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구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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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구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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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구출 (3)
2022.07.19.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모든 건 다 시간 싸움이다. 더구나 누군가를 구출하는 입장은 몹시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수하가 쇠창살을 드리프터들을 향해 날려버려 시간을 버는 사이, 지노와 노아는 지체하지 않고 뛰어들어 벽에 걸린 향초부터 해결했다.
“다시는 켜지도 못하게 해버려.”
손짓만으로 눈에 보이는 향초들의 온도부터 낮춰 불을 꺼버린 지노는 뒤늦게 눈에 들어오는 감옥 상태를 보며 치를 떨었다.
노아는 말없이 꺼진 향초들을 보이는 대로 다 뜯어내 바닥에 던졌다. 그래도 여전히 좁고 불편한 감옥 안에는 향초의 끈적대는 단내가 남아 있었다.
“와, 냄새. 여기 환기를 좀 해야겠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로 된 물류창고 문이 하나 뜯겨져 나갔다.
물론 문을 뜯었다 해서 얌전히 두는 게 아니라, 그대로 드리프터들 쪽으로 휙 던져버린 이안이 저벅저벅 걸어 들어왔다.
순식간에 문을 통해 바람과 햇빛이 물류창고 안으로 빠르게 들어왔다. 드리프터들은 눈을 가리고 비명을 질렀다.
“괜찮아요? 일어날 수 있겠어요?”
수하가 나머지 쇠창살을 뜯어내며 늑대인간들을 흔들어 깨웠다. 의식은 있지만 힘은 없었던 그들은 신음했다.
“일어나요. 여기서 나가야 해요.”
이안이 곁에서 서둘러 각각 좁은 감옥에 붙은 쇠창살을 뜯어내서 어떻게든 반격하려는 드리프터들에게 던져대고 있었다. 상황을 본 이안이 수하에게 외쳤다.
“여긴 나랑 자카한테 맡기고 너넨 얼른 올라가.”
순식간에 열린 감옥에서 힘없이 늘어진 아이들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다. 늑대인간 구출 담당인 자카가 빠르게 움직이면서 아이들부터 옮기는 거다.
수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헬리와 함께 계단으로 향했다.
자카는 축 늘어진 늑대인간 아이 둘을 하나는 옆구리에 끼고, 하나는 어깨에 걸친 채 바깥으로 나왔다.
“고마워. 안쪽 상황은 어때?”
아이들을 보자마자 손을 뻗은 타헬의 다급한 표정에 자카는 잠깐 멈칫했다. 늑대인간에게서 이렇게 쉽게 ‘고맙다’라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건 꽤나 어색하고, 또 이상하면서도 불쾌하지는 않은 일이었다.
“이제 시작이야. 어린애들도 생각보다 많고, 나이 드신 분도 너무 많아. 일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어.”
타헬은 자카에게서 아이들을 받았다.
“알겠어. 우리는 5분 있다가 바로 들어갈게.”
“너는 들어오지 마. 누군가는 쓰러진 사람들을 돌봐야지.”
그 말에 타헬이 바로 발끈했다.
“나도 싸울 수 있어!”
“그러니까 지키라는 거 아냐. 기다려. 더 데리고 올 테니까.”
막내들은 다 저러나? 자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시 물류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자카가 움직일 때마다 사방이 느리게 돌아간다. 그는 그래서 상황판단을 훨씬 정확하고 침착하게 할 수 있었다.
어디 보자. 수하가 던진 가장 커다란 쇠창살이 드리프터들에게 가장 피해가 컸고, 그다음은 역시나 이안이 던져댄 문과 쇠창살이다.
역시 머릿수가 밀릴 때는 큰 걸 집어던지는 게 최고구나. 앞으로는 이안과 수하 옆에 꼭 붙어 있어야겠다.
“아, 해가 빨리 졌으면 좋겠네, 진짜!”
성질을 버럭버럭 내면서 싸우는 건 노아다. 역시 어려서 혈기가 넘치는구나. 안 그래도 이안이 문을 잡아 뜯는 바람에, 어둠을 이용해서 싸우는 노아가 좀 귀찮아진 건 사실이었다.
“성질은.”
자카는 고개를 흔들었다. 빛이 있다면 그림자는 더 짙어지는 법. 까매진 그림자에 숨거나, 그림자 그 자체를 움직여서 잘도 싸우고 있으면서 말로는 저런다.
“누구 좋으라고 해가 빨리 졌으면 좋겠대?”
어이가 없어진 이안이 노아를 쳐다보면서도 드리프터 하나를 잡아다 또 던져버렸다. 시온은 대꾸도 않고 그에게 달려들려는 드리프터들을 벽에 딱 붙여버리던 중이었다.
자, 저쪽은 신경 끄자. 자카는 붙들렸던 늑대인간들에게 다시 다가갔다.
“일어나봐. 괜찮아?”
아이들부터 내보내려는데 눈이 마주친 늑대인간들은 자카가 뱀파이어라는 걸 알고 흠칫 놀란다. 씁쓸하기보단 노아와 시온, 그리고 이안에게 사정없이 얻어터지고 있는 저놈의 드리프터들에 대한 살의가 치밀어 올랐다. 아직 한창 어린애들한테 무슨 짓을 한 건가.
“밖으로 나가자.”
바깥에 늑대인간들이 있다고 얘기를 해줘봤자 안 믿을 테니까, 자카는 무뚝뚝하게 말하고 아이들을 다시 휙 들어 올린 뒤 그 자리에서 곧바로 사라졌다.
자카가 사라지자마자 위쪽 계단에서 콰당탕, 하는 요란한 소리가 나더니 드리프터 둘이 굴러내려왔다.
이안은 저 위를 쳐다보다가 문득 시온과 눈이 마주쳤다. 아무래도 둘은 똑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이제 시작이네. 뭐, 어쩔 수 없잖아.”
시온은 어깨를 으쓱거린 뒤 굴러떨어져 정신을 못 차리는 드리프터들을 확실하게 처리했다.
“5분만 버티자고. 버티면 저 밖에서도 들어오기로 했잖아.”
“들어오기 전에 끝내야지!”
우렁차게 외친 이안이 계속해서 징그럽게 나타나는 드리프터들을 상대했다.
“쓸데없는 데 자존심 걸지 마.”
시온이 고개를 흔들었지만, 아무래도 노아는 이안을 따라 자존심을 걸기로 한 모양이다.
하필 저 둘이랑 같이 있게 되다니. 시온은 괜히 투덜거려본 뒤 위층을 잠깐 올려다보았다.
지금 위로 올라간 건 수하와 헬리, 그리고 지노뿐이었다.
매캐한 연기와 타는 냄새가 조금씩 향초의 지독한 단내를 뒤덮고 있었다.
*
감옥의 참혹한 모습을 지노가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었다. 그도 형제들과 함께 도피 생활을 하면서 보지 말아야 할 장면을 너무 많이 봤던 터라, 그렇게 순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 눈으로 확인하면, 아무리 익숙한 장면이라 해도 익숙한 만큼 분노가 치밀었다. 그래서 지노는 그 분노만큼 향초를 꺼트리고, 짓밟았다.
“으, 아, 부, 불이……!”
누군가는 말을 완성하지도 못하고 쓰러졌고, 혹은 2층 창문을 통해 떨어졌다. 또는 2층 창문을 깨면서 들어왔다.
“어?”
지노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2층 창문을 깨고 난입해 들어온 건, 뜻밖에도 칸이었다. 그는 들이닥치자마자 일단 눈에 보이는 드리프터들은 죄다 공격하기 시작했다.
“야, 너 5분 있다가 들어온다며!”
“나는 괜찮아!”
“그런 게 어디 있냐, 인마!”
“애들 어디에 있는데?”
지노가 뭐라 하든 말든, 칸은 수하를 보며 물었다.
수하는 복도 끝을 눈으로 가리켰다. 금세 칸의 표정이 착잡해졌다.
일단 거리가 너무 멀었지만, 이 길 말고는 동생들이 쓰러진 곳에 접근할 만한 길이 전혀 없었다. 가장 걱정되는 건 동생들이 인질이 되었을 때다. 그리고 칸은 그럴 가능성이 거의 100퍼센트라는 걸 잘 알았다.
하지만 어쩌겠나. 방법이 이것밖에 없다면,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으아악, 저것들은 뭐야?”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왜 이렇게 많아?”
정확하게 말해 지금 힘을 합쳐 싸우는 소년들의 인원이 드리프터들보다 결코 많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허공을 가로지르는 불덩어리나 갑자기 바닥에서 튀어나와 붙잡는 그림자, 벽에 매달려 떨어지지 못하게 만드는 신비한 힘을 상대하다 보면 강력한 이가 너무나 많게 느껴지는 법이다.
“저게 뭐야?”
소년들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바로 저거였다. 언제나 질문을 한 이는 대답을 듣지 못하고 죽었다. 드리프터들끼리만 살던 세상에 갑자기 나타난 소년들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인 게 분명했다.
하긴, 사실은 소년들 자신도 스스로가 누구인지 계속해서 답을 찾으려 애썼다.
현실주의자인 자카는 지금 제대로 살면 그게 바로 자신이라고 했고, 솔론은 자신의 몸에 흐르는 늑대인간의 피를 때론 부정하려 했다.
그리고 헬리는 과거를 뒤적이며 원장선생님이 남겨둔 단서에서 자신을 찾으려 애썼다.
“으, 아아악!”
헬리가 휘두르는 은빛 검날이 희미한 어둠 안에서도 무섭게 번뜩일 때마다 쓰러지는 이 대신, 그 모습을 목격한 이가 비명을 질렀다.
“괴물! 괴물이다!”
완전히 공황상태에 빠진 어떤 드리프터는 엉금엉금 뒤로 기어가면서 시커먼 드리프터의 피를 뒤집어쓴 헬리를 향해 그렇게 외치기도 했다.
괴물이라니. 지노는 얼굴을 찡그렸다. 지들은 더 끔찍한 괴물이라, 해선 안 될 짓을 스스럼없이 했으면서.
괴물이라니, 저렇게 잘생긴 괴물이 어디 있어? 미쳤나 봐, 진짜. 콱, 그냥……!
콱, 그냥, 하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괴물이라고 외치던 드리프터는 묵직하게 퉁, 하고 튕겨져 나갔다. 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발끈해서 씩씩대며 드리프터에게 본능적으로 본때를 보여준 수하는 곁에서 풋,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려오자 뒤늦게 얼굴이 벌게졌다.
내가 설마 헬리 너한테 들리게 말했니……?
나 들으라고 한 소리 아니었어? 너무 크게 들렸는데.
으아아악! 수하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무조건 앞을 뚫어버리기 시작했다. 성실하게 드리프터들을 없애던 칸이 황당할 만큼 엄청난 힘이었다.
그런데 다행이다. 그래도 내가 잘생겼다고는 생각하고 있었구나. 기쁘네.
너, 너더러 못생겼다고 하는 사람이 이상한 거야!
심각하게 싸우는 와중에 이런 말을 헬리와 주고받게 될 줄은 몰랐던 수하는 그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속으로만 외쳤다.
그녀가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다면, 헬리도 그녀를 전혀 쳐다보지 못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겠지만 아직까지는 그 단계까지는 발전하지 못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달라서 좀 걱정했거든.
걱정은 무슨. 헬리가 걱정을 할 외모는 아니었다.
수하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그저 앞을 마구 뚫어버리는 것에만 집중했다. 일단 몰리는 힘이 강하니, 갑작스러운 급습에 드리프터들이 낙엽처럼 우수수 굴러갔다. 아니, 수하는 그런 줄 알았다.
“……수하 너 어째 더 세졌다?”
“나, 나? 내가?”
내가 언제? 수하가 놀라서 지노를 보며 묻는데, 쾅, 하는 굉음을 또 만들었다.
“……거봐.”
아예 구조물이 뜯겨져 나가기 일보 직전이다.
“너 좀 흥분한 거 같아. 진정해. 우리도 쓸려 보내면 안 돼.”
지노는 그녀를 놀리는데 재미가 붙었는지 씩 웃었다.
“그건 나도 장담 못 하겠으니 알아서 조심하는 게 좋겠어.”
수하의 한마디에 웃는 얼굴이 단숨에 굳어버렸지만 말이다.
그녀는 지노를 힐끗 보며 웃어버린 뒤 한 번 더 문을 거세게 밀어내기 위해 집중했다. 저 문을 계속 열어야 칸의 동생들이 있는 곳까지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미리 말해두는데, 그 사바란 놈은 내가 알아서 할게.”
칸이 미리 양해를 구해두는 순간이었다. 헬리가 막 고개를 끄덕이려 했고, 지노는 드리프터 하나를 구워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수하가 문을 박살내려 힘을 막 내보내던 참이었다.
덜컥,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아.”
아이고. 큰일 났다. 수하가 아차 싶었지만 이미 내보낸 힘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문을 열고 나온 사바는 그대로 수하의 힘을 얻어맞고 뒤로 다시 날아가 버렸다. 쾅, 하는 요란한 소리가 당연히 뒤따랐다.
으, 어쩌지. 수하는 칸을 돌아보았다.
“미안…….”
배신자라 잡히기만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던 칸이 꼭 한 방 먹이고 싶었을 텐데.
하지만 칸은 오히려 눈을 번쩍 빛냈다.
“아니, 저놈은 저 정도로는 안 죽어. 쥐새끼 같은 놈이라 생존력 하나는 대단하거든.”
그리고 이 정도로 죽으면 안 되지. 죽었으면 멱살을 잡아서라도 다시 살려낼 거다.
칸은 살기를 품고 저벅저벅 앞으로 걸어갔다. 어디에 있나 훑었는데, 1층에서 튀어나오는 것도 없어서 직접 2층까지 올라오길 잘했다.
바깥은 어때?
헬리는 수시로 바깥 상황을 확인했다.
뭐, 끝도 없지. 저번 리버필드에서 붙었던 때랑 똑같아.
이안의 대답에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그때는 갑자기 늑대인간 소년들이 지원을 왔고, 뜻밖의 수하까지 나타났지만 지금은 제약이 몹시 많았다. 힘이 되어줄 솔론도 바깥에만 있었고, 아래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늑대인간들도 지켜야 한다.
할 만하니까 걱정하지 마. 어떻게든 될 거야.
그런 그의 생각을 읽었는지 이안이 힘주어 말했다. 하긴 리버필드 시에서도 살아남았는데 이곳이라고 살아남지 못할까.
헬리는 문득, 복도 끝을 바라보았다.
“이런 머저리 같은 놈들!”
수하가 어떻게든 다시 한번 돌파하려고 애썼지만, 새카맣게 밀려드는 드리프터들을 떼어내느라 미치지도 못했던 마지막 문이 열렸다.
“어린 것들 몇이 오는 것도 못 막아?”
성질을 내는 이는 이 물류창고 책임자인 일레인이었다.
칸은 수하가 그녀를 왜 ‘강렬한 인상’이라고 했는지 보자마자 알았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라, 저보다 덩치가 큰 사내의 머리채를 잡아 질질 끌고 나왔다. 칸은 쓰러져서 힘도 쓰지 못하는 그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보았다.
“마한…….”
강대한 늑대인간이 향초의 단내에 절여지다시피 하여 아무 힘도 못 쓰고 있었다. 약간 길어져서 목덜미를 덮을 정도로 대충 잘라낸 머리카락 사이로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는 의식을 제대로 차리지도 못해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몇 달 만에 마주한 동생의 참혹한 몰골에 칸의 갈색 눈이 무섭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