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 전학생은 평범하고 싶다 (1) (1/81)


1. 전학생은 평범하고 싶다 (1)
2022.01.16.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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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찾아왔다. 드셀리스 아카데미 데이 클래스를 다니는 학생들은 기숙사 규칙상 지금 이 시간에는 기숙사에 있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밤이다. 셀리스 아카데미가 자랑하는 스포츠, 나이트볼 연습을 하는 밤이란 말이다.

“가자, 수하야. 가야 해. 이건 가야 해.”

룸메이트인 알렉스는 이제 전학 온 지 갓 한 달이 된 수하를 붙잡고 이 학교에서 ‘나이트볼’이란 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눈을 부릅뜨고 설명했다.

“나이트볼은 밤에 하는 경기니까 연습도 밤에 하는데, 오늘 헬리가 온대! 걔 잘 안 나오니까 무조건 가서 봐야 해!”

사감 선생님이 무섭게 순찰을 돌고 계시겠지만, 선생님의 눈을 피해 빠져나가는 여학생들이 한둘이 아닐 거란다.

“잘생겼다고!”

나이트볼 주전들이 다 잘생겼다는 얘기는 전학 온 지 한 달밖에 안 된 수하도 아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대부분 학생이 데이 클래스를 다니는 것과는 달리, 주전들은 몽땅 다 나이트 클래스 소속이라 마주칠 일조차 드물다고 한다.

바꿔 말하자면 기숙사에서 탈주를 감안하지 않고서야 그들을 볼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헬리가 나이트볼을 하는 건 꼭 봐야 해. 수하 너도 후회 안 할걸?”

그래, 문제의 ‘헬리’가 나온단다. 말해봤자 입 아플 정도로 다 잘난 나이트볼 주전 일곱 명 중 주장이다. 노란색과 녹색이 섞인 오묘한 눈과 매끄러운 흑발에 뚜렷한 티존과 전체적으로 창백하고 조용한 미남이었다. 말이 별로 없지만 다정하고 미소를 지어주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었다.

그는 필요할 때를 제외하곤 나서지 않았지만 훤칠한 키와 단단한 체격, 그리고 대단한 존재감으로 팀을 리드했다. 눈길 한번 받으려고 가까이 가는 사람은 많았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예의를 차분하게 지키면서 선을 분명하게 긋는 성격인지 그 누구도 그 이상 선을 넘을 수는 없단다.

“그래, 그 왕자님…….”

귀족 같다나 뭐라나. 실제로 작위가 있는 거 아니냐는 루머까지 떠돌았다.

반 아이들이 설레는 얼굴로 헬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종합해볼 때, 수하가 생각하기에 헬리는 왕자님이었다. 비꼬는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친절하고 잘생기고 운동과 공부, 모두 만능이지만 범접할 수 없는 왕자님.

그 왕자님이 오랜만에 연습에 나오시니, 용감하게 창문을 넘고 담을 넘겠다는 룸메이트를 혼자 보내자니, 수하도 딱히 할 것도 없기에 같이 가는 데 동의했다.

알렉스야 기숙사에서 몰래 빠져나가는 데 이미 도가 텄다고 하고, 수하는 해보진 않았지만 몰래 나가는 거야 자신 있었다. 차가운 밤공기를 맞으면서 운동하는 걸 보는 것도 즐거울 거다.

“어……, 잠깐만.”

담장을 휙 넘어서 초조하게 숨어 있던 알렉스 일행과 다시 만난 수하가 멈칫거렸다. 뭘 안 가져왔나, 했더니 주머니가 비었다.

“나 폰 안 가져왔어. 먼저 가.”

“진짜? 나 먼저 가도 돼?”

“우리 체육수업 하는 데라며. 어딘지 알아. 헬리 나온다며. 빨리 가서 봐.”

“알았어……. 빨리 와야 해!”

“조심해서 와야 해!”

“걱정하지 마.”

수하는 손을 흔든 뒤, 그대로 냅다 창문을 타 넘어갔다. 2층에 바로 붙어 있는 옆 건물까지 가는 건 4초면 충분하다.

뒤에 남은 친구들은 그녀가 보여주는 엄청난 광경을 보며 종알거렸다.

“와, 쟤는 진짜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

“수하는 진짜……, 진짜 나이트볼이라도 해야 해. 운동을 뭐라도 해야 해. 바로 올림픽 나갈 수 있을 거야.”

뒤에서 룸메가 감탄하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수하는 착 붙어 있는 건물들 사이를 쉽게 뛰어넘었다. 몸놀림은 안정적이고, 표정에는 무서운 기색 하나 없었다.

열일곱 살, 수하는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운동신경이 뛰어날 뿐이었다.

그래. 아주 ‘조금’ 뛰어날 뿐이라 기숙사 담을 넘어 나가는 것도 사감 선생님이 상상도 못 할 루트로 나가서 야식을 사 오는 게 특기였다. 그러니 야밤의 외출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실제로 수하가 방으로 몰래 돌아갔다가 다시 나오기까지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보통 사람과 다른 속도와 날렵함으로 순식간에 기숙사 담장을 넘은 수하는 휴대폰을 쥐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니까……, 이쪽이지. 애들이랑 빨리 만나야지.’

후드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은 수하는 어깨를 움츠리고 좁은 보폭으로 종종 뛰어갔다.

친구들은 ‘그’ 헬리가 온다며 밤에도 거울을 들여다보고 옷을 골랐지만 그녀는 정말 별생각이 없었다.

‘으음, 나도 오늘 헬리인가 걔 얼굴을 보면 그냥 나온 걸 후회할지도 모르겠지만.’

물론 헬리를 비롯한 나이트볼 주전들은 드셀리스 아카데미 전체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 수하가 눈에 들어올 턱이 없다.

그래도 명물이라는데 보러 가야지.

큰길에서 샛길로 빠져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친구들한테 배운 지름길이 나온다. 그녀는 밝게 가로등이 켜졌으나, 사람들은 없고 상대적으로 좁은 길로 들어섰다.

재미있는 나이트볼을 볼 생각에 걸음이 경쾌했던 수하의 뒤로 검은 그림자 하나가 길게 늘어졌다.

‘내일 점심 뭐 먹지? 요즘 학교 식당 맛있던데……. 주말에 친구들이랑 나가서 놀아야지.’

그때, 가로등 사이사이 짙게 깔린 어둠 속에서 창백하고 하얀 손이 뻗어져 나왔다.

아주 빠른 속도였지만, 수하는 바로 피했다. 그녀는 운동신경이 ‘조금’ 뛰어난 편이니까.

‘뭐야, 이 사람?’

수하를 잡으려던 이는 처음 보는 남자였다. 나이는 40대쯤 되었을까. 창백한 얼굴이 유독 눈에 띄었다.

그 남자는 수하가 피했다는 것에 좀 놀란 것 같았다.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곧장 다시 위협적으로 손을 뻗어왔다. 낚아채기 위함인지, 아니면 때리기 위함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했다. 그녀는 또다시 피해야 했다.

“으아……!”

수하는 성공적으로 남자의 손을 피했다. 대단히 빠르다. 하지만 피해볼 만했다. 아주 짧은 찰나,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 변태는 뭐야! 앞서간 애들은 괜찮은 건가?’

그리고 하나 더.

‘……때려도 되는 거지?’

수하는 운동신경이 ‘조금’ 뛰어나다. 그리고 힘도 ‘조금’ 셌다. 웬만한 뒷골목은 눈 하나 깜짝 않고 다닐 수 있을 만큼 셀 뿐이다.

하지만 수하가 몰랐던 건, 상대가 보통 평범한 양아치가 아니라는 거였다.

“어……!”

일단 소중한 휴대폰은 지퍼 달린 주머니에 넣었지만, 그 와중에 그만 붙들리고 말았다.

수하는 자신을 움켜잡은 남자의 손목을 꽉 잡다가 차디찬 체온에 놀랐다.

그 남자는 그녀를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기분 나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너, 맞구나.”

뭐가 ‘맞다’는 건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섬뜩한 체온이 꼭 사람 같지가 않았다. 남자가 히죽 웃으며 드러낸 이가 아주 날카로워 보였다.

‘이런 얘기를 하고 이렇게 사람 같지 않은 거야 딱 하나지. 또 귀신이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학생인 수하에게는 남들에게 절대로 말 못 할 비밀이 딱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남들보다 ‘조금’ 더 센 힘이고, 또 하나는 바로 이거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인간과는 거리가 먼 존재들을 꿈으로 보았다. 대부분 그녀가 아는 거리를 헤매며 이런 귀신들을 보다가 깨어나는 걸로 끝났다.

어린애가 헛것을 보는데, 힘까지 세다는 건 부모님을 기겁하게 만들고 친구들이 멀어지게 할 뿐이란 걸 일찍부터 깨달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조용히 티 내지 않으면서 살아오는데 이골이 났다.

‘아니, 근데 왜 꿈도 아닌데 현실에서 귀신이 나타나지?’

문득 의아했지만,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어쨌든 꿈에서 본 귀신들은 못된 짓을 실컷 저지르고 다녔고, 지금 마주친 귀신 역시 그러하며, 일단 공격을 받고 있으니 방어부터 한 후에 생각할 일이다.

수하는 이를 꽉 물고 남자의 손목을 비틀어 떼어냈다. 그녀의 표정은 울듯이 일그러졌다.

‘기분 나빠! 불쾌해!’

늦은 밤 봉변을 당한 여자가 공포에 질린 모양이다. 그녀를 습격한 남자는 생각보다 강한 그녀의 악력은 무시하고 다시 한번 달려들었다. 아니, 달려들려고 했다.

“저리 가!”

빠악, 하고 딱딱한 게 세게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수하를 잡았던 손이 억지로 뿌리쳐지고, 그대로 복부를 세게 걷어차인 습격자는 그대로 길바닥에 처박혀 굴렀다. 수하는 씩씩대며 주먹을 꽉 쥐었다.

‘이런 놈은 이 주변 안전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쫓아내야지!’

수하는 이를 악물었다.

습격자는 믿을 수가 없다는 눈으로 주먹을 쥐고 가까이 오고 있는 수하를 바라보았다. 어찌나 거세게 맞았는지 일어날 수가 없다. 그는 인간이 아니고, 저쪽은 고작 아이일 뿐인데!

하지만 어마어마한 위압감이 느껴졌고, 방금 느낀 힘은 현실이었다.

습격자는 결국 얼굴을 무섭게 일그러뜨리면서 날카로운 이를 드러냈다. 순식간에 그 남자의 눈이 붉어지면서 눈 주위로 핏줄 같은 것이 섰다. 사람이 아니라는 게 확실하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귀신이 어딜 튀어나와?”

이 리버필드 시에도 나름의 새로운 귀신들이 있겠지. 차라리 더 잘됐다. 사람은 때리면 위법이지만, 귀신은 아니니까.

그녀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달려드는 습격자를 슬쩍 피한 뒤 퍽 소리가 나도록 주먹을 내질렀다.

“내 친구들은 어디 있어?”

열일곱 살 고등학생은 그저 앞서간 친구들이 걱정될 뿐이었다.

습격자는 그녀에게 맞아서 얼이 나갔지만, 수하에겐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놈은 친구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기필코 없애고야 말겠다. 뭐 별 거 있나? 그냥 물리적 수단을 동원하면 되는 거지.

“이……!”

그냥 내버려 뒀다간 이 골목에서 다른 학생들을 위협할 수도 있는 귀신을 깔끔하게 처리하도록 하자. 수하는 습격자가 충격을 받은 사이, 그대로 몰아붙이려고 했다.

“잠깐만.”

갑자기 끼어든 누군가가 그녀를 가로막았고, 수하는 유감스럽게도 그에게 그대로 주먹을 내지르게 됐다.

그녀의 주먹이 긴 팔에 가로막혔다.

얜 뭐야?

그녀는 그녀를 붙잡으려는 손을 걷어내고, 이번엔 아예 걷어찼다. 빡, 하고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어……? 뭐가 이상한데?’

새카만 눈이 마주쳤다.

“어……? 어어? 어?”

공교롭게도 끼어든 이는 수하가 아는 얼굴이다.

가로등 사이 어둑한 곳에서도 선명하게 보이는 훤칠한 얼굴. 드셀리스 아카데미의 모든 사람이 다 아는 바로 그 차분하고 잘생긴 얼굴!

‘네가 왜 여기 있어?’

너는 여기 있는 게 아니라 나이트볼 경기장에 있어야 하잖아! 친구들이 죄다 얘 보러 갔는데!

그녀보다 훨씬 큰 드셀리스 아카데미의 유명인사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수하가 때린 복부를 내려다보았다. 생각보다 힘이 강해서 놀란 모양이다.

동시에 몹시 미안해졌다.

어떡해, 완전 걷어찼는데!

“물러나. 이 이상은 위험……하니까.”

위험하다고 할 때 분명히 수하를 보며 말을 잠시 흐린 그 남자애, 헬리는 그녀를 살짝 밀어낸 뒤, 새카만 머리카락을 흩으며 습격자에게로 돌아섰다.

“하나도 안 위험한…….”

뻐억, 하는 굉음이 수하의 말허리를 잘라냈다. 어마어마한 소리와 함께 헬리가 습격자를 가로등 바깥으로 튕겨냈다. 그녀보다 힘이 센 게 분명했다.

그런데 쟤 운동하잖아? 저러다가 다치면 어쩌려고? 수하는 한 발 앞으로 내디뎠다.

물러나라니까. 위험해.

헬리는 소리도 지르지 않고 그저 한숨을 쉬듯, 부드럽게 수하에게 말할 뿐이었다. 이상하게도 그가 말하는 것이 바로 앞에서 조용히 말하는 것처럼 분명하게 들렸다.

‘쟤 지금 말한 거 맞아?’

수하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입술을 움직인 거 같지 않은데?

“크아악!”

겨우 정신을 차린 습격자가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게 보였으나, 그는 전혀 밀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압도했다. 속도가 너무 빨라서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쾅!

그들이 부딪치면서 나는 요란한 소리에 수하는 놀라서 움찔거리며 어깨를 움츠렸다. 어쩌면 저 헬리라는 애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저 정도 소리는 수하도 낼 수 없는 소리였다.

이 주변에서 누가 도와줄 사람은 없나? 이렇게 시끄러운데 왜 아무도 오지 않지?

이상하게도 이쪽 골목은 사람 하나 다니지 않았다. 마지막 소리를 끝으로, 골목은 아주 조용해졌다.

수하는 가로등 저편의 까만 어둠을 바라보았다. 털썩, 하고 묵직한 것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기다란 헬리가 가로등 아래로 걸어 나왔다.

그는 복잡한 얼굴로 서 있는 수하에게 물었다.

“괜찮아? 다친 곳은?”

또다시 아까 들었던 차분하고도 분명한 목소리가 그녀의 의식을 끌어왔다.

수하는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너는?”

“나는 괜찮아.”

그 애는 근사하고 차분한 얼굴만큼 말투도 차분하고 어른스러웠다.

“그, 아까 내가 잘못 때려서 미안해.”

수하는 진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사과했다.

완전히 배를 걷어찼는데, 괜찮을까? 의외로 그녀의 힘에 쭉 밀려나거나 주저앉진 않았지만 그래도 멍이 심하게 들었을 거다.

“진짜 미안해. 아팠지, 진짜 미안…….”

“아프진 않았어.”

“그게 어떻게 안 아파?”

어릴 때부터 힘이 남달랐던 수하다. 성인 남자도 눈 깜짝 않고 제압할 수 있는 힘이란 건 평범과는 ‘약간’ 거리가 멀다는 건 알고 있었다.

분명히 아팠을 텐데?

“어디 봐, 다치지 않았어?”

아까부터 수하에게서 시선 한 번 떼지 않고 뚫어져라 그녀를 보고 있던 헬리가 입고 있던 겉옷 지퍼를 내렸다.

“괜찮은데.”

그 말과 동시에 겉옷 주머니에서 불길한 소리가 났다. 부서진 기계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

“……아니구나.”

헬리는 덤덤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완전히 박살 난 휴대폰을 꺼냈고, 수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미안해……, 변상할게…….”

저게 얼마짜리야. 아니, 일단 생각하지 말자. 수하는 슬그머니 단단한 헬리의 몸 뒤쪽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한 거야?”

“뭘?”

그는 수하의 질문에 조금 당황한 듯 되물었다.

“저거 사람 아니잖아. 귀신이잖아.”

“사람이 아니긴 한데 귀신은 아니고…….”

귀신이 아니라고? 당황한 수하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렇다면 살아 있다는 거잖아!

“……뱀파이어라고 들어봤지?”

“뱀파이어? ‘그’ 뱀파이어?”

존재한다고는 하지만 거의 알려진 게 없는 소수종족 아닌가. 사람들은 그들에 대해 관심을 거의 기울이지 않았다.

아니, 그런데 그럼 여태까지 꿈에서 봤던 귀신들이 뱀파이어라는 거야? 설마. 그건 그렇다 치고, 살아 있는 뱀파이어를 저렇게 의식을 잃고 쓰러지게 했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뱀파이어라고?”

놀란 수하가 좀 더 목을 빼고 헬리의 뒤를 보려고 하자 그는 얼른 걸음을 옮겨 시선을 차단했다. 커다란 키와 단단한 체격에 시야가 다 가려져 버렸다.

“다 끝났어. 오늘은 신경 쓰지 마.”

그는 아주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네가 잘못한 건 없어. 그러니까, 이름이……?”

“수하…….”

“수하구나. 나는 헬리라고 불러줘.”

그는 마치 아주 중요한 것을 알았다는 듯 한 번 더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하야. 네가 잘못한 거 아냐. 넌 잘했어. 알겠지?”

혹시나 수하가 안 좋은 생각을 할까 봐 걱정하는 건지, 헬리는 하나하나 강조하며 그녀의 눈을 뚫어져라 보았다.

이상하게 그가 그렇다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노란빛과 녹빛이 오묘하게 떠도는 눈을 보니 불안하게 흔들리던 마음이 그의 단호하고도 부드러운 목소리와 눈빛을 따라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건 단순히 목소리와 눈빛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헬리에게는 어떤, 거스를 수 없는 분위기와 힘이 있었다.

“응?”

“……으, 응. 알아. 나 잘못한 거 없어.”

그리고 이런 험한 경우도 꿈에서 본 것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몇 번 겪어봤다.

수하는 헬리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조금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기숙사로 돌아가는 게 좋겠어. 통금시간 지나지 않았어?”

“그, 그러는 너는? 지금 그, 뭐냐, 연습인가, 그 시간 아냐?”

지도 연습 쨌으면서! 얼굴이 조금 빨개지고, 또 휴대폰 변상할 생각에 우울해진 수하의 표정을 잠시 살피던 헬리가 물었다.

“혹시 나이트볼 연습 구경 가던 길이었어?”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잠시 머뭇거리는 그녀를 보며, 대충 눈치챘다는 듯 헬리는 웃었다.

그가 웃는 순간 분위기가 또 확 바뀐다. 약간 창백한 얼굴이 빛도 없는 곳에서도 환하게 빛나는 것 같았다.

수하는 순식간에 너무나 창피해졌다.

“나도 좀 늦었는데, 오늘은 아무래도 안 되겠다. 가자. 기숙사까지 데려다줄게.”

“그렇지만…….”

“오늘 나이트볼 연습도 취소야. 다음 연습 때 와.”

아마 ‘다음’은 없겠지. 수하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다음 연습은 너무 머네. 내일모레니까. 다음 연습 말고 내일 봐.”

“내일? 아, 그래. 근데……, 휴대폰, 그거, 얼마짜리야?”

변상해줘야지. 정말 조심했는데 오랜만에 또 사고를 치고 말았다. 엄청 비쌀 텐데 엄마한테 어떻게 말하지?

“휴대폰? 그건 왜?”

헬리는 의아하다는 듯, 오히려 되물었다. 왜냐니!

“아니, 내가 부쉈잖아……. 변상해줘야지.”

속이 어마어마하게 쓰렸지만 양심상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문제였다.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들어본다는 듯 눈을 몇 번 깜빡이며 수하를 보던 헬리는 그러다가 그만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슬쩍 모로 기울였다.

‘쟤애는 지인짜……, 쟤는 진짜 아무한테나 저러면 안 돼.’

그녀에게만 지어주는 미소가 아니란 건 확실하게 알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 마음을 마구 뒤흔드는 미소다.

수하는 헬리를 말할 때마다 도저히 가까이 갈 수 없는 어떤 귀한 존재처럼 묘사하던 친구들이 백번 이해가 갔다.

“돈 말고 다른 방법으로 받아도 돼?”

“무슨 방법?”

일단 기숙사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헬리를 따라 무심코 걷던 수하가 고개를 들었다.

“……그건 내일 만나서 이야기하자. 아, 이상한 건 절대로 아니야. 뱀파이어랑 마주쳤으니까 걱정도 되고, 그래서 그래.”

헬리는 이상하게도 몹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걱정 안 해도 되는데?”

“응, 그건 봐서 알고 있지만……, 그래도. 둘이서 만나는 거 괜찮겠지?”

수하는 약간 붉어진 것 같은 헬리의 얼굴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저렇게 조심스럽게 말할 일이 뭐가 있어?

‘혹시 나이트볼 하라는 건가?’

아, 그녀의 뛰어난 운동신경을 보고 감탄한 건가 보다.

저건 스카우트 제의가 분명하다. 헬리가 그녀에게 특별한 관심 따위가 있을 리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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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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