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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전학생은 평범하고 싶다 (3) (3/81)


3. 전학생은 평범하고 싶다 (3)
2022.01.25.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수하는 순식간에 얼굴이 굳은 헬리가 낯설었다.

낯설 수밖에 없었다. 어제 처음 본 사람이니까.

‘귀신을 보냐’라는 질문은 수하에겐 아주 예민한 문제였다.

그녀의 눈에는 실제로 분명하게 보이는 존재지만, 남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니 수하만 이상한 사람이 되기 쉬웠다.

여태까지는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며 봐도 못 본 척, 무심하게 지나갔다. 여태까지 ‘그런 존재’를 보는 사람은 수하 한 명뿐이었으니까.

“만나서……, 다치진 않았어?”

하지만 이제 한 사람이 더 늘어났다. 어제 처음 봤는데도 너무나 걱정 가득한 눈으로 불안하게 묻는 사람.

수하는 이해할 수가 없어서 헬리를 쳐다보았다.

“괜찮아. 아무 일도 없었는걸.”

헬리는 대낮에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수하를 바라보다 마른세수를 했다.

“……그래. ……아무 일 없었다니 정말 다행이다.”

그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고, 그녀는 안도했다.

뱀파이어였다니. 더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건 ‘평범’하지 않다.

“……이미 알겠지만, 리버필드에는 뱀파이어가 있어.”

헬리는 중얼거리다 말고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그의 시선은 더 이상 수하를 보고 있지 않았다.

“뱀파이어가 있다면, 뱀파이어와 상극인 존재들도 당연히 있고.”

“뭐, 설마 늑대인간?”

헬리는 수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웃었다.

“정답이야.”

저게 지금 농담인가, 진담인가. 수하는 헷갈렸다.

“미안해. 잠시만 실례할게.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줄래?”

아주 정중하게 양해를 구한 헬리는 긴 다리를 성큼성큼 내디뎌서 걸어가더니, 느닷없이 남학생 셋이 모여 있는 곳에 끼어들었다.

“왜 그래, 이안?”

헬리가 누군가를 노려보고 있는 다부진 체격의 이안을 감싸며 막았다.

키가 약간 작은 이안은 자신보다 훨씬 커다랗고, 약간 긴 머리를 뒤로 묶은 남자와 서로 노려보며 팽팽하게 긴장감을 형성하고 있었다.

수하의 눈이 커졌다.

‘저거 선샤인시티스쿨 교복인데? 이안이라면 우리 학교 애고, 쟤가 지금 선샤인시티스쿨이랑 싸우는 거야?’

본래 나이트볼 리그에서도 팽팽한 라이벌인 두 학교라, 리버필드 시 광장에서 주전들끼리 마주치면 분위기가 상당히 험악하다는 소리는 수하도 얼핏 들었다.

아니나 달라, 헬리가 이안을 제지하는 것과 똑같이, 선샤인시티스쿨 교복을 입은 키가 어마어마하게 큰 남자애도 잿빛 머리카락의 같은 교복을 입은 남자애가 제지하고 있었다.

“헬리.”

잿빛 머리카락 남자가 헬리에게 일단 아는 척 겸 인사는 했다.

“칸.”

헬리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우호적인 분위기는 아니다. 칸은 헬리에게서 금빛 시선을 돌려 그가 제지하고 있던 밝은 머리카락의 남자애에게 조용히 말했다.

“나자크, 안 돼. 지금은 대낮이고 보는 눈도 너무 많아.”

하지만 나자크는 굳이 칸의 말을 듣고 싶은 표정이 아니었다.

“그래, 대낮에 보이지 말아야 할 놈들이 왜 굳이 기어 나와?”

“그렇게 말하는 너는 뭐 밤에는 처박혀 있냐?”

곧장 받아치는 이안의 표정을 보아하니 신경전을 벌인 게 제법 된 모양이다.

헬리는 조용히 이안을 쳐다보았다.

그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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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만 들을 수 있는 헬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칸 역시 나자크를 꾹 누르며 다시 한번 말했다.

“나자크, 안 돼.”

이미 지나가던 행인들마저 여기에서 패싸움이라도 벌어지나 싶어 웅성대며 이쪽을 보고 있던 참이다.

칸은 사람들과, 헬리와 같이 왔던 여자애가 놀란 눈을 하고 이쪽을 보는 것을 살피며 나자크를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지금은 아니야. 가자.”

나자크는 목에 힘줄을 세우고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이안을 똑같이 맞받아주다가 결국 칸에게 질질 끌려가다시피 했다.

이안 역시 헬리가 연신 토닥이며 당기는 손에 끌려 돌아서야 했다.

둘씩 붙어선 남학생들이 점점 거리를 벌리며 멀어졌다.

터지진 않았으나 사과도 없다. 결국 다음에 또 만나면 또 이런 식으로 붙을 거라는 뜻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되긴, 뻔하지. 지나가다가 마주치면 늘 똑같잖아. 우리나 저쪽이나 서로 냄새부터 끔찍한데, 쟤넨 우리한테 쓸데없이 피해망상까지 가지고 있다고.”

이안이 아주 낮은 목소리로 헬리에게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이안.”

헬리가 그의 이름을 불렀으나 이안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우리가 지들을 공격하기라도 했어? 하여튼 늑대들은 그냥 뱀파이어들이랑 우리랑 전혀 다르다는 걸 알지도 못…….”

그리고 이안의 호박색 눈과 수하의 까만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아.”

그 즉시 이안은 입을 딱 다물었으나, 이미 해버린 말은 회수할 수가 없었다.

“……형 혼자 있는 게 아니었구나…….”

하하하, 어색한 웃음을 흘리는 이안의 뒤에서 헬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 안녕하세요. 그럼 난 이만…….”

얼른 인사만 한 이안은 그대로 내뺐고, 삽시간에 다시 헬리와 수하, 그리고 어색함만이 남았다.

수하는 헬리가 한숨을 쉬려다 얼굴을 쓸어내리는 모습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았다.

“……그게, 그러니까 말이지…….”

한밤중에 끔찍한 습격자를 간단하게 처리하고도 표정 변화가 거의 없던 헬리가 눈에 띄게 당황하고 있었다.

방금 이안이 거칠게 뱉어내던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던 수하는, 희게 질린 헬리를 보곤 생각을 멈췄다.

“……아이스크림 무슨 맛 좋아해?”

이번에는 그녀가 물어보았다.

*

헬리는 무척 곤혹스러워하면서도 섣불리 거짓말을 하거나, 숨기려 들지는 않았다.

“들은 그대로야. 단지 더 늦게 이야기했으면 좋았을 뿐이지만.”

“그럼 진짜 선샤인시티스쿨 애들이 늑대라는 거야?”

아이스크림을 먹던 수하가 주변을 살피면서 나지막하게 물었다. 헬리는 눈을 질끈 감고 싶었다.

“나이트볼 주전 일곱만.”

“그럼 우리 학교 주전 일곱은, 음…….”

그 ‘우리 학교 주전 일곱’에 포함되는 헬리는 말없이 수하에게 종이냅킨만 밀어주었다.

그녀는 어젯밤에 보았던 차갑고, 이가 날카로워 보이던 습격자를 떠올렸다. 아니, 습격자가 아니라 뱀파이어지.

어제 수하가 겪은 건 선명한 현실이었다. 잊고 싶고 자꾸만 멀어지고 싶었지만 결국 그녀를 따라온 현실.

“……저기, 나는 혼란스러워서…….”

“이해해.”

헬리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다 믿어달라는 것도 아니고, 알아달라는 것도 아니야. 궁금한 게 있다면 얼마든지 대답할 수 있지만.”

이런 식으로 급작스럽게 정체에 대해 말하게 될 줄은 몰랐다.

헬리는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난감해 죽을 지경이었다. 수하는 지금 무척 경계하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뭔가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늘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생각해선 안 됐다.

“나는 다른 게 싫어.”

수하는 아이스크림 스푼으로 아이스크림을 괴롭히다가 고개를 숙였다.

“……너희는 어떤지 몰라도, 나는 아니었어. 평범해야지 돋보이지 않고, 최소한 조용히는 살아갈 수 있어.”

힘이 어마어마하게 세도 아닌 척, 운동신경이 예사롭지 않다 못해 사람 수준이 아니면 더더욱 아닌 척, 이상한 존재들이 손을 뻗는 걸 봐도 못 본 척 달아나고 입을 다물어야 했다.

“평범하지 않은 건 이상한 거야. 나는 그래.”

그녀는 그쯤에서 스푼을 내려놓았다. 어젯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이상하게 헬리가 하는 말은 아주 선명하게 들렸다. 그렇게 들릴 리가 없는데. 어떻게 된 거고, 선샤인시티스쿨 주전들은 왜……?

‘아니, 아니야.’

그만 궁금해하자. 수하는 고개를 흔들고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곤 헬리의 시선을 외면했다.

어쩌면 저 걱정 가득한 눈빛을 붙잡으면 새로운 세계가 열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하는 평범한 것이 좋다고, 좋아야만 한다고 배웠다. 그러니 붙잡지 않을 거다.

“그러니까 더 이상은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아. 네가 무슨 생각으로 나한테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더 알고 싶지 않아.”

수하는 입술을 말았다.

“계좌번호랑 내가 부순 휴대폰 가격 보내줘. 시간은 좀 걸릴지 몰라도 내가 꼭 변상할게.”

이쯤이면 되었을까. 헬리도 충분히 납득하고 더 이상 당황하지 않겠지? 아니, 잘 모르겠다. 수하는 엉거주춤 일어나서 후다닥 돌아섰다.

“수하야.”

쟤는 왜 사람 이름을 저렇게 부드럽고 자상하게 부르는 걸까.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평범하지 않다 해서 이상한 건 아니야.”

모든 게 완벽한 너는 그렇겠지. 심술궂은 대답이 툭 튀어나오려고 해서 수하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건 특별한 거야. 축복이고.”

축복까지야. 그렇게 거창할 필요가 있을까.

하긴 수하에게 거창한 저주이긴 했다. 괴상하고 있어선 안 될 것을 보는 시선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는 건 저주다.

수하에겐 체육 시간에 짝을 지어주고 조 모임에 기꺼이 끼워주고 함께 밥을 먹을 친구들이 너무나 필요했다. 그게 제일 중요했다.

그러니까 그러지 못하게 되는 건 축복이 아니라 저주다. 한 번도 축복인 적이 없었다.

“너는 특별해. 그래서 내가 널 찾은 거야.”

‘특별한 건 너잖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헬리는 반짝반짝 빛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빛을 본능적으로 알아보고 따르나 보다. 수하는 그 빛에 오히려 시커멓게 보일 뿐이다.

“……휴대폰 가격 꼭 알려줘.”

그녀는 그렇게만 말하고 빛으로부터 도망치듯 떠났다.

*

잠이 오지 않았다. 등에 닿는 시트 감촉이 약간 불편했다. 옆으로 누워 보면 이번에는 눌리는 팔과 다리가 불편하다.

뱀파이어, 늑대인간, 사실 지금은 들었으나 전혀 믿기지 않는 단어들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수하는 억지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너는 특별해.’

그런 현실감 없는 말은 그녀의 몫이 아니다. 다시 떠올려봐도 여전히 그녀의 어떤 부분도 반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뒤의 얘기는 다르다.

‘그래서 내가 널 찾은 거야.’

두 문장이 붙으면, 비로소 그녀가 특별하다는 게 꼭 사실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꾸 확인하고 곱씹느라 잠이 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 부드러운 목소리를, 화 한번 내지 않고 수하를 처음부터 끝까지 배려하는 목소리를 계속 되감아 재생하다 보면 기분이 몽글몽글해졌다.

초콜릿을 처음 맛본 아이처럼, 안 된다는 거 아는데 자꾸만 또 듣고 싶어졌다. 한 번만 더.

‘특별해서, 널 찾은 거야.’

바다를 끼고 있는 리버필드 시의 밤은 빛이 아주 강한 만큼 어둠도 짙다.

수하는 멍하니 그 짙은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헬리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그녀는 또다시 늘 꾸던 이상한 꿈을 꾼다. 길을 헤매고 다니다 밤에만 움직이는 종족을 마주한다.

이젠 그들이 뱀파이어라는 걸 안다. 그리고 그녀가 꿈속에서 헤매고 있는 이 거리는 늘 그랬듯이 실제로 존재하는 곳이리라.

‘특별해.’

실제로 존재하는 곳에서 실제로 밤사이에 일어나는 사건을 종종 꿈꾸는 건 이상한 게 아니라 특별한 걸까?

수하는 멍하니 그녀의 뒤로 흘러가는 밤거리를 그저 바라만 보았다.

이젠 이렇게 꿈속에서 헤매는 것도 익숙해서 가만히 있다 보면 깼다. 가끔 봐선 안 될 것을 보기 때문에 문제이긴 했지만.

‘오늘 볼 건 이상하거나 무섭지 않았으면 좋겠어.’

늘 바라는 건 그것뿐이었다.

마침내 빠르게 움직이고 있던 주변이 점점 느려졌다. 어둑한 해변에 사람 몇이 서 있었다.

‘또……?’

또 뱀파이어인가? 아니, 아니다. 키가 큰 인영이 서넛 모여 있었다.

그들이 보고 있는 모래사장에는 또 뭔가, 사람인지 뱀파이어인지 모를 것이 쓰러져 있었다. 마치 시신 같았다.

또 사람이 죽는 꿈인가. 좀 더 거리를 좁히자 아는 얼굴이 보였다.

‘아, 또.’

또 헬리다. 그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까만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고 있었다.

수하는 멍하니 그 애의 하얀 얼굴을 바라보았다.

“……또 죽었을지도 몰라.”

“이거 어쩌지?”

걱정 섞인 목소리들이 희미하게 웅얼거렸지만, 수하는 신경 쓰지 않고 헬리만 바라보았다. 그의 깎아놓은 듯한 옆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차피 꿈이니 훔쳐봐도 괜찮겠지.

‘정말로 너는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해?’

다시 한번만 말해줬으면 좋겠다. 괜히 또 듣고 싶었다.

“안개가 심하네.”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헬리는 빽빽한 안개를 찾는 듯, 고개를 돌리다가 수하를 보았다.

아니, 수하를 보는 게 아닐 거다. 이건 꿈이고, 꿈에서 그녀를 발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안개가 심한 게 아니야.”

그의 목소리가 아주 분명하게 들렸다. 낮에 들었듯 다정하고 평온한 목소리.

그의 깊은 눈이 정확하게 수하와 마주쳤다. 커다란 손이 뻗어 와서 그녀의 양손을 잡았다.

순식간에 수하는 꿈에서 꺼내졌다.

“내가 특별하다고 했잖아.”

그래서 찾았다.

그녀를 안개 속에서 꺼낸 헬리가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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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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