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프린태니어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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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프린태니어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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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프린태니어 (8)
2022.10.18.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야, 수하야!”
와당탕 달려나가는 노아의 뒷덜미를 급히 뛰쳐나온 헬리가 잡아챘다.
불침번을 서고 있던 소년들이 쟤네 또 잘 자다가 왜 저러냐며 고개를 내밀었고, 소란에 잘만 자고 있던 소년들도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나오는 거 기다려. 쳐들어가는 건 실례야.”
“아.”
노아는 당장 얌전히 섰다. 그러곤 뻔뻔하게 헬리를 쳐다보았다.
“한번 물어봐.”
“자는 애한테 뭘 물어봐?”
“같은 꿈 꿨냐고. 한번 물어봐.”
“꿨겠어? 너도 빨리 들어가서 다시 자.”
꿈이야 언제나 뱀파이어 소년들끼리 드문드문 꾸던 것이니 수하가 같은 꿈을 꿨을 리가 없다.
“형 지금 나랑 똑같은 꿈을 꿨잖아.”
굳이 그렇다고 대답하지 않아도 안다. 노아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헬리를 붙잡았다.
“꿈에서 본 얼굴이 나랑 붙었던 바로 그 얼굴이야.”
희번덕대는 눈으로 주변을 살피고 사정없이 달려들어 목숨을 끊어놓으려고 하던 그 여자 뱀파이어. 카밀과 함께 그녀와 싸웠던 노아는 그녀의 얼굴을 절대로 잊을 수 없었다.
“꿈이라니, 그게 또 무슨 소리야?”
마침 자고 있다가 깬 카밀이 하암, 하고 길게 하품하며 울었다.
물론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노아와 헬리가 대답을 해줄 리가 없었기 때문에 카밀은 옆을 돌아보았다. 마침 불침번을 서느라 깨어 있던 지노가 있었다.
“쟤네 무슨 소리 하는 거냐?”
다시 물었지만, 지노는 심각하게 얼굴을 굳히며 팔짱을 꼈다.
뭐야? 카밀은 이쪽으로 걸어오는 칸과 눈이 마주쳤다. 아무래도 뱀파이어들끼리 공유하는 어떤 중요한 일이 있는 모양이다.
“뭐야, 갑자기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꿈이 어쩌고 하길래 놀리려고 했더니…….”
턱을 치켜들고 뱀파이어 소년들을 슥 훑어본 카밀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도로 들어갔다.
“무슨 일 있어?”
전부 우르르 나와 있으니 칸도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야. 별 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고개를 흔드는 헬리의 표정에 별 거 맞다는 결론은 내렸지만, 저건 뱀파이어 소년들 내부의 일인 듯하니 칸은 물러나기로 했다.
그나저나 수하를 냅다 찾는다, 라. 칸은 그게 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뱀파이어들 사이에 있는 유일한 인간이라니, 늑대인간이라면 당장 기함하며 구해 오는 게 맞다.
하지만 수하가 연약한 인간인가?
‘그건 결코 아니지.’
여기에서 싸움이 나면 슬쩍 자기도 껴서 기량을 겨룰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수하는 절대로 연약하지 않다. 솔직히 칸도 그 주먹에 얻어맞는 건 사양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얗게 질린 노아가 냅다 수하의 방으로 쳐들어가려던 게 거슬리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헬리도 그와 똑같은 생각을 한 모양인지 당장 막아서 다행이었지만.
‘똑같은 생각이라.’
고개를 까딱인 칸은 몸을 돌려 원래 있던 방으로 돌아갔다.
“다시 자러 가. 잘 시간도 부족하잖아.”
헬리는 슬슬 돌아가는 늑대인간 소년들의 뒷모습을 보며 동생들 역시 다시 돌려보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하는 건 날이 밝고 나서, 조금이나마 평화로울 때 해도 된다. 물론 그사이에 그는 꿈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겠지만 말이다.
“아니, 이건 좀 말이 안 돼. 나랑 형이 같은 꿈을 꾼 거야 그렇다 쳐. 하지만 어떻게……?”
물론 그가 등을 떠밀어도 자러 갈 생각이 전혀 없는 노아도 마찬가지였다. 노아의 앳된 얼굴이 심각하게 굳었다.
“어떻게 현실에서 본 뱀파이어가 나타나지?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잖아?”
어서 보라고, 내가 무슨 꿈을 꿨는지 보라고 노아는 자신의 생각을 헬리에게 한껏 노출했다.
헬리의 기억에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꿈이 또다시 펼쳐진다. 두 사람이 사라진 공주님을 찾아 여기저기 뒤지고 다니다가, 듣지 말아야 할 일을 듣고 있는 공주님을 발견하는 장면이다.
“지노 형, 형은 꿈에 아는 얼굴이 나온 적 있어?”
지노는 씩 웃었다.
“보통 꿈에는 아는 얼굴이 많이 나와.”
“아, 말고!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잖아. ‘그 꿈’ 말야, ‘그 꿈’!”
통칭 ‘그 꿈’. 십대 소년들이 서로 터놓고 말하기엔 민망하고 부끄러운 ‘공주님과 기사들’이 나오는 꿈.
저마다 각각 자신의 시점으로 꿈을 꾸는지라 서로 내용은 달랐지만, 그게 가끔 이어지기도 하고 결국 같은 시대의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된 건 순전히 헬리의 이능력 때문이었다.
“맨날 나오는 얼굴들이잖아. 우리랑, 수하 쟤랑.”
지노의 긴 손가락이 뱅그르르 돌면서 형제들을 가리킨 뒤, 끝에는 턱으로 노아의 뒤를 가리켰다. 노아는 지노를 따라 뒤를 돌아보았다. 열린 문에 고개만 쏙 빼고 있는 수하가 보였다.
“무슨 일이야, 왜 그래?”
습격을 받았다면 다들 복도에 서서 한가하게 말을 하고 있을 리는 없었다. 물론 그녀는 꿈 때문에 너무 놀라서 벌떡 일어난 거지만 말이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노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며 지노를 슬슬 밀었다.
“가자, 형. 아무것도 아니니까 잘 자, 수하야!”
“야, 나는 왜 밀어? 너 수하한테 물어보려고 했던 거 아니야?”
장난기 가득한 지노의 말에 노아는 황급히 그의 입을 막으며 목소리를 낮췄다.
“아, 좀 조용히 해! 그걸 어떻게 물어보냐고!”
“아까 용감하게 가지 않았냐? 수하야, 노아가 꿈을 꿨는데, 세상에, 네가 공주님이고 노아는 기사님이래.”
“제발 닥쳐주세요, 세상에서 제일 잘생기고 멋진 지노 님.”
“좀 더 성의와 정성을 다해서 부탁해봐.”
“닥치지 않으면 형도 같이 나오는 꿈이라고 다 까발릴 거야.”
지노와 노아가 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소리로 뭐라 말하면서 저들끼리 엎치락뒤치락하는 사이, 그 모습을 몸으로 싹 가린 헬리가 얼른 웃어 보였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어. 시끄럽게 해서 미안해. 얼른 자.”
표정은 자연스럽고 목소리는 매끄러우며 태도는 예의가 바르다. 지나치게 완벽할수록, 수상하다는 걸 수하도 이제 슬슬 배우기 시작했다.
그녀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헬리를 쳐다보았다.
“왜, 왜?”
하지만 완벽한 얼굴도 그녀가 표정을 조금만 바꾸기 시작하면 바로 무너진다.
“나중에 무슨 일인지 얘기해줄 거지?”
“응. 지금은 너무 늦었잖아. 얼른 자.”
“내가 그냥 넘어가 주는 거야.”
“응. 고마워.”
“아니, 뭐, 고마울 것까지야 없고…….”
수하는 웅얼거리면서도 문고리를 잡고 그를 좀 더 바라보다가 문을 닫았다.
그녀 역시 꿈 때문에 놀라 깨어났지만, 그걸 헬리나 다른 친구들에게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가 공주님으로 나오는 꿈이라는 데서 이미 절대로, 죽어도 말 못 할 꿈이다. 안개화 능력이 있던 레일건 마스터가 꿈에 나온 건 그저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기 때문이겠지.
‘어쩐지 처음 꿈을 꿨을 때부터 내내 이어지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우연이겠지.’
수하는 고개를 흔들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애들은 왜 뛰쳐나왔던 걸까?
그녀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 꿈을 곱씹었다. 꿈이라고 그냥 넘어가기엔 절대 잊을 수 없는 얼굴이 하나 있었다.
‘그 재상이라는 사람, 진짜 무서웠어.’
이유는 모르겠지만 온몸에 소름이 돋아 당장 도망쳐야 한다고 본능이 비명을 질렀다. 그런 무서운 사람은 현실에선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녀는 뒤척이며 눈을 감았다.
*
“마스터.”
레일건 마스터, 트레나는 부하가 공손하게 부르자 고개를 들었다.
“찾았습니다.”
“어디에?”
“이 근처입니다.”
이 근처라고? 트레나는 눈동자만 휙 움직여서 부하를 바라보았다.
“저희도 놀랐습니다. 생각보다 가까이 와서 버젓이 머무르는 걸 보면 아주 대담한 놈들입니다. 그래서 마스터께도 함부로 덤볐나 봅니다.”
아부를 한 스푼 섞은 보고에 트레나는 턱을 문질렀다.
“그렇군. 대담하네.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지.”
“예? 믿는 구석이라뇨? 설마 이 어린놈들의 배후가 또 있다는 뜻입니까?”
트레나는 대답하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추측이 맞다면, 이 어린 뱀파이어들은 그녀가 아는 뱀파이어들이다.
‘하지만 예전만큼의 힘은 없어.’
떼로 덤빈다면 그녀가 감당하기 어렵겠지만, 겪어보니 할 만했다. 자꾸 약을 올리며 빠져나가서 문제지만 그거야 이쪽에서도 전력을 다해 부딪치면 될 일 아닌가.
“인원은?”
“파악 중입니다.”
트레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린놈들이 생각보다 경계가 심합니다. 이렇게 정체를 알 수 없는 놈들은 저희도 처음입니다. 죄송합니다.”
모시고 있는 마스터의 성질머리를 잘 알고 있는 부하가 냅다 고개부터 숙였다. 이런 때는 무조건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부터 말하는 게 최선이다. 그래야 날아오는 물건도 좀 맞을 만하다.
“……그놈들의 정체는 내가 알아.”
어라? 생각보다 더 온건한 마스터의 반응에 부하는 눈을 꿈뻑거렸다.
“그런데 개까지 키우고 있을 줄은 몰랐지.”
‘개’. 트레나가 말하는 그 ‘개’들이란 뱀파이어 소년들과 함께 있던 늑대인간 소년들을 가리켰다.
“에스티발은?”
“그으게…….”
트레나는 당장 책상 위에 있던 디캔터를 집어 들었다. 안에 술이 담겨 찰랑거리고 있지만, 저게 언제 날아올지 모른다. 부하는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에스티발 시 물류창고는 불에 탔습니다!”
“뭐?”
예상치 못했던 대답에 트레나는 잠시 멍하니 부하를 바라보았다.
불에 탔다고?
“아, 그래……. 불에 탈 수도 있지……. 불이야 날 수도 있는 건데, 일레인은?”
에스티발 시 물류창고 총책임자 일레인이 그 일에 대해 보고를 하든, 뭘 어쩌든 해야 할 거 아닌가.
당장 늑대인간을 납치해서 끌고 오는 모든 조직망은 결국 트레나가 관리하고 있다. 그런 큰일은 직접 와서 말을 하든가 전화라도 해야 할 거 아닌가.
“죽었습니다. 시체를 확인했습니다.”
“불에?”
“그게…….”
“남아 있던 늑대인간들과 거길 지키는 드리프터들이 있을 거 아냐. 뭘 한 거야?”
이거 어쩐지 이상하다. 트레나는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그녀를 지켜주었던 육감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상하고, 대단히 수상하며 마땅히 경계해야 할 일이다.
“다 죽었습니다.”
트레나는 ‘뭐?’라고 묻지도 못했다.
“창고는 타고, 안에 있던 시신들은 드리프터들이 전부였습니다. 대부분 늑대인간들에게 물어뜯긴 상처였습니다. 잡아놨던 늑대인간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를 한 부하는 마스터의 눈치를 살피고 또 살폈다. 한참 말이 없던 트레나는 들고 있던 디캔터를 다시 책상 위에 올려놨다가, 허, 하고 기가 막히다는 듯 한숨을 쉬곤 다시 들어 올렸다. 이크!
“내가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
디캔터가 날아오지는 않았지만 그게 더 무서웠다. 트레나는 새빨간 눈을 굴리며 부하를 쳐다보며 디캔터에 담겨 있던 술을 잔에 옮겼다. 핏빛 액체가 내려앉았다.
“어떻게 거기 있던 놈들이 다 죽을 수가 있지? 특히 일레인이 말이야.”
늑대인간의 피만 던져주면 모두가 다 트레나에게 충성했다. 아니, 그녀의 아랫세대 뱀파이어들이라면 죄다 그랬다.
그걸 마시면 좀 더 강해질 줄 알고, 윗세대와 감히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줄 알고 그릇된 꿈을 꿨다. 사실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알면 어떻게 무너질까, 하고 궁금하긴 했는데 말이다.
특히 일레인이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떻게 반응할지 자못 궁금했다. 그런데 죽었다고?
“아무래도 습격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구조 요청이라도 있었을 거 아냐!”
“없었습니다.”
트레나는 숲에서 단순히 애송이들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늑대인간과, 뱀파이어이자 늑대인간의 능력까지 다 가지고 있는 괴상한 녀석까지 상대하던 때를 떠올렸다.
그녀를 잡기 위해 달려들던 놈들 외에 불덩어리까지 날아왔었지. 또, 지난밤에 별 요상한 재주를 부리던 뱀파이어들은 어떠한가?
전부 다 그녀의 기억에 있는 어린놈들이다. 그놈들이라면 일레인이 버티고 있는 에스티발 시 물류창고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다.
“그래……. 이론상으로는 가능하지. 특히 습격이 있었다면…….”
중얼대던 레일건 마스터 트레나의 눈이 번뜩거렸다.
“그럼 우리도 습격해야지.”
당장.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