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 전학생은 평범하고 싶다 (6) (6/81)


6. 전학생은 평범하고 싶다 (6)
2022.02.15.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16552035192946.jpg

 
엄밀히 말하자면 나이트볼은 밤에 하는 종목이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공이며 골대만 봐도 이건 밤에 보면 두 배로 재미있겠다, 싶지만 수하는 나이트볼을 연습하러 온 게 아니다. 그녀는 넓은 나이트볼 경기장에 서서 끙끙대고 있었다.

아, 물론 혼자 끙끙대는 건 아니다.

“잠을 자야 할까?”

“잠을 잔 뒤에 쓸 수 있는 능력은 안 된다니까. 수하 네가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어야 해.”

대단한 능력인 동시에 위험한 능력이기도 하다. 만일 안개인 상태로 돌아다니다 헬리처럼 그녀를 알아보는 이를 만났을 때 공격을 당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변수가 많았다. 차라리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서 편리하게 사용하는 게 여러모로 나았다.

당장 그들, 나이트볼 주전인 뱀파이어 로드들이 그랬으니까.

헬리가 고개를 저으며 이안을 쳐다보았다.

“……뭐, 왜? 나는 타고나길 이렇게 태어나서 저런 능력은 몰라.”

괴력이 주특기인 이안은 헬리와 똑같이 고개를 흔들며 뒷걸음질 쳤다.

그럼 이안은 아니고. 이안보다 키가 큰 지노가 곁에 있다가 중얼거렸다.

“나도 타고나길 살아 있는 라이터라서 모르기는 한데……. 그, 내가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해봐.”

나이트볼 주전 일곱 명에게 둘러싸이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어색하고 이상한 일이었다.

이안은 아예 자신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며 물러났고, 헬리는 수하의 곁에 붙어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어쨌든 ‘제어’해야 한다나.

“하, 하고 있어.”

생각을 한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다. 지노는 관자놀이를 긁으며 헬리를 쳐다보았다.

“나도 안 될 것 같은데. 내가 불이 되는 건 아니잖아. 그런데 얘는…….”

“‘수하’는.”

헬리가 바로 호칭을 정정했다.

“그래, 수하는 안개가 되어야 하는 거고.”

그러니까 지노도 슬쩍 뒤로 빠져서 이안과 함께 공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약간 길고 색이 바래 백발에 가까운 은발을 대충 묶은 채로 팔짱만 끼고 있던 자카가 난감해하는 수하를 지켜보다가 한마디 던졌다.

“밤에만 가능한 거 아니야? 꿈을 꿀 때만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다면서.”

“왔다 갔다 한 건 아니고…….”

이걸 도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수하가 난감해하자 자카가 헬리를 어깨로 툭 쳤다.

“형이 한번 들여다봐.”

“그건 안…….”

“최소한 어떤 느낌인지 아는 사람이 둘은 되는 거잖아. 수하한테 양해를 구하고, 그때 기억만 들여다보는 거야.”

“어……, 난 좋아. 그게 가능하다면.”

수하가 두 사람을 보며 조심스럽지만 또렷하게 말했다. 헬리에게 다른 사람의 머릿속을 읽는 능력이 있다는 것도 알고, 그가 그걸 얼마나 무례하게 생각하는지도 안다. 하지만 괜찮았다.

“괜찮아.”

“하지만…….”

“일부러 안 보려고 애쓴다는 거 알아.”

순식간에 헬리를 제외한 나머지 여섯 명이 수하를 휙 쳐다봐서 그녀는 주춤거렸다.

왜 쳐다보지? 그녀는 오늘 꾼 꿈을 생각하며 말한 건데, 아직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이에 너무 섣부른 말이었나?

“그러니까, 노력하잖아. 그치? 그 밖의 건 안 보려고 많이 노력하잖아.”

말실수를 한 걸까. 수하는 그래도 이 정도 이야기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거봐. 쟤도 아네.”

공을 받던 이안이 픽 웃었다. 약간 놀란 것 같던 주전들이 죄다 부드럽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색하게 꾸물대던 분위기가 한층 누그러진 느낌이었다. 수하가 한, 별 거 아닌 말 한마디에 말이다.

“……그럼 한 번만 볼게. 다른 건 절대 안 보고, 꿈을 어떻게 꾸는지만 볼게.”

“괜찮다니까.”

“실례할게.”

그래도 헬리는 끝까지 조심스러워하며 수하에게로 손을 뻗었다. 어? 손?

“어, 손잡아야 해?”

“어, 어.”

그렇다고 하니 수하는 일단 내밀어진 손을 잡았다.

미친, 손을 왜 잡아?

손을 왜 잡아? 손 안 잡아도 읽을 수 있으면서?

……형, 드디어 미쳤구나…….

아, 진짜, 다 보는 데서 그러지 좀 마. 제발.

아오, 내 눈!

……저 형 왜 저래……?

순식간에 수하를 제외하고 헬리가 읽을 수 있는 이들의 뇌리에서 일제히 비난이 떠올랐지만, 헬리는 꿋꿋하게 무시하고 수하가 꿈을 꿀 때를 찬찬히 살폈다. 그러곤 눈가를 좁혔다.

“……순간이동이네. 이동하는 게 아니야.”

순간이동이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수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던 곳에서 안개가 되어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일단 시작하는 곳이 이미 바깥이고, 이미 안개가 되어 있어.”

“아, 그럼 나도 아니네. 나는 뛰는 게 전문이라.”

자카는 양손을 들어 올리더니, 순식간에 돌아서서 사라진 뒤 지노가 이안에게 던지는 공을 휙 낚아챘다. 수하가 놀라 입을 뻐끔거렸다.

“저, 저게 순간이동 아니야?”

이곳에서 이안이 서 있는 곳까지는 족히 열 걸음은 되는데, 거길 순식간에 이동하는 자카야말로 순간이동이 아닌가?

그때 자카가 다시 이쪽으로 휙 나타났다.

“난 순간이동은 아니야. 그냥 좀 빠른 거지.”

대단히 침착한 얼굴로 설명하곤 또 휙 사라진다. 수하는 이들이 보여주는 놀라운 능력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저 까칠한 성격에 웬일이야? 수하가 마음에 드나 보네.”

이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짧은 금발 머리가 중얼거렸다. 쟤 이름이 뭐였더라? 시온이었나? 그래, 저 뒤에 키 크고 머리색이 어두운 애는 노아. 그 옆에 오드아이가 솔론.

수하는 다시 한번 소개받은 이름과 얼굴을 매치시켜보았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이름이 헷갈렸다. 아, 얼굴은 헷갈리지 않는다. 죄다 각자 개성이 뚜렷하게 잘생겼으니까.

“솔론.”

헬리가 자연스럽게 떠나는 시온과 노아 대신 묵묵히 서 있던 솔론을 불렀다.

혼자 남은 그의 두 눈은 각각 색이 다르다. 한쪽은 푸른색, 다른 쪽은 마치 맹수처럼 환한 노란빛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네가 도와줬으면 좋겠어.”

헬리의 의미 있는 말에 솔론, 오늘 수하가 처음 본 이들 중 하나가 그녀를 물끄러미 보았다.

“……굳이 꼭 그래야 할 필요가 있나?”

수하는 처음 듣는 이야기에 고개를 조금 더 들었다.

“내 말은, 굳이 잘 모르는 능력을 딱히 필요도 없는데 애써가면서 가르칠 필요가 있냐는 거야. 누가 얘를 노리는 것도 아니잖아.”

맞는 말이긴 했다. 수하가 목숨이 위험한 것도 아니고, 안개가 되어 여기저기 쏘다니는 능력이 있어 뭘 할까.

솔론은 다시 수하를 바라보며 물었다.

“너는 왜 이걸 하려는 거야?”

솔론의 질문은 핵심을 찔렀다. 그는 차분하지만 샅샅이 살피는 눈빛으로 수하를 바라보았다.

가볍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지만, 솔론은 수하의 생각보다 훨씬 더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는 듯했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렸다.

“내가 시비를 거는 건 아니고……. 무슨 생각인지 궁금해서 그래.”

수하가 머뭇거리는 게 그가 공격적으로 말한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솔론이 얼른 덧붙였다.

조금만 얼굴을 굳혀도 싸늘해 보여서 함부로 다가갈 수 없어 보이는 게 그들이라는 걸 그들 스스로도 다 잘 알고 있었다.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게 낫잖아.”

한참 생각하던 수하가 말했다.

“나는 계속 내가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어. 주변 사람들도 다 그렇게 말해서 숨기기 바빴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한다는 게 참 어색한 일이지만, 수하는 적어도 어제 그녀의 삶이 완전히 뒤집혔다는 걸 솔론도 알았으면 했다.

“그런데 어제 처음으로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해보려는 것뿐이야.”

하지만 그걸 다 표현하기엔 아무래도 말주변이 부족한 것 같다. 수하는 괜히 입술을 말았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솔론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 통한 건가? 정말? 수하의 축 처졌던 어깨가 다시 솟아올랐다. 솔론도 그녀와 같은 경험이 있는 걸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도와줄게. 대신.”

그는 분명하게 수하를 보며 말했다.

“나중에 능력을 사용해야 할 순간이 오면 절대로 망설이지 마.”

이유는 몰랐지만, 일단은 알겠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눈빛에 수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

물론 솔론이 도와준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갑자기 안개로 바뀔 리가 없었다.

수하는 숨을 몰아쉬며 주저앉았다. 솔론이 한숨을 쉬었다.

“오늘 하루로 다 해치울 생각은 하지 마.”

“난 어릴 때부터 계속 밤마다 안개로 변했단 말야. 하루면 될 줄 알았지.”

누가 봐도 나이트볼을 엄청 연습하다가 온 사람 몰골을 하고 있으니, 적어도 친구들이 의심은 안 하겠다. 안간힘을 쓰고, 뛰어도 보고, 솔론과 헬리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봤지만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다.

“이쯤에서 오늘은 그만해. 너무 힘써봤자 지치기만 하니까.”

솔론은 무뚝뚝하게 말하며 걸어가 버렸다. 풀이 죽은 수하에게 헬리가 가만히 물을 내밀었다.

“힘들지? 마셔.”

“고마워. 그런데 헬리 너도 가봐야 하지 않아?”

약 한 시간 동안 열심히 애써보며 살펴보니 주전들은 다 바쁜 것 같다. 하긴 나이트볼 리그 우승이 거저 얻어지는 건 아니니, 열심히 연습도 해야겠지.

“너랑 같이 있을 시간은 있어.”

다정하게 웃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말을 하면 듣는 사람이 오해하지 않겠니? 수하는 얼른 물이나 마셨다. 착각하지 말자. 헬리는 아주 친절한 성격일 뿐이니까.

“그런데 수하야.”

물을 꼴깍꼴깍 마시던 수하가 그를 다시 쳐다보았다.

“궁금한 게 있는데, 혹시 안개가 되어서 돌아다니는 꿈 말고 다른 꿈을 꾼 적은 없어?”

다른 꿈? 반사적으로 수하는 오늘 꾼 꿈을 떠올렸다.

“이상하게 이어진다거나, 아니면 아는 사람이 나온다거나 하는 꿈 같은 거.”

공주님.

그의 목소리 위로 꿈에서 봤던 헬리의 목소리가 겹쳤다.

“아니!”

수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거 말고는 이상한 꿈 안 꿨어.”

절대로, 절대로 말하지 않을 거다. 헬리에겐 특히 말 안 할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개꿈인데 그게 좀 이어지는 콘셉트라고 해서 헬리에게 굳이 말할 필요는 없잖나.

“그래?”

헬리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수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녀는 슬쩍 고개를 들었다가 헬리와 눈이 마주치곤 얼른 눈을 피했다.

혹시 거짓말했다는 게 티가 났을까?

‘일부러 생각은 안 읽으려고 노력한다고 하니까, 표정 가지고 알아차리진 않겠지?’

그렇겠지?

*

오늘 나이트볼 경기장에서 보낸 시간은 한 시간 남짓이었다. 헬리는 수하를 다시 데려다주는 역할에 충실했고, 떠돌아다닌다는 하급 뱀파이어에 관한 이야기는 수하에게 절대 들려주지 않았다.

‘나는 아마 몰라도 된다는 거겠지.’

하긴 안개화 능력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데, 수하에게 끔찍한 이야기를 해줘봤자 그녀가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하루가 들썩이며 지나간 뒤 깊은 밤, 혼자 누우면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진다.

‘솔론도 뭔가 변하는 능력인가 본데, 뭐로 변하는 걸까?’

헬리는 아마 알고 있을 거다. 하지만 말해주지도 않고, 솔론도 딱히 말해주고 싶어 하지 않는 모양이다.

졸지에 새로운 지인들이 일곱 명이나 생기긴 했는데, 아직까지는 어색하고 서먹하기만 해서 난감하다. 잘하고 싶은데. 기왕 만났으니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아, 설마 오늘도 공주님 꿈을 꾸지는 않겠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잠든 것 같다. 평온하게 아무런 꿈도 꾸지 않고 잠들길 바랐으나, 요즘 수하에게 일어나는 일들로 봐선 그러기가 힘들었다. 수하는 천천히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에휴, 죽어라 연습을 하면 뭘 하냐고. 그냥 잠드는 게 빠르지.’

그녀는 또 안개가 되어서 오늘 내내 열심히 집중하고 있던 나이트볼 연습장 입구에 서 있었다. 저 안쪽에서 빛나는 공들이 날아다니는 걸 보니, 아무래도 주전들이 연습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가볼까, 하다가 말았다. 예전보다는 의식이 훨씬 또렷했지만, 또 헬리 앞에서 잠옷 바지 차림으로 나타나긴 싫었기 때문이다. 앞으론 잘 때 옷도 신경 써서 입어야 하나? 그게 뭐람.

‘난 도대체 여길 또 왜 온 거야……. 뭘 보려고?’

보통은 뭔가를 목격하지 않던가. 고개를 돌리던 수하의 눈에 성큼성큼 걸어오는 잿빛 머리카락의 키가 아주 큰 남자가 보였다.

‘어, 쟤가 여길 왜 와?’

그제인가, 대낮에 광장에서 이안이 선샤인시티스쿨 애와 붙었을 때 헬리와 함께 뜯어말리던 선샤인시티스쿨 남학생 아닌가.

헬리와 아는 사이인 것 같던데? 그때 이름이 뭐라고 했지? 싸움이 나나, 싶어 긴장만 했던 기억에 이름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표정이 팍 굳어서, 딱히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설마 또 싸우는 거야?’

깜짝 놀란 수하가 그 덩치 큰 남학생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그때, 그가 가까이 다가온 안개를 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건 또 뭐야?”

안개 속으로 쑥 들어온 강인한 팔이 수하의 멱살을 움켜쥐고 끄집어냈다.

안개화 될 때마다 멍하던 머리가 흐트러진 호흡 때문에 다시 확 맑아졌다.

갑자기 멱살이 잡힌 수하는 잡은 손을 붙들었다. 눈이 마주친다. 밝은 갈색 눈에 살기가 가득했다.

‘죽을지도 몰라.’

아니, 진짜 죽겠다. 당장 그녀의 목뼈가 부러질지도 모르는 악력이다.

수하는 컥컥대면서도, 다부지게 마음을 먹었다.

“이거…….”

놔!

쾅, 하는 굉음과 함께 거대한 남자가 뒤로 휙 밀려 나갔다. 아니, 더 밀쳐낼 수 있었는데 쟤가 딱 저만큼만 밀린 거다.

수하는 숨을 골라가며 씩씩거렸다. 물러나고 싶다 해서 물러날 수 있는 게 아니다. 저 남자애도 가만 안 있을 거란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수하는 밀려난 남자애가 그녀를 향해 한 걸음 움직이자마자 주먹을 꽉 틀어쥐었다.

어떻게 사흘 연속으로 꿈자리가 이렇게 사나울 수가 있어!

16552035192952.jpg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