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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프린태니어 (2) (35/81)


35. 프린태니어 (2)
2022.09.06.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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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는 고개를 삐뚜름하게 기울였다.

“뭐, 이 자리에 헬리 형은 없지만.”

심문에 능한 분이 없긴 하지만 털어낼 수 있는 데까지는 다 털어내 보도록 합시다. 최선을 다해야지.

엄숙하게 선언한 자카는 자신을 비롯해 지금 모여 있는 소년들을 둘러보았다.

솔론, 그리고 나자크와 엔지.

“형이 하자.”

가만히 서 있던 솔론이 지목되자, 그는 왜 날 지목하냐며 눈썹을 치켜올렸다.

“우리 중에 그나마 인상이 무서운 사람이 형이야.”

오. 듣고 있던 늑대인간 소년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왜 내가…….”

“나자크가 키가 제일 크긴 한데 쟨 너무 착해 보여서 처음에 덩치로 제압하는 것밖에 안 돼. 그러니까 심문은 형이 하자.”

“귀찮게…….”

말이야 귀찮다고 하면서 솔론은 터덜터덜 앞으로 걸어 나갔다.

“으, 으으…….”

눈물범벅이 된 볼썽사나운 꼴을 한 드리프터가 몸을 움츠렸다.

완전히 피라미는 아니고, 그래도 에스티발 시 물류창고에서 그들을 상대하던 급은 되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겁을 먹었을까.

솔론은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키가 훤칠한 뱀파이어 둘에 늑대인간 둘이라는 말도 안 되는 조합이니 알고 있던 일반상식이 다 파괴되는 기분이긴 할 거다.

늑대인간 소년들과 함께 싸울 때부터 그들이 마주하는 적이란 적들은 죄다 그 점에 몹시 당황하곤 했다.

“나, 나는 아무것도 몰라!”

드리프터가 덜덜 떨며 먼저 한 말에 솔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정색을 하면 몹시 차가워 보이는 솔론은 드리프터를 내려다보고 물었다.

“그러니까. 뭘?”

“아, 아무것도!”

“아.”

그렇구나. 솔론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인 뒤, 냅다 드리프터를 향해 발을 날렸다.

“으아악!”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정확하게 드리프터의 얼굴 옆 벽에 그의 발이 꽂혔다. 드리프터는 눈물을 찔끔 흘리며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어때. 이젠 좀 생각나는 게 있어?”

엔지는 허공을 보며 눈동자를 또로록 굴렸고, 나자크는 납득했다는 듯 중얼거렸다.

“역시 나이트볼을 할 때 스타일 그대로 심문하는군.”

“그치? 우리 형이 말은 좀 없어도 확실하고 빨라.”

이런 면에서는 솔론과 죽이 척척 맞는 자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쪽에서는 이미 드리프터가 울면서 모든 걸 줄줄 털어놓는 중이었다.

“생각, 생각났습니다!”

“그럼 말을 해.”

“저, 저는……, 마, 마스터께 보고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뭘?”

드리프터는 불안하게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사방이 꽉 막힌 이곳에서 그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늑대인간들도 있으니, 솔직히 끝났다고 봐야 했다.

“……에, 에스티발에서 야, 약속한 늑대인간들이 며칠째 안 들어오고 있다는 걸…….”

순식간에 소년들 사이의 온도가 싸늘하게 훅 내려갔다. 나자크는 서글서글한 얼굴로 웃었고, 자카와 엔지는 표정 없이 잡아 온 드리프터를 쳐다보았다.

“아. 꽤 많이 들어왔어야 했지.”

솔론은 무슨 이야기인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알고 있는 일이기도 했거니와, 그들이 바로 에스티발 시 물류창고를 박살 낸 범인이기도 했으니 당연했다.

“그, 그래서…….”

“그래서 그걸 마스터한테 보고한다고? 이 아침에, 저 텅 빈 술집에?”

“아, 아침은 아닌데…….”

지금 점심인데, 라고 웅얼거리던 드리프터는 또 쾅, 하고 울리는 소리에 흐아악 비명을 질렀다. 그는 정말 후회했다. 나대지 말걸! 나대지 말고 가만히 박혀 있을걸!

“야.”

필요하다면 불량한 드리프터들의 난폭한 짓을 얼마든지 흉내 낼 수 있는 솔론이 드리프터를 툭 쳤다.

“너네 윗선 팔아먹은 김에 한 번 더 팔아먹어라.”

“예, 예? 그게 무슨…….”

영문을 모르는 드리프터의 대답과 함께 나자크의 탄성이 나지막하게 들렸다.

“캬. 누가 들으면 뒷골목 어두운 세계에서 몇 년 있던 분인 줄 알겠네.”

“너도 내키면 할 줄 알잖아.”

자카가 어디서 남 말하냐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뭐, 다 저놈들한테 배운 거니까.”

드리프터들에게 쫓겨 다니면서 배우는 게 다 그런 것뿐이다.

“애들 정서에 안 좋아.”

엔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파, 팔아먹긴 누가!”

물론 그 와중에도 드리프터는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중이었다.

“아닙니다, 저는 그런 적이 없습니다!”

“아니긴 뭐가 아냐. 위에서 늑대인간 안 들왔다고 마스터한테 욕먹을까 봐 뭉개고 있는 거 네가 찌르려고 이 아침에 햇볕 피해가며 헐레벌떡 온 거잖아.”

어, 어떻게 알았지! 드리프터는 경악하며 솔론을 쳐다보았다. 어리지만 힘센 놈으로 보였는데, 그것만이 아니었다.

“……네가 너무 티 나게 굴었다고는 생각 안 하냐?”

“아니, 나는, 나는 레일건 마스터에게…….”

“허탕 친 거 같은데. 너 이대로 돌아가면 네 상관한테 죽어.”

솔론은 목을 손으로 슥 그어 보였다. 히이이익, 안 그래도 핏기없던 드리프터의 얼굴이 밀가루를 탈색한 듯 허옇게 질렸다.

“허, 허탕이 아닙니다!”

“레일건 비었잖아.”

“빈 게 아니라, 방법이 있습니다!”

“그래?”

솔론은 드리프터를 물끄러미 보며 고개를 반대편으로 삐딱하게 넘겼다.

“그럼 내가 살려줄 수도 있겠네.”

그의 얼굴에서는 읽어낼 수 없는 표정과 함께 냉기가 흘러내렸다.

“잘 협조해준다면.”

드리프터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

누구나 다 승진이란 걸 하고 싶어 하는 게 자연스러운 논리다. 승진이든, 더 나은 월급이든, 어쨌든 위로, 더 위로.

그런 게 드리프터들 사이에서도 당연히 있었다. 모두가 더 강해져서 저 위에 있는 상위 뱀파이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어 했다. 그게 가능한 걸까?

“정확한 건지 좀 불분명하지만.”

자카는 드리프터들의 세계는 아직까지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다며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나자크는 시큰둥했다.

“보나 마나 피지. 뭐가 더 있겠냐.”

더 좋은 피. 신선한 피. 붉은 액체에 드리프터들은 이성을 잃고 달려들곤 했다.

드리프터들의 눈에 사람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저 신선한 피를 가득 가지고 있는 식량일 뿐이다.

먹고, 먹히는 가운데 지성과 감성이 쌓아 올린 질서 있는 세계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법이나 도리,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 할 가치 따위 짓밟히고 으깨진 지 오래다.

“저놈도 마찬가지야.”

지금은 엔지가 드리프터를 달래고 있었다.

“아, 그러셨구나. 그렇죠. 약속한 물품이 들어오지 않는 건 진짜 큰일인 건데 그걸 보고도 안 하고 있으면 아랫사람들은 난처하죠.”

서글서글하고 착해 보이는 늑대인간 소년이 달래주니 무서운 솔론에게 시달렸던 드리프터는 흉하게 찔찔 짜면서 알고 있는 걸 모조리 불었다.

“내가, 씨, 진짜 억울해가지고……! 아니, 에스티발에서 맨날 호언장담하면서, 일레인 그 여자가 맨날 늑대인간을 한 트럭씩 보냈단 말이야……!”

“그랬구나.”

“그랬는데 그걸 우리 반장이 안 들어오면 확인할 생각을 해야지, ‘들어오겠지, 들어오겠지’ 하면서 몇 날 며칠을 뭉개고 있어! 만약에 우리가 받아서 물건 확인하고 레일건으로 안 보내면 마스터한테 우리 지부가 완전히 날아가는 건데, 모자란 새끼!”

“속이 터지셨겠네.”

엔지는 늑대인간들을 ‘물건’이라고 표현하는 드리프터 앞에서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아주 태연하게 얘기를 들었다.

익숙한 일이다. 동시에 그의 친절한 태도 아래에는 어딘지 모르게 그 이상 접근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흘렀다.

그래서 드리프터 역시 그 와중에 움찔거리며 선은 넘지 않았다. 물론 그 선이란 게, 순전히 드리프터 기준이었지만 말이다.

“근데 그래도 그렇지, 혼자 나서는 게 너무 무모한 거 아닙니까? 반장보다 마스터가 더 무섭잖아.”

“무섭지.”

드리프터는 눈물을 닦아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 엔지는 질색이었지만 참을성 있게 드리프터가 하는 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마스터는 실력 위주로 보시는 분이야. 공이 있다면 인정해주신다 했어.”

“그거 믿어도 되는 거예요? 허위매물이면 어쩌려고?”

“아니야. 일레인도 그렇게 승진했다고 했어. 그러지 않고서야 우리와 같이 그냥 하급 드리프터였던 여자가 언제 물류창고 총책임자가 되었겠어?”

글쎄. 일레인을 봤던 엔지의 판단에는 저 드리프터와 일레인을 함께 비교하면 일레인에게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일레인은 제 역할 하나는 제대로 해냈고, 이 드리프터는 기회만 엿보는 타입이다.

“그래도 그렇지 마스터를 아무나 함부로 만나나? ‘그’ 마스터인데.”

엔지는 ‘그럴 리가 없다’는 얼굴로 회의적으로 말했다.

“아니야. 방법이 있어. 마스터는 매일 나오지는 않지. 하지만 매일 나와.”

듣고 있던 솔론이 벽을 툭툭 두드렸다. 투둑, 투둑, 그가 두드릴 때마다 벽돌이 깨져서 조각이 흘러내렸다. 무시무시한 악력이었다. 일부러 저러는 게 분명하다.

“알아듣게 말해.”

아니면 벽돌을 두부처럼 으깨는 힘으로 머리를 똑같이 으깨주겠다는 표정에 드리프터가 히이익, 하고 질렸다.

“아, 좀 진정해. 진정하고, 알려줘 봐요. 그게 무슨 얘기인데요?”

엔지는 웃는 낯으로 솔론을 말리는 척하며 더 자세히 파고들었다.

“레, 레일건의 마스터는 이 주변 다섯 개 나라의 드리프터들을 총괄해. 아주 오래전부터 레일건을 운영해왔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들이야 주인 양반 얼굴이 하나도 안 바뀐다고 신기해하지.”

훌쩍거린 드리프터는 그의 말을 너무나 잘 들어주는 엔지를 향해 앉았다.

“항상 2층 마스터의 방에 있다고는 하지만, 마스터는 가끔 바에 나와서 직접 바텐딩을 할 때도 있어.”

그래서 프린태니어 사람들도 레일건 마스터를 이 동네 토박이로 인식하고 있는 모양이다.

“누구나, 우리 뱀파이어들을 위해 일한다면 정당한 보상을 한다, 는 게 마스터의 모토야.”

하이고 퍽이나. 솔론은 소리 없이 짧게 웃으며 뒤를 보다가 나자크와 눈이 마주쳤다.

놀랍게도, 혹은 놀랍지 않게도 나자크는 그와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런 식으로 드리프터들을 꾀어서 그저 도구로 사용하기만 하고 버린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공을 세우고 싶은 놈들은 나처럼 이렇게 와. 와서 2층 복도 창문에 있는 새장 안에다가 암호를 넣으면 돼.”

“넣고, 그걸로 끝이에요?”

“응. 나머지는 마스터가 알아서 연락한다고 했으니까…….”

바꿔 말하면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지 모른다는 뜻이다.

왜 그 후에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는가. 죄다 쥐도 새도 없이 사라졌거나, 아니면 어떤 보상도 없이 그저 드리프터들을 지배하기 위한 소문에 불과하다는 뜻이겠지.

“그렇군요.”

엔지는 잠시 고민했다.

이 드리프터를 여기에서 처리할까, 아니면 살려둬서 곧 도착할 형제들에게 보일까?

그냥 처리하자니 ‘암호’라는 부분이 상당히 마음에 걸린다.

엔지는 이곳에서 조금 멀리 보이는 레일건의 을씨년스러운 건물 뒤편을 바라보았다.

‘다섯 개 나라의 드리프터 총괄이라. 어쨌든 본부로 온 거나 마찬가지네.’

슬쩍 눈을 돌리니 자카와 눈이 마주쳤다. 그도 엔지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게 뻔했다.

솔론은 묵직하게 마음을 내리누르는 한 가지 의문을 또다시 곱씹었다.

어쩌면 이곳에 밤필드 보육원을 습격한 놈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유년 시절을 파괴하고 사랑하는 선생님들을 앗아간 놈이 있을지도 모른다.

*

드리프터들이 병적으로 싫어하는 해는 시간을 이기지 못한다. 시간이 흐르면 결국 저 멀리 강 너머로 가라앉기 마련이다.

해가 넘어가고, 어슴푸레한 어둠이 깔리면 프린태니어 외곽의 술집 레일건에는 사람이 하나 와서 쓱싹쓱싹, 비질을 시작한다. 주변을 청소하고, 취객들이 쓰러트린 오래된 술통을 다시 일으킨 뒤 위층을 힐끗 보았다.

“어라.”

또 어느 지부에서 난리가 났길래 어느 놈이 찌르고 갔을까. 새장 뚜껑이 슬쩍 들렸다.

비질을 하던 사람은 끙차, 소리를 내며 사다리를 끌어다 위로 올라갔다. 그러곤 빗자루로 새장을 툭 건드린 뒤 안에서 뭔가를 꺼냈다.

“……확인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던 자카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헬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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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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