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전학생은 평범하고 싶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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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전학생은 평범하고 싶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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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전학생은 평범하고 싶다 (4)
2022.02.01.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수하는 순식간에 떨어졌다.
“어어?”
“어!”
그녀뿐만이 아니라 옹기종기 모여 있던 남자애들도 놀랐다.
안개가 자욱한 허공에 갑자기 나타난 수하는 그대로 헬리의 손을 잡고 휙 떨어졌다.
물론 헬리가 바로 간단히, 그리고 단단히 받아냈다. 그녀를 안는 탄탄한 팔과 훅 들어온 넓은 어깨의 촉감이 생생했다.
헬리가 입고 있는 셔츠와 카디건의 감촉이 그녀를 휘감았다. 부드럽고 좋은 냄새가 난다.
“괜찮아?”
수하는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당황한 눈으로 둘러보았다.
그녀는 분명히 기숙사에서 자고 있었다. 분명히 그랬는데, 얼굴에는 습한 바닷바람이 부딪쳐오고 머리카락이 요란하게 나부꼈다.
그녀는 리버필드 시 외곽의 해변에 있었다.
“어…….”
“수하야?”
그녀를 아직까지도 꼭 안고 있는 헬리가 하얗게 질린 수하를 불렀다.
“어, 어? 어?”
정신을 차리고 보니 꿈에서 봤던 헬리가 그녀를 안고 있다.
안았다고? 화들짝 놀란 수하가 어쩔 줄을 모르고 바둥댔지만 그는 그녀를 더 힘주어 고정하며 일행에게서 떨어져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냐, 괜찮아. 가만히 있어. 괜찮아. 움직이면 더 위험해.”
헬리는 할 말은 많지만 재미있으니까 일단 하지 않겠다는 표정인 이안에게 눈짓을 해 보이며 모래사장을 걷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수하가 춥겠다. 그는 한팔로 수하를 안은 채 걸치고 있던 카디건을 벗기 시작했다. 그녀가 입고 있던 노란색 파자마 바지가 보인다. 귀엽다.
“나 붙잡아.”
“내, 내려줘.”
“맨발이잖아. 안 돼.”
수하는 잘 때 차림 그대로였다. 혼란스러운 눈이 주변을 자꾸만 살피고, 어쩔 줄을 몰라서 완전히 몸이 굳어버렸다.
어떻게 기숙사에서 잠들어놓고 해변에서 깨어난 거지? 꿈에서 이곳으로 왔는데, 그럼 꿈이 아니라 현실인가? 몽유병에 걸린 거야?
“나, 나는 왜……,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어…….”
“그렇구나. 기억은 나?”
“꿈을……, 내가 진짜 꿈을 꾸는 줄 알았거든?”
그때쯤 카디건을 다 벗은 헬리는 수하의 어깨에 그것을 걸치고 그녀를 고쳐 안았다.
수하는 저 멀리 아래에서 그녀를 스쳐 강처럼 흘러가는 모래사장을 바라보았다.
“응.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알아?”
이게 뭔지 안다고? 이게 어떻게 된 건지 안다고?
수하는 여전히 충격에 빠진 눈으로 헬리를 쳐다보았다. 그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아.”
“……몽유병에 대해 잘 알아……?”
순식간에 수하가 조그마한 목소리로 묻자 헬리는 우뚝 서더니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몽유병이라니, 수하야. 나 똑바로 봐.”
왜 그러는 건가. 머릿속을 정리를 해보려고 해도 정리가 안 되는 수하는 헬리를 간신히 바라보았다.
“몽유병이 아니야.”
그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아주 가까이에서 그녀를 보며 분명하게 아니라고 말했다. 어두운 밤에도 오묘한 눈 색깔이 선명하게 보일 만큼, 그렇게 가까웠다.
“몽유병이었으면 맨발로 다니다가 다쳤을 거고, 애초에 사감 선생님한테 걸려서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야. 수하야, 어디 아프거나 잘못된 게 아니야.”
정말 수하의 발은 아주 깨끗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어딘가를 헤매는 꿈을 꿔 왔으니, 정말 몽유병이었다면 부모님이 알아차리셨겠지. 그럼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여기까지 온 게 꿈인 줄 알았구나. 나는 안개 속에 네가 있는 걸 봤어.”
“안개?”
“응, 안개.”
헬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카디건을 더 끌어 올려 수하의 머리를 덮어버렸다.
혹시나 보는 눈이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안을 비롯한 그의 형제들이 저기 있는 시체를 둘러싸고 있는 것만 봐도 이곳은 인적이 드문 곳이라는 뜻이지만, 수하가 많이 불안해하고 있으니까.
“일단 자리를 옮기는 게 좋겠어. 여긴 추워.”
*
수하는 눈이 빨개진 채 훌쩍거리며 헬리가 주는 커다란 컵을 받았다.
“마셔. 따뜻한 초콜릿이야.”
단 걸 좋아하는 막내들 때문에 수하에게 줄 게 있어서 다행이다.
헬리는 수하의 어깨에 두른 담요를 더 잘 덮어주며 방 입구 쪽을 쳐다보았다.
쏙 나왔던 머리 세 개가 얼른 사라졌다. 나머지 셋은 그 뒤에 있겠지. 특히 이안이 그 뒤에서 여태까지 봤던 걸 말하고 있을 거다.
너네 다 들어가 있어.
조용히 수하가 들리지 않게 여섯에게만 말을 전하니 시온이 웃음 섞인 생각을 전했다.
나중에 얘기해줄 거지, 그치, 형?
아니. 들어가.
아, 왜! 남의 연애 얘기가 제일 재미있다는데!
그러니까 안 돼. 이안, 쟤 좀 끌고 가.
곧장 이안이 시온을 들쳐 매고 가는지 바깥에서 약간 소음이 들렸지만, 수하는 그런 것에 귀를 기울일 정신도 없었다.
“고마워…….”
그녀는 김이 올라오는 컵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나야말로. 그리고 갑자기 이런 곳에 데리고 와서 미안해. 당황스러웠을 텐데 달리 갈 곳이 없었어.”
수하는 아주 널찍하고 깔끔한 거실을 둘러보았다.
온통 하얗게 칠해진 이곳은 나이트볼 주전들이 사는 곳으로, 넓다 못해 광활한지라 덩치 큰 나이트볼 주전 일곱이 어슬렁거려도 전혀 답답하지 않을 것 같다.
헬리는 그녀를 남자애들이 사는 곳에 불쑥 데리고 온 게 못내 미안한 눈치였다.
“저기.”
수하가 조그만 목소리로 부르자 헬리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내가 안개였다고 했잖아.”
그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시선은 그녀에게 붙박여서 떠날 줄 모른다.
수하는 조금 더 용기를 얻었다.
“그런데 내가 안개인 걸 어떻게 알았어?”
사람이 안개가 된다는 건 말이 안 되지만, 여태까지 꾸었던 꿈이 사실은 그녀가 안개인 채로 돌아다니면서 보았던 실제라면 그건 좀 말이 되는 것 같다.
수하는 남들에겐 절대 묻지 못할 말을 조심스럽게 헬리에게 물었다.
“……난 알아.”
잠깐 고민하더니 툭 던지는 말이 나긋나긋했다.
“보면 알고, 느낄 수도 있었고.”
“감이야?”
“그 비슷하지.”
“그런데 왜 다른 사람들은…….”
수하는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경계에서 보고 들었던 것을 열심히 떠올렸다.
“왜 아무도 날 알아보지 못했지?”
그녀의 어깨가 더 움츠러들고, 눈썹이 서럽게 모였다.
스스로가 평범한 걸 완전히 넘어섰다는 걸 아는 순간, 불안하고 무섭다. 수하는 도대체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몰라서 더 두려웠다.
“보통 사람들은 지나가는 안개에는 관심이 없지.”
“보통 사람이 어떻게 안개가 될 수 있어?”
“보통이 아니니까.”
헬리는 약간 웃었다. 그건 농담을 하는 게 아니라 그녀에게 다시 한번 확신을 주는 미소였다.
‘너는 특별해.’
하지만 수하는 아직까지도 믿기가 힘들었다. 잠이 덜 깬 것 같고, 얼떨떨하기만 했다.
“……헬리 너도 이런 거 할 줄 알아? 막 안개로 바뀌고…….”
조심스러운 질문에 헬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능력은 각자 다 달라. 난 안개로 바뀔 수는 없어.
“어……!”
갑자기 머릿속에서 들리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수하의 눈이 커졌다. 하마터면 들고 있던 머그를 놓칠 뻔했다.
눈앞에서 헬리는 입을 다문 채로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머그를 대신 잡아주었다.
놀랐구나. 미안해. 하지만 나는 안개로 변하는 사람은 처음 봐. 대단한 능력이야.
어쩌면, 어쩌면 말이다. 처음으로 그녀가 혼자서 이상한 사람이 아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가 아니었던 거다.
일그러졌던 눈썹이 결국 완전히 모이고, 빨갛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는 순간, 헬리는 천천히 수하의 손에서 머그를 뺀 뒤 조심스럽게 어깨를 토닥여주기 시작했다.
“나, 나는 나 혼자 이상한 줄 알고……!”
“아니야, 이상한 게 아니야. 그렇게 따지면 이 집에 사는 애들 다 이상해.”
헬리는 수하가 엉엉 울어도 당황하지 않고 조곤조곤 말하며 달랬다.
“나도 신체 능력부터 보통 사람이랑 다르니까 이상한 거고, 말을 하지 않아도 생각만으로 소통하고 읽어낼 수 있으니까 이상한 거고. 어제 본 이안 알지? 걔는 차도 들어 올려.”
헬리를 쳐다보는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져 굴러 내렸다.
“차……?”
“응. 버스 같은 거.”
“나, 나는 트럭 밀 줄 알아.”
히끅, 히끅, 수하는 딸꾹질을 하며 솔직하게 고백했다.
“근데 트럭은 들어?”
“아니……. 그건 좀 노력을 해봐야 하겠는데…….”
“그럼 이안이 더 이상한 거네. 걘 아무렇지도 않게 버스도 들고 트럭도 들거든.”
헬리는 웃으면서도,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주륵주륵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냈다.
“살아 숨 쉬는 라이터도 있어.”
아, 라이터 아니라고!
당장 형제 중 하나가 그에게 짜증을 내며 항의하는 게 읽혔지만, 헬리는 싹 무시했다.
“걔가 손만 대면 바로 불이 확 올라와.”
손 안 대도 할 수 있거든!
“그것도 이상하지?”
다정한 말에 수하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하긴 만난 지 얼마 안 되는 사람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내가 제일 이상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조용히 티슈 상자를 내밀었다.
“어쨌든, 함께 고민할 수는 있어.”
혼자 이상한 게 아니라 함께.
그 말을 듣자마자 수하의 울음소리가 다시 높아졌지만 헬리는 당황하지 않고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감정까지 읽어내는 능력이란 이런 때 도움이 된다.
켜켜이 쌓인 외로움과 슬픔, 두려움과 상처가 고스란히 느껴졌기에 그는 묵묵히 그녀의 곁에 있었다.
‘혼자 참기만 했구나.’
안쓰럽다. 그에게는 형제들이라도 있었지만, 아무도 없었던 수하는 여태까지 자신이 비정상인 줄 알고 살아왔으니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는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았다. 해가 뜨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다행이다.
*
겨우 울음을 그친 수하는 헬리가 내미는 물을 받아들며 코맹맹이 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천만에.”
물을 꼴깍꼴깍 마시면서 힐끔힐끔 보는 시선에 그가 웃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봐.”
그 말에 수하가 살짝 입을 벌렸다.
“부순 휴대폰 가격은 빼고.”
순식간에 그녀의 눈이 동그래지자 헬리는 웃음을 깨물었다.
“어떻게 알았어? 그것도 능력이야?”
“미안해. 평소에는 남의 생각을 함부로 읽는 편이 아닌데, 지금 내가 너한테 너무 집중해서 저절로 읽혔어. 미안해.”
헬리는 몹시 미안하다는 얼굴로 여러 번 사과했다.
그녀에게 ‘너무’ 집중했다니. 수하는 안 그래도 그의 앞에서 엉망으로 울어서 민망했던 참에 그런 말까지 들으니 얼굴이 빨개지고 말았다.
“앞으로는 절대 안 그럴게. 하지만 휴대폰은 정말 괜찮아.”
“왜? 그거 말고 다른 걸로 받아낼 거니까?”
“응.”
헬리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부정도 안 하니……?”
“그건 진심이니까. 또 궁금한 거 있어?”
“……아까 왜 해변에 있었던 거야?”
그리고 왜 수하는 해변으로 가게 된 걸까? 무언가가 그녀를 불렀던 걸까?
꿈이었다는 게 사실은 안개로 변해 돌아다니며 본 현실이니, 수하는 점점 궁금해지는 게 많았다. 동시에 알고 싶지 않은 것도 많아졌다.
“아, 다 봤겠네.”
헬리는 소파 팔걸이를 톡톡 두드렸다.
“널 공격했던 뱀파이어와 같은 부류가 또 나타나서 그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어. 안 그래도 어제 네가 습격당했으니 한번 돌아봤는데, 있더라고.”
그럼 나이트볼 주전 애들이 보고 있던 건 설마 그 뱀파이어의 시체인가?
수하가 열심히 생각하는데 헬리는 서둘러 이 화제를 넘겼다. 아무래도 놀란 수하에겐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건 네가 신경 쓰지 않도록 할게. 걱정하지 말고.”
잠시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맴돌았다. 수하는 문득 시계를 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 그런데 나 기숙사로 돌아가야 하는데……?”
“안개로 다시 변할 수 있겠어?”
그녀는 잠시 눈을 깜빡거렸다. 안개로 변하라고? 어떻게 변하는데?
“……다시 자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묻자 헬리는 대답 대신 수하를 빤히 바라보았다.
“……응, 사실 자신 없어……. 꿈이라서 내 마음대로 안 된단 말이야.”
“꿈이 아닌 건 이제 알았으니까 지금부터 연습하면 되겠네.”
“연습하라고?”
“응. 나랑.”
분명히 어제 오후에는 헬리와 다시는 엮이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잘랐는데 말이다.
수하는 빙긋 웃는 헬리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세상일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그리고 때로는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쪽이 더 기분 좋을 수도 있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