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실종 (2)
(23/81)
23. 실종 (2)
(23/81)
23. 실종 (2)
2022.06.14.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수하는 그러니까, 이 밝은 대낮에 그녀가 왜 양쪽에 늑대소년들과 뱀파이어 소년들,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이들을 두고 중간에 앉아야 하는지 영문을 몰랐다.
칸에게서 연락을 받은 바로 다음 날, 이 불편한 만남이 성사되었다.
“저기, 나는 빠져도 되지 않아?”
칸을 제외한 늑대소년들도 수하가 여기 왜 끼어 있는지 궁금한 눈치인데, 정작 뱀파이어 소년들은 매우 태연했다.
“이제 와서 빠지긴 뭘…….”
지노가 심드렁한 투로 중얼거리며 그녀가 앉을 의자를 쭉 빼주었다.
겉으로 보기엔 잘생긴 소년들끼리 노닥거리며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는 것 같지만, 사실 앉고 나서 자세히 살펴보면 분위기가 꽤 살벌했다.
‘숨 막혀! 살려줘!’
애초에 서로 그리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양쪽이라, 한 번 같은 편이 되어 싸웠다고 해서 그 깊은 감정의 골이 메워질 리가 없었다.
다시 말해 여전히 서로를 노려보며 무언의 기싸움이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수하는 그냥 슬쩍 빠지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앉아야 했다.
“이 자리에 나오지 않은 세 명이 실종됐다는 거지.”
헬리는 네 명만 나온 늑대소년들을 보며 말했다.
칸이 고개를 끄덕였고, 이안과 한 번 붙었던 나자크, 솔론에게 부드럽게 인사를 건넸던 엔지, 그리고 어려 보이는 타헬은 표정이 몹시 우울해졌다. 형제들이 실종되었다는 건 엄청난 충격일 거다.
“그런데 그게 왜 이번에 우리가 겪은 일과 관련이 있는지 설명은 해줘야겠어.”
헬리의 단호한 말에 늑대 소년들은 일제히 리더인 칸을 쳐다보았다.
신중하게 뱀파이어 소년들에게 협력을 제의하기로 결정한 칸은 입을 열었다.
“말하기에 앞서, 내가 하는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들여다봐도 좋아.”
칸은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네가 직접 읽으면서 판단해, 헬리. 목숨이 걸린 일인데 거짓인지 아닌지 의심하는 동료는 우리도 사양이니까.”
“좋아.”
헬리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얼마나 파격적인지 잘 아는 늑대인간 소년들도, 뱀파이어 소년들도 눈이 휘둥그레져서 각자의 리더를 쳐다보았다.
“……이건 저번 나이트볼 리그 결승전 이후에 있던 일이야.”
그때 오랜 나이트볼 강자 선샤인시티스쿨은 드셀리스 아카데미에 2연패를 당하며 우승컵이 또다시 드셀리스에게 가는 것을 바라보기만 했어야 했다.
쓰라린 패배는 패배였고, 늑대인간 소년들은 그들의 정체성과 관련된 일을 마주해야 했다.
“이번에 봐서 너희들도 알겠지만, 우리는 항상 뱀파이어들의 위협에 시달려왔어. 말 그대로 잡히면 죽는 거니까 늘 살아남아야만 했고. 그러지 못할 뻔한 적도 여러 번이야.”
가만히 듣고 있던 이안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 늑대인간들에게서 비슷한 경험을 한 흔적을 바로 눈치채긴 싫었는데, 칸의 눈에 스친 건 분명히 학살에 대한 공포였다.
밤필드 보육원이 습격당했던 끔찍한 기억에 시달리고 있는 뱀파이어 소년들에게도 그 공포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같은 것을 겪은 이들은 서로를 알아본다.
“그런데 결승전 이후에 정보를 얻었어.”
형이 진짜 다 말할 건가 보다. 불편한 예감이 든 엔지는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고, 나자크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 기억을 떠올리게 된 타헬은 더 풀이 죽었다.
“……누군가가 늑대인간들을 뱀파이어에게 팔아넘기고 있다는 정보인데…….”
칸은 덤덤하게 말하다 이 부분에서는 잠시 멈칫거렸다. 그의 생각을 읽고 있던 헬리는 잠자코 기다렸다.
“그 팔아넘기고 있다는 놈도 우리 동족이라는 정보였지.”
늑대인간이 늑대인간을 뱀파이어에게 팔아넘기다니. 수하는 드리프터들이 대놓고 ‘늑대사냥’이라고 언급했던 지난 전투를 떠올리며 표정 관리를 하려 애썼다.
“보다시피 우리 넷은 남았고, 카밀, 마한, 루슬란이 그 정보를 확인하러 떠났어. 만약에 사실이라면 일단 그 배신자를 처단하고 붙잡혀 간 동족들을 구하는 게 최우선이니까.”
겉으로 보기엔 고등학생들이면서, 이들은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었다.
수하는 그녀가 이들에 비하면 상당히 평범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이들이 지나치게 평범하긴 힘든 삶을 살아왔거나.
나이트볼 리그 선수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너무나 살벌하고, 어찌 보면 가혹했다.
“그래서 마하바 초원으로 셋이 떠났어.”
“마하바 초원?”
가만히 듣고 있던 지노가 입을 딱 벌렸다.
“거길 갔다고?”
여기에서 나라 두 개는 지나야 있는 거대한 초원 아닌가. 밤필드 보육원이 있던 곳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먼 곳이었다.
“그래. 거기에 그나마 남아 있던 늑대인간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소문을 들었으니까. 그곳부터 가봐야 했지.”
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계속 이었다.
“한동안은, 아니, 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연락이 계속해서 잘됐어. 마하바 초원에서 단서를 얻어서 계속 이동 중이었지. 우리가 쫓고 있는 배신자나, 배신자가 동족을 팔아넘기고 있는 뱀파이어에 대해서도 조금씩이지만 정보가 모였어.”
그때 헬리가 주머니에서 어제 데이비드에게서 빼앗은 성냥갑을 꺼내 테이블 위에 툭 던졌다. ‘레이’라고 써진 글자가 유난히 눈에 크게 들어왔다.
“그래, 그거.”
생각을 낱낱이 읽히는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다. 칸은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떠난 동생들이 그 성냥갑과 비슷한 물건을 봤대. 뱀파이어 끄나풀이지만 드리프터 급은 아니고, 이번에 잡았던 데이비드인지 하는 놈과 비슷한 계급인 놈이 가지고 있는 걸 언뜻 보았다고 했어.”
“이게 그렇게 중요한 물건으로 보였다는 거야?”
언뜻 보기엔 낡아빠진 성냥갑이다. 그걸 그렇게 주의해서 볼 가능성은 매우 적지 않나. 헬리는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러니까 좀 이야기가 복잡해. 배신자 놈은 어떤 힘 있는 뱀파이어에게 늑대인간들을 팔아넘긴 거야. 그럼 그 뱀파이어가 이 성냥갑이 가리키는 곳에 있는 상급자에게 늑대인간들을 보낸 거고.”
한마디로 성냥갑과 배신자 사이에 중간책이 있었다는 얘기다.
드리프터와 그 위 뱀파이어라고 철저하게 계급을 가르는 걸 생각해보면,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당장 뱀파이어 소년들은 지휘자 노릇을 하던 데이비드와 마주했으니까.
“중간책이 이 성냥갑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 이번 일도 마찬가지잖아? 데이비드가 머리인 줄 알았는데 머리는 따로 있고. 우리가 알아낸 그 중간책도 이 성냥갑을 흔들어대면서 ‘마스터’가 어쩌고, 하고 말했대. 늑대인간들의 피를 무척 즐긴다면서.”
성냥갑을 주며, 늑대인간의 피를 즐기는 마스터라. 아직까지도 감이 잡히지는 않는다.
“이것과 똑같은 성냥갑이었대?”
“아니. ‘ㄹ건’이라고 써졌는데, 고풍스러운 글자가 앞부분이 뚝 잘려나간 채 써져 있었다고 해.”
마찬가지로 ‘레이’라는 고풍스러운 글자가 뒷부분이 뚝 잘린 채 쓰인 성냥갑으로 소년들의 시선이 모였다.
“그럼 뭐야. 둘이 합치면 ‘레이’-‘ㄹ건’? 아니면 앞에 뭐가 더 있고, ‘ㄹ건’-‘레이’?”
이안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문자를 조합해 볼 때,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엔지가 답을 냈다.
“일단은 전자지.
‘레일건’
.”
“아, 그건가.”
이름은 알아냈다 치자. 하지만 그 ‘레일건’이란 곳이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늑대인간들을 레일건에 보내는 중간책은 꽤 오래 일한 뱀파이어로 보였다고 해. 우리의 아는 게 하나도 없는 ‘데이비드’와는 달리 말이야.”
실제로 데이비드에게서 이놈의 성냥갑으로 도대체 어떻게 상급자와 접촉할 수 있는지 알아내려다 실패해서 짜증이 머리끝까지 났던 헬리는 그 말에 희미하게 웃었다.
“그 중간책이 레일건으로 늑대인간들을 보내기 전, 잠시 잡아두는 물류창고가 있다는데, 거기로 들어가려다가 동생들과 연락이 끊겼어.”
설명하던 칸의 목소리가 갈라지고, 소년들 사이에는 묵직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뱀파이어 소년들은 어떻게 입을 떼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었고, 늑대인간 소년들은 형제들이 실종되었다는 사실에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헬리마저 칸의 슬픔과 죄책감을 읽어내고 침묵하는 사이, 수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끼어들어서 미안한데……. 그럼 그 배신자라는 늑대인간은 잡았어?”
“그놈이 물류창고로 들어가는 미끼였어. 누군지는 알아. 아주 쓰레기지.”
칸은 야멸차게 말했다.
“그놈이 분명히 내 동생들을 뱀파이어들에게 넘기고 도망친 거야.”
“물류창고가 어디 있어? 마하바 초원에?”
수하는 곧잘 핵심적인 질문부터 던졌다.
“아니. 마하바 초원을 지나서, 북동쪽으로 좀 떨어진 에스티발 시에 있어.”
대답하던 칸의 눈빛이 점점 단호해졌다.
“거길 습격하고 싶어.”
남아 있는 늑대소년 넷이라면 어림도 없는 얘기지만, 여기 뱀파이어 소년들 일곱을 더하고, 저번 전투에서 큰 활약을 보인 수하까지 합친다면 해볼 만할 거다. 그는 헬리가 거절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
시간은 촉박하고, 결정은 시급하다.
어쩌면 실종된 늑대인간 소년들 모두 벌써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칸은 가야 했다. 그리고 뱀파이어 소년들도 움직일 이유가 하나 생겼다.
선샤인시티스쿨 주전들과 헤어진 뒤, 수하는 헬리와 단둘이 남았다.
“그럼 전부 다 가는 거야?”
수하의 질문에 헬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규모로 봐선 인원이 많은 게 좋지.”
“저번처럼 싸울까?”
“응. 어쩌면 더 심할 수도 있고.”
그렇구나. 수하는 고개를 숙였다.
“음……. 잘 다녀와.”
너는 또 떠나는구나. 어제 호숫가에서 잠시 공유했던 마음을 일시 정지 해두고 또다시 머나먼, 그냥 잠깐 들를 수도 없는 곳으로 가버린다. 더욱 위험하고, 어쩌면 크게 다칠 수도 있는 곳으로 가버린다.
만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게 이렇게 서운할 일인가.
“수하야.”
서운해하지 말아야지. 헬리는 곧 돌아올 거다. 그렇게 믿고 그동안 그녀는 그녀가 할 일을 하면 되는 거다.
아니, 그런데 같이 가서 도와줄 수 있는 일도 있지 않을까? 그건 좀 철없는 생각인가? 그렇겠지. 그녀는 따라가 봤자 짐만 될 거다.
“같이 가자.”
“……어?”
수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러곤 마주한 얼굴에서 그녀보다 더 심각하고 아쉬워하는 같은 색의 감정을 발견했다.
“무서울 거라는 거 아는데……. 그래도 같이 가자. 내가……, 내가 꼭 무사히 돌아오게 해줄게. 그러니까 같이 가자.”
“나도 같이 간다고?”
에스티발, 거기가 어딘데?
한참 찾은 후에나 나온 먼 도시다. 처음 들어보는 곳이고, 외국이라 수하는 마냥 낯설기만 했다. 도움이 될지 안 될지 수하 자신도 모르겠는데 헬리는 몹시 어두운 얼굴로 함께 가자고 했다.
진심인가?
“진심이야?”
헬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를 매만졌다.
“어제 칸에게서 전화를 받고 나서 밤새 계속 생각했어. 네 안전에 대한 일은 그전부터 계속 생각했고.”
그게 너무 중요해서 잠도 이룰 수가 없었다.
“이번에 리버필드 시를 습격했던 놈들은 다시 찾아올 거야. 더 많은 숫자를 끌고, 더 잔인하게 우리를 찾으려 할 거야.”
그리고 그들이 찾고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여자’도 어떻게든 잡으려 들겠지. 헬리는 수하가 그들의 눈에 띄는 건 시간문제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널 두고 갈 수가 없어. 아니, 두고 가기가 싫어.”
그건 너무 싫다고, 헬리는 미간을 찌푸리며 강하게 말했다.
“네가 잘못되는 걸 몇 번이나 상상해. 그런데 그게 내가 모르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아. 그러니까 뭘 해도 내가 보는 곳에 있었으면 좋겠어.”
차마 말은 못 하겠지만, 수하가 다쳐도 그가 보는 앞에서 다치는 게 차라리 나았다. 그러면 그가 돌봐줄 수라도 있고, 더 다치기 전에 지켜줄 수 있으니까.
“미안해. 이런 말, 갑작스럽다는 거 알아. 그런데 도저히 안 되겠어. 같이 가자. 같이 가서, 같이 돌아오자.”
그렇게 못 견디겠다는 표정을 하며 괴롭게 말하는 헬리 앞에서 그 누가 고개를 흔들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은 마음이 아주 차갑게 얼어붙은 사람일 거다.
“나는……, 나는 종종 꿈을 꿔.”
꿈이라는 단어에 수하의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너무 빠르고 요란하게 뛰어서, 그녀의 귀까지 심장 고동이 타고 올라와 쾅쾅 내리치는 기분이었다.
“네가 불쾌할 만한 그런 꿈은 아니야. 언젠간 좀 더 자세히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아, 맙소사. 헬리는 괜히 얼굴이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웬만한 일을 보고, 겪고,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좋아하는 여자애 앞에서 아무것도 못 하고 서툴게 이 말 저 말 더듬거리는 소년에 불과했다.
“내 욕심이지만, 네가 함께 가줬으면 좋겠어. 널 눈앞에서 지키고 싶어. 그러니까 함께 가주면 안 될까?”
수하는 그와 함께 갈 수밖에 없었다.
당장 다음 날, 리버필드 시에 피 한 방울도 없이 죽은 시신이 다섯 구나 새로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