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1화. < 140화. 라스트 매치 (3). >
6.
갓워즈가 세상에 등장할 때부터 이제까지 언제나 최고였던 어비스 길드와 이제는 명실상부한 최고라고 평가 받는 BJ대마도사, 그런 그 둘이 갓워즈의 최종 보스를 두고 진짜 최고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하기 위해 끝장 승부를 벌인다.
그것이 라스트 매치라는 단어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조합 그리고 무대와 방식이란 사실에는 감히 그 누구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아니, 감히 할 수 없었고, 이 라스트 매치가 성사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멀린 님이 10,000달러를 후원했습니다.]
[멀린 : 다시 말하지. BJ대마도사가 최종 보스를 잡는데 어비스 길드를 포함한 8개 길드는 전폭적인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
그렇기에 그 발언이 나왔을 때 세상은 혼란에 빠졌다.
- 이게 무슨 소리야? 돕는다고? 싸우질 않고?
- 어비스 길드가 BJ대마도사에게 손을 내민 거라고?
- 어, 지금 머리가 안 굴러간다.
사고 불능 상태에 빠질 정도.
라이징 스타 채널 직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게 뭐지?’
‘어비스 길드랑 손을 잡아?’
‘이거 사전에 약속된 건가?’
이제는 20억 명이 넘는 시청자들을 상대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장기 레이스 라이브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던 그들, 그 어떤 해프닝에도 당황치 않고 대응하리란 각오를 수십 번 머금은 그들마저도 사고가 정지할 정도.
툭툭툭툭!
박영준 역시 이 엄청난 혼란 앞에서 어떻게든 사고를 진행하기 위해 제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두드릴 따름이었다.
‘대체 뭐지?’
그런 박영준조차도 도무지 어비스 길드의 속내를 파악할 수 없었다.
그 정도로 어비스 길드의 이 행보는 모두의 예상을 산산조각을 낼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물론 몇몇 시청자들은 생각했다.
- 설마 숟가락 얹기?
- 여기서 BJ대마도사의 솔로 익스프레스를 타시겠다?
- 딱 봐도 버스네, 버스야!
- 이야, 어비스 길드도 BJ대마도사 버스에 타려고 수작을 부리네!
어비스 길드가 이 빅이벤트에 패배자로 기록되기보다는 동반자로 기록되고자 수작을 부린 거라고.
충분히 그럴 싸한 생각이었다.
- 그래, 여기서 싸워봤자 남는 건 상처뿐이지.
- 최종 보스 잡는 건데 같이 잡아야지. 방해하는 건 플레이어의 도리가 아니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갓워즈의 최종 보스 잡는 일 아닌가?
감정과 위치를 떠나서 잡아보고 싶어지는 게 갓워즈에 인생을 바쳐온 플레이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하는 마음.
‘아니야.’
그러나 이 게임의 끝에 걸린 것을 아는 박영준은 절대 어비스 길드가 그런 선택지 따윈 고르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BJ대마도사를 죽이려고 한다, 그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아.’
어비스 길드는 BJ대마도사의 몰락을 위해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만큼 변하지 않으리란 것도.
‘설마?’
그 순간 박영준은 떠올렸다.
‘놈들이 노리는 게?’
7.
“이번 최종 보스 레이드가 쉬울 리 없지. 그리고 이번 기회가 아니면 새로이 도전자가 나올 때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잖아?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를 BJ대마도사만큼 진행하는 플레이어가 언제 나오겠어?”
또 다시 후원 채팅을 날리는 멀린.
그런 그가 엠마를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이 마지막을 도와주는 게 같은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가 해야 할 마땅한 도리지.”
그 멘트를 끝으로 입에 댄 마이크를 치우는 멀린이 엠마를 향해 나지막이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우리가 네놈의 등을 찌를 수 있으니까.”
그 말에 엠마 역시 옅은 미소를 지었다.
엠마, 그녀는 생각했다.
BJ대마도사를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장 높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이 무시무시한 맹수를 잡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무엇일지.
그리고 이내 떠올렸다.
‘사냥감을 노리고 전력을 다 하는 사냥꾼만큼 뒤통수 치기 좋은 건 없지.’
BJ대마도사가 정말 최종 보스 미르수를 잡는다면, 그 잡는 순간이 가장 무방비한 상태일 거라고.
그 생각에 이르렀을 때 엠마는 지금의 계획을 기획했다.
BJ대마도사를 도와주는 척하자고.
그가 최종 보스와 싸울 수 있게 최고의 무대를 만들어주는 일꾼이 되어주자고.
그렇게 그 일꾼이 되어 그의 발밑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중요한 순간 준비한 칼로 등을 찌르자고.
‘명분도 충분하다.’
더욱이 이 계획이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시청자들이 납득할 만큼 명분이 있다는 점이었다.
최종 보스를 잡는 무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무대 혹은 오더라도 먼 훗날 올 이 무대를 방해하는 것보단 도와주는 게, 그게 누가 보더라도 아름다운 장면 아닌가?
‘반대해도 좋아.’
혹여 이 호의를 BJ대마도사 쪽이 거절하더라도 문제 될 건 없었다.
결국 대결은 없던 것이 될 테고, 그 후에 어비스 길드는 팔짱을 끼고 기다리면 될 뿐이었으니까.
‘결국 넌 최종 보스를 잡으러 갈 테고, 그 순간 무방비 상태가 될 테니까.’
그가 최종 보스를 상대로 모든 전력을 다 토해내기를.
BJ대마도사가 등을 보일 때가 오기를.
물론 이건 도박이었다.
어디까지나 BJ대마도사가 최종 보스를 상대로 고전을 한다는 가정 하에서 이룰 수 있는 도박.
또한 BJ대마도사는 혼자가 아니었다.
아즈모는 물론 현재 어비스 길드에 붙지 않은 소드 길드나 불사자 길드는 필시 BJ대마도사의 옆에서 그를 지킬 터.
무엇보다 BJ대마도사는 필요하다면 다음을 기약하고도 남을 배포와 오는 무자비한 공세로부터 도망칠 능력이 있었다.
잡고자 한다면 한 번에.
다음은 없다는 각오를 품은 채 도박을 해야 하는 일.
‘완벽한 승리는 없다, 이제는 인정하지.’
그러나 반대로 BJ대마도사라는 괴물이나 다름없는 악마를 잡는데 있어서 도박수가 아닌 무언가 다른 수가, 좋은 수가 나오길 기대한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
‘이게 우리 선택이다.’
어쨌거나 엠마는 결단을 내렸다.
이제 남은 건 하나.
“자, BJ대마도사. 이게 어비스 길드의 결정이야. 그러니까 이제 네가 답할 차례야.”
BJ대마도사의 대답뿐.
8.
[멀린 님이 10,000달러를 후원했습니다.]
[멀린 : 자, BJ대마도사. 이게 어비스 길드의 결정이야. 그러니까 이제 네가 답할 차례야.]
멀린의 그 후원 채팅이 끝나는 순간 미다스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그 정도였다.
‘미치겠네.’
표정 연기를 할 수 없을 정도, 그 정도로 지금 미다스가 느끼는 당혹감은 짙었다.
‘이러면 내 예상대로 한탕을 할 수가 없는데?’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생각한 것과 달리 제대로 뽕을 뽑을 기회가 날아간 상황.
미다스의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하지?’
당연히 미다스는 이 제안을 바로 수락할 생각이 없었고, 거절하기 위한 방법을 강구했다.
그렇게 강구하는 와중에 미다스의 시선이 이내 아즈모와 마주쳤다.
아즈모 역시 표정이 굳어 있었다.
‘이거 안 좋아.’
아즈모의 경우에는 어비스 길드의 노림수까지 파악하진 못했으나, 이게 결코 좋지 않은 상황이란 걸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으니까.
‘BJ대마도사도 당황했어.’
무엇보다 아즈모의 눈에 비친 BJ대마도사가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얼굴 위에 드러내고 있는 게 증거였다.
‘이 BJ대마도사가.’
아즈모가 아는 BJ대마도사는 뱃속에 칼이 들어오는 순간에도 미소를 지으며 자신에게 유리하게 상황을 반전시킬 수를 강구하고도 남을, 그럴 배포를 가진 자였다.
그런데 그런 자가 이렇게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는 건 보통 당황한 게 아니라는 의미.
‘일단 내가 시간을 벌어야겠어.’
그때 아즈모가 무언가를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멀린, 지금 이거 보고 있지?”
그가 BJ대마도사의 라이브 방송에 난입하며 말했다.
“일단 지금 이 대화는 전부 무효야.”
대뜸 나오는 무효 선언!
- 아즈모가 무효라는데? 무슨 의미이지?
-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네?
여러모로 충격적인 선언에 모두가 당황했다.
달리 말하면 모두가 아즈모에 이목을 집중시켰다는 거고, 그렇게 모든 이목을 끈 아즈모가 마저 말을 이어갔다.
“후원금 액수 1만 달러만 했다면서? 그럼 룰 위반이지. 제대로 숫자를 맞춰주든가 아니면 100만 달러를 지르든가. 응? 최소한 매너는 지키면서 이야기 해야지, 안 그래?”
그제야 비로소 시청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지. 숫자 지키는 게 BJ대마도사 후원 국룰이었지!
- 무효 맞네.
- 멀린 님 제대로 쏩시다!
- 그냥 크게 100만 달러 가즈아!
최소한 BJ대마도사 라이브 방송의 팬이라면 부정할 수 없는 말.
물론 어디까지나 장난이었다.
정말 그런 이유로 이번 어비스 길드의 제안을 무효로 만드는 건 불가능했으니까.
‘조금이라도 시간은 벌어줄게.’
그저 BJ대마도사가 수를 짜낼 확률을 높일 뿐.
그러한 아즈모의 모습에 미다스의 표정이 풀어졌다.
기분이 풀어진 모양.
“역시 아즈모님이 뭘 좀 아네요. 룰은 지켜야죠.”
‘후원금 감사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미다스 입장에서는 추가 후원금이 들어오는 상황인데 기분이 나쁘면 그게 이상한 일 아닌가?
‘뭐, 어쩔 수 없지.’
한편으로는 미다스는 어느 정도 받아들인 상태였다.
‘어비스 길드가 도와주겠다는데 거절하는 게 이상하지.’
이런 상황에서 다른 도리는 없다는 것.
‘도움 받아서 나쁠 건 없고.’
그리고 냉정하게 보면 갓워즈 특성상 최종 보스 레이드가 쉬우리란 보장은 없었다. 오히려 최종 보스 레이드가 매우, 아주 지랄 맞게 어려우리란 게 보장이 됐으면 됐지.
단순히 미르수만 잡는 게 아니라 노네임드를 비롯해 어떤 괴물이 나와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런 점을 생각했을 때 어비스 길드는 물론 다른 10대 길드들의 도움을 받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
‘그래, 내가 시간 좀 벌면 돼.’
무엇보다 어비스 길드가 합류한다고 해도 결국 운전대를 잡는 건 미다스 본인이었다.
충분히 시간벌이가 가능하다는 의미.
[멀린 님이 1,000,000달러를 후원했습니다.]
[멀린 : 그래서 대답은?]
그때 나온 100만 달러짜리 후원 채팅에 미다스가 입을 꽉 다물었다.
‘아, 터졌다.’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참기 위해, 그렇게 꾹 다문 입 사이로 간신히 말을 뱉었다.
“좋습니다, 원하시면 그렇게 하죠.”
어비스 길드의 제안을 수락하는 순간.
‘맙소사.’
그 순간 아즈모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때 미다스가 말했다.
“단, 절 도와준다고 하셨으니 이 시간부로 어비스 길드를 포함해 모든 이들에 대한 통솔권은 제가 쥡니다. 쉽게 말하면 제 명령에 무조건 따라주셔야 합니다.”
그 말에 아즈모가 반색했다.
‘역시 BJ대마도사! 그래, 정말로 고개를 숙인다면 제대로 목줄을 채워야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최악의 순간 고를 수 있는 최선의 카드를 뽑은 셈.
‘이렇게 되면 당분간 시간은 벌 수 있다.’
어쨌거나 BJ대마도사의 말처럼 이 시간부로 어비스 길드는 절대복종을 해야 했으니까.
“제가 어디든 가라고 하면 따라가야 합니다. 거기가 혹여 지옥이라고 해도 말이죠.”
그건 곧 전쟁이 시작됐을 때 말도 안 되는 전투에 참가하라고 해도 해야 한다는 의미.
물론 그리한다면 BJ대마도사에게 비난이 쏟아질 터였다.
‘맞불이다.’
그러나 이미 그런 일들, 세간의 비난이나 손가락질 따위는 더 이상 중요치 않았다.
거기서 BJ대마도사는 한마디를 더 했다.
“그럼 일단 멀린 님, 이제부터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죠.”
이 이상의 이야기는 얼굴을 마주 보고 하자.
‘대단하다, 정말 대단해.’
그 발언에 아즈모는 감탄했다.
포커페이스란 말이 나오는 것처럼, 도박판에서 상대방의 표정을 보는 건 매우 중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멀린만이 BJ대마도사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상황은 BJ대마도사에게는 좋을 게 없었다.
‘여차하면 멀린을 죽일 거리에 둘 필요도 있지.’
결정적으로 BJ대마도사 기준으로 멀린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거리는 당장 그를 죽일 수 있는 거리였다.
최악의 경우 멀린을 죽이고 튈 수 있다는 의미.
현재 부활 이벤트 탓에 게임 오버 시 접속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봤을 때 그리고 어비스 길드에서 멀린이 차지하는 비중을 봤을 때 그를 자신의 근처에 둔다는 건 멀린과 어비스 길드에 굉장한 압박감이 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악마다. 아니, 악마조차 못할 생각이야.’
이 순간 어비스 길드가 받을 수 있는 최악의 선택지만을 고르는 BJ대마도사에 아즈모가 감탄을 넘어 경악을 하는 사이 미다스는 머릿 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멀린이랑 아즈모랑 같이 방송하면 시청자 증가하겠지?’
사실 그가 멀린에게 대면을 요구한 이유는 다름 아니라 그게 시청자 증가에 아주 큰 도움이 되리란 생각 때문이었다.
절대복종을 요구한 것도 비슷했다.
‘그리고 내 말대로 따라 움직이면…… 어쩌면 준비한 대로 3일은 뽑아낼 수 있을지 몰라.’
자신이 운전대를 잡아야 보스 몬스터가 없는 곳으로 운전이 가능할 테니까.
‘좋아, 3일은 힘들더라도 이틀은 뽑아먹자.’
그렇게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는 미다스에게 멀린이 이내 대답을 했다.
[멀린 님이 1,000,000달러를 후원했습니다.]
[멀린 : 그 조건, 전부 수락하지.]
이번에도 1백만 달러짜리 후원과 함께.
‘크으!’
그 사실에 입이 찢어지려는 것을 간신히 참기 위해, 그러기 위해 표정을 잔뜩 구긴 미다스가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그럼 이제 만나서 이야기 합시다. 아, 라이브 방송은 계속됩니다. 그러니까 다른 뭔가를 할 생각은 하지 마세요."
그 말과 함께 미다스가 고개를 돌려 붉은빛 기둥을 확인했다.
‘오케이, 저기만 피해 가자.’
어떻게든 시간을 벌기 위해 동선을 짰다.
그리고 확신을 품었다.
‘생각해보니까 내 눈이니까 찾는 거지, 막말로 일주일 내내 못 찾아도 이상할 건 없어. 여긴 신의 무덤이잖아? 여기 있는 모두가 내가 운전하는 차에 탑승한 거잖아?’
자신이 있는 이상 그리고 모두가 자신을 따르게 된 이상 오히려 3일이 아니라 그 이상도 가능하리라고.
‘그래, NPC융도 찾기 어렵다고 말했는데 쉽게 찾을 수 있을 리 없지. 운이 지랄 맞게 좋지 않은 이상. 아니, 그럼 오히려 이게 개이득 아닌가?’
오히려 더 제대로 뽕을 뽑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가슴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할 무렵, 후원 채팅 하나가 날아왔다.
[라포 님이 10,350달러를 후원했습니다.]
[라포 : 아까 사냥하다가 뭔가 이상한 존재를 발견해서 지금 로그아웃 급하게 해서 말해주는 건데.]
라포, 이제껏 잠잠하던 그가 말했다.
[라포 님이 10,351달러를 후원했습니다.]
[라포 : 아무래도 최종 보스를 찾은 것 같아.]
갓워즈에서 가장 운이 좋은 플레이어가 자신의 운수를 증명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