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실종 (4)
(25/81)
25. 실종 (4)
(25/81)
25. 실종 (4)
2022.06.28.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에스티발 시는 과거의 영화를 다 잃어버린 채, 군데군데 영업하지 않는 빈 가게가 보일 정도로 썰렁하게 주저앉아 있었다.
고층 건물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았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무심한 눈빛에는 생기가 거의 없었다. 썰렁하다 못해 한기가 드는 공기, 낡은 체크 무늬 남방을 입은 배불뚝이 노동자들, 텅 빈 거리.
수하는 담요에 둘둘 싸인 채 숨죽이고 바깥을 바라보았다.
‘이런 곳은 처음 와봐.’
날씨도 험상궂다.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았지만, 회색 하늘이 이곳에서는 늘 보는 하늘의 색인가 보다.
“분위기 한번 살벌하네.”
운전하던 지노가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그들이 타고 있는 차도 트럭이나 낡은 중고차가 대부분인 이곳에서 조금 다르게 보일 지경이었다.
“준비해.”
헬리는 장갑을 끼며 중얼거렸다.
오늘의 목표는 에스티발 시 물류창고에 갇혀 있다는 늑대인간들을 구하고, 더불어 늑대인간들을 잡아들인 뱀파이어들까지 잡아내는 것이다. 그래야만 리버필드를 습격했던 드리프터들의 배후를 알아낼 수 있으니까.
‘바로 습격하는 거야? 아, 그래. 내가 지금 여기서 이걸 물어보는 건 눈치 없는 거지.’
수하는 입을 꾹 다물고 담요를 착착 접었다. 어차피 각오하고 온 곳이다. 그녀도 얌전히 있다가 갈 거라곤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조용히 소년들이 타고 온 차 네 대가 제각기 다른 경로로 진입해서, 물류창고 맞은편 수풀에 섰다.
작은 강을 끼고 있는 물류창고는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오고 가는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저곳이야?”
헬리의 물음에 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루슬란이 마지막으로 보낸 위치가 저기야. 이미 저곳에 없을 가능성이 크지만…….”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최대한 빨리 왔다. 객관적으로는 대단히 신속한 속도였지만 전혀 성에 차지 않은 칸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이미 속이 시커멓게 탄 지 오래였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저 안에 드리프터들이 득시글댈 가능성이 높아.”
헬리는 칸이 동요하는 모습을 못 본 척하며 말했다.
“적어도 안쪽 구조가 어떤지는 알아야 하는데, 자카, 뭐 나오는 거 없어?”
휴대폰을 두드리고 있던 자카는 고개를 저었다.
“너무 오래된 건물이라 정보가 없어. 설계도도 잘 모르겠고.”
“계속해서 늑대인간들을 잡아들였다면 분명히 안을 수용소식으로 개조했을 거야.”
바꿔 말하면, 소년들도 섣불리 들어갔다간 꼼짝없이 갇힐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달빛을 완전히 차단시켜 늑대인간들이 보름달의 영향조차 받지 못하게 한 곳.
헬리와 칸이 상당히 커다란 물류창고를 돌파할 방법을 고심하는 사이, 나머지 소년들이 빠르게 조를 이뤄 물류창고 주변을 살폈다.
“……저쪽으로 늑대인간들을 보내는 건가?”
솔론이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작은 강 쪽으로 난 선착장을 바라보았다.
“어디?”
나자크가 고개를 쭉 뺐다. 이안과 붙은 전적이 여러 번인 나자크의 베이지색 머리카락이 솔론의 뺨을 간지럽힐 정도로 가까워졌다. 솔론은 약간 놀라 얼굴을 뒤로 물리며 강 쪽을 가리켰다.
“저기.”
“……아, 그래. 가능성이 있어. 하지만 육로를 썼을 수도 있지. 강에서도 지원이 올 수도 있으니 차단해둬야겠네.”
나자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억해뒀다. 해가 저물면 드리프터들이 다시 나올 것이다. 바꿔 말하면, 그때 이 물류창고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다는 얘기였다.
“……벽을 깨버리고 싶어.”
지노는 짜증이 났다는 표정으로 물류창고를 보며 중얼거렸다. 저 안으로 햇볕이 스며 들어간다면 꽤나 볼만할 텐데. 드리프터들이 햇볕에 화상을 입고 우왕좌왕할 거다.
“몇 명이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상대 전력을 파악하는 걸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는 엔지는 저 물류창고 안에 상주하는 인원이 최소 얼마나 될지 머릿속으로 계산 중이었다. 그 옆에 쌍안경을 든 이안이 골치 아프다는 듯 중얼거렸다.
“당장 저 철조망이 문제야.”
절대로 넘을 수 없도록 높게 세워진 벽 위에 날카롭게 가시를 세운 철사까지 빽빽하게 둘러놓았다.
“저 벽이야 잠금장치만 열면 되는데, 일단 검문하는 정문부터 통과……. 아, 정말.”
중얼거리던 이안은 머리카락을 여러 번 거칠게 쓸어 넘겼다. 이렇게 아무런 준비도 없이 습격하는 건 처음이다. 항상 도망치던 입장이라, 더더욱 불안했다.
저번 리버필드 시 드리프터 소탕은 살고 있는 도시에서 일어났다는 이점이라도 있었지, 결국 생각보다 적들이 너무 많아 당황하지 않았던가.
“안 돼.”
그때 눈이 돌아간 헬리가 수하를 홱 쳐다보며 말했다. 깜짝 놀란 소년들이 그를 쳐다보았고, 더 놀란 수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아무 말도 안 했어.”
“그런데 들렸어.”
“남의 생각은 허락 없으면 함부로 읽지 않는다며.”
“네가 날 향해서 말하듯이 생각했잖아. 그것도 엄청 시끄럽게.”
말이 빠르게 오고 가는 동안 그 사이에 낀 칸의 얼굴이 꽤나 볼만했다. 재미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므로, 적당히 칸을 구경한 이안이 수하와 헬리를 말렸다.
“왜 그래, 갑자기?”
묻자마자 두 사람의 대답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내가 갔다 오면 될 것 같아서 생각만 했는데, 얘가……!”
“얘가 갔다 오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자꾸만 하잖아.”
“와, 겹쳐서 하나도 안 들리는데 무슨 얘기인지는 알겠다. 안 돼. 미쳤어?”
이안이 수하에게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그냥 생각만 한 거라니까! 나 혼자 생각도 못 해? 그냥 내가 안개로 변해서 슬쩍 들어갔다가 슬쩍 나오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고! 그리고 헬리 너, 생각을 읽지 않기로 했으면 읽어도 모르는 척해야지!”
“그건 미안해. 다시는 안 그럴게.”
빠른 수긍은 헬리의 장점이다.
“좋아. 그럼 말 나온 김에 내가 가보는 건 어떻게 생각해?”
수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그건 안 돼.”
헬리는 단호하게 말했고, 옆에 있던 뱀파이어 소년들은 모조리 고개를 흔들었다. 수하는 그러나 골똘히 생각하다가 안개로 휙 바뀌었다.
“안 된다니까……!”
당장 헬리가 점점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지만, 수하는 곧장 가버리는 게 아니라 소년들 근처를 맴돌았다. 그러곤 물었다.
“너무 눈에 띄나? 아직 오후잖아.”
가만히 보고 있던 타헬이 약간 비틀거렸다. 희끄무레한 공기가 소리 내어 말하는 건 상당히 기괴한 일이었다. 칸이 얼른 동생을 붙잡았다.
“괜찮아. 쟤 아까 그 여자애 맞으니까 놀라지 마.”
“안 놀랐어……!”
뱀파이어 놈들도 보는데 무슨 소리야! 타헬은 퉁명스럽게 반박하며 애써 놀라지 않은 척, 표정을 관리했다.
“안 된, 수하야,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헬리 네가 내 말을 안 듣고 있어. 나 붙잡아봐. 아니, 헬리, 너 말고.”
가만히 듣고 있던 자카가 손을 뻗어 안개를 붙잡아보았다. 안개가 붙잡힐 리가 없다. 손에는 그저 약간의 습기만 남을 뿐이다.
“잡히지 않아. 나는 수하를 보내는 게 좋다고 생각해. 지금 우리한테 이만한 정찰 능력을 가진 사람이 없어.”
자카는 냉정하게 판단했지만 헬리가 뭐라 반박하기도 전에 이안이 손을 내저었다.
“그것도 아직은 안 돼. 수하 쟤가 아직 적절한 훈련을 받은 건 아니잖아.”
“우리가 지금 이것저것 가릴 형편은 아니야, 형.”
꼭 이럴 때 맞는 말을 하는 자카는 물러서지 않았다.
“머릿수에서도 아마 밀릴 거고, 시간도 얼마 없어. 저 안에서 당장 누가 죽어가고 있을지, 아니면 누가 우리를 찾고 있을지 어떻게 알아?”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자카는 헬리를 힐긋 쳐다보았다.
“그렇다는 걸 형도 이미 알고 있잖아.”
네 명의 늑대인간 소년들이 동원할 수 있었던 가장 강력한 지원군은 일곱 명의 뱀파이어 소년들과 수하지만, 사실 뱀파이어 소년들에게 늑대인간들은 대단히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숫자가 모자라도 너무 모자랐다.
입을 꾹 다문 채 허공에 어른대고 있는 안개를 노려보던 헬리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나도 함께 가.”
*
헬리는 이건 직무유기라고 생각했다.
꿈이 맞다면, 혹은 밤필드 보육원 원장선생님이 남겼던 서류가 맞다면, 헬리는 지금 지켜야 하는 공주를 가장 위험한 곳에 직접 내보내는 셈이었다. 그러니까 이건 직무유기다.
이안이 철조망에 접근하는 안개를 초조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각자 자리를 잡은 소년들도 마찬가지이리라. 모두의 통신 역할을 맡은 헬리가 가장 긴장했다는 건, 사실 아무도 몰랐다.
“한 사람이 나와 있는데.”
이안이 정문 쪽으로 나오는 배불뚝이에 턱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를 보며 중얼거렸다. 날이 흐려서 안심하고 나온 드리프터인가?
“드리프터들의 하수인인 인간이겠지.”
엔지가 먼저 대답했다.
“그놈들에게 복종하는 인간도 많고…….”
그는 특히 이런 말을 뱀파이어들 앞에서 한다는 게 무척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번처럼 동족을 팔아넘기는 늑대인간들도 있으니까. 새삼스러울 것도 없어.”
“너 겪은 게 꽤나 많구나.”
이안은 잠시 안개로 변한 수하에게서 시선을 떼고 엔지를 쳐다보았다.
“난 계속해서 생각했던 건데, 너희가 너무 몰라서 오히려 더 신기하다고 생각했어.”
어떻게 뱀파이어와 늑대인간들 사이의 유구한 학살을 전혀 모르고, 그건 우리와 상관없다는 태도로 늑대인간들의 증오를 성가셔만 할까. 엔지는 실로 궁금했었다.
“……우린 저기 있는 놈들에게서 도망치기 바빴으니까.”
이안은 물류창고를 턱으로 가리키며 건조하게 말했다.
밤필드 보육원에서 그저 사랑만 받으면서 곱게 키워지다가 어느 날 세상으로 내쫓기고 나니, 생존에 급급했다. 늑대인간이고 뭐고 세상 전체가 뱀파이어 소년들의 적이었다.
“아. 넘어갔다.”
어쨌든 지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안은 안개가 철조망을 휙 넘어가는 걸 보고 긴장된 웃음을 지었다.
수하가 대담한 성격이란 걸 그는 일련의 사건들로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여기에서 바짝 긴장한 소년들과는 달리 하늘을 나는 것 자체도 살짝 즐기기까지 하며 물류창고 안으로 진입하고 있을 게 뻔했다.
여긴 창문도 별로 없어.
수하의 말이 헬리에게 들려왔다. 이안의 곁에 선 헬리는 이능력으로 매순간 그녀와 함께했다. 단순히 말을 주고받는 게 아니라 드리프터며 뱀파이어들을 심문할 때처럼, 생각 전체를 읽기로 했다.
으음, 어디 한번 볼까? 에이, 아무것도 없네.
높은 창문으로 올라간 수하는 텅 빈 나무 바닥을 보고 실망했다. 수하가 보고, 다시 한번 생각으로 구현하는 장면을 뒤늦게 본 헬리가 대답했다.
그러게. 아무것도 없네.
여긴 아닌가 봐. 근데 네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다니 엄청나게 신기하다. 바로 옆에서 얘기하는 것 같아.
재잘대면서도 수하는 자카가 신신당부한 대로 지금 소년들이 있는 곳에서는 보이지 않는 창고 뒤편과 사각지대까지 신중하게 살폈다.
이크. 사람이 있어. 그늘에 서 있는 걸 보니 드리프터 같아.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겠어? 그냥 저 문을 통과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럼. 당연하지.
“안으로 진입할 거야.”
헬리는 수하가 방금 한 말을 소년들에게 전달했다.
“지하 쪽을 수색해보라고 해. 지하가 없다면 가장 안쪽일 거야.”
미동도 않고 창고 쪽을 보고 있던 칸이 입술만 움직였다.
수하야. 혹시 지하가 있다면 지하로 가보거나, 아니면 가장 안쪽으로 가봐.
알았어.
수하는 마음을 단단히 하고 허공을 부유했다. 둥둥 떠다니는 느낌은 익숙하면서도 어색했다.
실내에 들어오니 공기는 더 차가워졌고, 주변은 더 어두워졌다. 드리프터 둘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있었다.
수하는 전혀 겁나지 않았다. 저들은 그녀에게 관심이 없다. 그저 밤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점점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드리프터들이 많이 보였다. 빠르게 주변을 훑으며 들어가던 수하는 문득 어떤 냄새를 맡았다.
이상한 냄새가 나.
냄새? 무슨 냄새?
몰라. 좀 역한 냄새도 나고…….
그건 당연할 거야. 늑대인간들을 가둬두는 곳이니까. 너무 어둡네.
윽, 좀 달달한 싸구려 향수 같은 냄새도 나. 냄새가 섞여서 더 지독해.
역한 냄새를 가리기 위해 다른 냄새를 끼얹은 거라면 최악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수하는 오만상을 찡그렸다. 안쪽은 몹시 어둑했다. 그리고 웅웅대는 소리가 났다. 환기구인가? 잘 모르겠다.
그녀는 모퉁이를 돌았다가 두터운 쇠창살과 마주하곤 움찔거렸다. 안개가 움찔거린다는 게 웃겼지만, 그걸 눈치챈 이는 이곳에 아무도 없었다.
수하야, 칸이 그러는데, 혹시 향초 같은 게 보이냐고…….
어. 있어. 뭔지 알 거 같아.
곳곳에 촛불이 보이고, 보라색 초가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희미한 촛불 아래에서 수하는 끔찍한 지옥을 발견했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