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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전학생은 평범하고 싶다 (5) (5/81)


5. 전학생은 평범하고 싶다 (5)
2022.02.08.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몹시 지루했다. 수하는 입술을 모으고 다리를 괜히 흔들었다. 얌전히 앉아 있는 것도 사실 힘든 일이다.

‘솔론이나 지노한테 몰래 같이 나가자고 해볼까? 걔들이라면 분명히 좋다고 할 텐데.’

슬쩍 빠져나가는 데는 다들 일가견이 있고, 어쨌든 호위를 둘씩이나 붙여서 가는 거니까 괜찮지 않을까?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곁에서 조용히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는 헬리를 힐끔거렸다.

‘사실은 헬리랑 나가는 게 제일 재미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절대 같이 나가주지 않겠지!

안 됩니다.

저 봐. 저럴 줄 알았다. 수하는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말하는 헬리를 뾰로통하게 쳐다보며 물었다.

경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 보고도 알 수 있어서 참 좋겠다?

공주님이 매일 몰래 나가서 여기저기 쏘다니실 생각만 안 하시면 될…….

중얼거리던 그가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곤 수하를 당황하며 바라보았다.

그런 거 아닙니다.

헬리는 당황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의자가 책상에 부딪쳤는지, 가지런하게 쌓아뒀던 서류며 책들이 후드득 쏟아졌지만 그는 그런 건 눈에 보이지도 않는지 서둘러 수하에게로 다가왔다.

저는 공주님 생각을 함부로 읽지 않습니다. 절대 그러지 않습니다.

생각, 감정을 읽어내는 능력을 가진 이는 새파랗게 질려 고개를 흔들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수하에게는 그런 무뢰한 취급을 받는 게 죽기보다 싫다는 듯, 몸을 낮춰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절박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공주님 표정을 보고 추측하는 것뿐이지, 공주님 생각을 읽는 무례한 짓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응, 알아.

얼마나 절박하게 말하는지, 되려 놀란 수하가 눈을 커다랗게 뜨고 고개를 얼른 끄덕였다.

절대 그러지 않으려고 항상 노력한다는 거, 알고 있어.

그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래도 불안한 눈치인 헬리의 손을 꼭 잡고 열심히 고개를 끄덕여줬다.

진짜 알아. 믿어. 애쓰는 거 알아.

그는 언제나 그녀의 곁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다. 더 노력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경지에 오른 게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헬리는 수하의 머릿속을 함부로 읽지 않는다. 그래서 수하도 그를 경계하거나 꺼릴 이유가 없었다.

그걸 아직도 걱정하고 있었구나. 나는 다 알고 있는데.

그녀가 웃자 헬리도 그제야 간신히 웃으며,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

익숙한 알람 소리와 함께 익숙한 기숙사 천장이 보인다. 수하는 눈을 부릅뜨고 천장을 쳐다보았다.

“미친…….”

꿈 내용을 생각해보니 안개로 다시 변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쁘진 않았다.

“미친!”

“……야, 너 베개 또 망가뜨리면 안 된다…….”

옆에서 알렉스의 졸음에 겨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수하는 베개를 꼭 껴안고 발버둥을 쳤다. 미쳤나 봐! 아무리 헬리가 어젯밤에 울던 걸 달래주고 기숙사까지 잘 데려다줬기로서니, 또 ‘공주님’이라고 부르는 꿈을 꾸다니!

‘꿈이 뭐 그렇게 구체적이야……?’

꼭 저번 꿈과 이어지는 것 같잖아. 수하는 끙끙대며 베개를 끌어안았다.

‘지금 이런 꿈을 꿀 때가 아니라 안개가 되어 돌아다니는 문제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니까?’

스스로에게 다그쳐봐도 자꾸만 눈앞에서 헬리가 손등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춰주는 장면이 아른거린다.

미쳤어! 수하는 결국 또 이불을 두르고 침대 위에서 데구르르 굴러버렸다.

“아…… 맞다.”

일어나면 헬리가 연락하라고 했지. 수하는 꾸물꾸물 침대 위를 기어서 간신히 휴대폰을 잡았다. 그러곤 잡생각을 애써 털어내고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

그 시각, 헬리는 물끄러미 이틀 연속으로 생긴 하급 뱀파이어 시체 두 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소지품에서도 딱히 건질 게 없어.”

머리를 대충 묶은 자카가 장갑을 낀 손으로 뱀파이어의 지갑을 툭 던졌다. 피에 대한 갈망으로 인간을 사냥하려다 제지당하자 겁도 없이 그들에게 덤빈 놈들이다.

바닥에 주저앉은 자카는 심각한 얼굴로 서 있는 헬리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하긴.”

헬리는 이안과 함께 서 있던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소년을 쳐다보았다. 그는 아까부터 부루퉁한 표정으로 구석에 서 있었는데, 헬리와 자카의 시선이 닿자마자 바로 불퉁하게 말했다.

“뭐.”

“……저 형 아직까지도 삐쳤다.”

자카가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서 소지품 등을 한데 모으기 시작했다.

“안 삐쳤어.”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소년이 이를 드러내며 중얼거렸다. 살짝 빠져나온 덧니가 드러났다가 사라졌다.

“그럼 하면 되겠네.”

헬리는 간단하게 시체를 가리켰다. 부드럽게 웃는 형을 한 번 보는 그를 옆에 서 있던 이안이 한 팔로 휙 껴안고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으이그, 괜히 부끄러워가지고. 우리 지노 삐쳤어요?”

“좀 놔봐. 아, 내 머리!”

어젯밤, 수하 앞에서 살아 있는 라이터로 분류된 지노가 대충 손짓을 하자 시신에서 불길이 피어올랐다. 이제 리버필드 시에 잠입하여 인간들을 해치려던 뱀파이어들은 흔적도 없이 재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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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대단히 빠르게 시신을 태우는 불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꼭 저렇게 붙잡혀서 죽어도 상관없는 놈들만 보내는 것 같단 말이야.”

이안의 손을 머리카락에서 떼어낸 지노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왜 자꾸 보내는 거지? 피가 필요하면 굳이 리버필드까지 올 필요는 없잖아.”

“뭔가 찾는 게 있든가. 아니면 도발을 하는 것이든가.”

자카가 손을 꼽은 뒤 어깨를 으쓱거렸다.

“둘 중 하나겠지, 뭐.”

“누굴 도발하느냐가 문제지. 우리냐, 아니면…….”

이안은 어제 오후에 시비가 붙었던 선샤인시티스쿨 주전들을 떠올렸다.

“저쪽 늑대들이냐.”

“아, 늑대들이면 우리가 굳이 끼어들지 않아도 좋을 것 같은데.”

딱히 선샤인시티스쿨 쪽과 사이가 좋지 않은 건 모두가 똑같아서, 이안과 어깨동무를 한 지노가 중얼거렸다.

“아니, 그래도 끼어들어야 해. 자꾸만 하급 뱀파이어들이 출몰해서 일을 벌이는 게 우리 쪽이라고 생각하면 그건 그거대로 골치 아프니까.”

헬리가 중얼거리자 자카가 맞는 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걔네는 하급 뱀파이어랑 우리랑 다르다는 것도 모르잖아.”

하급 뱀파이어들은 인간과 달리 바짝 말라서 불에 집어 삼켜졌다. 지노가 피워낸 불은 시신의 재까지 깨끗하게 태운 뒤 사라질 것이다.

불길을 가만히 보고 있던 형제들은 문득 헬리에게서 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헬리는 그새 새로 산 휴대폰을 꺼냈다.

“수하야?”

이제부터 공주님이라고 놀리는 대신 수하라고 똑바로 부르기로 한 이안의 물음에 헬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은 좀 잤대?”

어제 해변에서 수하와 마주친 자카와 이안, 지노는 굳이 말은 하지 않아도 수하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지 짐작하고 있었다.

“응. 그랬나 봐.”

“형은 좀 잤어?”

자카가 묻자 헬리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자고, 꿈까지 꾸었다.

굳이 잘 필요가 없는 뱀파이어지만, 머리와 심장이 동시에 터져나갈 것 같아서 괜히 눈을 붙였다. 그러곤 또 심장이 터져나갈 것 같은 꿈을 꿨다.

“……이상해.”

헬리의 중얼거림에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상한 거 맞다니까. 꿈에서나 봤던 애가 갑자기 튀어나왔지, 하급 뱀파이어들이 뜬금없이 자꾸 들어오지. 이거 이상해.”

이렇게 공교롭게 모든 게 맞아떨어질 수가 있나?

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 꿈에서나 보던 여자애가 갑자기 수하라는 이름을 달고 나타났다. 그녀가 범상치 않은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걸 인지한 장소조차 뱀파이어가 습격하던 곳이고, 그 와중에 하급 뱀파이어가 속속 나타나서 리버필드 시를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 이게 우연이라고?

우연일 리가 없지. 어떤 힘이 이곳에 자꾸만 모이고 있는데, 원인을 모르겠다. 헬리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갔다.

“근데 수하 걔는 진짜 꿈에서 본 거랑 똑같더라. 좀 기죽어 보이긴 했지만.”

자카가 고개를 들고 형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렇지?”

“그래서 더 이상해. 걔는 우리를 모르는데, 우리는 걔를 알잖아. 우리 일곱 명이 다 아는 거잖아. 너무 이상하지 않아?”

냉철한 자카의 지적에 헬리는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잘 잤고, 안개가 되어 돌아다니는 꿈은 꾸지 않았으며, 챙겨줘서 고맙다는 수하의 메시지를 한 번 더 읽었다.

“……아무래도 가봐야겠어.”

“어딜, 수하한테?”

“수하도 그렇고. 우리가 원래 있던 곳으로.”

순식간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

드셀리스 아카데미는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교육기관이라 다니는 사람도 많았지만, 어쨌든 어디든 유명인사가 있기 마련이다.

안 그래도 어제 ‘그’ 헬리가 직접 수업 끝나는 시간에 맞춰 기다리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수하는 주변 분위기가 슬쩍 바뀐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 입은 옷 이상해?”

수하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알렉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지극히 평범한데.”

“그런데 왜 다 쳐다보는 것 같지……?”

“어제 헬리가 너 찾아왔잖아.”

“그건…….”

“그래, 네가 헬리랑 부딪쳐서 휴대폰 부쉈다며.”

어제저녁, 굳은 얼굴로 돌아온 수하에게 어쩐 일이냐고 물었던 알렉스는 그렇게만 알고 있었다. 헬리가 휴대폰 문제로 잠깐 온 것뿐이고, 계산은 확실하게 끝날 거라고. 그러니까 그건 속상할 일이지, 지금 주변에서 쳐다보고 수군댈 일은 아니라고 알렉스는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애들은 그걸 모르니까 널 보고 ‘헬리가 쟤를 찾아왔대!’라고 하는 거지. ……괜찮아?”

수하는 뒤늦게 고개를 들었다.

“응? 뭐가?”

“헬리 걔 휴대폰도 엄청 비싼 거 쓸 거 아냐. 완전 최신으로.”

“……어쩔 수 없지, 뭐…….”

헬리는 갚을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그냥 넘어가기엔 수하의 양심이 콕콕 찔렸다.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몸으로 때운다고? 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알렉스가 입을 딱 벌리고 수하를 붙잡았다.

“헬리가 너 괴롭혀? 휴대폰 바로 새 거 안 사주면 가만 안 두겠대? 아니, 걔가 그럴 사람은 아니라고 들었는데……? 나 돈 있어. 나도 빌려줄게!”

“그건 고마워. 그런데 그런 건 아니야.”

수하는 하하 웃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뭔데?”

“내가 어제 말을 안 한 게 하나 있는데…….”

“어. 헬리한테서 무슨 향 나는지 말 안 해줬어!”

“아니, 그거 말고…….”

“중요하단 말야! 나중에 휴대폰 값 갚을 때 무슨 향수 쓰냐고 꼭 물어봐 줘! 같은 거 살 거란 말야! 중요해!”

중요하단 말만 두 번이니 진짜 중요한 거다.

“아, 그래, 그거 중요하지…….”

수하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운동화를 집어 들었다.

“가서 물어볼게.”

“가서? 어딜? 헬리한테?”

알렉스가 묻는 순간, 기숙사 휴게실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야, 지금 기숙사 입구에 헬리 왔대!”

알렉스는 운동화를 신는 수하를 반사적으로 쳐다보았다.

“너 설마, 몸으로 때운다는 게…….”

“……어…… 나이트볼 해보란다…….”

사실은 안개화 능력을 연습하는 거지만, 친구들에게는 그렇게 둘러대기로 했다. 어차피 연습도 나이트볼 경기장에서 하기로 했고.

“수하야, 나는 네가 무척 자랑스러워. 역시 내 친구. 멋지다. 네 운동신경은 너무 뛰어나서 절대 썩혀서는 안 돼. 하는 김에 주전들이랑도 친해져야 해. 알지? 무슨 말인지 알지? 그치?”

알렉스는 아주 침착하게 수하의 어깨를 붙잡고 눈을 반짝거리다 못해 번뜩였다.

“하하하하…….”

“그리고 꼭 나더러 구경하러 오라고 해야 하는 거다? 응? 아니다. 지금 내가 바래다줄게. 가자. 헬리가 기다린다. 얼른 가자!”

수하는 그대로 알렉스에게 질질 끌려갔다. 아, 저 멀리에서 헬리가 어제와 똑같은 표정으로 서 있다.

그러고 보니 어제도 공주님 운운하는 꿈을 꿨지. 볼 때마다 얼굴이 붉어지지만, 나쁘지 않았다.

“수하야.”

그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동시에 그녀의 걸음도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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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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