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 보름달 (1) (10/81)


10. 보름달 (1)
2022.03.15.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밤필드 보육원은 상당한 규모를 자랑했다. 석조로 지어진 2층 건물은 어마어마하게 넓은 대지 위에 세워졌고, 단지 일곱 명의 소년들을 보육하기 위한 시설이라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컸다. 그마저도 이젠 흙먼지와 관리되지 않은 건물을 침입한 식물에 점령되었지만 말이다.

헬리는 커다란 종이 있던 종탑이 휑하니 빈 것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우리가 너무 늦게 왔어.”

“뭐, 어쩔 수 없지. 이제라도 온 거잖아.”

지노는 어깨를 으쓱이며 일부러 더 경쾌하게 말했다. 두 사람 모두 보육원의 흉흉한 몰골을 보며 기분이 축축 가라앉고 있었다.

말 그대로 흉물이었다. 반쯤 부서진 벽에, 안쪽에는 대충 흙으로 덮기만 했다가 결국 드러난 유골들이 굴러다녔고, 쓸 만한 물건은 불에 탔거나 아니면 도둑들이 다 털어가서 남은 것도 없었다. 이곳은 완전히 버려졌다.

“매장을 못 하겠으면 제대로 태우기라도 하지.”

지노는 곁을 지나가기만 해도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뼈들을 보며 투덜거렸다.

“시체를 태우는 게 목적이 아니었을 거야.”

침입자의 흔적을 없애기 위한 불은 시신을 완전히 소각시킬 만큼 충분히 세지 못했다. 헬리의 조용한 말에 지노는 한숨을 쉬었다.

“……전부 선생님들이지?”

전부 그들을 돌봐줬던 선생님들의 시체일까.

“대부분은. 그 후에 버려진 시체들도 있네.”

헬리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지노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손으로 눈을 가렸다.

“……뭘 건지러 올 게 아니라 무덤이라도 만들러 왔어야 했네.”

“죄책감 가지지 마. 우린 어렸고, 선생님들도 우리더러 돌아와서 뒷수습을 하라고 하시진 않았잖아.”

그 밤의 기억은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밤잠이 없는 아이들은 어두운 때 더더욱 활발하게 놀았는데, 제각기 책을 보거나 공을 가지고 놀면서도 어쨌든 한 방에 함께 있었다. 그때 들이닥친 선생님이 새파랗게 질려 말했지.

얘들아, 옷 입어, 달아나, 어서!

빨리 뛰어가!

그날 그들이 가장 많이 들은 소리는 ‘가라’라는 소리였다. 함께 가는 게 아니라, 너희들이 어서 빨리 빠져나가야 한다는 다급하고 공포에 질린 말.

세계 각국의 언어를 가르쳐주고, 수학과 운동을 가르쳐주던 선생님들은 계속해서 그들의 뒤를 막아서며 손짓했다.

빨리 가라.

뒤도 돌아보지 말고 뛰어.

“……아, 진짜.”

지노는 결국 못 참겠던지 아예 돌아서서 눈가를 문질렀다.

헬리는 그가 그러도록 잠시 놔두었다. 드문드문 이어지는 기억들을 긁어모아 알아내야 할 것들이 많았지만, 감정을 다스린 후에 냉정한 머리로 해야 한다.

헬리는 조용히 두툼한 작업용 장갑부터 꼈다. 세월에 묻어놨던 의문들을 이젠 직접 마주해야 했다.

“애들을 전부 다 데리고 왔어야 했나?”

다들 따로 애도할 시간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의 목소리가 푹 젖어 있었다. 지노는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나랑 형이니까 이 정도로 끝나는 거지, 애들 다 데리고 왔으면 다들 한 달 넘게 아무 말도 안 할걸.”

그래서 지노만 데리고 왔던 헬리는 주변을 둘러보며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의문을 상기했다.

그들은 어디에서 보육원으로 온 것인가.

보육원을 지키던 선생들은 누구인가.

왜 보육원은 습격당했나.

‘오늘 다 알아갈 수는 없는 의문이겠지.’

그는 자꾸만 눈가를 문질러 닦는 지노의 손을 잡고 다 부서지고 썩은 문들을 지나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디 가, 형?”

헬리는 대답 대신 짧게 웃었다.

“왜 웃어?”

“옛날 생각나서. 네가 항상 그렇게 물어봤잖아. 식사시간이 되어서 밥 먹으러 가는 것뿐인데.”

“더 놀고 싶었으니까 그렇지. 그런데, 진짜 어디 가?”

“너는 기억이 안 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기억하는 곳이 있어.”

아마 침입자들이 죄다 쓸어버리고 갔겠지만, 어쩌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은 그냥 남아 있길 바랄 뿐이다. 걸어가는 내내 대충 봐도 남은 거라곤 돌벽과 바닥뿐이니, 많은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그게 어딘데?”

“숨겨진 비밀장소라고 해야 하나. 선생님들이 몰래 드나들던 곳이 있었어.”

“형은 그런 데를 어떻게 알아?”

헬리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조용히 대답했다.

“애들 숨바꼭질하는 거 찾으러 다니다가…….”

아. 지노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형이 매일 애들 찾아다녔지……. 미안.”

“미안하긴 뭐가. 계단 미끄럽다. 조심해.”

이끼가 낀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가며 헬리는 주변을 살피고 또 살폈지만 살아 있는 생물의 기척이라곤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가끔 다람쥐나 생쥐가 지나가긴 했으나, 그뿐이다. 이곳에 살아 있는 존재라곤 헬리와 지노, 단둘뿐이었다.

“아니, 생각해보니까 형도 애였는데 나이가 좀 많아서 괜히 선생님 역할까지 한 거잖아.”

“어쩔 수 없었지.”

각자 부모님이 따로 있던 것도 아니고, 돌봄을 받아야 할 아이들은 서로밖에 없다는 걸 알자 곧장 똘똘 뭉칠 수밖에 없었다. 그건 보육원이 습격받고 무작정 도망친 후에 더더욱 심해졌다. 나이가 많은 아이가 어린아이를 돌보았다. 헬리가 말했듯,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형도 애였다니……, 으악!”

지노는 푸드득, 박쥐들이 날아들자 빠르게 얼굴을 가렸다. 한차례 찍찍대는 박쥐들이 요란하게 날아가 버리자 다시 지하에는 어둠이 찾아왔다. 지노는 급한 대로 여러 개의 불을 띄웠다.

“휴대폰 플래시면 충분한데.”

“아니, 기분상 여러 개를 띄워야 내가 덜 찝찝할 것 같아 그래.”

세차게 고개를 흔드는 지노를 보며 픽 웃은 헬리는 걸음을 옮겼다. 보육원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때는 창고나 저장고 등으로 쓰였던 곳이지만, 예전의 기능을 잃은 지는 오래라 부서진 나무통 같은 쓰레기만 널려 있었다.

“형, 여기 뭐가 있긴 있어……?”

“침입자들이 발견하지 않았다면, 있겠지?”

솔직히 헬리는 그곳이 무사하길 바랐다.

“그러니까 그게 뭔데?”

“원장선생님이 가끔 여길 오셨어.”

“엥? 왜?”

보통 보육원 원장선생님은 2층 사무실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시거나, 말썽꾸러기 형제들을 붙잡고 언어를 가르치거나 책을 읽어주시고 형제들의 무술 실력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기 바쁘셨는데. 지하에 내려오실 분이 아니었다.

“보통 사람들이 없을 시간에 오셨는데, 그게 저장고 뒤에…….”

모퉁이를 돌아 기억을 더듬어가며 저장고를 확인하려던 헬리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저장고는 물론이고, 그 뒤에 숨어 있던 비밀 공간까지 다 드러나 있었다. 벽들은 곡괭이와 정으로 쪼개버린 듯 허물어졌고, 안에 있어야 했던 물건들이며 서류들은 새카맣게 타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곳에도 시커멓게 그을린 벽밖에 없다.

한마디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뒤에 뭐가 있긴 했네.”

있긴 했으나 이젠 그 안의 내용물을 찾아볼 길이 없다.

소년들의 출생이나 정체, 신분에 관한 비밀은 영영 어둠 속에 묻힌 걸까.

지노는 우뚝 서버린 형의 너른 어깨를 씁쓸하게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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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갔어야 했나.”

이안은 멍하니 앉아 있다가 중얼거렸다. 뱀파이어 소년들이 사는 넓은 집 거실에 나와 있는 건 그와 솔론뿐이었다.

“뭐하러?”

솔론이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끝이 안 좋았던 데라 둘 다 괜찮을까, 싶어서.”

“거길 가서 괜찮을 사람이 어디 있어? 그냥 헬리 형이 알아서 한 거니까 믿고 맡겨.”

“솔론 너는 보육원이 궁금하지 않냐?”

“사람 시체밖에 더 있겠어?”

퉁명스럽게 말하곤 말이 뚝 끊겼다. 맞는 말이지만 말을 뭐 그렇게 하냐는 대꾸가 들려올 법도 했지만 이안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 두면 솔론이 깊숙한 곳에 숨겨놨던 말을 할 거란 걸 알기 때문이다.

“……보육원이 궁금한 것보단 보육원을 누가 습격했는지 궁금하긴 해.”

그건 소년들 모두가 궁금해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살아남는 데 급급해서 보육원 쪽을 돌아볼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뭘 노린 건지, 왜 습격한 건지……. 아마 우릴 노린 거겠지?”

습격의 표적은 너무 뻔했고, 보육원 선생님들도 합심하여 아이들을 바깥으로 빼냈다. 도망치는 데 필요한 물건도 미리 챙겨놨다가 쥐여줄 만큼 대비가 되어 있었다.

“형, 우린 누굴까?”

나는 누굴까.

솔론은 그리 궁금하지 않으면서도 태어난 이상 알아야 하는 질문을 괜히 중얼거려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이제 와서 의미 없다.

*

헬리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욕설이 튀어나오려는 걸 꾹 삼켰다.

더 빨리 왔어야 했나?

아니, 사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보육원은 뒤돌아보고 싶지도 않은 곳이기도 했다. 어두운 과거가 궁금하다가도, 때론 그냥 완전히 묻어버린 채로 지내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기껏 용기를 내어 열어보고 싶지 않던 심연의 뚜껑을 열어보려고 왔는데, 아무것도 없다면 좀 억울하지 않나. 아니, 좀이 아니라 많이 억울했다.

“여기도 쓸려나간 걸 보니 완전히 다 들켰나 보네.”

여기 뭐가 있긴 있었던 모양이다. 일종의 비밀스러운 방 같은 거였나 보다.

지노는 허탈해하는 헬리를 두고 새카맣게 타고 무너진 책장과 형체만 남은 책상을 둘러보았다. 이런 곳이 있다는 것도 몰랐던 그와는 달리 헬리는 이 공간에 상당히 기대를 걸었던 모양이다.

“……내가 순진했지. 아니, 너무 쉽게 생각했어.”

보육원에서의 기억은 아이의 기억이었기에 아이처럼 순진하게 이 공간은 들킬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럴 리가 없다는 게 뻔한데 말이다.

헬리는 기가 막혀서 허탈하게 웃었다. 여전히 이곳에 대한 일은 전부 그 어린 나이의 사고방식으로 분석하고, 또 생각하고 있다.

“뭐가 있을 리가 없는데.”

“그냥 일말의 희망을 걸고 싶은 거지, 형.”

지노가 중얼거리는 헬리의 어깨를 꽉 붙잡았다. 그러지 말라고, 자조하지 말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위로했다.

“나도 그래. 꼭 여기 오면 뭐가 있을 거 같고……, 원장선생님은 강하신 분이셨으니까 그분이라도 어디에 혼자 살아 계실 거 같고, 나도 그래. 노아도 뭐가 있다면 꼭 말해달라고, 숨기지 말고 말해달라고 떠나기 전에 신신당부를 하던걸.”

헬리는 눈을 꾹 눌러 감았다. 내내 도망치고, 어떻게든 성장해서 혼자 몫을 감당하며 형제들을 지키려 애쓰느라 제대로 울지도 못했다. 애도도 하지 못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감정들이 밀려든다. 아. 정말 수하가 찾아와줬으면 좋겠다는 유치한 생각까지 들었다.

정작 그녀가 이곳에 나타난다면 눈부터 황급히 가리고 빠르게 이곳에서 벗어나게 할 거면서.

“으아, 다 썩었네.”

지노는 일부러 더 요란하게 주변을 살폈다. 그의 수선스러운 손길에 이 방을 빽빽하게 메웠던 책장인지 서랍장인지의 흔적이 툭툭 떨어졌다.

헬리는 지노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래. 원장선생님의 손도 저렇게 바쁘게 이곳에 있던 서가를 오고 갔다. 책들을 꺼내고, 책장 뒤에 있는 흠집들을…….

“지노.”

“어?”

왜? 지노는 자신의 손을 움켜쥐는 헬리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은 방 주변을 샅샅이 훑고 있었다.

“불을 더 켜봐. 주변에 아무도 없는지 더 주의를 기울이고. 아무도 이걸 알아선 안 돼.”

까만 저장고의 어둠 속에서 좋아하는 원장선생님을 몰래 쫓아왔다가 저도 모르게 기척을 죽인 적이 있던 소년은 이끼가 늘어져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돌벽을 빠르게 훑었다. 이젠 제 기능도 하지 못하고 반은 타고, 나머지 반은 썩어버린 나무들이 와르르 무너졌다.

지노는 갑자기 이상하게 행동하는 형을 놀라 바라보면서도 그가 시킨 일은 착실하게 해냈다.

‘저렇게 요란하게 소리를 내면 사람들이 없다가도 무슨 일인가 싶어 찾아오겠다.’

물론 지적하는 건 참았지만 말이다.

헬리는 거의 미친 사람처럼 차가운 벽을 더듬었다. 뭔가를 찾는 모양이라, 지노는 그의 근처에 불을 더 가까이 대주었다. 그는 그 빛이 기꺼운 듯 거의 벽에 얼굴을 들이밀다시피 하다가, 어떤 지점에서 멈춰 섰다.

“뭔데?”

“잠깐만 있어봐. 나도 잘 몰라. 그때 잘 안 보였거든. 그러니까……. 이걸 좀 풀어내야 하는데, 그래, 원장선생님이 이대로 끝내셨을 리가 없어.”

헬리의 눈은 거의 미친 사람처럼 번들대고 있었다. 그는 겉보기엔 그저 평범하게 흠집이 난 벽돌 몇 개를 붙잡고 이리 눌렀다, 저리 눌렀다 하고 있었다.

“그……렇지, 원장선생님은 우리가 본 사람 중에 제일 강한 분이시긴 한데, 형, 내가 지금 못 따라가겠거든? 설마 원장선생님이 이 방에 또 비밀의 공간을 만들어놓…….”

흙먼지를 뿌리며 오래된 벽돌이 저절로 움직이는 소리에 지노의 말이 뚝 그쳤다.

그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벽돌 두 장이 움직이더니 스르르 열리는 작은 공간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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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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