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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전학생은 평범하고 싶다 (9) (9/81)


9. 전학생은 평범하고 싶다 (9)
2022.03.08.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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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볼, 아니, 정확히는 드셀리스 아카데미 나이트볼 주전들의 팬인 알렉스는 수하의 룸메이트였고, 덕분에 수하는 드셀리스 아카데미와 선샤인시티스쿨 사이의 전적이 어떻게 되는지 모조리 알 수 있었다.

‘나이트볼의 원조는 선샤인 애들이라고 할 수 있지. 여태까지 우승컵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거든.’

그런데 그 전설이 깨진 게 드셀리스 아카데미에 주전 일곱 명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부터란다. 선샤인시티스쿨은 계속 우승컵을 놓치고, 놓치고, 또 놓쳤다.

‘선샤인 애들이 무지 자존심 상했을 거야. 그래서 시내에서 마주치기만 하면 분위기가 꽤나 살벌한 모양이더라고.’

알렉스는 그쪽 주전들도 참 잘생겼는데, 라며 유감을 표했다.

하지만 수하는 나이트볼뿐만 아니라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까지 알고 있다. 각 학교의 주전들은 단순히 스포츠 하나 때문에 으르렁대는 게 아니었다.

“괜찮아?”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이 남자애, 선샤인시티스쿨 나이트볼 주전인 칸은 늑대인간. 그리고 수하가 지금 얼떨결에 가까이 지내게 된 드셀리스 아카데미 나이트볼 주전들은 뱀파이어가 맞는 것 같다.

사람을 물어 죽이는 하급 뱀파이어와는 전혀 다르다고는 하지만, 칸이나 예전에 봤던 나자크인가, 아무튼 늑대인간들의 반응을 보면 뱀파이어는 맞는 게 분명하겠지.

‘엄청나게 복잡하네.’

어쩌다가 수하의 주변이 이렇게 많은 사람과 복잡한 관계로 뒤덮이게 된 걸까. 힘들거나 싫지는 않았지만,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나 다치지 않았어.”

수하는 조금 고민하다가 불쑥 말했다. 사실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를 살피는 칸의 눈에 너무나 미안한 감정이 가득한 게 선명히 보였기 때문이다. 저렇게 미안해하는 사람은 또 처음 봤다.

“내가 그때 꽤 세게 잡은 거 같았는데, 정말 괜찮아?”

칸은 자신의 신체조건을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가 가진 근력으로 수하를 붙잡았으니, 뼈가 부러지거나 금이 가지는 않았나, 뒤늦게 신경이 쓰였다.

“아프지 않았어? 미안해.”

헬리는 칸을 ‘특별히 조심하라’고 했다. 하지만 왜? 그냥 겉보기엔 평범하게 미안해하는 또래로 보이는데.

수하는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다시 정정했다. 아니, 칸은 ‘평범’한 외모는 아니다. 나이트볼 경기장에 도대체 뭐가 있는지는 몰라도 나이트볼을 하는 남자애들은 제각기 잘생겼다. 그러니까 평범한 건 아니지.

“아프긴 했지.”

가만 생각하던 수하가 툭 말을 던지자 칸은 더더욱 어쩔 줄 몰랐다. 쟤 진짜 미안해하는구나.

“근데 나도 너 밀쳤잖아.”

그럼 동률 아닌가? 수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칸은 아닌가 보다.

“그건 넌 정당방위고, 아무튼 미안해. 안개인 줄 알았는데…….”

안개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사람이었다, 라는 말이 완성되기도 전에 수하가 화들짝 놀라며 칸의 팔을 잡아챘다.

“야, 누가 들으면 어떡하려고……!”

“듣는 사람 없어.”

목소리도 작게 말했고. 칸은 무뚝뚝하게 말했지만 수하는 주변을 살폈다.

“듣는 사람은 없어도 보는 눈은 있단 말야!”

조심해야지. 특히 나이트볼 주전들은 어느 학교나 다 팬들이 많아서 이렇게 탁 트인 대낮에는 더더욱 조심해야 했다.

“보는 눈이 뭐?”

칸이 이상하다는 듯 수하를 쳐다보았다.

“너도 널 보는 사람이 많잖아. 숨긴다고 해서 숨겨질 능력도 아니고.”

그녀는 어쩐지 말문이 막혔다. 칸이 픽 웃으면서 하는 이야기는, 꼭 헬리가 그녀에게 했던 ‘특별하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처럼 들렸다.

“게다가 넌 인간인데, 그런 능력을 어떻게 가지고 있어?”

칸은 상당히 신기해했다.

“뭐야……, 그럼 내가 인간이지, 뭐, 이상한 귀신으로 보여?”

수하는 그의 팔을 얼른 놓으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너한테서는 냄새가 안 나.”

냄새? 냄새라니! 당연히 나지 말아야지! 매일 뽀득뽀득 샤워한다고! 섬유유연제도 향이 제일 좋은 걸로 골라서 부지런히 세탁한단 말이야! 도대체 사람을 뭘로 보고!

특히 헬리와 마주하기 시작한 이후로 수하는 잠옷과 운동복에 더 신경 썼다. 오늘 안개화 연습을 하러 갈 때 입을 운동복에서도 포근한 파우더 향이 났다.

“아니. 내 말은, 뱀파이어 냄새.”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수하의 얼굴에서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고스란히 드러났다. 칸은 서둘러 정정했다. 그러니 수하의 눈이 커진다. 이 애는 도무지 표정 관리라곤 할 줄을 몰랐다.

그럴 필요가 없는 삶을 살아왔겠지. 나름대로 평범하고 평온한 삶이었을 거다. 그런데 어떻게 뱀파이어들과 엮인 거지? 칸은 알 수 없었다.

“냄새가 난다고? 그런 냄새 안 나는데?”

헬리한테서는 알렉스가 도대체 무슨 향수를 쓰는지 알아내라고 성화를 할 만큼 좋은 향기가 났다. 약간 싸늘한 것 같으면서도 기분 좋은 향이다. 다른 주전들도 비슷하던데, 냄새라니?

“뱀파이어들은 특유의 체취가 있어. 너한테도 좀 묻어 있고. 가까이 지내나 봐?”

“……내 친구야.”

비록 헬리는 수하를 어떻게 생각할지 조금 자신이 없었지만, 그녀는 주먹을 꾹 쥐고 말했다. 그녀에게 생전 처음으로 특별하다고 말해준 사람이니까 소중한 친구였다.

“친구랑 가까이 지내는 건 당연한 거 아냐?”

“친구도 친구 나름이지. 뱀파이어는 좀 아니지 않아?”

수하는 입을 앙다물고 한 번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아무래도 눈앞에 있는 이 커다란 남자애는 그녀를 은근히 약 오르게 하는데 탁월한 재주가 있는 모양이다.

“그러는 너는 늑대인간이라며? 너는 뭐 다른 줄 알아? 나한테는 뱀파이어나 늑대인간이나 다 똑같거든?”

절대로 아무도 들을 수 없게 아주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면서도 수하는 칸을 노려보았다.

“……똑같다고?”

“그래! 좀 특이한 거지 그게 뭐!”

말하다 보니 수하 스스로도 납득이 되었다.

그래. 그녀도 좀 특이한 거지 그게 뭐 어쨌다고. 사람을 죽이길 했어? 뭐 해를 끼치길 했어? 해를 끼치고 죽이고 다니던 건 그녀가 보고 싶지 않아도 강제로 안개가 되어 보았던 하급 뱀파이어들이다.

“너 진짜 특이하구나.”

칸은 수하를 가만히 보다가 감탄했다.

“그래, 그렇다니까. 너 여태까지 내 말은 뭐로 들은 거야?”

“그럼 뱀파이어와도 친구가 될 수 있으면, 늑대인간도 상관없어?”

저건 도발이었다. 놀리듯 하는 말이었지만 수하의 귀에는 도발로 들렸다. 얘는 왜 만날 때마다 그녀를 약 올리지 못해 안달일까. 수하는 턱을 치켜들었다.

“상관없어!”

수하는 이 순간부터 스스로를 임시 평화주의자이자 박애주의자라고 지칭하기로 했다.

헬리가 조심하라고 했지만 일단은 밀리지 않는 것도 중요하잖아? 그러니까 조심하면서 절대 지지도 말자!

“그래, 그럼 나랑도 친구 하자.”

“그래!”

오기로 똘똘 뭉쳐서 일단은 대답하고 봤다. 칸이 생각 외의 대답을 들었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한 방 먹였다! 수하는 몹시 뿌듯했다. 친구가 뭐 별건가? 오며 가며 인사하는 게 친구지, 뭐.

물론 헬리는 그녀에게 조금 다른 의미로 친구였다. 좀 더 특별하고 소중한 친구. 그러니까 칸과는 당연히 달랐다.

더구나 선샤인시티스쿨 학생인데, 마주쳐봤자 얼마나 마주치겠다고.

*

짧다고는 할 수 없는 비행시간을 마치고 헬리와 지노는 대단히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다시 옛 고향을 밟았다.

고향이라고 하는 게 맞겠지. 태어난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일곱 소년은 이곳에서 기억이란 게 있을 때부터 자랐다.

밤필드 보육원.

키우는 아이들이라곤 일곱 명이 전부고, 아이들보다 직원들이 더 많았으며, 직원들도 아이들도 나이가 들지 않는 괴상한 곳이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조용히 지내던 어느 날, 습격을 받고 보육원은 그 기능을 상실했다.

“조심해, 형.”

지노가 멀리 보며 중얼거렸다.

“습격이야 한참 전이라고 쳐도, 이 일대가 전부 다 하급 뱀파이어들 손에 들어갔을 수도 있잖아.”

그들의 목숨을 위협하던 하급 뱀파이어들이 득실댈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던 헬리는 픽 웃었다.

“딱히 겁이 나지는 않는데.”

울면서 도망치기 급급했던 소년들은 이젠 하급 뱀파이어쯤이야 아무렇지도 않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그건 나도 그런데, 귀찮은 게 싫어.”

지노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런 피라미들의 배후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잖아.”

하급 뱀파이어들이 왜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보육원을 습격했나. 늘 혼자서, 아니면 잘해야 둘씩 움직이는 뱀파이어들이 그때는 왜 떼로 쏟아져 들어왔을까.

보육원을 탈출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소년들은 그때를 제외하곤 하급 뱀파이어들이 단체행동을 하는 건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들은 꼭 명령을 받은 것처럼 움직였다.

‘그리고 아마 보육원에 하급 뱀파이어 말고도 다른 존재가 왔을…….’

헬리는 생각하다 말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의문은 한두 개가 아니다.

“그런데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서 흔적이나 남아 있을지 모르겠네.”

헬리의 사념을 뚫고 지노의 한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노는 보육원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마치 가벼운 나들이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면 그렇게 생각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거나.

“왜, 그런 거 있잖아. 흉물스러운 건물은 얼른 밀어버리고 그 일대를 재정비하는 사업을 한다든가…….”

사람이 여럿 죽은 보육원 건물이라면 충분히 흉물이었다. 누가 오래된 흉물을 이토록 오랜 세월 동안 방치할까.

“그래. 그것도 염두에 두고 있어.”

헬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장거리를 비행한 사람이라곤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벼운 옷차림으로 한가하게 걸었다.

소년들은 밤필드 보육원에서 아주 긴, 끔찍하게 길고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보육원은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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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하는 피곤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잠자리를 내려다보았다. 요즘 일이 많고, 또 나이트볼 연습장까지 가서 안개화 연습을 하느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를 정도로 바빴다.

‘오늘은 진짜 안개로 변하고 싶지 않아.’

그냥 아무런 꿈도 꾸지 않고, 그래, 헬리가 그녀에게 ‘공주님’이라고 부르는 그 민망한 꿈도 꾸지 않고 잠만 푹 잤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그녀는 잠자리에 몸을 던졌다. 그때 휴대폰이 반짝거렸다. 아, 이거 분명히 헬리다! 수하는 빠르게 휴대폰을 들었다.

별일 없었어?

음……. 별일이야 있긴 했다.

안개화 연습은 완전 실패했는데 연습하러 가다가 칸인가 걔 만났어.

솔직하게 말했더니 당장 전화가 왔다. 깜짝이야! 눈을 동그랗게 뜬 수하는 알렉스를 힐끔 쳐다보다가 바깥으로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

“으, 응. 헬리야.”

[칸이 또 무슨 짓 했어?]

한 톤 올라간 목소리에는 걱정이 가득하고 다급하기까지 했다.

“아니야, 아니야. 내가 잘 처리했어.”

[때렸어?]

“때리긴 뭘 때려, 날 뭘로 보고……!”

[미안. 근데 사실 때리고서 잘 처리된 거라면 좋은 거라고 생각해.]

얘도 이상한 소리를 한다.

“그땐 때리지 말라고 막았으면서.”

볼멘소리로 말하자 헬리는 약간 놀라운지 침묵하더니 낮게 웃었다.

[때리지 말라는 게 아니라, 성공하지 못할 공격만 자꾸 해서 힘 빼지 말라는 뜻이었어. 마주쳐서 뭐라고 했어?]

“사과하고 싶다고 했어. 진심으로.”

[혼자 있었어? 이안이 함께 있지 않았어?]

“에이, 매일 데리러 오는 것도 이상하잖아. 내가 오지 말라고 했어. 강의실에서 연습장까지 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나 혼자 갈 수 있어. 대낮인걸.”

그래도. 헬리는 그게 좀 마음에 안 드는 투였지만, 불만은 한 번만 말한 뒤 입을 다물었다. 그것보다는 칸이 도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 속속들이 알고 싶다는 티를 냈다.

[또 뭐라고 했어?]

“왜 뱀파이어들이랑 친구 하냐고 물어봐서 내가 뭐 늑대인간들이랑은 친구 못 할 줄 아냐고 했어.”

[그럼……, 칸이랑도 친구 했어?]

헬리의 목소리가 약간 흐려졌다.

“인사만 하는 친구지. 걘 내가 그런 대답 못 할 줄 알았나 봐. 깜짝 놀라더라고.”

*

이걸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멀리서 수하의 대답 하나에 깜짝 놀라 전화를 걸었던 헬리는 어둑한 천장을 바라보았다.

다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밤필드 보육원은 뼈대 하나는 튼튼해서, 단단한 석조 골조는 다 남아 있었다. 나무로 만든 바닥이나 천장은 비를 맞아 썩고 부서졌지만, 조심한다면 괜찮았다.

그래서 헬리가 기억하고 있던 구조도 남아 있었다. 얼룩진 핏자국도 여전히 남아 있다.

“수하야.”

네가 걔랑 친구를 왜 해, 그럼 나는 뭔데, 나는 더 가까운 친구야? 여긴 썩은 냄새와 죽음의 그림자만 떠다녀. 애써 좋은 것들을 떠올리면서 버텨보려 하는데, 가장 많이 생각나는 너는 내가 없는 곳에서, 하필 걔랑…….

“네가 여기에 잠깐 나타났으면 참 좋겠다.”

많이는 아니고 잠깐. 끔찍한 주변도 눈치채지 못하고 얼굴만 보여줄 정도로 잠깐.

그는 설핏 웃었다. 시커멓게 그을린 벽과 한바탕 쓸고 지나간 뒤 세월과 자연이 켜켜이 내려앉아 덩굴식물이 늘어진 몰골을 괴롭게 보며 얼굴을 문질렀다.

[그, 어, 나 아직 안개가 되는 거 못 했어…….]

“그냥 보고 싶어서 그래.”

꿈에서 본 공주님과 지금의 수하는 다른 사람일까, 아니면 같은 사람일까.

[어어어어……, 그럼 노력해볼게!]

아무리 생각해도 씩씩하고 기죽지 않으려 애쓰는 그녀는 꿈에서 그를 북돋아주던 여자와 같은 사람 같아서, 자꾸만 헛소리를 하며 기대게 된다.

헬리는 제대로 된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백골이 된 시신들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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