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보름달 (8)
(17/81)
17. 보름달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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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보름달 (8)
2022.05.03.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오늘은 보름밤. 나이트볼 연습을 빙자한 안개화 연습은 없는 날이다.
수하는 커다랗게 뜬 보름달을 바라보았다.
헬리는 돌아온 후에 더 바빠졌다. 완벽하게 안개가 되어 이곳저곳 돌아다닐 수 있다면 그를 더 도와줄 수 있을 텐데.
‘아니, 도와주긴 뭘……! 나는 방해만 되지 헬리는 나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알아서 잘할 텐데……!’
언뜻 보기에도 사연이 몹시 복잡해 보이는 소년들인데, 거기에 수하가 어떻게 감히 끼어들까. 그들만이 공유하는 끈끈한 사연이 있을 텐데.
‘……그래도 그냥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
싫은 내색 한번 않고 갑자기 나타난 그녀를 도와주고 친하게 지내는 소년들이 고마웠다. 보아하니 일곱 명이서 똘똘 뭉쳐 살아온 세월이 꽤 긴 것 같은데, 툭 튀어나온 수하를 받아들이기도 힘들었을 거다.
그녀만 느끼는 게 아니라 수하의 다른 친구들도 그녀가 나이트볼 주전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는 걸 보고 무척 신기해하고 있었다.
‘부디 오늘 밤에는 아무 일도 없길.’
나이트볼 연습이 없다는 건, 소년들이 무슨 일인가를 벌인다는 뜻이다.
부디 성공하고 다치지 않길. 수하는 가만히 창가에 앉아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눈을 감았다. 어쩐지 어디에선가 늑대가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아우우우우-.
아니, 착각이 아니다. 수하의 눈이 커다래졌다. 거대한 늑대가 울부짖는 소리가 아스라이 들리고 있었다. 아주 희미하게, 관심이 없는 사람은 그냥 지나칠 정도로 멀었지만 그녀에겐 분명하게 들렸다.
*
왜 하필 보름을 늑대사냥일로 잡았냐, 라고 묻는다면 사실 이 하급 뱀파이어들도 할 말은 많았다.
뱀파이어들은 기본적으로 바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늑대인간을 잡으려면, 차라리 진짜 늑대사냥으로 보이는 게 나중에 ‘혹시라도’ 주변을 지나는 경찰이나 사람들에게 들킬 때도 편했다.
‘아마’ 고등학생일 늑대인간 몇을 잡는 게 뭐 그리 어렵겠나. 그래서 일이 이렇게 된 것이다.
여기에 무슨, 뱀파이어랑 늑대인간이 친구인 변수를 넣을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어디선가 어떤 하급 뱀파이어가 다른 생각을 하며 속으로 절규하는 게 헬리에게 읽혔다.
그러다가도 그의 예상대로 그 생각은 더 이상 읽히지 않았다.
전투 중에 딴생각을 하면 그건 바로 죽음으로 가는 지름길이지. 그것도 저 선명한 보름달이 떴을 때는 절대로 그래선 안 된다.
“아, 나 지금 우선순위가 헷갈리는데, 형.”
하하. 막내 노아가 이마를 쓱 닦아내며 긴장된 웃음을 지었다.
“쟤네부터 죽여야 할 거 같은 느낌이 들어.”
말 그대로 느낌에 불과했다. 멀리에서 하울링을 하더니 그대로 달려드는 늑대가 총 두 마리. 그리고 칸에게 곧장 합류했던 나자크 역시 늑대로 완전히 변했다.
그리고 그뿐인가. 헬리는 결국 보름달의 영향을 받고야 만 솔론의 곁에서 슬슬 매고만 있던 검을 풀어냈다.
안간힘을 다해 참고 누르고 견디기만 하던 솔론이 기어이 달빛을 받고 순식간에 몸집을 부풀렸다. 푸르른 털을 가진 늑대로 변했다.
그에겐 경악이라는 감정부터 읽혔다. 형제들을 제외하곤 헬리의 곁에 선 푸른 늑대를 보며 모두가 다 놀라는 중이었다.
“뭐…….”
유일하게 늑대가 되지 않은 칸마저 말을 완성시키지 못하고 멍하니 솔론을 바라보았다.
쟤는 분명히 뱀파이어인데, 아니, 근데 왜 그들과 비슷한 냄새가 나는 거지? 눈으로 봐도 늑대 아닌가.
그때 칸의 머리카락이 그을릴 만큼 불이 가까이에서 바짝 일어났다. 누가 봐도 고의로 불을 일으킨 지노가 싸늘하게 칸을 한 번 쳐다보고 바로 다음 하급 뱀파이어를 상대했다.
시커멓게 그을려 툭 무너지는 뱀파이어 시체를 본 칸은 아차 싶었다.
‘싸우는 중이었지.’
너무 충격적인 일이었고, 칸이 여태껏 살아왔던 세상에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으나 지금 그의 목을 노리는 이들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그를 보고 있는 드셀리스 아카데미 나이트볼 주전들의 시선이 어마어마하게 살벌했다.
‘저 푸른 늑대에 대해 한마디라도 잘못 입을 놀렸다간 죽여버리겠다, 이거군.’
지금 입을 놀릴 시간이라도 있는 줄 아나. 칸은 덤벼드는 하급 뱀파이어들을 정신없이 처리했다. 충격은 받았지만, 목숨을 지키는 게 더 중요했다.
칸뿐만 아니라 나자크를 비롯해 뱀파이어들의 냄새를 맡고 나온 늑대인간들도 다 똑같은 생각일 거다.
쾅!
“저놈들 막아!”
확실히 집단행동은 뱀파이어들의 특기가 아니다. 하급 뱀파이어들이 떼로 덤벼들다가 낙엽 떨어지듯 우수수 밀려가는 사이, 오랜 시간 호흡을 착실하게 맞춰 온 이쪽은 막힘없이 공격했다.
일단은 늑대인간들은 내버려두고 하급 뱀파이어들에게 집중해.
헬리의 결정에 드셀리스 아카데미 주전들은 곧장 늑대인간들에게서 시선을 떼어냈다.
시온이 손을 펼쳐 하급 뱀파이어들을 끌어당기고, 지노가 그들을 태워버렸다.
일곱 명끼리 합이 척척 맞는다. 가끔 동선이 늑대인간들과 엉키기도 했지만, 나이트볼을 하면서 하도 부딪쳐 본지라 적당히 피하는 것도 쉬웠다.
으, 쟤네랑 호흡 맞는 날이 올 줄이야.
질색하는 이안의 중얼거림을 듣고 헬리가 픽 웃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잖아.
그가 웃는 걸 보고 이안이 또 한마디를 더 했다.
그래. 쟤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아, 그게 더 싫어! 왜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해!
드셀리스 아카데미와 선샤인시티스쿨 주전들은 여기서도 사이가 좋을 수가 없었다.
어느새 지노는 나자크와 누가 더 많이 하급 뱀파이어들을 처리하는지 경쟁까지 하고 있었다.
솔론, 괜찮아?
그 와중에도 헬리는 하필 늑대인간들 앞에서 수인화를 해버린 솔론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그런 거 따질 때가 아니잖아.
푸른 늑대 모습을 한 솔론은 냉정하게 말하며 하급 뱀파이어들을 쳐냈다. 아니, 어떻게든 냉정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그래. 다 죽이지는 말고 좀 살려둬. 이번엔 내가 생각을 다 읽어내야겠어.
알았어.
솔론은 헬리를 힐끗 보며 고개를 끄덕인 뒤 거대한 몸을 날렵하게 날려 하급 뱀파이어들의 머리 위를 훌쩍 뛰어넘었다.
자카, 도망치는 놈들이 있어. 차단해. 노아, 네 3시 방향에 저 허스키같이 생긴 늑대가 붙잡고 있는 놈은 죽이지 못하게 해. 생포할 거니까. 그렇다고 늑대랑 싸우지는 말고.
일단은 얘기를 들으면서 뛰어가려던 노아가 보라색 머리카락을 휙 날리면서 헬리를 돌아보았다.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물론 쳐다만 보지, 이미 뛰어가고 있었다.
쟤네도 말은 할 줄 알잖아.
난 쟤네랑 말하기 싫어!
생포해.
헬리는 단호하게 말하며 노아에게서 신경을 끊었다. 놔두면 또 투덜대면서도 어떻게든 악착같이 해낼 것이다. 그는 제 한 몫을 다 해내고 싶어 언제나 애쓰는 막내를 아주 잘 알았다.
죽기 싫어! 살려줘! 도와줘!
이곳은 비명보다 더 시끄러운 절박한 감정과 생각들이 어지럽게 뒤엉켜 혼란하기만 하다. 차라리 싸움에만 집중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동생들이 그에게 말하는 것을 들으려 귀를 기울이다 보면 그리 읽고 싶지 않은 것까지 읽게 된다.
헬리는 미간을 좁히며 검을 가볍게 잡았다.
‘좀 더 검에 집중하고 싶은데.’
그러기엔 이곳이 너무 혼란스럽다.
리버필드 시경이 이곳에서 벌어진 일을 알아차리려면 몇 시간은 더 걸릴 정도로 인적이 없는 숲속이니, 하급 뱀파이어인지 드리프터인지, 아무튼 저놈들이 장소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잡았다.
늘 다정하고도 엄격한 원장선생님의 가르침을 떠올리면서 검을 사용해보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죽기를 각오하고 달려드는 놈들이 너무 많았다.
저 목을 꺾어…….
왼쪽 다리를 강하게 가격해 부러뜨리면…….
발목을 쳐내…….
헬리의 어떤 부위를 어떻게 공격할지, 벌써 다 읽힌다.
수년 만에 잡아보는 검이라 실전에서 바로 사용하는 건 위험부담이 컸지만, 능력과 함께 사용하면 그리 위험할 것도 없었다. 읽어내고, 막고, 역공하면 되니까.
‘생각보다 훨씬 편리하네.’
그래서 검을 가르치신 건가, 아니면 이 검이 그렇게 특별한 건가?
휴대폰을 쓰는 시대에 검을 사용하다니, 조금 재미있기도 했다. 동시에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티가 역력히 나서 조금 짜증스럽기도 했다.
“아, 생포라니, 장난해?”
아니나 다를까, 노아가 달려간 쪽에서 누군가의 고함이 터졌다.
“싫으면 앞으로도 계속 밀고 들어오는 대로 막기나 하든가.”
지지 않고 대꾸하는 노아의 목소리도 차갑다.
그사이에도 듣기 싫게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터지는 소리가 난무했다.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제대로 된 살기와 상대해볼 만한 숫자다.
혀로 입술을 싸악 핥아낸 헬리는 싸늘하게 웃으며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어느새 소년들의 옷이며 늑대들의 털에는 시커멓고 진득한 피 얼룩이 가득했다.
아무리 봐도 눈앞에 있는 하급 뱀파이어들의 숫자는 너무 많았다. 너무, 너무, 지나치게 많았다. 베어내고 물어뜯어도 끝이 없었다.
……이기는 게 가능할까?
헬리에게도 드디어 불안에 가득 찬 형제들의 생각이 읽히기 시작했다.
*
수하는 심하게 두근거리는 심장 근처를 꽉 눌렀다.
왜 이러지? 왜 이렇게 불안하고 마음이 조급할까.
어릴 때부터 하도 범상치 않은 삶을 살아온 그녀라서, 웬만한 일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자신도 있었고 그리 크게 놀라는 성격도 아니었다. 늘 평온했고, 당황해도 다시 침착해지는 속도가 무척 빨랐는데 지금은 괜히 불안했다.
‘전화도 안 받고, 메시지에도 답도 없고…….’
나이트볼 주전들이 한꺼번에 연락이 뚝 끊겼다. 오늘은 그저 ‘연습이 없다’고만 했고 이유도 듣지 못했다. 마치 일부러 이유를 말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환한 보름달과 끊어질 듯 말 듯, 멀리서 들리는 늑대 울음소리가 계속되고 있었다. 저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곳에 무슨 일이 생겼다.
꿈에서 보았던 푸른 늑대가 그녀를 부르는 것만 같았다. 도와달라고. 와서 도와달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착각이야.’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다고. 수하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등 뒤에 있는 침대에 알렉스는 이미 곤하게 잠들어 있었다.
혹시 불안하여 이리저리 서성이다 알렉스를 깨울까 봐, 수하는 아예 방 바깥으로 나갔다.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섬뜩한 불안감은 털어내려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었다. 너무 이상했다. 한 번도 안 겪어본 일인데, 마음속에서 누군가가 속삭이고 있었다.
가.
어떻게? 어디로? 가서 뭘 할 수 있는데? 친구들의 발목이나 붙잡지 않으면 다행이지.
할 수 있어.
드셀리스 아카데미로 전학 오지 말았어야 했던 걸까. 이해할 수 없는 꿈을 꾸고, 설명할 수 없는 기분에 시달리고 있다.
수하는 사람이 없는 끄트머리 계단으로 나와 보름달을 자꾸만 바라보았다. 헬리든, 솔론이든, 누구든 답장을 해주지 않으면 아마 오늘 밤은 잠들 수 없을 거다.
아니, 잠든다고 해도 안개가 되어 어떻게든 그들에게로 가서 무슨 일인지, 다치지는 않았는지 확인하려고 하지 않을까.
‘차라리 지금 안개가 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혹시 선샤인시티스쿨 주전들과 기어이 싸움이 난 건 아닐까. 아예 작정하고 간 모양이던데.
가서 어쩌면 푸른 늑대와 만날지도 모른다. 그러면 적어도 반가워하며 꼭 안아줄 수는 있을 텐데. 그건 할 수 있을 텐데. 내 친구들에게 함부로 굴지 말라며 소리는 지를 수 있을 텐데.
‘……어?’
할 수 있는 행동을 떠올리는 순간이었다. 수하는 어느새 자신의 몸이 붕 뜨더니, 그대로 단숨에 기숙사 벽을 통과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어어?”
시원한 바닷바람이 한껏 가벼워진 그녀를 어디론가 훅 불어냈다. 기숙사 3층에서 밤하늘로 스며버린 수하는 비명을 질렀다.
“이, 이게 왜 갑자기 이렇게 되는 건데!”
그렇게 용을 써도 안 되던 게 왜 이제야 되는 건데! 간절히 바라는 것도 해봤고, 열심히 잠도 잤지만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왜 지금 되는 건데!
진짜 치사하고 짜증은 나는데 멀쩡한 맨정신으로도 제어가 가능하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소리를 지르고 버둥대도 그녀는 완전한 안개였다.
‘어디로, 어디로 가지? 아. 그래.’
당황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그녀는 목적지를 알고 있다. 그냥 알았다.
뱀파이어 소년들이 있는 곳으로 안개와 바람이 그녀를 데려다줄 것이다. 수하를 끊임없이 불러대고 있는 소년들의 외침과 바람이 가득한 곳에 도착할 것이다.
수하는 말 그대로 밤하늘을 날고 있었다.
사람들과 불빛으로 빛나는 리버필드 시를 순식간에 지나 어디론가 달려갔다. 시 끄트머리에 있는, 불빛도 없는 곳이었다.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느껴지는 존재감이 선명했다.
“크아아아악!”
끔찍한 비명과 타는 냄새, 그리고 여기저기에서 솟구치는 불이 가득한 숲속은 섬뜩하기만 했다.
수하는 본능적으로 이곳에 있어선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동시에 하나를 더 알아차렸다.
있어선 안 되는 곳에 있는 뱀파이어 소년들은 뭐란 말인가.
“저 늑대부터 잡아!”
한 번도 들어보지 않았던 사납고 낯선 목소리가 하급 뱀파이어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수하는 눈을 들어 ‘저 늑대’를 찾았다. 아. 그래. 저기에 있었다. 꿈에서 봤던 푸른 늑대가 달빛을 받아 피투성이가 된 몸을 고스란히 내보인 채 달려드는 하급 뱀파이어들을 향해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늑대에게로 몰려가는 하급 뱀파이어들이 새카맣게 많다. 이쯤이면 앞뒤 잴 것도 없었다. 수하는 주먹부터 내질렀다.
쾅!
솔론은 제 앞에 당도하기 무섭게 우수수 날아가는 하급 뱀파이어들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들과 그의 사이를 막고 있는 작고 호리호리한 여자애를 더 놀라 쳐다보았다.
“누굴 건드려, 이 나쁜 놈들아!”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화가 머리끝까지 난 수하가 뱀파이어들을 말 그대로 허공에 ‘날려버리기’ 시작했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