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프린태니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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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프린태니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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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프린태니어 (1)
2022.08.30.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헬리는 아주 여상한 얼굴로 수하의 짐을 다 챙기며 덤덤히 말했다.
“수하 네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는 내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건 알아. 당연해. 너한테는 평범한 일상이 아주 소중하니까.”
처음부터 눈에 띄는 걸 극도로 싫어했던 그녀가 왜 그랬는지 이제는 잘 안다.
가지고 있는 이능력을 누구에게 말도 하지 못하고, 실수를 했다간 당장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으며 배척당했으니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을까.
혼자 끌어안고 끙끙거리다 드셀리스 아카데미로 와서 새로 시작하는 학창 생활을 절대로 망치고 싶지 않았을 거다.
학교는 정글이다. 예민한 10대들이 모여서 각자 고민을 안고 뒤섞여 살아간다.
특히 기숙사 생활을 하다 보니 하루 종일 같이 보내는 교우 관계가 무엇보다 가장 중요했다.
“그리고 네 평범한 기준에 나는 평범한 게 아니란 건 잘 알아.”
이거 너무 무거운 거 아닌가?
헬리는 짐을 들어주다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힘이 센 수하가 들지 못할 무게일 리 없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솔직히 사감 선생님이 눈에 불을 켜고 있다 해도 들어다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수하가 기겁을 하겠지. 그래. 딱 거기까지였다. 그에게 허락된 건 아직까지는 거기까지란 걸 너무나 잘 알았다.
“내가 평범한 것보다는 평범하지 않은 게 좋긴 해. 네가 편하게 여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너와 함께 있으려면 외모든 실력이든 평균 이상이어야 마땅하잖아. 당연히 나도 노력해야 하고.”
아니, 그건 아니야! 나는 그렇게 눈이 높지 않아!
수하는 뭐라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아니다. 생각해보니 눈이 높은 것도 같으니 그냥 일단 듣자. 경청도 중요하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지. 입을 열어봤자 이상한 소리만 할 게 뻔하니까, 헬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진지하게 듣는 편이 훨씬 낫겠다.
“그런데 너와 나란히 있으면 네 조용하고 평범한 삶이 사라질 것 같다고 해서 아예 후보에도 들지 못하는 건 내가 너무 억울하잖아.”
그가 이런 말을 조용히 할 때는 주변이 늘 평화로웠다.
까만 밤과 그에게만 떨어지는 것 같은 가로등 불빛, 친절하게 건네는 엄마가 싸준 짐, 부드러운 웃음이 수하를 어쩔 줄을 모르게 만든다.
“조심해서 들어가. 이제 곧 기숙사 문 닫히겠다.”
“그…….”
“내일 아침에 신청서 제출하고 바로 나가는 거 알지? 짐 잘 챙기고. 너무 긴장하지는 말고. 그래야 푹 자니까. 응?”
“으, 응.”
“그럼 내일 보자. 얼른 들어가.”
들어가는 것까지 멀리서라도 보겠다며 그가 손짓을 했다.
이거, 이래도 괜찮은 거야? 이대로 끝인 건가?
“괜찮으니까 들어가.”
수하는 그와 들고 있던 짐을 번갈아 가며 보았다.
“얼른.”
“어, 바래다줘서 고마워.”
그제야 헬리는 환하게 웃었다. 어두운 밤인데도 반짝반짝 빛나게 웃었다.
아, 그 말이 듣고 싶은 거였구나.
“응. 잘 자, 수하야.”
수하는 멍한 얼굴로 터덜터덜 기숙사로 걸어갔다. 한 번 뒤를 돌아보니 그가 손을 흔들어준다. 마음이 간질거려서 같이 손을 흔들었다.
“뭐하니, 기숙사 문 닫는다!”
멀리서 사감 선생님이 외치신다. 수하는 깜짝 놀라 뛰어 들어갔다.
선생님 눈에는 띄지 않을 만큼 모퉁이를 돌아 차를 대어놨던 헬리는 그녀가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그 자리에 있었다.
수하가 마침내 기숙사 문 안으로 들어가고, 문이 안전하게 닫혔다.
그는 그제야 다시 차를 타고 시동을 건 뒤, 출발을 하려다 말고 운전대 위에 엎어졌다.
“아…….”
긴장돼서 죽는 줄 알았네. 평소에는 뛰는지도 몰랐던 심장이 지금 확실하게 나 여기 있다고 존재감을 뽐내며 쿵쾅쿵쾅 달리는 중이다. 뺨이 화끈거리고 귀가 뜨거웠다.
끝까지 침착한 척, 어떻게든 티 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목소리가 마구 흔들렸던 걸 수하는 눈치챘겠지?
부끄러웠지만 어쩔 수 없다. 오늘도 형제들의 온갖 의미가 담긴 눈총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그가 직접 데려다주겠다고 우기며 엄청나게 꾸미고 나온 헬리는 픽 웃었다.
‘수하는 어머니를 닮았구나.’
그럼 수하가 나이가 들면 오늘 만난 수하 어머님 같은 모습이겠지.
미래를 본 것 같아 좋았다. 형제들이 알았다간 당장 뭐 저런 미친놈이 다 있냐는 표정으로 볼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를 그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고, 친구가 된 것만으로 만족하려고 했던 수하를 넘을 수 있는 선 가까이에 바짝 끌고 왔다. 마음이 간질거렸다.
*
공격을 하는 입장에서는 반드시 공격해야 하는 곳을 완벽하게 파악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솔론과 자카는 프린태니어에 먼저 가서 알아낼 수 있는 걸 최대한 알아내야 했다.
‘단, 우리는 늑대인간들처럼 인질로 붙잡혀선 안 돼. 언제나 안전이 최선이니 절대로 정보 파악 이상의 행동은 하지 마.’
그들을 보내며 헬리는 신신당부했다.
‘차라리 정보가 적은 게 낫지, 너희가 위험에 빠지는 건 결코 안 돼.’
욕심부리지 말고 안 되겠다 싶으면 그냥 바로 포기하고 관광이나 하고 있으라는 든든한 말을 남겼다.
그래서 솔론과 자카는 무척 마음이 편하게 프린태니어로 떠나 왔다.
“곧 출발하겠네.”
시계를 들여다본 자카가 중얼거렸다. 솔론이 흘깃 보는 눈에 묻지 않은 질문이 담겨 있는 걸 보곤 대답까지 덧붙였다.
“나머지 형들이랑 수하. 지금 곧 출발할 시각이야.”
리버필드 시에서는 새로운 주가 시작되는 오전이라는 얘기다.
솔론은 옷깃을 좀 더 바짝 끌어당기며 앞을 바라보았다.
프린태니어 시는 이미 하루가 시작한 지 꽤 된 터라, 그들이 서 있는 거리는 아주 조용했다. 그저 허름한 식당 하나가 문을 열었을 뿐이다.
솔론과 자카는 넘어가지도 않는 음식을 시켜두고 식당에 앉아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레일건.
간판을 보던 솔론이 중얼거렸다.
“저렇게 대놓고 간판을 달고 있는 술집인 줄 알았으면 진작 인터넷에서 찾았지.”
“어, 아냐. 인터넷에는 없어. 그냥 술집이라고만 나오지 레일건이라는 이름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어.”
자카가 바로 고개를 흔들더니 볼멘소리를 했다.
“내가 뭐 안 찾아봤는지 알아? 다 뒤져봐도 없었다니까.”
프린태니어는 관광도시도 아니고, 에스티발과 마찬가지로 조그만 도시였다.
물론 에스티발처럼 휑하다 못해 몰락하는 느낌이 드는 건 아니었지만, 이곳에는 오래도록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거다. 그래서 외부인이 더 쉽게 눈에 띌 테니 소년들은 무척 조심해야 했다.
가게에 들어가 음식을 시켜놓고 먹지 않는 짓부터가 눈에 띄는 행동이었다. 탁자 위에 성의 없이 놓인 감자튀김을 집어 든 손은 큼직하고 혈색이 돌았다.
뱀파이어 소년들이 아닌 늑대인간 소년의 손이었다.
“흠.”
자카의 말을 듣고 인터넷을 뒤져본 나자크는 튀김을 입안에 넣곤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없지?”
내 편 좀 들어. 자카의 말에 머리를 길게 묶은 나자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없네.”
“거봐.”
쟤도 그렇다잖아! 자카가 솔론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눈을 부릅떴다.
언제나 자료조사는 철저히 하는 자카가 용납을 할 수 없는 발언이었나 보다.
알았다, 알았어, 하고 고개를 끄덕인 솔론은 차가운 창문에 이마를 기댔다.
“이대로 밤까지 기다려야겠는데.”
드리프터들이 저 술집을 이용한다면 결국 밤에나 문이 열릴 거다. 상식적으로 술집이 낮부터 영업을 할 리가 없기도 했다.
“지금 문 닫고 있을 때 털면 딱 좋은데.”
자카가 중얼거렸다가 당장 나머지 소년들의 눈총을 받았다.
“왜, 왜 그렇게 쳐다보는데?”
“너는 조심하라는 말도 못 들었냐? 헬리 형이 그렇게 귀에 못이 박이도록 말을 했는데.”
솔론은 딱 거기까지만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당장 이 자리에는 나자크뿐만 아니라 엔지도 앉아 있다. 네 명이 이번 프린태니어 선발대였다.
어쩌다 늑대인간들과 엮이게 된 건지, 아직까지도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저 레일건에 늑대인간 소년들의 원수가, 그리고 리버필드 시를 뒤지려던 드리프터들의 배후가 있다. ‘다른 사람 눈에 띌 정도로 특별한 능력을 가진 여자’를 찾으라 명령한 이가 있다.
“주변이나 둘러보고 이따 저녁에나 다시 와야 해. 그때쯤이면 우리 쪽이나 쟤네 쪽이나 하나둘 도착하겠지.”
솔론이 가만 생각하다 말했다.
“나는 이 자리에 죽치고 앉아서 누가 드나드는지 보고 있을 테니까 너희는 대충 둘러보고 가서 쉬어.”
이어지는 솔론의 말에 자카가 눈을 크게 떴다.
“그걸 왜 형만 해? 내가 가서 대충 빨리 보고 오면 되잖아.”
사람들이 감지하지도 못할 속도가 이능력인 자카라면 저 술집을 샅샅이 털고 올 수도 있겠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이야기였다.
다만 에스티발 시에서 늑대소년 셋이 붙들렸던 상황이 있었던 만큼, 더 이상의 구출 작전은 사양이라 안 될 뿐이지.
“안은 안 들어가고, 근처만.”
“그거라면 우리도 가능할 거 같은데.”
엔지가 밝게 말했다. 성격이 부드러운 그는 웃는 얼굴로 서글서글하게 뱀파이어 소년들과도 날을 세우지 않고 말했다.
“우리는 냄새를 맡을 수 있으니까 눈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을 알아낼 수 있을 거야.”
“좋아, 그럼. 일단 지금 가보자. 지난밤의 흔적이 남아 있을 수 있어.”
자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장 솔론의 말이 따라왔다.
“안에 들어가지 마.”
“안다니까.”
“너 말고.”
같이 일어나던 엔지가 솔론을 쳐다보았다.
“조심하라고.”
무뚝뚝하고 차가워 보여서 말도 못 붙일 거 같던 솔론이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던 엔지는 약간 늦게 미소 지었다.
“응. 너희도 조심해.”
엔지와 자카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다. 다시 자리에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자크와 솔론은 엔지와 자카가 신중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주의해서 바라보았다.
만일 근처에 드리프터가 있는데 마주치는 날에는 당장 거리에서 싸움이 벌어질 거다. 매우 조심해야 했다.
“아, 이번이 끝이었으면 좋겠네.”
나자크는 몸을 뻣뻣한 의자에 어떻게든 파묻어보려 애쓰며 말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그의 지나치게 긴 신장을 감당할 수 있는 가구는 거의 없었다.
솔론은 눈만 움직여서 나자크를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지겨워?”
“지겹지. 여기저기 다니는 건 지겨워.”
“많이 다녔나 봐?”
“넌 그런 거 하나도 궁금해하지 않을 거면서 의외로 잘 물어본다. 지겹게 돌아다녔어.”
“지겹게 돌아다닌 건 우리도 마찬가지라.”
솔론은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어깨를 으쓱거렸다. 언제나 정착할 곳을 목을 매고 바랐다.
“이제나 학교에 다니고 좀 신나게 사나 했더니만 너네가 나타나더라.”
나자크의 뼈 있는 말에 솔론은 픽 웃다 말았다.
솔론의 생각 많아 보이는 눈은 각기 다른 색을 띤 채 바깥을 내다보았다. 자카는 이미 눈에 보이지도 않고, 엔지가 슬쩍 레일건 뒤로 돌아가는 게 보였다.
뱃속이 묵직하게 당기고 불쾌한 긴장감이 다시 느껴진다. 드리프터들을 상대할 때마다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섰다.
“어?”
나자크가 반응하는 것과 동시에 솔론도 움찔거렸다.
안절부절못하며 후드를 푹 뒤집어쓴 채 레일건으로 접근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드리프터인가?
“이야, 꽁꽁 싸맨 거 봐라……. 각오 제대로 하고 온 모양인데.”
나자크는 이미 확신했다. 저놈은 드리프터가 맞다.
“설마 벌써 가게 여는 건가?”
솔론이 그럴 리가 없는데, 라며 중얼거렸다.
“술집인데 벌써?”
설마 그럴라고. 나자크도 고개를 흔들었다.
뭘 그리 잘못했는지 몹시 불안해하며 주변을 둘러보던 그 드리프터는 레일건 뒤로 돌아갔다.
어라. 뒤에는 이미 자카와 엔지가 넘어가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딱 3분 만에 자카와 엔지가 그 드리프터 양쪽에 서서 자연스럽게 나타났다. 누가 보면 평범한 친구 사이인 줄 알겠다.
“가자.”
솔론과 나자크도 자리를 떠났다.
황량한 프린태니어 시에 소년들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