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보름달 (7)
(1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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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보름달 (7)
2022.04.26.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기억이 있을 때부터 소년들은 밤필드 보육원에 있었다.
책을 통해 본 세상에는 부모라는 존재가 가족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부모 대신 선생님들이 있었다. 밤이 무섭다고 울면 안아주고, 데려와서 동화책을 읽어주며, 꿈을 꾸게 하고 미래를 걱정해주는 이들이었다. 거기에 죽어라 싸우면서도 붙어 다닌 형제들까지 있으니 부족함을 느낄 새가 없었다.
보육원이 습격당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긴장하지 마.”
헬리는 솔론의 어깨를 토닥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척추를 타고 정수리까지 내달리고 있는 긴장감이 쉬이 사라질 리는 없었다.
보육원이 습격당한 후로 소년들은 그저 도망치고, 도망치고, 또 도망치기만 했다. 한 번도 제대로 반격해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일단은 안전한 곳을 찾아 너무나 먼 거리를 달아났다.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일곱 명끼리 은밀하게 움직이는 것에 강제로 익숙해진 후였다.
“처음 해보는 거라 그래.”
모자를 깊숙하게 눌러 쓴 솔론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
그러니까 반격은 처음이다. 예전엔 위험신호가 눈에 보이거나 사소한 충돌이 생기면, 동생들이 너무 어렸기에 이안과 헬리, 지노가 의논을 한 뒤 거처를 옮기기만 해왔다.
선생님들이 습격 당시에 가장 먼저 챙겨준 게 돈이었고, 매사 차분하고, 특히 도망치면서 만난 사람들의 속내를 낱낱이 읽어내며 리더 역할을 톡톡히 한 헬리 덕에 금전적인 어려움은 그 후로 겪은 적이 없지만, 도피만 하는 생활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
“굳이 잘할 필요 없어. 실패해도 괜찮아.”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거야.”
솔론은 고집스럽게 말하며 냄새가 짙어지는 방향으로 향했다.
그에게 숨겨진 힘을 사용하는 건 상당히 불쾌한 일이었다. 왜 선샤인시티스쿨 늑대인간들이 ‘뱀파이어 냄새’라고 이야기하는지 바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전혀 느끼지 못했던 형제들의 냄새가 새롭게 맡아졌지만, 그게 기분 나쁜 건 아니다. 솔론은 늑대인간들이 말한 게 이해된다는 그 사실이 불쾌했다.
“가까워지고 있어.”
일부러라도 사용하지 않으려고 억누르고 억누르던 힘이다. 형제들은 그가 숨긴 힘이 뭔지 알 수밖에 없었지만, 그가 죽어라 숨긴다는 것 역시 존중했다.
오래도록 내버려 두기만 했던지라, 솔론은 낯설고 서툴기만 한 감각이 아직까지 어색했다. 어색하지만 꿋꿋하게 걸어갔다. 아니, 뛰기 시작했다.
좀 더 빠르게 이동할게.
형제들에게 일제히 알린 헬리는 솔론을 따라 내달렸다. 조심스럽고 소리 없이, 기척은 최대한으로 죽이며 석양이 지기 시작하는 새빨간 하늘에 보랏빛 어둠이 잠기기 시작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움직였다.
여태까지 도망만 쳤던 소년들이 난생처음, 본격적으로 반격하는 순간이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의 이번 목표는 무조건 생포야.
늘 그들 가까이 온 하급 뱀파이어를 죽이고 사라졌지만, 리버필드까지 왔는데 더 이상 사라지기는 싫었다.
이젠 다 무너져 내린 보육원에 갔는데도 하급 뱀파이어들과 마주쳤다면, 소년들은 계속 추적받고 있었다는 뜻이 아닌가.
도대체 누가 보육원을 습격했고, 지금까지도 그들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것인가. 알아야 했다.
근데, 이거 먹힐까?
이안이 물었다. 하급 뱀파이어 추적은 솔론에게만 맡긴다 해도, 오늘 드넓은 리버필드 시에서 하급 뱀파이어를 생포할 수 있을지가 미지수였다.
어차피 하나만 잡으면 돼.
그래서 일곱 명 모두가 나서서 눈에 불을 켜고 하급 뱀파이어를 찾는 거다. 딱 하나만 잡아 죽이지만 않고 헬리가 그놈의 생각을 읽어내는 것.
요즘 리버필드 시를 흉흉하게 만드는 하급 뱀파이어들은 오늘 밤에도 나타날 가능성이 무척 높았기 때문에 헬리의 생각엔 대단히 단순한 목표였다.
단순한……, 단순한가?
아니, 잠깐. 솔론. 잠깐 멈춰봐! 너무 멀리 왔어!
솔론은 헬리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희미한 냄새를, 형제들과는 다른 냄새를 좇아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어느새 리버필드 시에서도 많이 벗어났다.
휴양지 주변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조용했다. 저녁 어스름이 감도는 이 공기가, 하늘이, 그리고 길게 진 나무 그림자들이 불길하다. 불쾌한 존재들이 스멀거리고 있었다.
“어……?”
멍한 소리를 내며 멍청하게 서 있는 놈은 여기에서 곧장 죽는다. 혹은, 생포대상이 된다.
“어어어어?”
그림자에서 막 벗어나려고 하던 하급 뱀파이어는 막 멈추려고 하는 솔론을 보며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어어? 이상하다?
“늑대라며……?”
지금 달려오고 있는 저 파란 머리는 분명히 뱀파이어인데?
그게 그 하급 뱀파이어가 마지막으로 한 생각이었다. 다음 순간, 그는 솔론에 의해 땅에 엎드러졌다. 대단히 신속하고 깔끔한 솜씨로 하급 뱀파이어를 ‘일단’ 처리한 솔론은 곧장 다음 하급 뱀파이어에게 달려들 수밖에 없었다.
형, 멈추기엔 늦었어.
솔론이 그를 따라잡은 헬리를 바라보았다. 불길한 그림자가 그들을 감쌌다.
그러게. 늦었네.
헬리는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솔론에게 바짝 붙어 섰다.
침착하기엔 지나치게 많은 하급 뱀파이어들이 시뻘건 눈으로 그들을 보며 어둠 속에서 스멀스멀 기어오르고 있었다.
*
늑대인간들은 집단으로 움직인다. 리더를 따라 한 무리를 이뤄, 사냥 역시 집단으로 함께한다. 그러니 늑대인간들을 상대하려면 집단 자체를 흩어놓든가, 아니면 집단보다 훨씬 월등한 숫자로 덤벼야 했다.
헬리는 그들을 둘러싼 하급 뱀파이어들의 머릿속을 읽어내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지금 스쳐 지나가는 생각만 읽을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늑대라며?
늑대인데 왜 뱀파이어가 있어?
쟤넨 우리랑 같은 드리프터가 아닌데?
가장 많은 생각이 바로 저거였다.
리버필드 시에서 자꾸만 하급 뱀파이어들이 죽어나가는 게 늑대인간들 때문이라고 생각한 거구나. 그래서 이렇게 함정을 파고 냄새를 흘리면서 늑대들을 유인해 일망타진하려 했던 거다.
‘……이거 재미있는데.’
홀로, 많아야 둘씩 움직이는 하급 뱀파이어들이 이렇게 같은 목표를 가지고 많은 인원으로 모습을 드러낸 건 밤필드 보육원이 습격당했을 때 이후로 처음이다.
헬리는 모처럼 한쪽 입꼬리를 위로 올렸다. 어쩐지 점점, 보육원을 습격한 놈들과 이놈들이 같은 편이라는 느낌이 자꾸 든다. 느낌일 뿐이지만 말이다.
어어어? 이게 어떻게 되는 거야? 원래 작전은 이게 아니었잖아?
어떻게 하지? 이거 이대로 죽여야 해?
늑대라며! 근데 저건 같은 뱀파이어 아냐? 게다가 엄청 강해 보이는데? 드리프터들이 잡을 수나 있는 거야?
망설이는 하급 뱀파이어들도 있다.
그나저나 이들은 스스로를 드리프터라고 부르는 건가.
보통은 하급 뱀파이어들은 혼자 다니다가 생각이란 걸 하기 전에 헬리의 손에 목숨을 잃곤 해서 저 단어를 읽어낼 틈이 없었다. 혹은 함께 다니는 파트너의 ‘이름’만 불렀을 뿐이다. 제이미나, 아케, 뭐 그런 이름들.
헬리에 따르자면, 그건 그리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아악!”
이미 솔론이 하나를 죽이고 시작했으니, 상대를 살피고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 파악하는 건 소용없었다.
사실 상황파악이 빨라 하급 뱀파이어 하나가 쓰러질 때부터 당장 솔론을 공격했던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솔론에게 그대로 당하고 말았다. 그러니 이쯤이면 아수라장이었다.
얘들아, 빨리 와줬으면 좋겠는데.
헬리가 솔론의 뒤를 공격하는 놈을 걷어내며 조용히 말했다.
왜, 안 좋아?
깜짝 놀란 노아가 제일 먼저 반응했다.
응. 좀 많네. 한 스무 명……, 서른 명쯤 되는 거 같아. 나랑 솔론밖에 없어.
아, 형! 서른 명이 그렇게 침착한 말투로 얘기할 숫자냐고!
지노를 필두로 다른 동생들도 고함을 질러대기 시작하는데 솔직히 시끄러워서 못 알아듣겠다. 그들에겐 헬리 목소리밖에 안 들리니 조용하겠지만.
헬리는 적당히 무시한 채 자꾸만 달려드는 뱀파이어들을 처리했다.
얼마 되지 않아 붉은 석양과 아주 잘 어울리는 불덩어리가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물론 헬리와 솔론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지노가 어설프게 굴 리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으악! 늘어났다!”
“늑대다!”
늑대라니? 헬리는 반사적으로 솔론을 바라보았다. 아니, 솔론은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인데.
그때 지노가 일으킨 화끈한 열기 뒤로 익숙한 잿빛 머리카락이 보였다. 또 너냐.
“너도 왔냐?”
여태까지 침착하고 조곤조곤하던 헬리의 말투가 순식간에 꼬였다.
“어째 이상한 냄새가 많이 나더라니.”
칸은 한숨을 푹 쉬었다.
“너 여기서 뭐하냐?”
아주 궁금해 죽겠다는 질문이지만 질문을 받은 헬리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금 하급 뱀파이어 때려잡는 거 안 보이나?
“보고도 몰라? 눈 뜨고 뭐하냐?”
저절로 거칠게 대꾸한 헬리는 돌아서서 일단 달려드는 다른 뱀파이어의 목을 사정없이 비틀었다.
“지원해준다며! 도대체 언제 오는 거야!”
지노와 자카가 합류하고, 곧장 이안이 나머지 동생들을 데리고 들이닥쳤는데 칸까지 나타나니 하급 뱀파이어들은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지원이라니. 헬리의 예리한 눈이 지원 운운한 놈에게 꽂혔다.
“뭐야, 지원이라고? 누가 또 온다는 거야? 이미 이렇게 많은데?”
징그러워 죽겠네, 진짜. 이안이 투덜거리며 뱀파이어 둘을 잡아다가 칸 쪽으로 집어 던져버렸다.
칸이 휙 피하면서 ‘이게 무슨 짓이냐’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안은 싹 무시하며 계속 헬리에게 말했다.
“저놈은 왜 여기 있는 건데?”
“늑대들을 사냥하려고 파둔 함정에 우리가 먼저 온 거야.”
“우와, 그거 섭섭한데. 그냥 나오지 말걸 그랬다.”
이안이 크게 말하자 칸이 미간을 좁혔다.
“다 들리거든.”
“들으라고 말한 거다, 왜!”
왜, 하는 마지막 말소리와 함께 쾅, 하는 굉음이 울렸다. 확실히 이안이 끼어들자 소음이 커졌다. 칸도 어쩔 수 없이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하급 뱀파이어를 이미 셋이나 처리했다.
“……숫자가 안 줄어드는데, 형.”
자카가 잠시 헬리의 곁에 와서 말했다. 혼란한 상황에서 헬리가 신경 쓸 게 많다는 걸 잘 알고 배려하는 성격인 그는 늘 이렇게 행동했다.
“다치는 건 각오해야겠어.”
아무리 하급 뱀파이어라 해도 늑대인간들을 잡으려고 작정하고 판 함정인 데다, 숫자가 계속해서 늘고 있었다.
게다가 이젠 뱀파이어들이 마음껏 날뛸 수 있는 밤이 오고 있다. 이런 집단전투는 처음이라, 소년들에게 몹시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크아아악!”
어디선가 시커먼, 사람의 피가 아닌 뱀파이어의 피가 질척하게 튀었다. 비명이 들린 쪽을 본 이안이 신음했다.
“아, 쟤도 왔어?”
늑대인간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는데, 리더인 칸이 이곳에 있으니 다른 늑대인간들이 오지 않으면 이상한 거다.
저번에 광장에서 이안과 붙었던 나자크가 이를 드러내며 하급 뱀파이어들을 상대하다가 똑같이 그놈들을 잡고 있던 이안과 마주치곤 멈칫거렸다. 그러곤 물었다.
“……너 뭐하냐?”
“얘넨 왜 하는 얘기가 다 똑같아? 보면 모르냐!”
이안은 짜증을 내면서 또 뱀파이어들을 나자크에게 집어 던졌고, 나자크는 이게 무슨 짓이냐며 성질을 내려다 달려드는 하급 뱀파이어들을 어쩔 수 없이 상대해야 했다. 그 정도로 숫자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헬리는 칸에게 진심으로 물었다.
“네 동생들은 더 안 오냐?”
같은 뱀파이어들을 죽이다니, 저놈이 미쳤나 했는데 저런 질문까지 하다니 진짜로 미친 게 분명하다.
칸은 헬리를 경악한 표정으로 보다가 얼떨결에 대답했다.
“오긴 와.”
“오긴 오는데, 다 안 온다는 얘기야?”
“넌 다 알면서 왜 물어보냐!”
“네가 말을 찝찝하게 하잖아!”
늑대인간의 리더와 뱀파이어 소년들의 리더가 이 와중에도 말다툼을 벌이고 있다. 바꿔 말하자면 그럴 여유가 충분하다는 뜻이었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지원이 도착했다!”
새카맣게 밀려드는 하급 뱀파이어들이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징그럽게 느껴졌다. 아니, 이렇게 많은 숫자의 적은 밤필드 보육원 습격사건 이후로 처음이라 더 싫은 것일 수도 있다.
죽어도 그때 생각에 트라우마가 되살아났다는 건 티 내기 싫어서, 시온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무섭지 않다. 겁먹을 필요 없다. 그때 이후로 이렇게 싸우는 건 처음이지만, 소년들은 자라났다. 더 이상 선생님들의 가르침과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이 아니었다.
“일단 다 죽여!”
뱀파이어든 늑대인간이든 함정을 쳐놓고 기다리고 있던 이들에겐 어쨌든 죄다 똑같이 적이다. 그런 상황이 되어버렸다.
숫자로 우위를 점한 그들은 아직 새파랗게 젊은 소년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둠은 그들의 무대이자 집이나 다름없었기에 하늘을 뒤덮기 시작한 밤도 그들의 편이었다.
아니, 정말로 그러한가?
하급 뱀파이어들, 스스로를 드리프터라 칭하는 이들은 갑자기 들려오는 늑대 울음소리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오늘은 보름이다. 늑대사냥을 하기엔 참 공교로운 날이기도 했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