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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프린태니어 (3) (36/81)


36. 프린태니어 (3)
2022.09.13.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겉으로 보기에 몹시 엉성해 보이는 술집, 레일건은 밤이 되면 떠들썩해졌다.

스포츠 채널을 아무거나 틀어놓고 맥주를 들이켜는 곳. 밤에 잠깐 들러 한잔하고 가면 그만인 곳. 가끔 마스터가 내킬 때 나와서 바텐딩을 하긴 하지만, 그건 그저 오랜 손님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함일 뿐이다. 누가 봐도 그저 상당히 분위기가 좋은 술집일 뿐이다.

레일건은 오늘도 불을 밝히고 성업 중이었다.

하지만 마스터는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다.

“엥, 마스터는?”

코와 뺨이 붉은 이 동네 토박이가 지나가던 직원을 붙잡고 물었다.

“아, 마스터는 오늘 안 나와요.”

“에잉, 마스터가 있어야 재미있는데.”

“재미는 술이 주는 거지요, 프랑코. 한 잔 더 마셔요!”

“그건 그래.”

토박이는 납작한 모자를 괜히 더 눌러 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스터가 안 나온다 해도 어쨌든 레일건은 즐겁다. 반질반질하고 윤이 나는 계단과 바, 여러 종류의 술을 쌓아둔 진열장, 약간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퇴근한 노동자들의 시선을 쉽게 앗아가는 스포츠 채널까지 오늘도 늘 똑같은 분위기였다.

아래층은 그러한데, 위층은 평소와는 상황이 조금 다르게 돌아갔다.

“이거 상당히 흥미로운데.”

이 동네 토박이들이 다 좋아하는 레일건의 마스터는 부하가 새장에서 꺼내온 쪽지를 보며 웃었다.

‘에스티발 쪽 늑대인간들과 관련된 정보라.’

절대, 절대로 다른 드리프터들에게는 새어나갈까 봐 말도 할 수 없으니 반드시 마스터가 혼자 만나달라는 애원에 가까운 암호였다. 덜덜 떨리는 필체에 그래도 용케 암호를 잘 맞춰 썼다.

마스터는 어둠이 내린 바깥을 내다보았다. 마스터가 이곳에 머무른 만큼 오래된 창문 장식 너머로 프린태니어 시의 밤이 펼쳐지고 있었다.

‘요즘에는 하도 안에만 있고 직접 움직이지 않았지.’

이 정도 자리쯤 되면 수하들이 알아서 해오는 걸 훑어만 보고 승인하게 된다. 마스터의 성미에는 영 맞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린 드리프터들은 경험 없이 날뛰기 일쑤였고, 좀 묵은 놈들은 묵었다고 또 제멋대로다.

마스터 정도는 되는 사람이 다섯 개 국에 퍼진 뱀파이어 세력을 통제하고 관할해야만 했다.

마스터는 시계를 한 번 힐끗 본 뒤 창문을 열었다. 그러곤 창문 아래로 뚝 떨어져 내렸다.
왁자지껄한 레일건을 뒤로 하고 마스터는 걸음을 옮겼다.

새벽 3시까지 프린태니어 숲 서쪽 커다란 오크나무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뭐, 그렇게 길게 기다리게 할 거 있나. 마스터는 밤 산책 또한 좋아했다. 자주는 아니고, 가끔 해주는 건 인간들도 건강에 좋다고 하지 않던가.

마스터의 걸음은 아주 가벼웠다. 사뿐사뿐, 사람들이 없는 거리를 지나 보통 인간이라면 걸어갈 엄두도 내지 못할 거리를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즐겁게 걸어갔다. 사실 마스터는 모든 걸 즐기는 편이었다.

‘하긴 에스티발에서 늑대인간 배송이 늦긴 했지.’

물론 마스터는 관대하지는 않다. 갑작스러운 배송지연도,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야 즐겨주겠지만 이유가 없다면 대가는 죽음뿐이다.

그리고 제보를 한 기특한 놈에게는 뭐, 피 좀 던져주면 그만이고. 드리프터라는 이름이 딱 맞는 하급 조무래기들이야 그 정도로도 감지덕지할 거다.

‘싹수가 있는 놈이라면 그 피를 마시고서 조금 더 위로 올라올 거고, 없으면 거기서 끝나는 거지.’

애초에 바로 윗사람을 무시하고 마스터에게 직접 고발한 놈이 윗사람을 견뎌낼 가능성은 반반이었다.

배짱만큼 실력이 있든가, 아니면 배짱이 아닌 허세에 불과했든가.

드리프터에게 많은 걸 기대하지 않는 마스터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프린태니어 시 외곽에 있는 거대한 숲으로 들어갔다.

야밤에 노래까지 부르며 숲으로 들어가는 건 미친 짓이지만, 마스터는 거리낌 없었다. 심지어 숲 안에서는 공중제비를 두 번이나 넘으며 걸어갔다.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졌다.

‘어린놈인가?’

그러지 않고서야 감히 건방지게 마스터를 감시할 리가 없었다.

보통 드리프터들이야 잘 모르겠지만 마스터는 저 은밀한 시선을 바로 알아차렸다.

‘뭐……, 가보면 알겠지.’

감시가 있고, 에스티발 시의 늑대인간 운송에 대한 제보를 하겠다는 놈이 또 있고. 감시까지 붙어 있어서 솔직히 기대를 했지만, 가장 거대한 오크나무까지 다다른 순간 솔직히 마스터는 적잖이 실망하고 말았다.

‘평범하네.’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선 드리프터가 이빨까지 딱딱 부딪치고 있었다.

그럼 진짜로 내부고발을 하려고 온 건가. 에스티발 시에 문제가 생겼다면 그건 그거대로 짜증스러웠다.

“뭔데?”

처음 보는 드리프터에게 말을 툭 던진 마스터는 높이 솟은 오크나무의 깊은 뿌리를 넘었다.

“네가 날 불렀잖아. 에스티발에 무슨 일이 생긴 건데?”

“……마스터가 보낸 겁니까?”

“그래. 뭐 그렇다 치자.”

덜덜 떨고 있던 드리프터는 주변을, 아무것도 없는 게 분명한 주변을 괜히 한 번 더 살핀 뒤 목소리를 낮췄다.

“정말로 마스터가 보낸 거 맞습니까?”

이런 일은 무조건 신중하게 해야 했다. 알고는 있지만 마스터는 짜증스러웠다.

“아니면 네가 뭐 어쩔 건데?”

당장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드리프터를 보던 마스터는 픽 웃었다.

“네가 불러놓고 말이 많아. 내가 오늘 기분이 좀 좋으니까 봐주지. 한번 말이나 해봐.”

날씨도 좋고, 나름 밤 산책도 운치가 있었다. 마스터는 털어놓으라는 듯 손짓을 했고, 그 기세가 어마어마하다는 걸 깨달은 드리프터는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에, 에스티발 물류창고에서 늑대인간들이 들어오고 있질 않습니다.”

“좀 늦긴 하던데. 그래도 계속 진행될 거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를 치길래 딱히 급한 건 아니라서 그냥 내버려 두던 중이었다. 그래봤자 하루 이틀 정도 밀리고 말겠지, 싶었다.

“아뇨. 그게 아닙니다. 벌써 일주일 이상 밀렸습니다.”

“뭐야?”

당장 마스터의 얼굴이 험악하게 굳어졌다.

쏘아지듯 나오는 기세와 위압감에 드리프터의 무릎이 달달 떨렸다. 이 정도면 눈앞에 있는 뱀파이어가 고위급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하, 하역 담당 바, 반장이 거, 거짓, 거짓말하는 겁니다! 에, 에, 에스티발에 아무리 연락을 해도, 연락이 안 됩니다!”

“일레인은?”

드리프터는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사실이야?”

“지, 진짜입니다! 정말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목숨을 걸고 왔지요!”

“하긴 그거야 하역장 놈들을 털면 바로 나올 일이지. ……신선한 늑대인간 피 공급이 얼마나 중요한데!”

마스터는 화를 터트렸다. 그러던 와중에 고개를 휙 돌려 시커먼 나무 사이 어딘가를 응시했다.

“그런데 너, 뭘 달고 왔냐?”

“예, 예?”

마스터는 대답을 더 이상 듣지 않고 몸을 날렸다.

쾅! 부딪치는 소리에 드리프터는 히이익, 하고 나무에 기대 주저앉아 버렸다.

일단은 무조건 생포해야 해.

뛰어드는 늑대인간 소년들에게 그 점을 무조건, 다시 한번 상기시킨 헬리가 생포 대상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거 말은 쉽지!”

나자크가 외치며 마스터에게 달려들었다.

뱀파이어 소년들이 늑대인간 소년들에게 우선권을 준 건, 에스티발 시 물류창고가 얼마나 끔찍한지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늑대인간 소년들에겐 늑대인간 사냥을 지시한 이에게 복수할 권리가 충분했다. 일단 생포만 해준다면, 뱀파이어 소년들은 상관없었다.

“오, 이게 뭐람.”

마스터는 눈을 빛내며 웃었다.

“늑대들이 제 발로 들어와 주다니. 이렇게 고마울 데가 있나.”

위험하다. 나자크는 빠르게 움직이며 적을 파악했다.

에스티발 시 물류창고를 담당하던 일레인만큼이나 강렬한 눈을 가진 여자였으나, 일레인과는 비교하는 게 미안할 정도로 강한 존재인 게 틀림없었다.

쾅!

당장 맞붙자마자 요란한 소리가 났다. 보통 인간이었다면 충격에 즉사했을 거다.

“꽤 실한데.”

마스터는 눈을 빛내며 나자크의 ‘질’을 가늠했다. 철저히 늑대인간을 그저 피주머니로만 취급하는 말투에도 불구하고 늑대인간 소년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런 뱀파이어들은 이미 너무나 많이 겪어봤다. 새삼스럽게 분노할 일도, 충격받을 일도 아니었다.

쾅!

한 번 부딪친 뒤 마스터에게서 거리를 둔 나자크와 엔지는 이곳에 빽빽한 나무를 박차고 다시 달려나갔다.

늑대들과 뱀파이어가 맞붙는다.

“……마한, 네가 갈 수 있겠어?”

아무래도 둘만으로는 부족하다. 가만히 보고 있던 칸이 에스티발 시 물류창고에 스며들었다가 붙들렸던 마한을 돌아보았다.

“마한 형은 다쳤잖아! 내가 갈래!”

타헬이 방방 뛰었지만 칸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아니, 칸. 전력을 아껴. 우리 쪽을 투입할게. 솔론.”

헬리가 칸을 만류하며 솔론을 바라보았다. 그에겐 늑대인간의 피도 흐르니, 늑대인간들과의 합이 잘 맞을 것이다.

솔론이 곧장 자리를 박차고 나섰다. 부상자가 벌써부터 나서는 건 안 된다.

그들은 지금 저 마스터인지, 혹은 마스터의 수하인지 모를 자를 생포하는 데 최소한의 힘만 들여야 했다.

“이건 또 뭐야?”

갑자기 뛰어든 푸른 늑대의 등장에 마스터가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그녀는 그러면서도 속도를 늦추지는 않았다.

“오랜만인데.”

솔론은 분명히 그녀의 말을 들었다.

“아주 오랜만이야.”

그녀는 솔론을 보며 옛 기억을 더듬는 것 같았다. 추억을 회상하는 것도 같았다.

“아주 똑같네.”

그 와중에도 마스터는 공격을 재빠르게 막아냈다. 막아내고, 피했다. 강력한 늑대 셋이 덤벼드는데도 그렇게 멀쩡할 수가 없었다.

“그때도 놓쳐서 제대로 확인을 못 했는데, 그때와 똑같은 놈인가?”

순식간에 솔론의 머리가 하얗게 비었다.

‘그때도 놓쳤다’니.

반사적으로 비명 소리가 가득하던 밤필드 보육원의 마지막 밤이 떠올랐다.

그곳에서 도망친 건 일곱 소년뿐이었는데, 설마 그때를 말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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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야겠다. 일단 저 여자는 죽이고 봐야겠다.

솔론은 충격을 받았다 해서 행동을 멈추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이를 드러내며 마스터에게 덤볐다. 골격이 크고 키가 큰 레일건 마스터는 빠르게 늑대들의 공격을 피했다.

‘전투 경험이 엄청나. 섣불리 덤볐다간 우리가 당해.’

솔론은 침착하게 마스터를 살폈다. 아주 여유롭게 늑대 셋을 상대하는 마스터는 도대체 뚫고 들어갈 구석이 없어 보였다. 나자크와 엔지도 그걸 눈치챘는지 섣불리 접근하지는 않았다.

“너 진짜 별 이상한 걸 달고 왔구나?”

그녀는 그 와중에 오크나무에 완전히 주저앉은 드리프터에게 말을 거는 여유까지 있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솔론은 헬리를 찾았다.

저 여자, 날 알아봤어. 예전에 나와 같은 사람을 놓쳤대.

그 말을 듣자마자 헬리의 눈이 커졌다.

지노!

단 한마디에 어디선가 불덩어리가 마스터에게 날아왔다. 순식간에 몸을 뒤로 젖혀 일단 피했으나, 마스터는 코끝이 뒤늦게 화끈거리는 걸 느끼고 웃었다.

“와, 재미있네?”

그녀는 뱅그르르, 공중제비를 돌며 연속적으로 날아오는 불덩어리를 피하다가 엔지가 휘두르는 앞발에 맞았다.

“큭……!”

촤악, 하고 땅바닥을 가르며 그녀가 뒤로 날아갔다.

하지만 엔지와 하루이틀 호흡을 맞춘 게 아닌 나자크가 그녀가 날아가는 방향에 있었다.

늑대가 입을 벌려 날카로운 이로 어떻게든 속도를 늦추려 애쓰는 뱀파이어를 잡아채 물어버렸다. 그런 뒤 곧장 다시 던져버렸다.

웬만한 드리프터였다면 이미 이쯤에서 절명했겠지만, 마스터는 흙바닥을 다시 구른 뒤 재빨리 일어났다.

“하하, 하. 이거 재미있네.”

크르르르, 늑대들이 그녀를 포위하며 점점 가까이 왔다.

“그래, 아주 재미있어.”

마스터는 희게 질린 얼굴로도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 위로 불덩어리가 위협적으로 날아다닌다. 그녀가 물러날 곳은 없었다. 아니, 없어 보였다.

“또 보자, 기대하지.”

여기서 도망치겠다고? 솔론은 두 발자국 앞서 나갔다.

“어린 것들아.”

마스터를 향해 뻗는 나자크의 앞발이 허공을 갈랐다. 마스터의 갈색 코트 자락이 사라졌다.

희끄무레한 안개가 춤을 추더니, 곧장 솔론을 휙 통과해 사라져버렸다. 남아 있는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안개……?”

쏴아, 하고 밀려드는 축축한 공기에 젖었던 솔론은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수풀 사이, 가려진 곳에서 나머지 소년들과 대기하고 있던 수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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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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