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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구출 (1) (26/81)


26. 구출 (1)
2022.07.05.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쇠창살은 물류창고 가장 깊숙한 곳과 그 외의 곳을 가로질러 구분했다. 그리고 그 안에 아주 좁고 작은 구획을 또 쇠창살이 나누고 있었다.

한마디로 물류창고 안쪽에는 끔찍한 감옥이 있었다. 감옥 복도에는 벽이란 벽마다 보라색 초가 걸려 쉴 새 없이 불쾌할 정도로 단내를 풍겼다.

“그건 향초야. 거기서 나오는 향이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어.”

헬리가 수하를 통해 전달받은 물류창고 내부 상황을 말하자 칸이 당장 무엇인지 알겠다는 듯, 얼굴을 문질렀다.

“완전히 넋이 나가서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든다고.”

실로 그러했다. 수하는 쇠창살을 지나 감옥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참혹한 광경에 말하는 것마저 잊었다.

더럽고 좁은 공간 안에 네다섯 명씩 욱여 넣어진 늑대인간들은 힘이 풀려 쓰러진 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남자, 여자, 중년, 청년, 연령대도 다양한 와중에 아기를 안은 여인을 발견한 수하는 입을 틀어막았다. 나쁜 놈들이다. 정말 나쁜 놈들이었다.

수하야.

이렇게 더럽고 좁은 곳에 말 그대로 일을 하다가, 혹은 집에 있다가 갑자기 끌려온 이들이 갇혀 있었다.

그들의 몸에는 이빨 자국이 무수하게 나 있었다. 살아 있는 혈액팩이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은 것이다.

수하야, 정신 차려야 해.

머릿속에 걱정 가득한 헬리의 목소리가 울렸다.

……정신 차리고 있어.

눈이 뜨거웠다. 눈물이 나려는 게 아니라 너무 화가 나서 열이 몰린 것이다. 눈에서 불이 쏟아지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화가 날 수가 있을까.

완전히 방마다 늑대인간들로 꽉 찼어.

수하는 뒤쪽을 돌아보았다. 이곳이 대형 컨테이너가 쌓인 평범한 물류창고의 모습을 왜 하고 있는지 알겠다. 저 컨테이너 안에 늑대인간들을 넣고 운반하는 식이겠지. 쇠창살 바깥에서 늑대인간들을 ‘싣거나’, 또는 ‘내리는’ 작업을 할 것이다.

그때 이 끔찍한 감옥 안으로 다크서클이 턱 밑까지 내려온 드리프터가 비틀대며 들어오려고 했다.

쩔그렁, 하고 쇠창살 잠금장치를 열려는 소리가 소름 끼치는지 늘어져 있던 늑대인간들은 그 와중에도 움찔거렸다.

“왜 그러지?”

차가운 목소리가 드리프터를 가로막았다. 수하는 그 목소리의 주인을 자세히 관찰했다.

이 사람은 누굴까? 알 수가 없으니 헬리에게 물어봐야 했다.

같은 드리프터야. 조금 강해 보이는데.

“왜긴. 배가 고파서 그러지.”

“웃기지 마. 아침에도 피를 마셨잖아.”

“지금은 오후야.”

“더 이상 손대지 마. 저놈들은 한 시간 후에 보내야 한다고.”

보낸다고? 어디로? 수하는 그게 궁금했지만, 드리프터들은 목적지보다는 다른 데 관심이 있는 듯했다.

“그러니까 배 좀 채우겠다는 거 아니야.”

“새 늑대인간들은 또 들어와. 그 멍청이가 계속 우리에게 협력하고 있어서 이번에도 신선하고 어린놈들이 셋이나 들어왔잖아.”

저건 분명히 선샤인시티스쿨 나이트볼 주전들 이야기였다. 수하는 귀를 바짝 세우고 드리프터들의 대화에 집중했다.

“그럼 뭘 해. 우리는 그놈들의 그림자도 볼 수 없는데.”

드리프터들은 얼굴이 아주 창백하고, 창가 쪽은 특히 피해서 다녔다. 번들대는 눈으로 자꾸만 늑대인간들을 힐끔대며 킬킬 웃어대는 게 피가 부족한 듯하다.

……전부 내가 어릴 때부터 봤던 드리프터들이랑 똑같아.

어릴 때부터?

듣고 있던 헬리가 놀라 물었다. 수하는 헬리가 놀란다는 게 더 놀라웠다.

왜 그래, 새삼스럽게?

아니, 네가 말해줘서 알고는 있었지만 자꾸 어릴 때부터라고 하니……, 어릴 때 봐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는 존재들이잖아.

맞는 얘기였다. 저들이 이야기하는 것만 들어도 그랬다.

“그놈들 아주 새파랗게 어린 게 팔팔해 보이던데, 피도 신선하고 맛나겠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더 이상 아무도 건드리지 마. 내가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위에서 떨어진 명령이야.”

“쳇, 어차피 쓸 피, 좀 나눠주는 게 어디가 어때서?”

“꼬우면 네가 올라가서 항의하든가.”

아. 위층에 이들보다 더 높은 자가 있구나.

위를 가리키는 동료의 손짓에 입맛을 쩝쩝 다시던 드리프터는, 그건 싫은지 쇠창살에서 물러났다.

수하는 다시 한번 감옥을 살폈다. 몇 명이나 있는지, 향초는 어디어디 걸려 있는지,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지 헬리에게 전달해야 했다.

탈출시켜야 하는 사람이 많네.

그렇지? 그리고 여기 선샤인시티스쿨 주전들은 보이지 않아. 아무래도 위층으로 가봐야겠어.

조심해.

걱정하지 마. 이만큼 들어왔는데도 다들 눈치채지 못하잖아.

수하는 애써 목소리를 밝게 띄웠다.

짜증이 난 드리프터들이 어슬렁어슬렁 걸어가 어둠에 다시 처박히는 사이, 희끄무레한 안개가 쇠창살 사이를 통과해 위로 가는 계단으로 향했다.

*

“이야기하는 걸로 봐선 아직까진 옮겨지지 않았나 봐. 세 명이 여기에 있을 가능성이 높아.”

헬리의 말에 잔뜩 긴장한 채 귀를 기울이고 있던 늑대소년들은 눈에 띄게 안도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 역할만 제대로 하고, 말은 거의 하지 않고 있던 솔론은 그들의 모습에서 묘한 감정을 느꼈다.

똑같았다. 형제를 걱정하고, 위험에 빠졌다고 하면 미친 듯이 달려가고.

‘여태까지 으르렁대던 상대를 이해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저들을 이해한다는 건 실로 기묘한 기분이었다. 당연했다. 솔론에게도 너무나 소중한 형제들이 있었고, 절대로 잃고 싶지 않아서 여태까지 악착같이 서로를 지켜주며 끈끈하게 뭉쳐 살아남았으니까.

주변을 둘러보니, 솔론만 그런 게 아니라 뱀파이어 소년들 전부 다 저들을 이해한다는 눈빛이었다.

“어쨌든 세 명이 언급되었으니 수하가 위층으로 올라가 보겠대.”

“감옥이 다 차 있다고 하면 이거 상당히 애먹겠는데.”

늑대소년들은 희망이 보였다는 것만으로도 벅차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데, 가만히 듣던 지노가 중얼거리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자카가 그의 말에 동의했다.

“맞아. 게다가 그 향초가 골치 아파. 냄새를 맡으면 늑대인간 전력은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한 거잖아. 그러니까 바깥에서 싸울 수밖에 없지.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면 끝이야.”

힘이 빠지게 하는 향이라니. 뭐 그런 물건이 있나 싶지만, 뱀파이어들의 오랜 수명과 늑대인간과의 깊은 원한을 생각해보면 그런 물건이 개발되었을 법도 했다.

“하지만 향초는 내가 끌 수 있어.”

늑대인간 소년들이 고개를 번쩍 들고 모조리 지노를 쳐다보았다. 일단 말은 던졌던 장본인도 놀랄 정도의 속도였다.

“왜? 진짜라니까. 그냥……, 촛불을 끄면 되잖아.”

“저 강물을 퍼다가?”

나자크가 작은 강을 가리키며 물었다.

“하긴 현실적으로 그 방법이 제일 최선이긴 하네. 먼저 너희가 들어가서 초를 끄고…….”

엔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리는데, 지노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내가 끈다니까. 나 혼자서 한 번에 끌 수 있다고.”

어떻게? 이번에는 이안마저 지노를 쳐다보았다.

물론 지노의 능력상 이론적으로는 가능했지만, 그렇게 섬세한 조절까지는 아직 안 될 텐데?

“보여줘? 잘 봐.”

지노는 주머니를 뒤지다, 주유를 하고 받은 영수증을 꺼냈다. 그러곤 아무 신호도 없이 갑자기 영수증에 불을 붙였다. 저거야 저번에 리버필드 시에서 드리프터들과 싸울 때 늑대소년들도 질리게 봤다.

“붙었지? 그리고 다시.”

화르륵.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불이 다시 사그라들었다.

“불을 일으켰다가 다시 사그라들게 하는 것 정도는 가능해. 그러니까, 이런 아주 작은 불. 장작불 같은 건 어림도 없지만.”

그건 소화기를 가져와서 꺼야 할 거다, 아마.

자신이 불을 잔뜩 질러놓고 끄지는 못해서 보육원 선생님들을 애먹이던 경험이 많은 지노는 촛불처럼 아주 작은 불 정도야 자신 있었다.

선생님들한테 미안해서라도 불을 끄는 연습을 하려 애썼지만, 불을 끄는 연습을 하려면 먼저 불을 질러야 한다는 게 늘 문제였지.

결국 불을 끄는 건 아주 작은 불일 때나 가능했다. 그러고서 여태까지 쭉 왔다.

“가능하겠어?”

헬리의 물음에 지노는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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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이 정도는. 집중한다면. 그다음은 나도 몰라.”

“그 정도면 됐어. 네가 집중할 수 있는 시간 정도야 우리가 벌어줄 수 있으니까.”

“근데 저기, 잠깐.”

엔지가 끼어들었다.

“그 수하란 애가 들어갔다며. 안에서 끄고 나올 수는 없는 거야? 안개잖아. 축축하고 습한 공기라면 촛불은 끌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안 돼. 이미 정찰을 한 것만으로 대단한데 갑자기 촛불까지 꺼트리면 의심을 더 살 거야.”

정찰대는 정찰만 하고 나와야 한다. 더구나 이제 막 안개화에 성공한 수하라면 더 이상의 모험은 하지 않는 게 좋았다.

“카밀과 마한, 루슬란의 생사만 확인하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

지노가 촛불을 끌 수 있단 말이지.

계단을 휙 올라가서 물류창고 2층을 뒤지는 수하는 해결책이 나와 조금 홀가분해졌다.

헬리는 이쪽 상황을 소년들에게 전달할 뿐 아니라, 소년들이 하는 이야기도 수하에게 전달해줬다. 이래저래 바쁘고 정신없을 텐데 참 성실하단 말야.

별로 정신없지 않은데.

응?

아, 미안. 나한테 한 이야기가 아니었구나.

뒤늦게 무의식적으로 하던 생각까지 헬리가 읽어냈다는 걸 깨달은 수하는 몹시 부끄러워졌다. 조심해야지! 속마음까지는 들키기 싫단 말이다!

네가 들키기 싫어하는 생각은 못 읽어.

들키기 싫어하는 생각을 들킬까 봐 걱정했다는 건 읽었잖아.

아니, 내가 그냥 혹시나 해서 말한 거지 읽은 거 아냐. 정말이야.

헬리는 화들짝 놀라서 여러 번 아니라고 말했다.

수하는 스쳐 지나가는 드리프터들에게 괜히 겁먹지 않기 위해서라도 헬리에게 말을 자꾸 걸었다.

너 그거 알아?

뭐, 뭘?

난 네가 선을 긋는 거로 하도 유명하다고 들어서, 나한테도 그럴 줄 알았어.

난 너한테는 선 그은 적 없어!

알아. 그래서 고맙다고. 너 정색하면 좀 무섭거든.

내가?

어디 보자. 수하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드리프터들이 점점 많아지는 쪽으로 가기로 했다. 그들은 여전히 그녀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지만 드리프터들이 너무 많아서 몹시 긴장되기 시작했다.

내가 너한테 정색했었어? 언제? 화냈었나?

하지만 당황해서 자꾸만 말하는 헬리의 목소리를 들으면 쿵쾅대는 마음이 그나마 가라앉았다.

여긴 혼자 온 게 아니다. 무슨 일이 있다면 바깥에 있는 헬리가 도와줄 거다. 알고 있는 사실을 계속해서 상기하며 안으로, 더 깊숙한 안으로 들어갔다.

아래층에 널브러진 드리프터들과는 달리 이 층에 있는 드리프터들은 반듯하게 서서 출입구마다 지키고 있었다. 누가 봐도 안쪽에 거물이 있다는 표시였다.

나한테 화낸 적 없어.

헬리에게 말해주며 안으로 가던 수하는 뜻밖에도, 저 끝쪽 출입구에서 문을 열고 나오는 드리프터를 발견했다.

“두 시간 후에 배가 들어올 테니까 이제 슬슬 물건들을 실어.”

“벌써?”

“나한테 물어보지 마. 일레인이 결정한 일이니까.”

드리프터는 ‘일레인’이라고 할 때 방금 열고 나온 문을 가리키며 낮게 속삭였다. 그러자 모두가 그 말에 복종하듯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하는 본능적으로 그 문으로 다가갔다. 다가가면 갈수록 아래에서 맡았던 기분 나쁜 단내가 흘러나왔다.

저 안에도 향초가 켜졌어. 냄새가 여기까지 나는 걸 보면 아주 많이 켜놨나 봐.

하지만 아래층과는 달리 이곳은 깨끗했다. 기분이 역하다는 건 여전하지만.

문 안에서는 말소리가 들렸다. 수하는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한 후에 문을 통과해서 들어갔다.

“……해서, 얘들만 한 애들이 넷이 더 있다고?”

묵직한 사람을 툭 내려놓은 뱀파이어가 문을 향해 돌아섰다.

그녀는 그을린 피부에 강렬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이 여자가 바로 ‘일레인’이구나. 수하는 직감했다.

그녀의 손에서 툭 떨어진 이는 얼핏 봐서는 지노처럼 붉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아니다. 피투성이가 되어 그렇게 보이는 거다.

기골이 장대한 남자가 셋이나 일레인의 발치에 쓰러져 있었다. 아무 힘도 쓰지 못한 채, 창백하게 피가 빨린 채로.

“예, 예. 넷이 있습니다요. 지금 찾고 있습니다.”

일레인 앞에 무릎을 꿇은 이도 힘겹게 말했다. 그도 향초의 영향을 받는지, 허리가 꼿꼿하지 못하고 구부정한 자세였다.

“마땅히 그래야지. 널 살려두는 이유는 그것밖에 없으니까, 사바.”

*

“사바, 라고. 알아?”

헬리가 급히 묻자 늑대인간 소년들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빠드득, 이가 갈리는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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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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