 않았다.”
프린태니어 시의 술집 레일건에서 늑대인간들을 납치해 오는 모든 조직을 총괄하고 있던 마스터는 부하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쯤에서는 우리가 수습할 수 있어.”
부하들의 얼굴에는 짙은 결의가 서렸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엄청난 사고에 모두가 당황했지만, 역시 믿을 건 고귀하신 뱀파이어의 오른팔인 마스터뿐이었다. 그들을 죽이지 않는다면, 마스터는 가장 든든한 우두머리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늑대인간들은 더할 나위 없이 상태가 좋다.”
바꿔 말하면 생포가 상당히 힘들 거라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트레나 앞에 모인 뱀파이어들은 씩 웃기만 했다.
“함께 움직이는 어린 뱀파이어들은 내가 아는 놈들인 것 같다. 하지만 걱정할 거 없어. 이 정도 인원이라면…….”
트레나는 술집 레일건을 꽉 채운 뱀파이어들을 돌아보았다. 하찮은 드리프터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뱀파이어들이다. 여태 트레나가 레일건을 오래도록 운영하면서 고르고 골라온 윗세대 뱀파이어들이자 소중한 그녀의 무기들이기도 했다.
“아직 능력이 모자란 그 어린놈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보아하니 본디 제 능력의 반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트레나의 선에서 끝날 일이다.
일곱 놈이 다 있으려나? 어쨌든 그놈들의 목을 따고, 늑대인간들을 질질 끌어다 태조께 바치면 그분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
상상하니 황홀할 지경이었다.
“당했으니 똑같이 되돌려줘야지.”
그녀의 말에 뱀파이어 부하들은 낄낄대며 웃었다. 얼핏 들으면 레일건에 늘 넘쳐나던 술꾼들의 웃음소리와 같았지만, 좀 더 음험하고 어두웠다.
“불을 지르고, 뛰어나오는 대로 사냥한다.”
“예!”
들썩거리는 움직임에 레일건의 낡은 조명이 삐걱대며 흔들렸다. 뱀파이어들이 날뛰어대는 그림자가 흔들리는 조명을 따라 어지럽게 춤을 췄다.
*
프린태니어 시, 레일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회색 건물 근처에 뱀파이어들이 스몄다.
그들은 건물을 마치 포위하듯 바라보았다. 좁고 더러운 뒷골목을 공유하며 건물과 건물들이 전부 이어져 있었지만 뱀파이어들은 다른 건물이나 민간인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자정을 넘긴 시간에 이곳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어린놈들이 영악하긴.”
사람들의 눈을 피해 레일건 코앞까지 스며든 건 머리가 좋았다만, 이렇게 빨리 들킬 줄도 몰랐겠지. 레일건 마스터 트레나는 씩 웃었다.
“시작해.”
그녀가 당했던 만큼 똑같이 되갚아줄 테다.
숲에서 그녀를 혼비백산하게 했던 불덩어리와 똑같이, 기름을 잔뜩 머금은 천에 붙은 불이 화르륵 타오르면서 허공을 갈랐다. 이번에는 트레나가 되돌려주는 공격이었다.
기름통에서 쏟아진 기름이 이미 건물 주변을 온통 적셨다. 프린태니어 시의 여느 건물들이 다 그렇듯, 이곳 역시 어지간히 낡았으니 불이 붙기엔 최적의 상태였다.
펑!
기름과 불이 만나면서 얌전하게 불이 붙는 게 아니라, 요란한 소리를 내며 터지기 시작했다. 가까이 있기만 해도 위험하다.
“저러니 애들더러 불장난을 하지 말라는 거지.”
트레나의 말에 뱀파이어들이 낄낄 웃어댔다.
펑, 펑 하고 터져대는 불들이 급기야 무섭게 기세를 키우며 건물을 타고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혀를 날름대며 올라간다. 까만 연기가 뭉게뭉게 퍼지는 사이 사나운 눈들이 울며 뛰쳐나올 어린 소년들을 기대하며 가만히 주시하고 있기만 했다. 살의와 피에 대한 열망에 뻘겋게 물든 눈들은 불길보다 더 사나웠다.
어서 나와라, 어서. 나오면 사지를 찢어줄 테다.
그들의 열망에 응답하듯 불길이 더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쾅!
건물 한쪽이 갑자기 터져나갔다. 회색 벽이 터져나가 파편이 이리저리 튀고, 그다음에는 가루가 후두둑 떨어진 뒤 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
요란한 폭음에 땅이 뒤흔들릴 지경이었다. 수하는 예상은 했지만 깜짝 놀라서 입을 딱 벌렸다.
“저거, 저거, 저거 저래도 되는 거야?”
폭발물을 묻어둔 엔지는 하하 웃기만 할 뿐 대답이 없었다. 저러면 안 되는 건데 한 거구나.
쾅!
첫 번째 폭음보다는 덜 시끄럽지만, 분명히 그에 영향을 받은 두 번째 폭음이 들렸다.
“어어……?”
“야, 좀, 나도 보자!”
수하는 다시 한번 이안의 쌍안경을 빼앗아서 멀리 바라보았다.
“무너지겠는데?”
“무너지겠지. 1층을 죄다 날렸는데.”
엔지와 함께 머물던 숙소에 이런저런 장치를 해놓고 나온 나자크가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뱀파이어 소년들과 늑대인간 소년들, 그리고 수하는 딱 하룻밤만 얼른 자고 나온 숙소가 무너지는 걸 멀리서 조용히 바라보았다.
“최소 5분이야. 5분 동안은 절대 가까이 가면 안 돼.”
엔지가 뱀파이어 소년들에게 당부했다. 아니, 잠깐. 이안이 의아하다는 듯 엔지를 쳐다보았다.
“너희, 폭탄에 무슨 짓 했냐?”
“으음, 우리가 여태까지 뱀파이어들을 상대한 경험을 집어넣었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하하하, 웃은 엔지가 대답했다.
“첫 번째는 마늘도 더한 폭탄이야. 고위 뱀파이어들한테는 후추 스프레이를 스쳐 맞은 정도지.”
마늘이라니. 그런 것에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뱀파이어 소년들은 픽 웃었다.
“하지만 잠시 정신을 못 차리게 할 정도는 돼. 게다가 지들이 피워놓은 불까지 겹쳤으니 아주 화끈할걸? 그리고 두 번째는, 솔직히 이번에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쓰겠냐 싶어서.”
몹시 아깝다는 표정을 지은 엔지는 한숨을 폭 쉬었다. 대체 뭐길래 저래?
“터지면서 아주 미세하지만 예리한 은 바늘이 사방에 퍼지는 폭탄 50개야.”
엔지 대신 나자크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 제작했지. 아주 화끈거릴 거다.”
“그런 건 언제 만들어서 온 거야?”
기가 막힌 자카가 물었다.
“금방 만들어. 몇 갠 원래 가지고 있었고. 너희랑 함께 싸우면서 전부 다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나자크는 가볍게 말하며 엔지의 어깨를 툭툭 쳐주다가 한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뱀파이어 소년들이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너희 어딜 가?”
“가서 나머지 처리를 좀 해야지. 전력을 아껴야 하니까 전부 다 가지는 마. 노아는 같이 가자.”
“좋아!”
짧게 대꾸하며 가서 쓰러진 잔당처리를 할 인원을 고른 이안이 고개를 까딱거리며 나자크를 보았다.
“우리는 마늘이니 은이니 그런 것에 영향 안 받거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뱀파이어 소년들이 휙 사라졌다. 아차 싶은 나자크가 칸을 보았다.
“뭐해? 쟤네가 괜찮다고 하니까 우리도 상관 않고 가야지.”
칸도 이안과 똑같이 고개를 까딱인 뒤 몸을 돌렸다.
늑대인간 소년들도 빠르게 움직였다. 잔여 폭발과 매서운 불길 속으로 두려운 기색 하나 없이 달려갔다.
*
불길이 어둠 속에서 춤을 추면 그림자도 그만큼 짙고 크다. 바꿔 말하면 이곳은 노아의 권역이었다.
숙소가 폭발한 자리에는 그림자와 함께 화끈한 마늘 냄새며 반짝거리는 은바늘이 가득했다. 신음하는 뱀파이어들이, 레일건 마스터의 금쪽같은 부하들이 들이닥친 뱀파이어 소년들과 늑대인간 소년들에 의해 완전히 정리되기 시작했다.
“으아악!”
저렇게 비명을 지르는 건 그래도 여유가 있는 쪽이다. 당장 그림자를 움직이는 노아가 그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대부분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은바늘에 가득 찔려 녹아내리다시피 한 상처를 부여잡고 뒹굴다 죽었다. 차라리 소년들이 내미는 손길이 온정인지도 모른다. 빠른 죽음이니까.
“노아, 한 놈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을 수 있겠어?”
헬리의 질문에 노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짧은 시간이라 좀 촉박해.”
“새는 부분은 우리가 도울게. 너무 무리하지 마.”
칸은 소방서가 있는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람들 눈에 띄어서는 안 되니, 어차피 여기에서 뱀파이어 잔당들을 정리하는 것도 빠른 시간 안에 끝내고 철수해야 했다.
“하지만 레일건 마스터는 여기서 잡아야 하잖아.”
노아의 눈에 의지가 넘실대는 걸 보고 칸은 이번에도 안전한 곳에 두고 온 타헬을 떠올렸다.
어디든 막내는 어떻게든 한 사람 몫을 해내고 싶어서 안달인가 보다.
다음에는 타헬도 실전에 투입할까. 아니, 일단은 부상 입은 소년들이 회복하고 나서 생각해볼 일이다. 당장 노아도 헬리를 비롯한 형들이 절대로 눈을 떼지 않는 중이었다.
“아니, 굳이 여기서 잡을 필요는 없어. 여기서 도망쳤다면 레일건에서 잡으면 되는 거지. 너무 무리하지 마.”
칸은 타헬에게 말하듯 노아에게도 부드럽게 말했다.
“그래, 저 말이 맞아. 무리하지 마, 노아.”
헬리가 노아의 어깨를 두드린 뒤 검을 쥐고 앞으로 나아갔다.
건물이 추가로 붕괴될 수도 있으니 다들 절대로 무리하지 말고, 근처에서 빠르게 정리한 뒤에 빠지자. 소방차가 올 때까지만 움직여.
뱀파이어 소년들뿐만 아니라 늑대인간 소년들에게도 말을 전달한 그의 눈이 불에 비쳐 반들거렸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