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프린태니어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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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프린태니어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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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프린태니어 (7)
2022.10.11.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프린태니어 시는 황량한 에스티발 시보다는 훨씬 더 복작거렸으나 이미 리버필드 시의 온화한 기후와 어마어마한 규모, 그만큼 밀려드는 관광객 숫자에 익숙해진 수하에게는 그냥 작은 도시에 불과했다.
‘어쩐지 쓸쓸한 곳이야.’
그녀는 그녀의 기준으로는 좀 정신없이 번쩍거리는 레일건의 조명을 멀리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 능력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가진 뱀파이어겠지?’
수하는 쉽게 안개로 변하던 여자 뱀파이어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한참 연습해서 아주 극적으로 안개가 되었던 수하는 그 여자 뱀파이어를 잡기엔 역부족일 것이다.
‘부상입은 애들이 있으니까 마음이 안 좋아.’
헬리나 칸은 책임감이 있는 리더들이라 더 부담이 심할 거다.
그녀는 저쪽 거실 끝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런두런하는 늑대인간 소년들과 뱀파이어 소년들을 바라보았다.
“춥냐?”
불쏘시개를 집어 든 지노가 가까이 다가와서 벽난로를 뒤적였다. 불을 피워도 되는 건가, 했더니 내내 누군가 살았던 집이라 상관없단다. 프린태니어의 여느 집들과 마찬가지로 이 건물 굴뚝에서도 회색 연기가 나오고 있을 것이다.
“괜찮아.”
“눈이라도 좀 붙여라.”
“언제 시작한대?”
뭐 하나 깨지는 거야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분위기가 살벌한 것 같더니, 수하가 싸움 구경 한번 하고 싶다고 한 말에 언제 싸우려고 했냐는 듯 소년들은 참 우호적으로 서로를 대했다.
덕분에 레일건 마스터를 어떻게 공격할지에 관한 대화만 활발하게 오가는 중이다.
“아직.”
“그치?”
하지만 지금 부상자도 있고, 이번에 두 번이나 붙어본 여자 뱀파이어, 레일건 마스터로 추정되는 이가 너무나 강력한 데다 바깥에서는 계속 드리프터들이 설치고 다니니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야기가 계속 빙빙 돌기에 수하는 잠깐 머리를 식히러 이쪽으로 와 입을 열었다.
“어려운 일이야. 점점 어렵기만 하지만.”
“왜, 점점 강한 놈이 자꾸 튀어나와서?”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니 지노는 픽 웃으며 말을 이었다.
“원래 그래. 그래도 여태까지는 무난하게 온 걸 보면 우리도 만만찮게 센가 봐.”
“너네 다 강하잖아. 드리프터들이 너네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막 날아가던데?”
지노는 그녀의 말에 이젠 소리를 내서 웃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야, 그거 네 얘기잖아. 너 아주 집어 던지더라.”
“뭘?”
뒤에서 솔론이 오더니 물었다.
“어? 아, 수하 얘기했어. 드리프터들을 집어 던졌다고.”
“어. 그랬지. 집어 던졌지. 무기가 따로 필요 없겠더라고.”
“너도 집어 던져줄까?”
“살려주세요.”
수하의 말에 표정도 안 바꾸고 태연하게 대꾸한 솔론이 그녀의 옆에 앉았다. 수하는 그런 솔론의 표정을 한참 쳐다보았다.
“왜? 뭐가 이상해?”
얜 또 왜 뚫어져라 쳐다봐? 솔론은 조금 당황했다.
“이젠 좀 괜찮아?”
새삼스럽게 못생겨 보이나 보다, 하고 실없는 소리를 슬쩍 건네려던 지노는 수하가 솔론에게 묻는 말을 듣고 멈칫거렸다.
“나? 나 왜?”
물론 질문을 받은 솔론도 더 당황했다.
“계속 기분이 안 좋았던 거 같아서. 내 착각이었나?”
수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솔론 쟤 원래 표정이 늘 기분 나쁜 표정 같지 않았어?”
“아니, 그래도 달라. 지노 너도 다른데?”
빙글빙글 웃으면서 놀리려던 지노도 멈칫할 정도로 수하는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이젠 괜찮은 거야?”
괜찮냐고? 솔론은 그녀의 질문을 곱씹어 보았다.
“……조금.”
괜찮은 것도 같다. 묵직하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래? 그럼 다행이다.”
수하는 더 물어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으면 됐지, 뭐. 그녀도 자신이 이상한 건가, 어디가 잘못된 건 아닌가, 한참 고민하다가 이제 겨우 답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라 이해했다.
“나 때문에……, 일이 벌어진 줄 알았어.”
하지만 솔론은 갑작스럽게 툭 입을 열었다.
그답지 않은 행동에 지노가 당장 놀라서 눈이 커지는 게 보였다.
따지고 보면 수하는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이지만, 곧 죽어도 비밀로 하고 싶던 늑대인간 혼혈이라는 사실을 버젓이 내보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헬리에게 이미 솔직하게 말하고 위로를 받았기 때문일까?
이상하게도 말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너 때문이라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아, 지노가 놀란 건 솔론이 솔직하게 말했기 때문이 아니라 내용 때문이었나 보다.
“나는 뱀파이어와 늑대인간 혼혈이잖아.”
“야, 너…….”
절대로 입 밖으로 내지도 않던 말을 툭 뱉고 나니 오히려 편했다.
“응. 그런가 보다 하고는 있었어.”
수하는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고, 지노는 아휴, 하고 한숨을 쉬더니만 제 붉은 머리카락을 마구 헤집었다.
“보통은 절대 생겨날 수 없는 조합이야. 그 이유는 저 뒤만 봐도 알겠지?”
솔론은 그들의 등 뒤를 가리켰다. 뒤에서 나머지 뱀파이어 소년들과 늑대인간 소년들이 공격방법에 대해서 치열하게 토론을 하는 중이었다.
“저기에서 소파가 날아다니지만 않은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야. 서로 보기만 하면 으르렁대고 죽이려고 하니까. 뭐, 우리도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랬고. 그런데 혼혈이라니, 존재해선 안 되는데 버젓이 존재하는 거지.”
솔론이 픽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 일곱 명은 예전에 보육원에서 함께 살았던 적이 있거든. 그러니까, 지노 형, 내 말은…….”
웃다가도 본론을 말하는 건 어쩐지 쑥스럽고 묵직하게 느껴진다. 솔론은 괜히 뒷목을 긁적였다.
“어릴 때 보육원에 드리프터들이 습격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내 탓인 거 같았어. 자꾸……, 이번에 마주한 그 여자도 그렇고 날 아는 척하니까. 있어선 안 될 걸 본 것처럼 말하고…….”
타닥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가는 벽난로 불빛에 비친 솔론의 얼굴이 조금 힘이 없어 보였다.
지노는 손을 뻗어서 그의 다부진 어깨를 붙잡았다. 백 마디 말보다 다독이는 손길 하나가 훨씬 힘이 된다는 걸 형제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힘들었겠다. 나라도 그런 생각 했을 것 같아.”
혼자 형제들과 달랐으니 더 고민이 깊었을 거다. 수하는 말이 없고 언뜻 외로워 보이기도 했던 솔론의 예전 모습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내가 이상하다고 손가락질받는 게 전부 다 내가 잘못해서 그런 줄 알았거든.”
“수하 넌 이상하지 않아.”
솔론이 고개를 흔들자마자 지노가 바로 말했다.
“그래. 보육원이 그렇게 된 게 솔론 네 탓도 아니야.”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뿐이야.”
생각도 못 해? 솔론은 괜히 귓가가 붉어져서 중얼거렸다.
“그만큼 네가 형제들을 사랑하는 거지.”
얼떨떨하게 수하를 보던 솔론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벽난로로 시선을 돌렸다.
“수하 넌 어떻게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냐?”
그가 하고 싶은 말을 지노가 대신해줬다.
“사랑이 뭐 어때서? 더 잘해주고 싶고, 피해 입히고 싶지 않고, 그런 마음이지, 뭐 별 거냐?”
“아, 부끄러워.”
아웅다웅하는 소리 너머로, 장작이 타닥타닥 조용히 타들어 가고 있었다.
*
수하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딱 맞는 승마 부츠와 승마복을 입고, 머리도 야무지게 묶었다.
활동하기엔 편했다. 귀찮게 따라붙는 기사들을 따돌리고 도망 다니기도 좋았고. 어머니인 여왕님은 하나밖에 없는 후계자인 공주가 몸이 약하다 못해 병에 걸렸다는 걸 늘 걱정해서 호위기사를 일곱이나 붙여놓은 것도 모자라 기사단을 더 붙여 놨다.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몸이 약한 공주에게 병이 있다는 사실을 안 직후부터 아무래도 엄마는 마음을 굳힌 모양이다.
기어코 왕실 수장고 안에 있는, 이른바 ‘신의 피’를 사용하실 생각인가?
아가, 엄마가 꼭,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낫게 해줄게.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응?
아마 신의 피를 사용하는 의식은 곧 시작될 모양이다.
그럼 진짜로 늑대 신 바르그의 피를 꿀꺽꿀꺽 다 마셔야 하나?
으. 피가 약이라니. 비리겠다.
그녀는 어깨를 부르르 떤 뒤 창을 넘어 왕궁 이곳저곳을 괜히 쏘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일곱 기사들에게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대충 놀다가 걸리기 전에 돌아가면 되는 거지, 뭐.
그녀는 거대한 왕궁 구석구석을 알았다. 어디가 몸을 숨기기 좋은지도 잘 알았다.
……공주가 신의 피를 마시면, 병이 나을까요?
왕궁을 돌아다닐 때 주의해야 할 점 중 하나는 이렇게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본의 아니게 듣게 된다는 것이다.
여왕이라고 해서 그 귀한 피를 자신의 딸에게 주다니, 불공평합니다. 왕이 된 자의 특권이다, 이겁니까?
불쾌한 목소리들은 전부 여자였다. 두 사람인데, 목소리가 비슷하다.
수하는 잠시 엿듣는 것과 이 나라 후계자로서 정치 상황을 파악하는 것, 두 가지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이내 마음을 굳혔다.
벽을 따라 슬쩍 걸어가 보니 아무도 없는 정원에서 목소리를 죽이고 대화하고 있는 세 사람이 보였다.
왕은 왕이지. 그 누구도 감히 왕권에 도전할 수 없어.
부드러우나 낮고 힘 있는 목소리에 오싹 소름이 끼쳤다. 재상이다.
두 사람 다 말조심하도록. 그 피는 늑대신 바르그께서 직접 왕실에 선물하신 것이니, 여왕께 모든 권한이 있네.
점잖은 목소리는 겉으로는 왕권을 아주 강력하게 비호하는 듯 들린다. 그는 젊고 준수한 외모를 가졌고, 현명한 판단으로 여왕의 오른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수하는 안다. 저 남자는 공주를 늘 못마땅하게 여긴다. 정확하게는 왕국 후계자의 자격에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고대부터 이 왕국을 지켜온 수호신께서 결정하신 일이니 그 피가 어떻게 쓰이든 우리가 떠들어댈 일이 아니지.
재상의 말에 그 앞에 있던 사람 둘은 일단 입을 다물었다.
어라? 그런데 두 사람이 아주 똑같이 생겼다. 쌍둥이인가?
입고 있는 의상이나, 태도로 봐선 재상의 아래에서 일하는 비서관이나 무관쯤 되는 모양이다.
매력적인 위치이기도 하지. 신이라는 은빛 늑대가 직접 수호하고, 나라를 휘두르는 권한을 유일하게 지닌 존재이니.
재상이 빙긋 웃으며 말하자 수하의 가슴 한켠이 서늘해졌다.
충신이 저런 말을 하나? 그럴 리가 없었다. 그때 재상은 시선을 돌렸다.
‘설마?’
마치 공주가 있는 곳을 똑바로 보는 것 같은 시선이다. 설마 들킨 건가?
공주님.
그때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정확하게는 귀가 아니라 머릿속에서 들렸다.
헬리! 헬리다!
수하는 어디로 사라지든 그녀를 바로 찾아오는 존재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이리로 오세요.
정원에 늘어진 식물들은 진한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까맣게 드리워진 그림자 사이에 몸을 숨긴 노아와 헬리가 보였다.
두 사람 모두 저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지, 표정이 그리 좋지 못했다.
그때 재상이 자리에서 일어나 수하가 있는 곳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기 시작했다. 어쩐지 엿들었다는 것을 들키면 큰일 날 것 같았다. 그녀는 급히 소리 없이 움직였다. 시간이 얼마 없었다.
다르단 님? 어디로 가십니까?
여자 하나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노아가 그 여자를 낮은 담장 너머로 힐끔 보며 어서 이쪽으로 오시라고 손짓했다.
헬리는 이미 그의 검을 꽉 쥐고 있었다. 마치 그들이 공주가 이곳에 있다는 걸 아는 순간, 공주에게 해를 끼칠 것이라는 듯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이쯤에서 고양이가 몰래 쳐다보는 것 같아서.
고양이라. 하. 왕권을 찬양하는 놈이 다 안다는 표정으로 고양이를 운운하다니.
기가 막힌 수하는 빠르게 기사들이 내민 손 안으로 몸을 던졌다.
내 착각인가?
재상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다시 쌍둥이가 있는 쪽으로 돌아갔다.
정원 모퉁이를 돌아 숨을 죽이고 선 노아와 헬리, 그리고 수하의 눈이 마주쳤다.
*
노아는 새파랗게 질린 채 벌떡 일어났다.
뱀파이어 소년들이 종종 꾸는 꿈은 엇비슷했다. 비슷한 시간대의, 그들이 알지 못하는 나라에서 알지 못하는 여자를 지킨다. 아는 얼굴이야 형제들의 얼굴이었고, 수하가 등장한 후에는 꿈속의 여자와 그녀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을 뿐이다. 그런데 오늘 꾼 꿈에서 또 아는 얼굴이 나왔다.
……노아야?
혹시 일어났나, 하고 떠보는 헬리의 목소리가 조용히 그에게만 들렸다.
형도 봤어?
일어났구나.
형도 꿈꿨어? 봤어?
재차 묻는 말에 헬리는 곧장 대답하지 못했다.
수하도 같은 꿈을 꿨을까?
너 무슨 꿈을 꿨어?
목소리가 착 가라앉은 헬리가 물었다.
그 쌍둥이! 나랑 붙었던 여자 뱀파이어랑 똑같은 얼굴이잖아! 재상이랑 함께 있던!
확신과 짜증, 성급함과 충격이 섞인 노아의 대답이 빠르게 돌아왔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