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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휴식 (1) (32/81)


32. 휴식 (1)
2022.08.16.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갑작스럽겠지만 사실 타이밍은 지금이 딱 좋아.”

학교에 들를 거고, 그 김에 서명받아서 서류처리가 되기만 하면 좀 더 자유롭게 레일건이 있다는 프린태니어로 갈 수 있다.

나이트 클래스의 나이트볼 주전들에게 주어지는 특혜가 상당하니까, 그걸 이용하면 된단다.

갑작스러운, 이안의 말 그대로 갑작스러운 말에 수하는 눈을 여러 번 깜빡였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말고. 강요하는 건 아니야. 출석일 수가 좀 빡빡해지겠지만, 데이 클래스에서도 어떻게든 맞출 수는 있어.”

별 거 아니라는 듯, 이안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하지만 나이트 클래스가 되면 좀 편해지지. 당장 프린태니어로 쳐들어가려고 출석으로 또 못하는 것도 데이 클래스보다는 학교 눈치를 덜 보게 될 거고.”

옆에서 시온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인다.

“하자, 그냥. 어차피 데이 클래스나 나이트 클래스나 공부하는 건데 다 똑같아. 그냥 나이트 클래스에 와서 우리랑 놀자.”

“그건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

나이트 클래스가 좀 더 명문이라고 평가받고 있으니 똑같지 않다는 건 전학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수하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말이다. 가만 생각해봐도, 어차피 데이 클래스에서 나이트 클래스로 옮겨가는 것뿐이다. 다른 학생들은 몰라도, 정작 수하는 바뀌는 게 없었다. 교육과정도 똑같을 뿐, 그저 공부하는 시간대만 변경되는 거였다.

어차피 질리도록 밤에 나가서 나이트볼 연습을 빙자한 능력연습을 해왔으니 차라리 밤이 나으려나?

하지만 나이트 클래스 소속인 학생들과 새로운 친구 관계를 만들어야겠지. 그건 좀 부담되는데.

“아니긴 뭐가 아니야. 어차피 우리랑 같이 다니자고 옮기는 건데.”

시온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프린태니어에 같이 갈 거지?”

“어?”

“안 가도 상관은 없는데, 아니지. 같이 가야지. 또 리버필드에 드리프터들이 들이닥칠 게 뻔한데. 너는 무조건 같이 가야 해.”

아, 그런가. 새로운 친구 관계야 이미 만들어져 있구나. 이미 친구가 일곱 명이나 있었다.

수하는 담요를 접으며 기지개를 켰다.

“나이트 클래스로 어떻게 옮기는 건데?”

질문을 하자 이안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옮기긴. 신청서 쓰고 허가받으면 끝이지. 나이트볼 핑계로 옮긴다 하면 이사장님도 환영하실걸? 나이트볼에 워낙 진심인 분이시라 안 그래도 너 언제 나이트 클래스로 옮기냐고 슬쩍 물어보셨다던데.”

“어…… 큰일 났네. 나이트볼 연습도 열심히 해야겠네.”

“이번엔 여학생 리그에서도 우승컵 나오는 거 아니냐고 기대하고 계시대.”

남학생 리그와 여학생 리그를 전부 다 석권한 드셀리스 아카데미 선수단! 나이트볼에 미친 이사장이 너무나 뿌듯해할 타이틀이었다.

물론 현실은 조금 다르지만. 아니, 많이 다르지만.

이사장님, 죄송합니다. 지금 저희는 나이트볼보다 훨씬 중요한 일을 하고 있어요. 물론 이사장님께서는 세상에 나이트볼보다 중요한 건 없다고 외치시겠지만요.

“너라면 지금 상황으로도 우승 가능할걸?”

이안은 아주 진지하게 분석했지만 수하는 고개를 흔들었다.

“스포츠에서 이능력 쓰면 반칙이지.”

“아니, 안 쓰고도 우승한다고.”

그 정도라고?

“너 그사이에 키가 조금 컸어. 더 튼튼해지고, 건강해졌을걸?”

이안은 그렇게 말한 뒤 나이트 클래스로 옮겨가는 신청서를 받아와야 한다며 생각에 잠겼다.

어느새 그들은 학교에 도착하는 중이었다.

창밖으로 익숙한 건물들이 보이고, 환한 햇살이 눈을 감은 헬리의 얼굴에도 쏟아지고 있었다.

돌아왔다. 마침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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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뱀파이어 소년들이야 그들의 삶에만 집중하면 되고, 선샤인시티스쿨의 늑대인간 소년들은 지금 실종되었다 돌아온 형제들을 챙기느라 바쁠 거다. 치료도 해야 하고, 원기도 회복해야 하겠지.

하지만 수하에게는 이번 학기에 새 학교에서 겪은 놀라운 일 말고도, 지속해야 하는 평범한 일상이 있었다.

“엄마, 나 왔어.”

아직 어색한 리버필드 시의 새집 문을 열고 들어가면, 엄마가 오랜만에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고개를 내민다.

“왔어? 왔어? 손 씻고 얼른 앉아. 따뜻할 때 먹자.”

“또 음식 했어? 안 해도 된다니까…….”

가방을 내려놓고 엄마는 어떻게 사나, 한 번 휘둘러보며 말해도 엄마는 고개를 흔들면서 수하를 화장실로 보냈다.

“무슨 소리야, 엄마가 음식을 하면 얼마나 한다고. 손 씻고 얼른 와!”

“네.”

원래 계획대로였다면 엄마가 새로 구한 이 작은 아파트에서 수하와 엄마가 단둘이 즐겁게 살 예정이었다.

하지만 드셀리스 아카데미는 전교생이 기숙사에서 지내는 게 원칙인 학교였고, 엄마는 작은 아파트를 좀 더 넓게 쓸 수 있게 되었다.

창가를 따라 화분들이 놓였고, 엄마 취향대로 새로운 커튼이 드리워졌다. 깨끗한 화장실에는 엄마다운 목욕용품이 한구석에 가지런하게 놓였고, 엄마한테서 나는 향과 똑같은 향인 비누가 놓여 있었다.

수하는 손을 씻으며 숨을 한 번 가볍게 쉰 뒤 다시 나갔다.

“여기 앉아. 뜨거우니까 냄비 조심하고.”

“응. 엄마, 집 잘 꾸몄다. 예뻐.”

“그러니? 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다. 이사가 너무 늦어져서 네가 주말에 기숙사에 있는 게 너무 마음에 걸렸어. 미안해, 정말.”

“그래봤자 2주밖에 안 됐는데. 괜찮아. 기숙사도 나름 재미있었어.”

“친구는 많이 사귀었어? 알렉스는 어때?”

엄마는 항상 그랬듯이 수하의 접시에는 어마어마한 양을 담아줬다.

윽. 저거 다 먹을 수 있으려나.

“알렉스야 뭐. 엄마도 알잖아. 나 나이트볼 해.”

“그래? 어때, 재미있어?”

엄마는 놀라지도 않는다.

“……사고 칠까 봐 걱정 안 돼? 공을 터트리거나 골대를 날리거나, 뭐 그런 거.”

“네가 일곱 살이니?”

조심스럽게 묻자, 엄마는 깔깔 웃었다.

“네가 한사코 하기 싫다고 해서 그냥 뒀지만, 나는 네가 운동을 하나쯤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 그런 식으로 몸 안에 쌓인 에너지를 날리는 거지. 스트레스도 날리고 말이야.”

혹시라도 또 이상하다는 손가락질을 받을까 봐 겁에 질렸던 수하를 꼭 안고 지켰던 엄마의 얼굴은 몇 주 전에 봤던 것보다 훨씬 밝아 보였다.

새 직장, 새 도시, 새집, 전부 다 낯설 텐데 엄마도 나름 리버필드 시에서 적응을 잘하고 있는 모양이다.

“재미있니?”

“응. 재미있어.”

사실 야광공을 가지고 노는 것보다 안개가 된다거나 속 시원하게 힘을 발산한다거나 하는 게 훨씬 재미있지만 그건 엄마한테 말하지 말자.

“나이트볼 주전들도 만났어.”

“아, 걔들 무척 유명하더라. 웬 고등학교 리그가 그렇게 유명한가 했더니 이유가 있더라고. 엄마도 경기 영상 봤어. 회사에 팬들이 많아.”

“그 정도야?”

“그럼. 당연하지. 주전들 어떠니?”

“걔들이랑 친해졌어.”

그것만큼 엄마를 기쁘게 하는 소식도 없었다. 딸이 건강하고,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고, 씩씩하게 학교에 적응하고 있다는 것보다 더 바랄 것도 없으니까.

“……그래서 선샤인시티스쿨 주장까지 만났다니까.”

“그랬어? 세상에, 그 친구는 어때? 듣기론 여태까지는 나이트볼 리그를 그 학교가 꽉 잡고 있었다더라.”

“응. 다들 라이벌 의식이 장난 아니야. 만나기만 하면 불꽃이 파지직 튀어. 승부욕이 엄청나.”

말을 하다 보니 접시가 반 정도 비었다. 벌써 배가 부르지만, 엄마가 만든 음식은 뭐든 맛있어서 또 먹고 싶다.

“……기쁘다. 새 학교를 재미있어하니 엄마가 너무 기쁘네.”

엄마는 무척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어, 그래서 말인데, 엄마. 나이트볼 때문에, 내가 클래스를 데이에서 나이트로 옮겨야 한대.”

“어머?”

“선생님들은 이미 서명을 해주셨고, 엄마 허락만 남았거든.”

어디 있더라? 수하는 가방에서 신청서를 꺼내왔다.

“뭐가 바뀌는 건 전혀 없고, 수업을 저녁에 듣는 거야. 나이트볼 주전들은 다 나이트 클래스 소속이라 바꾸는 게 어떠냐 하더라고.”

“너는?”

“어?”

“너는 어쩌고 싶은데? 데이가 좋아, 아니면 나이트가 좋아?”

“나야 나이트가 좋지. 애들이랑 자주 보고, 어차피 나이트 클래스 애들이 더 친하고…….”

의도한 건 아닌데 그렇게 됐다. 오늘도 학교에서 신청서를 받아 오는데, 주전들과 친한 수하에게 부러움 섞인 시선이 쏟아졌다.

적응은 안 되지만, 그녀를 둘러싼 뱀파이어 소년들이 워낙 잘나서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엄마는 수하의 대답에 펜을 집어 들었다.

“다치는 건 조심하겠다고 약속해.”

“내가 다칠 일이 얼마나 있…….”

말을 하려다가 문득, 일레인의 무시무시한 눈빛이 생각나서 수하는 입을 다문 뒤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몸은 사려야지.

“운동을 하는 것도 좋지만 네 건강이 우선이야. 그리고 속상하거나, 문제가 있어서 더 하기 싫어졌다면 엄마한테 망설이지 않고 말하겠다고 약속해. 도중에 관둬도 상관없어.”

“응.”

수하가 약속하자마자 엄마는 시원하게 서명을 끝냈다.

“케이크 먹을래? 초콜릿인데.”

“먹을래!”

신이 난 수하가 신청서를 대충 가방에 구겨 넣었다.

모처럼 엄마와 보내는 시간은 재미있었다. 엄마가 수하를 걱정하는 만큼 수하 역시 엄마를 걱정했다. 모녀는 리버필드 시가 처음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잠깐 떨어져 있는 동안 더 애틋해져서, 모처럼 파자마 차림으로 나란히 앉아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안고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다.

“이사장님이 엄청 기대가 크시다나 봐. 근데 주전들은 그냥 시큰둥해. 그러거나 말거나 내 할 일이나 한다, 뭐 이런 식이야. 나였으면 부담감에 숨도 못 쉬었을 텐데.”

엄마는 특히 뱀파이어 소년들의 이야기를 재미있어했다.

“게다가 다들 인기도 엄청 많은데 그것도 그냥 그러려니 해. 별 관심이 없나 봐.”

“그러게. 신기하네. 너는 어떤데?”

“나?”

“그래, 너.”

엄마는 초콜릿 맛 아이스크림을 크게 떠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 좋아하는 남자애는 없니? 다 잘생겼던데.”

“아, 엄마! 우린 그냥 친구야!”

“얘는. 원래 친구부터 시작하는 거야. 너 좋다고 하는 애 없어? 이상하다. 우리 딸이 이렇게 예쁜데.”

엄마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갑자기 정색했다.

“아니, 그래도 아무나 좋다고 홀라당 빠지면 안 돼! 남자는 아주 신중하게 골라야 하는 거야! 잘해준다고 해서 쉽게 넘어가지 마!”

“하나만 해, 하나만…….”

좋다고 하는 애라.

반사적으로 헬리가 생각났다. 그 까만 밤과 환하던 달, 조용하고 평화롭던 호숫가가 잊히지 않는다.

그때 한 말에 대해 대답해줘야 할 텐데. 칸이 연락하고, 그다음에는 정신없이 에스티발 시로 가느라 말을 할 타이밍을 놓쳤다.

‘……기다리고 있을까?’

이런 건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제일 중요한 건 네가 좋아하느냐 마느냐지, 다른 건 필요 없어.”

엄마는 수하의 바닐라 아이스크림도 푹푹 뜨며 푸념처럼 말했다.

“요는 진짜로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착각인 건지 잘 구분해야 한다는 거지. 남들 눈 걱정하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네가 부담스러우면 싫은 거야. 싫은 건 싫은 거라고.”

“엄만 아빠가 부담스러웠어?”

엄마는 잠시 아이스크림 한 숟가락을 입에 넣고 한참 생각했다.

“좋았지. 좋았으니까 너도 생겼고.”

길고 약간 메마른 손이 수하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녀는 엄마한테 핸드크림을 또 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엄마가 남자 보는 눈이 좀 별로였을 뿐이야. 사람은 언제나 실수하기 마련이고.”

“응. 확실히 별로이긴 했어.”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 보니 밤이 깊었다.

“엄마, 잘 자요.”

“그래, 너도 잘 자라.”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했지만 엄마는 이 아파트에도 반드시 수하의 방을 만들었다. 자주 오지는 않아도, 주말마다 올 테니 무조건 방을 만들었다.

지노도 이번 주말은 별 생각하지 말고, 걱정도 하지 말고 푹 쉬라 했다.

‘프린태니어가 정확하게 어디더라.’

검색해보니 에스티발 시만큼은 아니지만 어쨌든 또 국경을 건너야 했다.

당장 학교로 돌아가자마자 신청서만 제출하고 바로 출발해야겠지.

그럼 또 헬리와 함께인가.

대답을 해야 하나. 뭐라고 해야 하지?

싱숭생숭하고 마음이 간지러워서 잠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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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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