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실종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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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실종 (3)
2022.06.21.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학기 중에 학교를 빠지는 일이 드물었던 수하는 아무나 붙잡고 외치고 싶었다.
‘여긴 나이트볼이라고 하면 뭐든 다 되는 거냐!’
시 전체가 나이트볼에 미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수하가 난데없이 ‘나이트볼’ 때문에 외국 경기를 관전하고 잠시 트레이닝을 받는다는 말도 안 되는 구실에도 학교는 바로 승인해주었다. 이게 말이 돼?
“이게 말이 되냐고!”
“낸들 아냐.”
솔론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건 좀 말이 안 되지 않아? 어떻게 나이트볼 하나면 결석도 무마가 돼?”
“아카데미 이사장님이 나이트볼 마니아라 시즌 때마다 경기장에서 사시잖아. 드셀리스에서 나이트볼 가지고 안 되는 건 없어.”
자카는 차분하게 말하며 수하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러니까, 포기해. 포기하고,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무슨 일이 일어나도 너는 무사히 집으로 돌려 보내줄 테니까.”
물론 나이트볼 트레이닝이고 뭐고 전부 다 거짓말이다. 그걸 핑계로 출국해서, 저 멀리 있는 에스티발 시의 물류창고를 급습하러 간다.
갑자기 결정된 일이었지만 늑대인간 소년 셋을 포함해 수많은 늑대인간의 목숨이 걸린 일이었기에 모든 게 빠르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수하가 따라가는 건 가장 마지막에 결정된 일이었다.
“넌 무조건 돌아가는 거야.”
다시 한번 다짐하듯 말하는 자카도,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끄덕이는 지노도, 모두가 다 수하를 붙잡고 약속했다. 다시 무사히 돌아오게 해주겠다고.
“아니, 나는……. 기왕 이렇게 된 거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돕고 싶어.”
그렇게 열심히 말해봤지만, 무척 어렵게 가장 먼저 ‘함께 가자’고 말한 헬리는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네 도움이 필요해서 함께 가자는 게 아니야. 가서 아무것도 안 해도 돼.”
또다시 발생한 끔찍한 살인사건에 리버필드 시의 분위기는 몹시도 흉흉했다.
드리프터들의 짓이란 게 뻔한 것이, 발견된 시체들에서 피는 한 방울도 찾지 못했다고 했다.
보란 듯이 널린 시신이며 끔찍한 수법은 경고였다. 늑대인간 사냥에 나섰다가 도리어 전멸하고 만 드리프터들의 보복을 하고야 말겠다는 경고.
“어쩌면 이곳이 지금 가야 하는 에스티발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뱀파이어 소년들은 리버필드 시에 수하를 혼자 두고 떠날 수 없다는 데 전부 동의했다.
그들은 표정이 무섭게 굳어서 학교에 관한 서류를 해결하는 데 수하까지 곧바로 끼워 넣었다. 이동수단, 고려해야 할 일들에 수하는 무조건 끼는 거다. 그냥 그렇게 정해졌다.
“너네 날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 같아.”
조금 부루퉁해지고 미안해지기도 한 수하가 괜히 짐을 챙기며 웅얼거렸다. 바쁘게 비행기 표며 열차 시간을 확인하던 헬리가 그녀를 돌아보며 슬쩍 웃기 시작했지만, 수하는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물론 내가 너희랑 비교하면 진짜 비교도 안 될 만큼 경험도 없고 싸우는 실력도 별로지만, 그래도 내 한 몸은 어지간하면 잘 지킬 수 있어. 그렇게 약하지는 않은데……. 으음…….”
“뭐야, 말이 왜 그렇게 자신 없게 끝나? 약하지 않다면서?”
옆을 지나가던 노아가 그녀를 놀렸다.
“내 말은……, 자신은 좀 없지만 나도 최선을 다할 테니까……, 아주 힘이 없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 취급은 안 해도 된다는…….”
여태 보았던 드리프터들보다 더 강한 상대들을 마주하러 가는 거니까 수하 혼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는 말도, 어쩌면 허세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열심히 말은 하는데 그 살벌하던 밤을 떠올리면 그보다 더 강한 적을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말도 제대로 완성시키지 못하는 수하의 곁에 헬리가 다리를 접고 앉았다. 고개를 숙인 수하와 눈이 마주치도록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응.”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건지, 아니면 더 얘기해보라는 건지, 헬리는 다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아, 둘 다구나. 수하는 어쩐지 알 것 같아서 시선을 피하며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가서 해라, 나가서.”
솔론은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으나 그냥 넘어가는 성격이 아닌 이안이 헬리의 등을 발로 밀어버리며 한마디 했다. 어어, 하다가 바닥을 짚은 헬리는 그래도 좋다고 웃고 있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어쩌면 평범한 친구들과 평생 겪을 일을 이 짧은 시간에 다 함께 겪은 사이라고도 할 수 있는 관계가 되었다.
함께 먼 길을 떠나는 게 몹시 긴장되면서도, 어쩌면 수하는 이 여정 끝에서 생각지도 않은 것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
에스티발 시의 물류창고로 최대한 빨리 가는 게 목적이라, 수하를 비롯한 드셀리스 아카데미 주전들과 선샤인시티스쿨의 늑대 소년들은 새벽에 출발했다.
이미 늦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낫다.
바쁘게 이동하는 동안 다들 거의 말을 하지 않았으나, 수하는 그중에서도 초조해하는 늑대소년 하나를 종종 관찰했다. 그는 가장 어려 보였고, 거의 단발에 가까운 푸른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머리카락 색만큼 얼굴도 파랗게 질려 있었다.
‘하긴 나도 헬리가 실종되었다면 걱정했을 텐데, 쟤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이 셋이나 실종된 거니까…….’
얼마나 걱정되고 미칠 것 같을까. 그 와중에 선샤인시티스쿨의 엔지와 드셀리스 아카데미의 자카가 나란히 앉았다. 그들은 똑같은 표정으로 미간을 찡그린 채 열차 시간표며 비행기 시간표 등, 다른 이동수단을 자꾸만 찾아보고 있었다.
“이 인원이 전부 다 우르르 몰려가는 건 너무 눈에 띈단 말야.”
자카의 말에 엔지도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위험해. 그런데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까 어떻게 따로 갈 수도 없고.”
결국 두 사람 마음에는 지극히 안 드는, 상당히 위험한 경로로 한꺼번에 이동하는 도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에스티발 시는 리버필드 시처럼 유명한 관광지도 아니고, 아주 오래전에 융성했다가 쇠퇴한 도시라서 비행기를 타도 열차나 버스를 타고 한참 이동해야 했다.
“너희 중에 운전할 줄 아는 사람은 몇 명이야?”
“수하 빼고 다 해.”
자카는 대답하면서 시계를 보았다. 곧 그들이 지금 타고 있는 비행기가 착륙하면, 또 이동해야 한다. 시간이 촉박했다.
“그럼 됐어.”
엔지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멈칫거렸다. 생각보다 드셀리스 아카데미 뱀파이어들 사이에도 그와 일하는 방식이 맞는 이가 있다니, 이건 꽤나 색다른 경험이었다.
“헬리 형이 아마 조종사 면허도 있을 거야. 어떻게 땄냐고는 물어보지 마.”
“어떻게 땄는데?”
하지만 뱀파이어가 하지 말라면 늑대인간은 심술궂게 어깃장을 놓고 싶은 게 본능이었다. 엔지는 곧장 되물었고, 자카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말할 수 없는 방법으로.”
수하는 그 말을 가만히 듣다가 톡톡 두드리는 손에 옆을 바라보았다. 헬리가 담요를 내밀었다.
“잘 수 있을 때 자둬. 에스티발 시로 가는 건 아주 비정상적인 방법이라, 힘들 테니까. 졸리면 걱정하지 말고 무조건 자.”
하필 옆자리가 헬리인데 잠을 어떻게 자란 말인가. 자다가 코를 골지 않을까? 이상한 꿈을 꾸고 혼자 잠꼬대를 하면 어떡하지? 이를 갈면? 침이라도 흘리면? 자는 얼굴이 못생겨 보이면 어떡하냐고!
하지만 아무래도 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에스티발 시로 가는 게 ‘아주 비정상적인 방법’이라는 헬리의 말은 무시할 수가 없었다.
“비정상적인 방법이라니,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봐.”
“보통 사람들은 절대로 선택하지 않을 방법이지. 절대 쉬지 않고 오직 이동만 하는 거야. 가장 빠른 수단이라면 불편한 좌석에 어마어마한 소음 같은 건 신경도 쓰지 않고 선택하는 거지. 아마 지금이 제일 편한 좌석일걸. 이동만으로 지칠 거야. 하지만 걱정하지 마. 네가 자도 업어서 갈 테니까.”
음. 일단 무조건 자자. 수하는 담요를 머리끝까지 덮어썼다.
“왜 그래? 답답하지 않아?”
“아냐, 이게 내 잠버릇이야.”
최대한 가리기라도 해야지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헬리가 바로 옆에 있는데 신경 쓰여서 어떻게 잘까. 눈을 가리지 않는다면 그를 계속 쳐다보느라 잠을 자는 것도 잊을 게 뻔했다.
“잘 자.”
으. 수하는 담요 바로 옆에서 들리는 나지막하고 듣기 좋은 목소리에 눈을 꼭 감았다.
잘 수 있으려나? 못 자는 거 아니야? 이미 심장이 정신없이 뛰고 있어서, 헬리의 귀에 들릴까 봐 수하는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
그녀는 부루퉁한 얼굴로 두터운 담요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커튼이 내려진 사주식 침대에 앉은 그녀는 당장이라도 이 답답한 침실에서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꼼짝도 하지 못하는 신세였다.
……답답해하신다고 소문이 나서 와봤더니.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녀는 고개를 홱 돌렸다. 훤칠한 헬리가 커다란 꽃다발을 가지고 들어오고 있었다.
누가 그런 무엄한 소문을 내?
감히 공주가 아프다는데 말이야. 엄마의 위엄 있는 말투를 흉내 내며 눈을 부릅떴지만 헬리는 흥미가 없다는 표정으로 침대 곁 탁자 위에 꽃다발을 내려놓았다. 그러곤 또 어디로 간다.
어디 가!
기껏 왔으면 안 그래도 심심해 죽겠는데 말동무라도 해줘야지!
꽃병에 물 채우러요.
흠.
그녀는 다시 얌전히 앉아 있기로 했다. 꽃병을 가져온 그가 꽃다발을 풀더니, 꽃을 하나하나 꽂기 시작했다.
왜 아무 말도 안 해?
아프면 그녀는 조금 예민해진다. 언제나 씩씩하지만, 그만큼 자주 아팠기 때문이다. 툭하면 앓아눕는 건 사람을 우울하게 만든다.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을 것 같아 기다리던 중이었습니다만.
하여튼 말은 잘해.
말도 잘해야지요.
너 환자한테 너무 야박한 거 아냐?
저처럼 친절한 기사가 또 어디 있습니까.
그녀는 조금 생각하다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건 그래. 신경질 내서 미안해.
헬리는 약간 놀라서 그녀를 돌아보았다.
방금 하신 건 신경질 축에도 안 들어갑니다, 공주님. 더 화내셔도 됩니다만.
아냐. 잘해주는 사람한테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아픈데 짜증이 날 수도 있지요.
어르고 달래는 다정한 목소리에 그녀는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팔을 포갠 뒤 푹 엎드렸다.
……아픈 거 너무 싫어. 내 어깨에는 우리 왕국이 달려 있단 말이야.
그랬다. 그녀는 외동딸이었다. 책임이 아주 막중한 왕국의 후계자였다.
나도 알아. 그런데 내가 쓰러지거나 하다못해 기침이라도 하면……. 그거 알아? 재상이 나 무지 한심하게 쳐다본다?
아.
헬리는 뭔지 안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냐, 하고 반박할 줄 알았더니 이미 알고 있었던 건가. 하긴 그는 그녀가 하는 말은 언제나 믿었다.
알고 있었구나. 아픈 게 내 잘못도 아닌데 그렇게 쳐다보면 진짜 한심해지는 기분이야.
그런 사람의 시선이나 반응은 신경 쓸 가치도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사실 신경 쓰지 않기가 힘들죠.
그렇지? 나는 진짜 다 열심히 하고, 칭찬도 많이 듣는단 말이야! 하지만 재상은 나중에 내가 왕위에 올랐을 때 날 보필해야 할 사람이잖아. 그런 사람이 날 한심하게 본다니…….
안 그래도 아픈데 그런 시선까지 마주하면 몹시 서러웠다.
뭐 좋은 생각 없어?
있긴 한데, 조금 위험한 생각이라서요.
뭔데?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자르세요.
엉?
재상이요. 공주님이 즉위하시면, 잘라버리고 마음에 드는 유능한 인재를 가려서 뽑으시면 되지요. 이 왕국은 공주님이 물려받을 나라지 재상이 물려받을 나라는 아니지 않습니까.
헬리는 재상의 야망 넘치는 눈빛을 생각하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사실, 그가 재상에게 하고 싶던 말이기도 했다. 이 나라는 당신의 나라가 아니라고. 왜 그의 야망을 여왕께서 못 보시는 건지 답답할 뿐이다.
천잰데?
그걸 이제야 아셨습니까. 섭섭합니다.
그럼 내가 즉위하면 네가 재상 할래?
귀찮아서 싫습니다.
*
“수하야.”
가볍게 웃던 목소리가 이번에도 다정하게 그녀를 깨웠다. 수하는 눈을 뜨고 희미한 빛을 자세히 보려고 애썼다.
“일어나. 도착했어.”
시끄러운 엔진 소리가 들리고, 몸이 좀 흔들렸다. 그녀는 비행기 안이 아닌, 울퉁불퉁한 도로 위를 달리는 차 안에서 눈을 떴다.
아직 저녁 어스름이 오기 직전인 오후, 차도 보이지 않는 한적한 도로 끝에 키가 작은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그 위로 회색 구름이 끼어 있었다.
“……어디야?”
물어보며 몸을 일으키던 수하는 몸 위에 덮여 있던 담요가 주르륵 떨어지는 걸 보았다.
“에스티발 시. 다 도착했어.”
썰렁해 보이는 소도시가 조용하게 침묵에 잠겨 있었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