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대마도사-465화 (완결) (465/485)

465화.  < 에필로그. >

1.

[용의 알이 이름 잃은 신의 힘을 흡수합니다.]

그 알림과 함께 미다스의 가슴에서 황금빛이 스멀스멀 흘러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쉼 없이 흘러나오던 빛은 삽시간에 미다스의 온몸으로 번졌고, 이내 몸 주변을 물들이더니 이내 연기처럼 스멀스멀 하늘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용이 부화합니다.]

그렇게 오르는 연기가 이내 용의 형태를, 이제껏 갓워즈에서 봐온 드래곤이 아니라 동양에서 본 뱀과 같은 기나긴 육체에 비늘을 가진 용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빛의 용이 하늘에 이르자, 갑자기 하늘에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꾸르릉!

그 순간 하늘에서 천둥 번개가 내리쳤다.

꾸르릉!

거듭해서.

마치 하늘에서 전쟁이 난 듯.

꽈르릉!

그러한 전쟁의 파편들이 번개라는 형태가 되어 대지를 가차 없이 할퀴었다.

비단 신의 무덤 위에서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갓워즈에 존재하는 모든 하늘이 어둠으로 뒤덮였다.

그리고 동시에 그 어둠 속에서 빛이, 용의 몸이 지지 않으려는 듯 빛을 내뿜었다.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하는 순간.

앞서 BJ대마도사가 보여주었던 메테오조차도 조금은 가소롭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여러분들은 지금 용이 이름 잃은 신을, 이 세상을 집어삼키고자 하는 최후의 존재를 먹어치우는 걸 보고 계십니다."

갓워즈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이야기, 그 이야기의 끝을 알리는 전투는 그랬다.

- 와, 끝내주네. 스케일이 뭐 이러냐?

- 진짜 이게 신들의 전쟁이지.

- 갓워즈 스케일 장난 아니구나.

보는 모든 이들의 감탄을 짜내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

- 정말 최고다.

보는 모두가 기꺼이 만족하고 환호와 박수를 보내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더 나아가 감동에 젖어 말문이 닫혀야 할 정도.

그러나 BJ대마도사의 시청자들의 말문은 닫히지 않았다.

- 여친 없는 솔로 외길 인생 살아온 어느 누가 분위기만 잘 잡았으면 더 끝내줬을 텐데.

- 맞아, 누가 이상한 뻘짓만 하지 않았도 지금 분위기 지금보다 최소 9배는 끝내줬을 텐데.

- 쯧쯧, 솔로가 솔로인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니까.

닫히기는커녕 시청자들 모두가 조금 전 BJ대마도사가 일으킨 촌극을 언급하면서 혀를 차고, 미다스를 나무랐다.

그러한 반응에 분위기를 잡기 위해 억지로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던 미다스가 결국 표정 연기를 포기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글쎄, 그건 실수라니까요? 너무 경황이 없었어요. 여러분들도 제 처지가 되어보십시오.”

왕!

“봐봐요, 럭키도 말하잖아요? 주인님 그럴 수 있다고요, 저는 다 이해한다고요.”

그러한 미다스의 항변은 당연한 말이지만 조금도 효과가 없었다.

- 와, 이제 와서 럭키님 파네.

- 내가 개소리 좀 해봐서 아는데, 지금 럭키가 응, 아니야, 개소리하지 마라고, 했음.

- 아니야, 내가 듣기로는 럭키가 주는 것도 제대로 못하는 솔로가 하는 말이라서 잘 안 들리는데? 라고 했음.

- 쯧쯧, 럭키님이 주인공이었으면 이런 일 없었을 텐데.

- 아무렴! 결국 마지막까지 정신 차린 것도 럭키님이었잖아! 럭키님이 시체 안 지키고 있었어 봐. 아마 BJ대마도사 로그아웃하고 바로 집에 가서 자고 난 후에야 상황 파악했을걸?

ㄴ 집에 가봤자 상황 알려줄 여자친구도 없으니까 아무것도 모르고 잤겠지.

ㄴ 그렇게 되어서 다시 최종 보스 레이드 하면 진짜 역대급 해프닝 나왔을 텐데 아쉽다.

오히려 악효과만 나오는 상황.

“골드야? 너도 이해하지?”

“예, 세상 모두가 주인님을 몰상식하고 파렴치하며 부도덕한 자라고 손가락질하더라도 저는 주인님을 믿습니다!”

“저도 믿습니다.”

이어진 골드와 실버의 긍정에는 채팅창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 골드야 말이 너무 심하다.

- BJ대마도사가 몰상식하고, 파렴치하고, 부도덕한 건 맞지만 너무 노골적이네.

- 그래도 주인님이 평생 솔로로 살아가시더라도, 라는 말을 빼줬잖아? 이 정도면 충분히 배려해준 거지.

갓워즈의 유일무이한 이야기의 끝이라고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분위기.

“에이, 진짜!”

그 분위기에 결국 미다스도 포기했다.

“그래요, 솔직히 말할게요. 그냥 정신 딴 데 팔았어요. 그래서 실수했어요. 아주 그냥 제대로 트롤링 했습니다.”

분위기 잡는 것을 포기하며 말했다.

“그리고 뭐 어때요? 이제 다 끝인데. 이제 조만간 이벤트 끝나고 보상 받으면 라이브 끝내고 나갈 겁니다. 그리고 이후에 방송 접고 소개팅 잡아서 여자 친구랑 알콩달콩 연애할 겁니다!”

- 또또 개소리한다. 마지막까지 개소리하네.

- 형, 지금까지 안 된 거면 앞으로도 안 되는 거야.

- 그러지 말고 그냥 계속 라이브 방송하자. 씨알도 먹히진 않지만 게임하느라 여친 못 사귀었다고 변명이라도 해야 하잖아?

그러한 미다스의 자포자기한 모습에 시청자들이 오히려 그를 놀려댔고 그 사실에 미다스가 눈을 질끈 감았다.

‘에휴, 진짜 끝이 뭐 이래?’

설마 이런 식으로 BJ대마도사의 끝이 장식될 줄이야?

더욱이 이건 누구를 탓할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미다스, 본인의 잘못일 따름.

‘이러니 여자 친구를 못 사귀는 거지. 어휴, 정현우 이 멍청한 새끼.’

그렇게 거듭 자책하는 미다스.

[이름 잃은 신이 사라졌습니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그러한 미다스의 귓속으로 알림이 들렸다.

[미다스, 세상을 구한 당신을 신이 굽어 살핍니다.]

[신이 당신을 초대합니다.]

정말 이제 모든 것이 끝났음을 알리는 알림.

“후우."

그 알림에 미다스는 두 눈을 감은 채로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진짜 끝낼 때다.’

이제는 더 이상 시청자들과 티격태격하는 것조차 아련한 추억으로 만들어야 할 때.

“여러분, 알림이 떴습니다.”

그렇기에 미다스는 여전히 두 눈을 감은 채, 그러면서 감정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목소리를 애절하게 만들었고, 이제는 얼굴에 슬픔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제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가 끝이 났습니다. 저는 마지막 보상을 받으러 가겠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눈을 떴을 때.

‘응?’

그때 미다스의 시야 어디에도 채팅창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라이브 방송이 종료됐나? 채팅창이 어디 갔지? 어?’

그것만이 아니었다.

‘여기는 어디야?’

미다스의 주변 풍경은 우유니 사막처럼, 청명한 하늘과 새하얀 구름 그리고 그것을 비추는 맑은 호수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빛 하나가 있었다.

정확히는 빛을 빚어 인간을 만든 듯한 존재가 있었다.

“왔구나.”

만약 불러야 한다면 신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존재.

정황상 신이라 불러 마땅한 존재였다.

그러나 미다스의 눈에는 보였다.

“나는……."

“김민수?”

그 신이라 물러 마땅한 존재의 머리 위에 <김민수>라는 확실한 정보가.

“……다 알고 깼구나.”

그 순간 빛이 사라지며 이내 한 사내가, 검은색 스웨터에 청바지를 입은 젊은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퍼진 모양이네. 하긴, 이런 빅이슈를 끝까지 숨긴다는 게 불가능한 일이긴 하지. 엠마한테 하라고 허락도 해줬고."

김민수.

어떤 의미에서는 이 갓워즈에서 신이라 부를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뭐, 다 알고 있으니까 자세한 설명은 할 필요가 없겠네. 그래도 인사는 나눠야지. 김민수다. 이 게임을 만들었지.”

그의 존재 없이는 갓워즈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김민수라고?’

그렇게 자신을 향해 손을 내미는 김민수 앞에서 미다스의 넋은 날아갈 수밖에 없는 일.

“그러는 그쪽은?”

“어…… 미다스입니다.”

“그건 알지. 게임 운영자인데. 그거 말고 본명.”

“정현우, 정현우입니다.”

무언가에 취한 듯 저도 모르게 술술 대답하는 미다스, 그런 그를 향해 김민수가 강제로 미다스의 손을 잡아 악수를 하며 말했다.

“오, 한국인이네? 이야, 이거 좀 기분 좋네. 뭐, 인종차별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한국 사람이 가져가는 게 좋잖아? 응? 그렇지?”

“아, 예.”

그러한 김민수의 말에 미다스는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일단 준비한 설명은 그냥 넘길게. 다 알잖아?”

그런 미다스의 마음을 알 리 없는 김민수는 무언가 해주려던 설명마저 그대로 삼켰다.

‘대체 이게 뭔 지랄이지?’

미다스 입장에서는 그저 미치고 환장할 노릇.

“어째 표정이 많이 긴장한 것 같다? 하긴, 좀 스케일이 크긴 하지. 가볍게 생각하라고. 그냥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를 최초로 깬 사람에게 주는 특전 정도 말이야. 그 정도는 있어도 이상할 게 없잖아?”

'아.'

그 순간 미다스는 이해했다.

‘그런 거구나.’

게임을 처음 끝낸 이에게 개발자가 주는 소위 이스터 에그라 불리는 것.

그제야 비로소 미다스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예, 이 정도 특전은 있어야죠.”

“그 모습 보기 좋네. 이제야 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어.”

그 모습을 본 후에야 비로소 잡은 손을 놓아주는 김민수.

“그럼 여기서 가볍게 질문 타임 한 번 가져볼까? 개인적으로 나한테 궁금한 게 있으면 질문해 봐. 이럴 때 아니면 두 번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나온 김민수의 말에 미다스가 기다렸다는 듯이 질문을 던졌다.

“본인은 아니죠?”

“인공지능이지. 내가 죽기 전에 내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인공지능. 그리고 내가 만든 최고의 역작. 어때? 정말 사람하고 구분이 안 가지? 대단하지 않아? 나 같은 천재랑 비슷한 인공지능이 나온다는 게? 이런 인공지능 수백수천 개면 게임 만드는 건 일도 아니지. 아, 물론 한계는 있어. 모든 걸 아는 건 아니거든. 그러니까 내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 나오면 에러가 뜰 수도 있으니까 양해해달라고. 그래서 다음 질문은?”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말끝에 나온 그 질문에 미다스가 이번에는 잠시 굳었다.

“어, 그게……."

질문이 없는 건 아니었다.

‘쳇, 숨겨둔 비자금 같은 거 없냐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이건 안 되겠네.’

하려던 질문이 부질없어졌다는 것.

“아."

그때 무언가가 떠오른 미다스가 이내 질문을 던졌다.

“저기 이 게임이요.”

“응, 이 게임.”

“왜 이렇게 난이도가 지랄 맞아요?”

“뭐?”

“아니, 그래도 게임을 만드는 거면 좀 양심 있게, 상식적으로 만들어야지 솔직히 왜 게임을 이딴 식으로 욕 나오게 만들었는지 궁금해서요.”

“아, 별거 아니야.”

그 질문에 김민수는 별 고민 없이 대답했다.

“내가 단명하긴 했지만 그래도 일생을 바친 건데, 너무 쉽게 주는 건 좀 그렇잖아? 안 그래? 그 정도는 이해해줘야지."

그 대답에 미다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대답.

그러나 김민수는 그러한 미다스의 의문을 풀어주는 대신 그의 가슴을 주먹으로 가볍게 툭 쳤다.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자고. 축하해, 이 게임의 끝을 본 것을. 내 선물 잘 써봐.”

그리고는 이내 빛이 되어 사라지는 김민수.

“아, 그리고 지금 이 순간부터 내 유언장 효력이 발휘될 거야.”

그렇게 사라지면서 남긴 김민수의 말 앞에서 미다스는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게 대체 뭔 개소리야?’

그와 동시에 미다스의 귓속에 알림이 들렸다.

[잠시 후 게임에서 로그아웃이 됩니다.]

2.

최종 보스 레이드가 끝나고 BJ대마도사가 퀘스트마저 마치는 순간, 그 순간 세상 모든 사람들의 긴장은 이미 풀려 있었다.

“진짜 끝났네.”

“아, 이게 이렇게 끝나다니. 좀 허무하네.”

“허무한 정도가 아니라 어이가 없는 수준이지. 최종 보스가 제대로 전투하는 모습도 안 나왔잖아? 이게 만약 소설이었으면 작가가 사과문 올렸어야 했을걸?”

라이징 스타 채널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라이브 방송 중이었으나, 이제 더 이상 해프닝 따위를 걱정하고 긴장하는 이는 없었다.

물론 박영준은 예외였다.

그는 오히려 어느 때보다 긴장한 듯한 표정을 한 채, 툭툭 자신의 머리가 아닌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 BJ대마도사가 사라졌습니다!”

“라이브 방송 영상 송출이 갑자기 끊겼습니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놀라는 라이징 스타 채널 직원들.

반면 그 사태를 마주하는 순간 박영준은 손가락으로 쉴 새 없이 책상을 두드리는 것을 멈췄다.

‘시작됐구나.’

그와 동시에 박영준이 이미 보고 있던 갓워즈의 공식 홈페이지의 메인 화면을 새로고침했다.

그러자 전혀 다른 페이지 하나가 등장했다.

그것은 편지였다.

‘진짜였군.’

김민수, 그가 죽기 전 세상에 남긴 유언이 적힌 편지.

그 편지의 내용을 확인하던 박영준의 입가에 점차 미소가 번졌다.

“어? 사장님? 지금 갓워즈 공식 홈페이지에 뭔가 떴답니다!”

“속보입니다! 유언장이 떴답니다!”

그때 뒤늦게 정보를 얻은 직원들이 앞다투어 보고를 했지만 박영준의 눈에 그런 직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건 하나였다.

‘BJ대마도사가 미소 짓고 있는 게 보이는군.’

3.

푸슈!

김 빠지는 소리와 함께 열리는 캡슐.

이어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캡슐 안에 있던 정현우가 짧게 혀를 찼다.

"쯧."

‘혁주, 얘는 어떻게 안 잘리는 거지?’

오늘도 언제나처럼 직무유기를 하는 이혁주를 향해서.

‘내가 월급 주는 것도 아닌데, 놔두자, 놔둬.’

그러나 그에 대한 생각은 깊지 않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정현우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으니까.

‘그보다 김민수가 말한 게 뭐지? 선물이 대체 뭐야?’

신의 선물.

‘아무것도 없잖아?’

그러나 막상 정현우는 로그아웃 되기 전까지 인벤토리에 새로이 생성된 아이템이 하나도 없었다.

‘설마 버그인가? 여기서?’

자연스레 게임 버그를 의심하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

‘진짜 이 게임은 끝까지 쓰레기 게임이네.’

그 사실에 푸념을 내뱉는 정현우의 눈에 이혁주가 열심히 달려오는 게 보였다.

“형!"

그 모습을 본 정현우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야, 혁주야. 내가 월급 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일은 해야지, 응?”

“형!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뭐?”

그 순간 이혁주의 반문에 정현우가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

“중요한 게 아니라니? 아무리 그래도 역할이 있으면 최소한 해야 할 건 있지. 못할 순 있어도 그런 식으로 중요한 게 아니라고......."

누구보다 꼰대 같은 표정으로.

그러나 이혁주는 그런 정현우의 말을 듣지 않았다.

“형! 대박 사건! BJ대마도사가 갓워즈의 주인이 됐어요!”

말과 함께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밀었고, 그런 이혁주의 모습에 정현우가 말을 멈추고 이혁주가 내민 스마트폰을 받아들였다.

“갑자기 무슨 개소리야? 주인이라니? 갓워즈 최강자라고?”

그리고는 이내 스마트폰에 뜬 내용을 본 정현우가 그대로 굳었다.

그런 그에게 이혁주가 소리쳤다.

“그게 아니라 BJ대마도사가 김민수의 유언에 따라 알파 컴퍼니와 베타 컴퍼니의 주인이 됐다고요!”

그러한 외침에 정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털썩!

“어? 현우 형? 형? 형! 저기요! 아저씨들! 현우 형이 기절했어요!”

기절한 자는 말할 수 없는 법이니까.

4.

갓워즈의 최종 보스가 잡혔을 때 세상이 느낀 감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정말 이게 끝이라고? 제대로 싸운 것 같지도 않은데? 라는 감정.

다른 하나는 정말 이제 끝났구나, 하는 감정.

그뿐이었다.

이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서 사람들은 그 이상의 감정을 가질 수 없었다.

정확히는 가질 시간이 없었다.

[BJ대마도사, 김민수의 유산을 상속하다!]

[알파 컴퍼니와 베타 컴퍼니의 주인이 정해지다!]

[BJ대마도사, 신에게서 선물을 받다!]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거대한 사건이 세상을 집어삼켰으니까.

더욱이 그 사건은 그저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었다.

“이제야 세상이 진짜 가상현실시대를 맞이하겠군.”

“그렇겠죠. 갓워즈와 캡슐을 만든 그 기술력을 이제 산 사람이 손에 넣은 셈이니까요.”

갓워즈와 캡슐이 등장한 이후 시작된 가상현실시대는 막상 갓워즈가 등장한 이후 단 한 걸음도 발전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 기술을 가진 자가 그대로 죽어버렸으니까.

그런데 이제 그 후계자가 등장한 셈.

“BJ대마도사가 결국 해냈군요.”

이제 김민수가 죽고 멈췄던 세상이 다시 한 번 더 발전을, 그것도 폭발적인 발전을 할 터.

시대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BJ대마도사는 정말 대단하네요, 기어코 해내다니. 그것도 결국 끝까지 솔로였죠?”

그러한 비서의 말에 아즈모는 커피잔을 들며 말했다.

“세상을 지배하는 건 크게 세 부류지. 재능을 타고났거나 혹은 돈이 많거나 또는 운이 좋거나. 그런 그들의 머리 위에 서야 하는 건 그 셋 모두를 가져야 가능한 일이지. BJ대마도사가 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뿐이야.”

그리고는 이내 커피를 한 모금 머금는 아즈모.

그 상태에서 두 눈을 감고 커피를 길게 음미하던 아즈모가 눈을 감은 채로 말했다.

“그래서 박영준의 다음 목적지가 어디라고?”

5.

“한국으로 가시는 겁니까?”

부하 직원의 질문에 컴퓨터 앞에서 작업을 하던 박영준이 손을 멈추고는 말했다.

“왜? 궁금해?”

“그야…… 당연하죠. 여기서 사장님이 갑자기 해외로 가신다면 이유는 뻔하잖아요?”

“뭐가 뻔한데?”

“BJ대마도사를 만나러 가시는 것 아닙니까?”

부하 직원의 그 물음에 박영준은 옅게 미소를 지었다.

“그야 모르지.”

“예?”

“난 어디까지나 한국에 와라, 라고 이야기를 들었을 뿐 거기서 언제 어디서 만날지 정한 바가 없어."

“그게 그거 아닙니까?”

“BJ대마도사는 이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인간이 됐어. 그런 인간이 허투루 자신의 신상정보를 꺼낼 리 없지.”

“그렇다는 건……."

“한국을 일종의 경유지로 삼을 가능성도 충분하지. 더군다나 내 국적이 한국이잖아? 한국인이 아니더라도 한국이란 나라를 이용할 가치는 충분하지. 거기서 BJ대마도사를 만나리란 보장은 없어. 첩보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그가 말해준 레스토랑에 비행기 티켓 한 장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수도 있지.”

“멋있네요.”

“BJ대마도사이니까. 이 세상에서 그보다 더 철두철미하고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

그리고는 다시 PC메일을 확인하는 박영준.

그때 박영준의 PC오른쪽 하단에서 메시지창 하나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이밀었다.

‘보안담당자?’

보낸 이는 그동안 박영준의 개인 정보 보호를 그 누구보다 훌륭하게 수행해준 자.

‘무슨 일이지?’

그런 그가 오랜만에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것을 지그시 읽던 박영준에게 부하 직원 한 명이 낌새를 느낀 듯 질문을 했다.

“무슨 일 있나요?”

“아니, 별건 아니고 사적인 부탁이 와서.”

“사적인 부탁?”

“자기 동생이 이번에 사업에 참가하게 된 것 같은데 조언을 해줄 수 있냐고.”

“사업이요? 사장님한테요?”

“뭐, 와튼 스쿨이니까.”

그 대답에 부하 직원이 혀를 찼다.

“그래도 좀 무례한 부탁 아닌가요?”

이제 박영준이 차지하게 된 위치를 생각해보면 그런 그에게 고작 일반인의 사업 조언을 구한다는 건, 메이저리그 야구 선수에게 동네 꼬마가 야구 좀 가르쳐 달라고 하는 격.

“보통이라면 이런 부탁을 안 하지. 그리고 그동안 봐온 바에 따르면 안 할 사람이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읍소하는 건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거겠지.”

반대로 그렇기에 박영준은 그 부탁을 외면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 정도는 해줄 만큼 날 도와준 분이니까.”

받은 것을 생각하면 따로 시간을 내서라도 조언을 해줘야 할 정도.

“차라리 잘 됐어. 어차피 한국으로 가는데 겸사겸사하면 되니까. 기껏해야 1시간 정도, 식사할 시간 정도만 아끼면 될 일이야.”

말과 함께 박영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럼 비행기 시간 얼마 안 남았으니까 이제 난 출발하지. 다들 선물을 기대하라고.”

그리고는 시계를 바라보는 박영준의 입가에 미소가 그어졌다.

‘지금 BJ대마도사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하군.’

6.

세상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스타벅스 커피숍.

‘아…….'

그곳에 마련된 테이블 앞에 한 사내가 넋을 잃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끼익!

문이 열리며 명품 롱코트를 입은 사내 한 명이 등장했다.

어느 때보다 여유로운 모습으로.

그 사내가 이내 툭툭 제 머리를 손가락으로 치며 주변을 훑어보았다.

이윽고 넋을 잃은 표정을 지은 사내를 발견하는 순간 여유로운 사내가 손가락 두드리는 것을 멈추고 넋을 잃은 사내에 다가와 말했다.

“그쪽이 정현우?”

"예?"

그제야 넋을 반쯤 찾은 정현우가 이내 지그시 사내를 보더니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 네. 정현우라고 합니다.”

“정태우 씨에게 이야기 들었어요.”

짤막한 인사.

“듣던 대로군요.”

이어진 말에 정현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예? 뭐라고 들으셨는데요?”

“커피숍에서 가장 외롭게 혼자 솔로로 있는 사람이 자기 동생일 거라고, 그렇게 소개해주시더군요."

“하하, 하하하……."

그 말에 헛웃음을 흘리는 정현우.

그뿐이었다.

정현우는 그 사실에 분노를 하거나 짜증을 토해 내지 않았다.

“형에게 대략적인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정현우, 그는 형에게 부탁했다.

정말 중요한 일이 있는데 사업적인 조언을 구할 수 있는 분이 없냐고.

진실은 고백하지 못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표정을 본 정태우는 그런 정현우를 위해 무례를 무릅쓰고 눈앞에 사내를 소개해줬다.

“실리콘밸리에서 엄청 유명한 벤처 기업도 운영하실 정도로 유능하시다고……."

정확한 정체는 말해줄 수 없지만 정말 대단한 사람이니까, 그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라고.

“와튼 스쿨 출신이니까.”

그리고 나온 짤막한 상대의 내력에 정현우가 화들짝 놀랐다.

“와, 와튼! 경영 쪽에서는 최고의 대학 아닌가요?”

본인조차 들어본 정도라면 보통 대학이 아니라는 의미.

“자, 그래서 무슨 조언이 필요한 겁니까? 허심탄회하게 말해 봐요.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어떤 조언도 해줄 테니까.”

그 놀라는 모습에 박영준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고, 그 모습에 정현우 역시 자리에 황급히 앉았다.

그러나 바로 질문은 없었다.

두리번두리번, 긴장된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고는 그것으로도 부족했는지 심호흡을 두어 번 거듭한 후에야, 그 후에야 비로소 정현우가 말했다.

“저기 이거 정말 놀라시면 안 되는데……."

그 경고에 박영준은 속으로 생각했다.

‘내 정체를 알면 그쪽이 더 놀랄 텐데?’

참 재미있다고.

그런 박영준의 속내를 알 리 없는 정현우가 작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입니다.”

“응? 뭐라고요?”

앞에 있는 박영준조차 듣기 힘들 정도로 작은.

그러한 박영준을 향해 정현우가 거리를 좁힌 후에, 귓속말이나 다름없을 만큼 짤막한 거리가 된 후에 말했다.

“제가 BJ대마도사입니다.”

“아, 그래요?”

그 말에 반사적으로 대답한 박영준, 그러나 이내 말을 이해한 듯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경악한 표정으로 정현우를 바라봤다.

‘이 새끼 뭐지?’

그 모습에 정현우가 고개를 거듭 끄덕였다.

진짜입니다! 진짜라고요! 라는 마음을 담아.

그 제스처에 이리저리 주변을 살피던 박영준이 이내 주변 시선을 느끼고는 자리에 앉았다.

물론 경계심은 풀지 않았다.

여전히 눈앞의 정현우를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은 채 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고는 빠르게 메일 하나를 보냈다.

그 순간이었다.

우웅!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정현우의 스마트폰이 진동을 토해냈고 정현우가 잽싸게 그 스마트폰을 쥐더니 이내 액정을 확인하며 말했다.

“아, 잠깐만요. 지금 라이징 스타 채널 사장님한테서 메시지가 와서요, 잠깐만요.”

그리고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는 정현우.

이번에는 박영준이 그런 정현우를 향해 말했다.

“……입니다.”

“예?”

정현우가 제대로 듣지 못할 만큼 작은 목소리로.

"뭐라고요?”

이어진 물음에 박영준이 재차 대답했다.

“제가 라이징 스타 채널 사장 박영준입니다.”

“아, 그래요?”

그 순간 정현우 역시 말뜻을 파악한 듯 기겁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는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박영준을 바라보았다.

그때 근처에 있던 공부하던 여학생 한 명이 안경을 고쳐 쓰면서 조용히 일어선 정현우에게 말했다.

“저기요, 조금 조용히 해주시겠어요?”

“아, 죄송합니다.”

그제야 황급히 자리에 앉은 채 입을 꾹 다문 정현우, 그런 정현우의 시선이 쉴 새 없이 제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는 박영준의 시선과 얽혔다.

그렇게 1분 남짓한 시간이 지났을 때 정현우와 박영준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입을 열었다.

“BJ대마도사 정현우라고 합니다.”

“와튼 박영준입니다.”

둘의 첫 정모가 시작됐다.

465화. < 에필로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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