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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프린태니어 (4) (37/81)


37. 프린태니어 (4)
2022.09.20.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진정해.”

헬리가 재빨리 수하를 잡았다.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괜찮아. 도망쳤어?”

“다들 쫓아갔어.”

칸이 대신 대답했다. 그는 아까부터 계속 싸움을 주시하고 있었다.

지금도 나자크와 엔지, 솔론이 사라진 쪽을 연신 보고만 있다.

“분명히 안개로 바뀐 거 맞지?”

수하는 떨리는 목소리로 헬리에게 물었다.

“이능력이 있는 뱀파이어들은 드물지만, 꼭 각자 색다른 이능력을 가진다는 보장은 없어.”

아니, 사실은 헬리도 잘 몰랐다.

“하지만 나는 뱀파이어도 아니잖아?”

혹시 모르는 뱀파이어 혈통을 받은 걸까? 사실은 수하도 잘 몰랐다. 자신이 없는 건 두 사람 다 마찬가지였다.

“하긴, 뭐. 나만 이런 능력을 가지란 법도 없지.”

잘 모르겠다면 그냥 눈앞에 펼쳐진 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가 보다, 하려고 한 수하는 걱정스럽게 고개를 쭉 빼고 마스터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았다.

“잡을 수 있을까?”

몇 분 후, 허탕을 친 늑대소년들이 돌아와서 고개를 흔들었다.

“놓쳤어.”

아쉬워 죽겠다는 나자크의 보고에 칸은 재빨리 다음 판단을 내렸다.

“그럼 우리도 철수하자.”

도망간 뱀파이어가 더 많은 드리프터를 끌고 오기 전에 그들도 이곳을 떠나야 했다.

“저 미끼로 쓴 놈은 어쩌지, 헬리?”

수하를 보던 헬리의 눈이 잠시 솔론에게 가 있었다. 그는 그러면서도 칸의 질문에 대답했다.

“어쩌긴.”

처리해야지.

불과 2분 뒤, 프린태니어 숲에 매복하고 있던 소년들은 어떠한 자취도 남기지 않은 채 완전히 사라졌다.

*

프린태니어는 너무 작은 도시였다. 에스티발에 비해서는 활발했으나, 몸을 완전히 숨길 만큼의 대도시는 아니었다.

“우리는 금방 눈에 띄겠어.”

지노가 팔짱을 낀 채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러니까 조심해야지. 들어오는 것도 조심하고.”

나자크가 심드렁하게 대꾸했으나, 그 말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후발대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일단은 부딪쳐봤는데 아무런 소득이 없었네.”

그는 그게 못내 아쉽다는 듯, 길게 늘어진 채 천장을 쳐다보았다. 다음에는 어떻게 공격을 하고, 어떻게 잡을지 머릿속으로 다시 한번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중이었다.

“소득이 없긴. 적어도 이능력이 뭔지는 알아낸 거잖아.”

칸이 대답하며 또 생각에 잠겼다. 그의 갈색 눈은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솔론에게로 향했다.

프린태니어 시에 마련한 숙소에 틀어박힌 솔론은 30분째 미동도 않고 있었다. 얼핏 보기엔 나자크처럼 아까 전투를 복기하는 것처럼 보였고, 애초에 말이 많은 성격도 아닌지라 다들 신경 쓰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챈 이가 있었다.

왜 그래?

부드러운 목소리가 솔론의 귀에만 은밀히 들렸다.

무슨 일 있으면 형한테 말해도 되는데.

이미 아주 오래도록 기다린 후에 더 이상 두고 보지 못할 때가 되었나 보다. 헬리가 저렇게 말하는 건 이미 많이 기다려줬다는 뜻이었다.

솔론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칸은 솔론이 나간 뒤 얼마 되지 않아 헬리가 슬쩍 따라 나가는 것을 보고서 시선을 돌렸다.

건물 하나를 통째로 빌린 소년들은 되도록 조용히 지내며 프린태니어 시를 파악하는 중이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후발대도 있었기에 더더욱 신중해야 했다.

때문에 이번 실패가, 솔론에게는 뼈아팠다.

“형은.”

헬리의 발소리가 들리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솔론이 입을 열었다. 오래 묵혀놨던 고민이 이젠 무르익을 대로 익어서 바깥으로 쏟아내지 않고는 견뎌낼 수가 없었다.

“형은 왜 보육원이 습격받았다고 생각해?”

“우리 때문이겠지.”

단칼에 나온 대답에 솔론은 그 대답이 지극히 헬리답다고 생각했다.

이능력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성격 때문인지 몰라도, 헬리는 다정했지만 필요할 때는 싸늘할 정도로 냉정했다.

“선생님들이 우리를 단순히 아이라서 도망치게 한 게 아니라는 느낌은, 그때도 이미 받고 있었으니까.”

헬리는 솔론의 곁에 다리를 접고 앉았다.

“게다가 이번에 보육원 터에서 나온 서류들만 봐도, 원장선생님이 우리를 괜히 거둬서 키운 게 아니잖아.”

대단히 특별한 이능력을 가진 뱀파이어 소년 일곱을 어떻게 모을 수 있었을까. 헬리는 그것부터가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그게 궁금했어?”

“……아까 그 여자, 날 알아봤다고 했잖아.”

“정확하게 뭐라고 한 거야?”

“오랜만이네. 똑같네. 그때도 놓쳐서 확인을 못 했는데, 그때와 같은 놈인가.”

헬리는 그 말을 듣고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그때’가 언제일까, 형?”

“……네 생각엔, ‘그때’가 보육원 습격 때인 거 같다는 거야?”

솔론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지.”

다른 건 몰라도 뱀파이어와 늑대인간 혼혈이 얼마나 희귀한 존재인지는 모두가 잘 알았다.

종족 특성상 서로를 증오할 수밖에 없으니, 혼혈은 탄생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니 눈에 띄지 않을래야 띄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솔론을 한 번 본 베테랑 뱀파이어라면 분명히 기억할 거다. 그건 그리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야. 우리가 사람들 눈길 끈 게 하루이틀 일은 아니잖아.”

하지만 솔론의 표정은 쉽게 밝아지지 않았다. 벌써 몇 주째 묵혀놨던 고민이니 그렇게 쉽게 해결될 리가 만무하긴 했다.

“그게 아니라, 나 때문이면?”

헬리는 솔론이 그 불길하고, 공포가 잔뜩 어린 질문을 완성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나 때문에 보육원이 습격받은 거면?”

순식간에 솔론의 생각이 헬리에게 확 달려들었다.

그럼 어떡하지? 어떡하지? 다른 형제들한테 너무 미안해. 미안해. 나 때문이면, 내 잘못이면 어떡해? 내 잘못이야. 아마 그럴 거야. 내 탓이야.

솔론이 주체할 수가 없는 공포와 불안이 헬리 앞에 적나라하게 펼쳐졌다. 무표정한 얼굴 아래 눌러놨던 감정들을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었던 거다.

헬리는 한숨을 쉬며 솔론을 끌어당겼다.

“이리 와, 인마.”

동생의 머리를 툭 기대게 한 그는 씨근대는 동생의 어깨를 툭툭 쓸어주었다.

“너 때문에 보육원이 습격받은 거면 뭐 어때. 우리가 뭐 너 때문이라고 원망이라도 할 줄 알았어?”

솔론이 재빨리 고개를 흔들었다. 시리게 푸른 머리카락이 헬리의 어깨에서 마구 흩어졌다.

“그게 아닌데 왜 그렇게 끙끙 앓고 있어?”

“……그래도.”

그래도 나중에 혹시라도, 혹시라도 지금 너무 힘들어서 날 조금이라도 미워하면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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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밖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과 생각이 헬리에게 아주 쉽게 전달됐다. 그 공포와 불안에 깔린 밑바탕은 결국 형제들에 대한 진득한 애정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엔, 넌 그걸 불안해할 게 아니라 여태까지 혼자 끙끙대고 있었단 걸 다른 애들이 알면 얼마나 화를 낼지를 걱정해야 해.”

“그건 괜찮은데…….”

“말하는 거 봐라? 그게 왜 괜찮아? 나는 네가 얼마나 불안했는지 아니까 지금 화를 안 내는 거야, 인마.”

헬리는 솔론을 떼어놓고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그런데 이안이나 지노는 분명히 화낼 거고, 자카는 삐질걸? 너 걔 삐지면 얼마나 오래가는지 알잖아. 노아 걔는 울 거고.”

솔론은 괜히 눈을 피했다.

“형 똑바로 봐. 무슨 바보 같은 생각을 그렇게 오래하고 있어? 너 때문에 습격당했으면 뭐 어때. 결국 습격은 일어난 일이고, 우리는 여기에서 너랑 함께 있잖아. 뭐가 중요해?”

“……같이 있는 거.”

“그래.”

잘 아네. 잘 알고 있으면 됐다.

“그게 사실이라 해도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일이야. 널 더 보호하는 데 신경 쓰겠지, 너 때문에 보육원 선생님들이 다 죽었다고 탓하겠어? 선생님들은 우리를 보호하려고 목숨을 희생하셨어.”

기꺼이 드리프터들을 막아서며 망설임 없이 모두가 똑같은 말을 외쳤다.

‘얘들아! 어서 뛰어! 뒤돌아보지도 말고 뛰어!’

헬리는 고개를 흔들었다.

“난 네가 원인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아. 네가 원인 중의 하나일 수는 있겠지. 레일건의 마스터를 잡으면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거잖아. 뭘 그렇게 미리 걱정하고 있어?”

“내가, 내가 힘을 쓸수록 늑대인간에 가까워서……, 그런 거 같아서…….”

“그래, 그래. 그래도 괜찮아.”

그는 오래도록 동생을 안고 심하게 떨리는 어깨가 가라앉을 때까지, 편안하게 늘어질 때까지 토닥였다.

*

간신히 프린태니어 숲에서 도망친 레일건 마스터는 프린태니어 시에 진입할 때쯤에는 본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안개가 되어 움직이는 게 빠르지만, 그녀는 오래도록 그 모습을 유지하지는 못했다.

“조그만 것들이 어딜 감히……!”

그녀는 물어뜯긴 상처를 문지르며 씩씩대며 비참하게 걸어갔다. 가벼운 걸음으로 산보 삼아 숲으로 가던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머리는 헝클어졌고, 곳곳에 상처가 났다. 걸음까지 약간 절뚝거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녀가 말한 대로 ‘조그만 것들’이 낸 상처라고 하기엔 상당한 부상이었다.

되돌아가는 길이 상당히 멀었지만, 마스터는 보통 인간보다는 훨씬 빠른 속도로 돌아왔다.

“마, 마스터?”

쾅, 하고 문이 열리자마자 드리프터들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물론 그녀는 바보같이 정문으로 가지는 않았다. 술집 <레일건>의 이미지도 중요하니까.

대신 뒷문을 연 뒤 눈이 마주치는 부하들에게 바로 소리부터 질렀다.

“이 주변……, 이 주변을 싹 뒤져!”

그녀는 씩씩대며 명했다.

“수상한 놈들이 있으면 다 불러와!”

“늑대인간들에게 당하셨습니까?”

그녀의 피부에 선명한 잇자국을 보고 드리프터들의 표정이 험악하게 굳었다.

여긴 프린태니어 시의 레일건.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다.

마스터의 말에 몇몇은 벌써 달려나갔고, 몇몇은 다가와 그녀를 부축했다.

“됐어, 혼자 갈 수 있어!”

마스터는 대단히 자존심이 강해서, 지금 이 꼴로 이곳까지 도망쳐왔다는 사실조차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아주 오랜 세월을 살면서 많은 것을 보고 들었다. 그런데 그런 새파랗게 어린 애송이들에게 당하다니!

‘불이었지.’

마스터는 자신을 궁지에 몰았던 불덩어리를 떠올렸다. 안 그래도 머리카락 끝이 죄다 그슬려 엉망이었다.

‘불에, 뱀파이어인지 늑대인간인지 모를 놈이라니. 조합이 아주 기가 막히는군.’

그녀는 2층으로 간신히 올라가면서 외투를 벗어 던졌다.

“에스티발 시 물류창고에서 늑대인간들이 들어오고 있지 않는다는데, 하역장 반장을 한번 캐봐. 그리고 거기에서 사라진 놈이 하나 있어. 한번 캐보고.”

“에스티발 물류창고는 어떻게 할까요?”

“누가 한번 직접 가봐. 이젠 내가 직접 움직여야겠어.”

심상치가 않았다.

‘……그래, 예전에도 그런 놈들이 있었지.’

화염을 다루던 뱀파이어와 늑대인간과 뱀파이어의 혼혈, 그 저주받은 핏줄.

마스터는 문득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여기저기 긁히고, 팔을 크게 물려 덜덜 떨리는 손을 한번 안개로 만들어 보려 했다.

“큭…….”

하지만 여전히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이게 된다면, 언제든 될 수 있다면 그녀는 더욱더 사랑받을 수 있었을 텐데!

‘그분께서 날 봐주셨을 텐데!’

대단히 오랜 시간 동안 연마해도 결국 실패만 거듭했던 마스터는 까드득 소리가 나도록 이를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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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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