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구출 (5)
(30/81)
30. 구출 (5)
(30/81)
30. 구출 (5)
2022.08.02.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늦은 오후, 에스티발 시 물류창고에 치솟은 수상한 연기는 밤이 되도록 꺼지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해서 기웃거렸으나 별일 아니라고 험상궂게 말하는 창고 사람들 때문에 금방 돌아갔다. 그리고 창고는 완전히 어둠 속에 잠겼다.
몇 시간 후, 물류창고에 당도한 드리프터들은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간이선착장이 어디로 간 건지 알 수가 없어 배를 제대로 댈 수도 없었고, 마중 나온 드리프터도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이 새끼들이 일할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늑대인간들을 실어 나를 배를 대충 띄워놓고 뭍으로 올라온 드리프터들은 불에 타버린 선착장 쪽에서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향해 짜증 냈다.
“무슨 일이 났어? 빨리 옮겨야 할 거 아니야?”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리고 짜증을 낸 드리프터도 더 이상 짜증을 내지 못했다.
하나가 쓰러지는 것을 시작으로, 여럿이 영문도 모르고 기습을 당한 채 엎어졌다.
*
아. 선착장 쪽이 시끄럽다. 타헬은 그쪽을 한 번 힐끗 돌아보았다.
늑대인간들을 ‘옮기러 온’ 드리프터들이 도착해서 기습이 시작되었나 보다. 그쪽에 끼지 않았던 타헬은 여전히 물류창고 안에 남아 있었다.
“이제야 숨쉬기 좀 편하네.”
일레인이라는 에스티발 시 물류창고에서 가장 강한 뱀파이어가 생포된 후로 물류창고는 빠르게 넘어갔다.
여기저기에서 발생한 화재를 보고도 사람들은 이 근처에는 이상하게 얼씬도 하지 않았다.
햇볕에 부상을 입었던 드리프터들은 바깥에서 대기 중이던 늑대인간 소년들과 솔론이 처리했다.
기분 나쁜 향초의 단내도 이안이 뜯어낸 문을 통해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자 곧 사라졌다.
“괜찮아요? 좀 어때요?”
타헬은 당장이라도 실종되었다가 다시 찾은 형들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향초 냄새가 사라지자 겨우 정신을 차린 다른 늑대인간들부터 챙겼다. 그들의 상태가 너무나 처참했기 때문이다.
이게 뭐야. 타헬은 자존심 상하게, 뱀파이어들 앞에서 울먹거릴 뻔해서 꾹꾹 참았다. 하지만 눈물이 자꾸만 나려고 했다.
“여기 물, 물 마셔요. 물이에요. 괜찮아요. 저도 늑대인간이에요.”
놀라서 경계하는 늑대인간 하나를 다독이며 깨끗한 물을 주는 걸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급하게 음식을 사 온 엔지와 이안이 담요며 물품을 날랐다. 타헬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다. 열악한 물류창고 감옥에 붙잡혀 있던 늑대인간들에겐 따뜻한 음식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이 새끼들은 맨날 피만 빨아먹고 살았네. 다른 건 아무것도 없어. 소독약 뿌리고 싶어 죽겠네.”
이안은 더러운 창고 상태에 질색하며 손을 박박 닦았다.
“모든 뱀파이어가 이렇게 사는 건 아니야. 진짜 오해야.”
“……진짜 아니야?”
타헬은 의심이 가득한 눈으로 이안을 쳐다보았다.
“아니라니까. 속고만 살았어?”
“속고만 산 건 아니고, 내가 형들이랑 같이 이런 늑대인간 수용소를 습격할 때마다 다 이랬는데.”
“다 이랬다고?”
이안이 입을 딱 벌렸다.
“너네가 이래서 우리를 그렇게 이상한 눈으로 봤구나…….”
잡담을 하면서도 손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그들은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처리해야 했다.
선착장에 도착한 드리프터들까지 싹 다 처리한 형제들이 돌아오면, 포로였던 이들을 안전하게 집으로 돌려 보내주고, 또 그놈의 배후에 대해서도 뒤져야 했다.
부지런히 물을 끓이고, 아이들이 먹을 만한 유동식을 만들어낸 이안은 짐을 척척 어깨에 얹고 동분서주했다.
“형!”
그때 선착장 쪽에서 돌아오는 이들을 본 타헬이 벌떡 일어나 달려갔다.
헬리와 수하, 칸, 나자크와 솔론이 막 전투를 끝내고 돌아왔다.
“배고프지? 뭐 먹을래?”
타헬은 당장 칸을 붙잡고 웃었다.
“괜찮아. 별일 없어?”
“응.”
일단은 오늘 전투는 다 끝났다. 헬리는 한숨을 쉬며 더러워진 검을 닦았다. 쓰면 쓸수록 손에 착착 감기는 게 점점 그와 한 몸이나 다름없는 것 같았다.
“그 여자는?”
이안은 턱으로 물류창고 위층을 가리켰다. 지노가 얼마나 불장난을 즐겁게 했는지 물류창고는 군데군데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사바는?”
칸의 물음에 이안은 또 물류창고를 가리켰다.
“둘 다 아까 거기에 계속 그대로 있어. 일레인인가 하는 여자는 아직 깨어났는지 모르겠고, 사바 그놈은…….”
동족을 팔아치우는 놈이라니. 이안의 얼굴이 혐오감으로 일그러졌다.
“기절했다가 깨어났어. 하도 시끄러워서 타헬 쟤가 재갈을 물려놨지.”
형들의 눈이 자신에게 향하자 타헬은 어깨를 쭉 폈다.
“소리를 질러대길래 입을 다물게 했어. 여기 있는 다른 사람들이 들어봤자 좋은 말이 아닌 거 같아서.”
안 그래도 향초의 영향력이 끝나자마자 정신을 차린 늑대인간들이 사바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이를 박박 갈고 있었다.
방금 습격한 배에서 가져온 서류를 자카에게 넘긴 헬리는 칸을 쳐다보았다.
“뭐부터 할래? 응징? 아니면 취조? 나는 이 물건에 대해 알고 싶은데.”
‘레이’라고 새겨진 반쪽짜리 성냥갑을 꺼내 보인 헬리는 칸이 선택하게 해주었다. 이 참혹한 곳을 목격한 이라면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할 거다.
“데이비드보다는 확실히 여기 책임자가 더 아는 게 많아 보였지?”
칸이 갈색 눈동자를 번뜩거리며 중얼거렸다.
“여기서 오래 있었나 보더라고.”
에스티발 시 물류창고를 채우고 있던 드리프터들은 마치 그들이 복도에 끝도 없이 걸어놨던 조잡한 향초가 꺼지는 것 같이 무너졌다.
붙잡혀 있던 늑대인간 포로들은 자신들을 구출한 이들이 뱀파이어와 늑대인간 조합이라는 것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지만, 어쨌든 이 끔찍한 물류창고가 사라졌다는 것에 기뻐했다.
그들은 음식을 먹고 기력을 차린 뒤, 다시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물론 그 준비까지 모두가 한마음으로 도왔다.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해. 이런 곳은 만들기만 하면 그만이니까.”
또 언제 이런 물류창고가 생길지 모른다는 자카의 지적에 엔지가 동의하며 한 가지를 덧붙였다.
“시간도 없어. 얼른 여길 수색한 다음에 돌아가야 해.”
언제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고 드리프터들이 몰려들지 모른다. 저번에 리버필드 시로 드리프터들이 몰려왔을 때는 책임자 데이비드를 위한 함정을 팔 여유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여유도 없었다.
“그래도, 잠시만.”
칸은 엔지의 말에도 불구하고 헬리와 모든 사람에게 양해를 구한 뒤, 서둘러 동생들에게로 뛰어갔다.
수하는 잠시 걸음을 멈춘 채 헬리와 나란히 서서 그가 실종되었던 동생들과 다시 만나는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형……!”
쓰러졌다가 간신히 일어난 세 명의 늑대인간 소년들이 칸을 붙잡고 고개를 숙였다.
“고생했어. 수고했어. 늦어서 미안해.”
“아니야, 하나도 안 늦었어…….”
고개를 흔들고 꽉 끌어안는다. 별다른 말은 오고 가지 않았지만, 서로를 부둥켜안고 체온을 확인하는 광경만 봐도 저들이 얼마나 끈끈한지 알 수 있었다.
“너희도 저래.”
“응?”
헬리는 수하에게로 허리를 슬쩍 숙여 귀를 기울였다.
“너희도 저렇다고. 저렇게 들어갈 틈 하나 없어 보여.”
“우리가?”
“응. 사연 많은 가족이구나, 싶어.”
옆에서 지켜보니 알겠다. 그것도 같이 겪어보니 더더욱 잘 알겠다.
이들은 오늘과도 같은 죽음의 문턱을 수도 없이 넘나들고,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간신히 살아남은 사이다. 말로 표현하기도 어렵고, 서로를 위해 목숨을 기꺼이 바칠 수 있는 가족이었다. 세상에 그들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외롭고 힘들었겠다, 싶기도 하고.”
수하가 겪은 이상한 시선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살벌한 상황 속에서 지켜주는 이도 없이 힘들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따지고 보면 소년들 모두 보호가 필요하지 않은가.
“그래? 보통은 우리가 일곱 명씩이나 되니까 외로웠겠다는 소리는 안 하던데.”
수하는 고개를 들어 헬리를 쳐다보았다. 그는 웃으면서 물을 마시라고 건네주고 있었다.
“어떻게 안 외로워? 가족만 달랑 있는 거잖아. 고마워. 잘 마실게.”
오늘 하루 종일 싸우고 뛰어다녀서 정신이 하나도 없다. 종알대며 물을 뜯어 마시는데, 헬리가 흘리듯 말하는 게 들렸다.
“뭐, 이젠 너도 있으니까.”
우와. 수하는 조용히 헬리와 정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슬쩍 돌렸다. 이젠 사레가 들지도 않고 어쨌든 물은 제대로 마실 수 있게 될 정도로 익숙해지긴 했다.
저런 죄 많은 뱀파이어 같으니. 시도 때도 없이 훅 치고 들어오네.
*
마한, 루슬란, 카밀, 셋 다 이젠 안전했다.
실종상태라는 단어만 생각해도 머릿속이 하얘지던 때는 이제 간신히 지나갔다.
다시는 동생들을 따로 보내는 일은 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고, 여러 번 살펴 마침내 마음을 놓은 칸은 생각했다.
‘어쩌다 이놈이랑 이런 순간에 늘 함께하게 된 거지?’
‘이놈’, 정확하게는 드셀리스 아카데미 나이트볼 선수단 주장 헬리는 칸과 함께 일레인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재갈을 문 채 축 늘어져 있었다.
“안 깨어나네.”
옆에 있던 수하가 풀이 죽어 어깨를 시무룩하게 늘어뜨렸다.
“미안. 내가 너무 세게 때렸나 봐.”
힘을 조절하는 건 너무 어렵다. 안개화에 성공했으니 이젠 세밀한 힘 조절도 배워야 할 텐데 말이다.
그녀는 아쉽게 제 야무진 주먹을 만지작거렸다.
앞으로는 조금만 세게 때려야지. 조금만.
“아니, 깨우면 그만이지.”
칸은 고개를 흔들며 앞으로 나섰다.
“어떻게 깨우려고?”
“때린 데 또 때리면 일어나지 않을까?”
가만히 듣고 있던 헬리가 칸을 도로 잡아당겼다.
“됐어. 내가 할게. 네가 또 때리면 이 자리에서 즉사야.”
“내가 뭘…….”
볼멘소리를 하려던 칸은 헬리가 일레인 앞에 자리를 잡는 걸 보곤 입을 다물었다.
그의 신기한 능력이야 이미 싸울 때 질리게 보았다. 알아서 하겠지.
잠시 기다리자 아니나 다를까, 일레인이 간신히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단단히 묶인 몸과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앳된 얼굴들을 보곤 한숨을 쉬는 것 같았다.
“……그래, 뭐, 그런 애송이들한테 붙잡힌 건 유감인데, 그건 그쪽 사정이고.”
그녀의 생각을 줄줄 읽는 헬리는 싸늘한 목소리로 본론부터 끄집어냈다.
솔직히 수하도 이젠 익숙해져서 일레인이 경악하든 말든, 그건 관심 없었다.
웬만큼 대단한 뱀파이어라면 헬리도 자신의 이능력을 철저하게 숨긴 뒤 심문했을 것이다. 하지만 겪어본 일레인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아니면, 요즘 가끔 위험하게 드는 생각이지만, 헬리가 생각보다 더 강한 뱀파이어인지도 모른다.
“아, 늑대인간들을 실으러 배가 도착하긴 했는데 그것도 우리가 잘 처리했어. 그래서 말인데.”
헬리는 이리저리 굴러가는 일레인의 눈앞에 데이비드에게서 빼앗았던 성냥갑을 내밀었다. 당장 일레인의 생각이 읽혔다.
‘머저리 같은 데이비드! 어린놈이 중책을 처음 맡았으면 제대로 마무리했어야지, 저 귀한 걸 빼앗겨? 어쩌지, 마스터가 이놈들을 잡아주셔야 할 텐데…….’
아. 우리의 데이비드 씨는 역시나 그 자리에 올라선 지 얼마 되지 않은 모양이다. 헬리는 주머니에서 다른 성냥갑을 하나 더 꺼냈다.
“그리고 너는 이런 걸 가지고 있었지.”
생김새는 같으나 새겨진 문구는 다른 성냥갑이다. 둘을 합치면 정확하게 ‘레일건’이라는 단어가 완성된다.
‘레일건, 프린태니어……, 프린태니어에 계시는 레일건 마스터께서 내가 이렇게 되었다는 걸 아시면……, 늑대인간들을 더 보내드려야 하는데…….’
그래. 헬리는 성냥갑이 합쳐진 걸 보자마자 일레인이 쏟아내는 이런 정보가 필요했다.
아무리 의지가 대단하다 해도 무의식중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까지 제어하긴 힘들다. 헬리는 그런 식으로 여러 번 묻지 않고도 좋은 정보들을 얻었다.
그는 손을 뻗어 거칠게 일레인의 입에 물린 재갈을 벗겨냈다.
“이게 너와 리버필드에 왔던 데이비드의 윗선인 거지?”
“건방진 놈, 마스터께서 네 목을 물어뜯으실 거다.”
일레인은 살벌하고 무서운 레일건의 마스터를 떠올리며 일갈했다.
“……그 마스터를 꽤나 믿고 존경하나 본데.”
“늑대인간과 손을 잡다니, 수치도 모르는 놈!”
그 와중에 일레인의 사무실을 뒤지며 이런저런 서류를 살피던 칸이 한가롭게 말했다.
“아까 그 배도 그렇고, 여기로 잡혀 온 늑대인간들은 대충 두 곳으로 나뉘어 흘러가는 모양인데. 프린태니어와 루겔이야.”
“그중 이 레일건의 주인은 어디에 있지?”
헬리는 알면서도 일부러 물었다.
“그거야 네가 직접 알아봐야지, 꼬맹아.”
일레인은 이를 드러내며 무섭게 웃었으나, 그녀의 머릿속에는 프린태니어 시에 있는 ‘레일건’에 대한 정보가 휙휙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마스터와 고위 뱀파이어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혹은 자신의 무능력에 대한 엄벌이 처해질 것을 두려워하는 공포, 그 두 가지가 어지럽게 뒤섞였다.
헬리는 그 커다란 공포만큼 강력한 존재를 느끼고 할 말을 잃음과 동시에 희망을 가졌다.
‘어쩌면, 레일건의 마스터가 이 모든 일의 배후인지도 몰라.’
그들의 여정도 레일건의 마스터만 잡으면 끝날지도 모른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