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구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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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구출 (2)
2022.07.12.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이 세상에는 수하가 이해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던 일들이 아주 많이 일어난다.
누군가의 구구절절한 사연과 가슴 아픈 이야기 한가운데에 갑자기 개입하게 된 수하는 일어나는 일을 숨죽여 관찰했다.
“지금 이놈들이 가지고 있었던 휴대폰을 추적하는 중입니다. 계속 연락하고 있던데요.”
사바라고 불린 늑대인간은 아주 비굴하게 뱀파이어 일레인에게 굽신거렸다.
그는 상당히 젊어 보였지만, 수하는 늑대인간이나 뱀파이어의 나이를 외모만으로는 짐작할 수 없다는 걸 이젠 알았다.
일레인은 타오르는 것 같은 눈을 쓰러진 늑대인간 소년들에게로 돌렸다.
“하긴 이놈들이 입을 열질 않으니……. 어디로 연락했는지는 알아냈나?”
“당연히 알아냈습니다! 리버필드 시였습니다!”
사바는 희망찬 얼굴로 외쳤으나 일레인의 미간이 좁혀졌다.
“리버필드라고?”
“예!”
아. 저 일레인이라는 여자는 리버필드를 드리프터들이 습격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수하는 그녀의 표정만 보고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거기 늑대인간들이 있다는 소문을 듣기는 했지.”
“제가 직접 가서 잡아 오겠습니다. 저를 아는 놈들이라 바로 걸려들 겁니다!”
사실은 거짓말이었다.
사바는 이미 저 소년들에게 배신자였고, 소년들이 그를 잡으러 왔다가 도리어 함정에 빠져 드리프터들에게 붙들렸기에 간신히 그가 목숨을 부지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일레인이 그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 일단은 그 어떤 거짓말을 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했다.
“그래? 우리가 드리프터들을 집어넣고도 실패한 걸, 네가?”
무서운 사람이다. 수하는 턱을 쓰다듬는 일레인을 보며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꼈다.
어떤 사람들은 손짓과 눈빛만으로도 성격이 드러나는데, 일레인이 딱 그랬다. 그녀는 상당히 잔인한 사람이다.
“하, 할 수 있습니다!”
“……하긴 그쪽 책임자 데이비드가 이제 막 책임자 자리에 올라서 도움이 많이 필요하지.”
일부러 사바라는 저 사람을 가지고 노는 게 분명했다.
“나는 이놈들의 피가 필요해.”
마시고, 또 마셔서 더 뛰어난 뱀파이어가 되어 계속 위로 올라갈 거다. 일레인의 눈이 욕망으로 번들거렸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개를 바닥에 한 번 더 처박은 사바는 덜덜 떨기만 했다. 어쨌든 일레인의 비위를 맞추면 먹고살기는 한다. 그게 중요했다.
마하바 초원을 누비던 늑대인간들은 싸그리 몽땅 다 이곳, 에스티발 시의 물류창고로 끌려와 사라졌다.
먹고살기는 힘들어졌고, 사바에겐 동족을 팔아먹는 길밖에 남지 않았다. 아니, 그는 적어도 그 길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동족은 그에게 쉽게 속았고, 뱀파이어들에게는 돈이란 게 있었으니까.
돈. 그래. 절대 없어서는 안 될 돈 말이다!
“나가 봐.”
사바가 굽실대며 나가는 사이, 수하는 빠르게 쓰러진 늑대인간 소년들을 살폈다.
셋. 맞다. 머리색이 저마다 제각각인 데다 피도 빨렸고, 두들겨 맞기도 해서 얼굴이 부풀었으나 어쨌든 칸이 보여주었던 사진과 일치했다.
수하야. 나와. 이만하면 됐어.
그때 굳어버린 헬리의 목소리가 그녀를 불렀다.
더 알아봐야 하지 않아? 저 뱀파이어 너무 강력해 보이는데?
수하는 저런 위압감을 가진 사람은 처음 봐서 불안하기만 했다.
저것보다 더 강력한 뱀파이어도 얼마든지 있어. 이미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니까 어서 나와.
늑대인간 소년들이 처참하게 쓰러진 것을 보고 그냥 나가려니 몹시 찝찝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응?”
일레인이 마침 이쪽을 보며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기 때문이다. 허공을 응시한다는 건 결코 좋은 게 아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수하는 그 순간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벽에 붙은 뒤 얼른 통과해서 나갔다. 너무 놀라서 심장이 쿵쿵쿵쿵 뛰었다.
진정해. 괜찮으니까 다시 돌아와.
나 진짜 놀랐어. 저렇게 무서운 사람 처음 봐.
수하는 한숨을 쉬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천천히 허공을 밟고 날아갔다.
안개가 된 몸은 무척 가벼워서 바람이 밀어주는 대로 흘러갔다. 서둘러 이 물류창고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만큼 안개는 아주 빠르게 움직였다.
멀리에서 그녀를 보고 있는 헬리가 보였다. 여전히 수하는 안개의 모습인데도 헬리는 그녀를 정확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어서 와.”
혼자 착지할 수 있는데, 그는 굳이 손을 내밀었다. 거절하기도 민망하고, 그렇다고 잡자니 부끄럽다. 지금은 다른 일이 더 중요하니까 이것저것 따지지 말아야지.
수하는 그 손을 잡고 지상에 내려섰다. 희끄무레하던 안개가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고생했어. 너무 잘했어. 무서웠지?”
“응. 아까 그 뱀파이어 너무 무섭더라. 날 발견한 줄 알았어.”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어라, 다들 어디로 간 걸까?
“지금부터 기습하기로 했어.”
헬리는 그녀의 표정만 봐도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모양이다.
“몇 시간 후에 배가 새로 들어온다면, 그 배에 타고 있을 드리프터들까지도 상대해야 해. 시간은 없고, 따지고 보면 지금이 저쪽 전력이 최소일 때야.”
“그럼 난 뭘 해야 해?”
뭘 하긴. 그냥 여기 있어. 하고 싶은 말은 사실 그건데, 헬리는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뭘 하라고 데려온 게 아닌데,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그가 잠시 우물쭈물하는 사이, 수하가 고개를 돌렸다. 물류창고 한구석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지노인가? 아마 그럴 거다. 짧은 시간 사이에 저렇게 큰불이 나는 건 이능력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하니까.
“응?”
“……나한테서 떨어지지 마.”
“응!”
“절대로 무리하지 말고.”
“아까도 무리하지 않았잖아.”
수하의 씩씩한 반박에 헬리는 한숨을 쉬며 검을 들었다.
“이미 충분히 무리한 거야.”
*
지노가 물류창고 외곽에 커다란 불을 일으켜 드리프터들의 시선을 빼앗았다.
“너 저 불, 계속 유지할 수 있어?”
나자크가 약간 불안하게 물었다. 갑자기 일으킨 불의 규모가 너무 커서 저게 얼마나 유지되려나,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끄는 게 문제지.”
“하하하…….”
“나중에 끌 고민을 하면 그게 호사야.”
지노는 나자크를 두고 노아에게 손짓했다.
먼저 물류창고 안으로 잠입해서 촛불을 끄는 건 지노와 노아가 하기로 했다. 항상 반듯하게 머리를 넘기고 있던 노아는 이미 장거리 여행으로 머리카락이 잔뜩 흐트러진 채 지노에게 달려왔다.
“가자.”
저 멀리에서 불을 발견한 드리프터 하나가 소리를 질렀다.
“으아악, 불이야! 불!”
자. 아직 해가 떠 있다. 햇볕은 그들을 도와줄 것이다. 물론 나머지는 전혀 도와주지 않겠지만. 결국 소년들만의 힘으로 이 물류창고 전체를 엎어버리고 늑대인간들을 구출해야 했다.
지노는 헬리가 설명했던 물류창고 안의 구조를 떠올리며 신중하게 불을 놨다. 아니, 사실은 무척 골치 아팠다. 잘 아는 곳이라면 몰라, 모르는 곳에 어떻게 ‘안전하게’ 불을 놓는단 말인가!
“저기 선착장에도 하나 놔.”
끙끙대는 형을 보다 못해 노아가 강 쪽을 가리켰다.
“아. 그래. 그게 좋겠다.”
아주 새카맣게 태워야지. 지노의 연둣빛 눈이 살벌하게 번뜩이더니, 선착장에 요란한 소리가 났다.
“……아니, 불을 놓으랬지, 누가 폭파시키랬어?”
기가 막힌 노아가 물었다. 낡은 선착장에 판자들이 모조리 일어나 춤을 추며 바람에 날려 떨어졌다.
저 정도면 배를 댈 곳이 없어 강 한가운데에 정박한 뒤 보트를 내려 뭍으로 가까이 와야 할 판이다.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지노는 어깨를 으쓱거린 뒤 물류창고 안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창고 안에 늑대인간들의 힘을 빼는 향초를 잔뜩 켜놓은 이상, 늑대인간 소년들은 아직까지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해서 칸을 비롯한 늑대인간 소년들은 대기하고, 뱀파이어 소년들이 상황을 우선 정리해야 했다.
결국 다 한통속이었다, 이 말이지.
지노가 헬리에게 다시 물었다.
물류창고의 책임자는 여자 뱀파이어이며, 그녀는 리버필드 시를 습격했던 드리프터들의 총 책임자, 데이비드를 알고 있다 했다. 결국 다 같은 편이다 이 뜻이었다.
응. 그래. 우리가 제대로 찾아왔어.
……어쩐지 우리 보육원을 습격했던 놈들도 똑같은 놈들이라는 확신이 점점 생기는데.
지노는 사납게 말하며 시커먼 옷을 뒤집어쓴 채 뛰어나오는 드리프터들을 바라보았다. 아직 아니다. 충분히 나올 만큼 나왔을 때 들어가야 했다.
“공격이야?”
“불이잖아! 저거 꺼!”
우왕좌왕하는 드리프터들 사이에서 험악한 욕설도 터져 나왔다.
자, 이제 어디로 들어갈까?
햇볕에 주춤대는 드리프터들은 저보다 약한 개체를 사정없이 내쫓아 불을 끄라고 강요했다. 밀려난 이들은 피부가 벌써 벌겋게 변하기 시작했다. 대단히 고통스러울 거다.
“형.”
지노와 함께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노아가 그를 불렀다. 왜 그러냐고 눈짓을 하자, 한껏 진지해진 노아가 말했다.
“우리는 뱀파이어지, 그렇지?”
“그럼 뭐 적당히 피 마시고 살아왔으면서 늑대인간인 줄 알았냐?”
“아, 나는 진지한데 왜 말을 그렇게 해? 아무튼 뱀파이어잖아. 그런데 왜 쟤네는 저렇게 햇볕에 약하고, 힘도 없는데 우리는 멀쩡할까?”
지노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게 항상 궁금했어.”
노아만 궁금한 게 아니라 형제들 모두가 궁금한 일이었다.
“적어도 뱀파이어는 뱀파이어인데 드리프터는 아니라는 거지, 뭐.”
한참 생각하던 지노는 아주 단순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원장선생님이 우리를 숨기려 하셨다는 것 말고, 지금 아는 게 뭐 더 있나?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응.”
하지만, 드리프터들과 마주할 때마다 ‘나는 누굴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분명히 부모님도 있었을 테고, 그들과 같은 뱀파이어들이 어딘가 존재할 텐데 그들은 싸우기만 하고 있다.
“솔론이 더 힘들 거야.”
“……아. 그러겠네.”
솔론은 이 문제에 더해 늑대인간 혼혈이기까지 하니 더더욱 외로울 거다. 안 그래도 혹시나 향초 영향을 받을까 봐, 헬리는 솔론을 일찌감치 뒤로 빼놓았다.
지노, 노아, 이쯤에서 진입해. 우리도 간다.
헬리에게서 연락이 오자마자 두 사람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왔던 드리프터들이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아악! 습격이다!”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늑대인간 소년들이 드리프터들을 물고 내동댕이치기 시작했다.
“도와줘!”
“어딜 짐승 새끼들이 감히!”
물류창고 안에서 불이 났다는 소리에 귀찮아하고 있던 드리프터들이 우왕좌왕했다.
“잠금장치 신경 써!”
“야, 그래도 니들 구하겠다고 누가 오긴 했나 보다? 어? 좀 있다 같이 쳐넣어 줄게.”
아까 늑대인간들의 피를 빨겠다고 어슬렁거리던 드리프터 하나가 감옥 쪽으로 다가가 쇠창살을 툭툭 치며 질 떨어지는 웃음을 지었다.
감옥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 너머에 각자 좁은 방에 갇혀 옴짝달싹못하는 늑대인간들만 그를 노려보았다.
“어쭈, 노려보면 어쩔 건데?”
들어가서 좀 때려줄까, 하고 이 와중에도 그런 고민을 하던 드리프터는 갑자기 귓가를 스치는 차가운 공기에 움찔거렸다.
“응?”
그를 스쳐 감옥 안으로 들어간 공기는 곧 사람의 형상으로 바뀌었다.
“어?”
드리프터는 멍하니 감옥 복도에서 감옥과 그 바깥을 가로지르는 쇠창살을 향해 선 여자를 바라보았다.
앳된 얼굴의 소녀다. 그녀는 단호한 얼굴로 왼손을 쫙 펼쳤다.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물류창고를 가로로 가로지르던 쇠창살이 폭발하듯 뜯겨나갔다. 늑대인간들을 비웃던 드리프터는 쇠창살에 얻어맞은 채 그대로 함께 날아갔다.
묵직한 쇠창살이 물류창고 안을 나뒹굴며 드리프터 여럿을 깔아뭉개고, 때렸다. 드리프터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쓰러졌다.
“휴…….”
수하는 긴 숨을 한 번 뱉어냈다. 무겁던 마음이 아주 시원했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