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9화. < 140화. 라스트 매치 (1). >
1.
하늘 위에서 빛나는 별은 제아무리 세상으로부터 숨고 싶어도 숨을 수 없는 법.
멀린, 갓워즈를 대표하는 가장 빛나는 별 중 한 명인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에 수억 명이 넘어가는 이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상황에서 그의 행적은 숨길 수가 없었다.
그때의 행적도 마찬가지였다.
- 올스타팀에 대해서 알고 있냐고? 모를 리가 없지. 지금 제일 핫하잖아? 당장 나도 열기를 느낄 만큼. 그래서 더더욱 신경 쓰일 수밖에 없지. 만약 그들이 우리랑 비슷한 무대에 온다면 무서운 경쟁자가 될 테니까.
BJ대마도사가 올스타팀과 경쟁할 당시, 멀린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라이브 방송을 통해서 말했다.
- 그러니까 같은 무대에 서면 승부를 겨뤄야지. 어비스 길드는 단 한 번도 경쟁자를 용납한 적이 없었으니까. 물론 아직은 부족하지. 일단 드래곤 슬레이어 소드부터 제대로 얻어 봐. 그 후에 우리가 있는 곳까지 온다면 그리고 도전한다면 기꺼이 받아주겠어.
드래곤 슬레이어를 먼저 얻는 자에게 기꺼이 어비스 길드에 도전할 기회를 주겠다고.
그리고 지금 BJ대마도사가 그때의 기회를 멀린에게 그리고 어비스 길드에 요구하고 있었다.
“와, 이게 있었네.”
“그렇지.”
그 사실을 본 라이징 스타 채널 방송실에는 감탄이 피어났다.
“이거 못 피하지.”
“아무렴,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피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무조건 대결하겠네.”
설마 모두의 머릿속에서 사그라진 그것을, 망각의 바다에 푹 담궈버린 그것을 이 순간, 이토록 절묘한 순간에 꺼내들 줄이야. 박영준도 마찬가지였다.
‘이 카드가 있었구나.’
그조차도 머릿속에서 사라졌던 카드를 설마 이토록 중요한 순간에 꺼낼 줄이야?
‘이런 게 진짜 히든 카드지.’
물론 박영준은 알고 있었다.
‘어비스 길드가 자신들이 내지른 약속에 쉽게 순응해줄 가능성은 절대 없지만.’
구두 약속도 약속이긴 하지만 계약서를 쓸 때와는 다른 법.
더욱이 게임 내에서 이루어진 계약은 계약서를 쓰더라도 딱히 효력이 존재치 않았다.
그런 수준의 계약 때문에 한두 푼도 아니고 갓워즈, 더 나아가 갓워즈를 만들어낸 알파 컴퍼니와 베타 컴퍼니라는 김민수의 유산을 상속할 기회를 포기한다?
있을 수 없는 일.
필시 어비스 길드는 무리를 해서라도, 무모한 짓을 해서라도 수를 끄집어낼 터였다.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러면 이제 어비스 길드에도 명분은 없다.’
그것만으로도 BJ대마도사는 남는 장사였다.
애초에 지금 상황이 가장 골치 아픈 건 세상이 BJ대마도사만을 향해서 손가락질한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어비스 길드가 BJ대마도사의 도전을 받지 않는다면 그 골치 아픈 상황이 해소될 터.
‘판이 바뀌었어.’
여러모로 판을 흔든 셈이었다.
박영준이 진심으로 감탄한 건 바로 그 부분이었다.
‘역시 BJ대마도사, 차원이 다르구나. 나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필시 BJ대마도사는 모든 것을 예상하고, 지금 이 엄청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는 것.
감탄했기에 이제는 기대했다.
‘대체 어디까지 내다보고 있을까?’
BJ대마도사가 과연 어디까지 수를 내다보고 있을지.
2.
미다스, 예전의 약속을 끄집어냈을 때 그는 어느 때보다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믿음 덕분이었다.
‘멀린 님이 체면이 있는데, 설마 본인 방송에서 뱉은 말을 안 지키시겠어?’
다른 누구도 아닌 천하의 멀린이 한 입으로 두 말을 할 리 없다는 것에 대한 믿음.
당연히 미다스는 이 제안에 어비스 길드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혹은 그들이 거절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게 이유였다.
“그럼 어비스 길드는 제 도전을 받아주시는 걸로 알고, 마저 이야기를 진행하겠습니다.”
별 의심 없이 다음 단계로 넘어간 건.
“중요한 건 대결 방식인데, 지금 정확히 부활 이벤트가 어떻게 진행되는 건지 제가 확실하게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미다스는 여기서 대결 방식을 확정짓지 않았다.
‘제대로 한탕 해야 하는데 어설프면 안 되지. 진짜 뭘 잡아야 하는지 파악한 후에 움직인다.’
두 번 다시는 오지 않을 빅이벤트인데 어설픈 방식을 했다간 오히려 분위기가 끓어오르기는커녕 차갑게 식을 테니까.
“해서 상황이 파악되면 대결 방식을 통보하겠습니다.”
결과적으로 미다스는 어비스 길드와 대결을 선언하는 한편, 대결 방식은 다음으로 미루게 됐다.
‘대단하군.’
그러한 BJ대마도사의 결정을 가장 가까운 곁에서 보던 아즈모는 감탄을 삼켰다.
당장 그때의 일을 끄집어내는 것도 그랬지만 아즈모를 더 감탄시킨 건 방식을 다음으로 미룬 것이었다.
‘이렇게 시간을 벌다니…….'
여기서 대결 조건을 말했다면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겠지만, 조건을 미룸으로써 BJ대마도사는 이번 일을 더 미뤘다.
‘이러면 거절하기도 쉽지 않지.’
어비스 길드 입장에서는 그런 방식이면 안 하겠다, 라는 말을 꺼내기 힘들도록.
최소한 대결 방식을 들어야 거절을 하든 말든 할 테니까.
시간이 어비스 길드의 편이던 것을 바꾼 셈이었다.
더욱이 이렇게 벌게 된 시간은 그저 단순히 상대방을 초조하게 만드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았다.
‘천재, 아니 악마군.’
어비스 길드와 그들을 따르는 7개 길드 입장에서는 속이 바짝 타오를 수밖에 없는 일.
그런 상황에서 과연 언제까지 그 무리가 유지될까?
‘이익을 따라 움직이는 이들은 더 큰 이익을 좇는 법이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이익을 좇아 모인 하이에나 무리들인데?
필시 배신자가 나올 터.
배신자가 나오지 않더라도 몇 가지 소문을 흘리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간신히 다져놓은 신뢰를 흔드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게 아즈모가 BJ대마도사를 악마라고 표현한 이유였다.
그저 단순히 적의 틈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적의 심리적 틈을 쥐고 뒤흔드는 것, 그건 악마나 할 짓이었으니까.
때문에 아즈모는 생각했다.
‘BJ대마도사는 이대로 시간을 더 끌 거다.’
악마라면 자신이 만든 덫에 잡힌 먹잇감이 더 긴 고통을 느끼도록 보고 즐길 거라고.
그러니 BJ대마도사도 필시 이대로 당장 게임을 진행하기보다는 시간을 끌 거라고.
‘적이 아니라서 다행이군.’
그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머금는 아즈모, 그러한 아즈모의 시선에 미다스가 눈웃음을 지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그 눈웃음에 아즈모는 생각을 확신으로 바꾸었다.
정말 BJ대마도사는 악마라고.
물론 그 눈웃음의 의미는 별거 아니었다.
‘어비스 길드랑 붙는데 아즈모 님이 내 편이다…… 진짜 제대로 땡길 수 있겠네.’
마지막 한탕을 상상한 것 이상으로 크게 할 수 있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자, 그럼 저는 아즈모님과 함께 이벤트 상황을 파악하러 움직이겠습니다. 상황 파악이 마치면 라이브 방송으로 뵙겠습니다."
그렇게 이제는 어느 때보다 부푼 마음을 건 미다스가 고개를 돌리자 이내 보였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붉은빛 기둥 하나가.
3.
- BJ대마도사가 어비스 길드랑 붙는다!
BJ대마도사의 중대 발표가 끝나는 순간 세상의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들떠 있었다.
“다들 이제부터 BJ대마도사의 주변을 경호한다!”
그리고 BJ대마도사의 주변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살벌해지기 시작했다.
“예고 없이 접근하는 플레이어는 그냥 죽여!”
아즈모, 그가 명령을 내리는 순간 그의 아이들이 어느 때보다 살벌한 표정을 지은 채 BJ대마도사 주변에 자리를 잡았다.
이상할 건 없었다.
‘이제부터 마지막 승부다.’
BJ대마도사가 내놓은 카드는 어비스 길드 입장에서 어느 때보다 치명적인 카드.
그런 카드를 받은 어비스 길드가 극단적인 수를 쓸 가능성은 무척이나 높았으니까.
‘BJ대마도사가 죽으면 우리는 전부 잃는다.’
결정적으로 이 승부는 결국 BJ대마도사가 죽으면 끝나는 상황이었다.
어비스 길드 입장에서는 막장이나 다름없는 극단적인 수를 쓸 메리트는 충분하다는 의미.
더욱이 정말 그런 극단적인 수를 쓴다면 어설프게 다음을 기약하기보다는 지금 당장 쓰는 게 효과적이었다.
아즈모는 물론 그를 따르는 아즈모의 아이들 역시 그 사실을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뭐가 오든 처치한다.’
‘선 공격, 후 조치다.’
‘BJ대마도사를 무조건 지킨다.’
잘 아는 만큼 각오와 경계심 역시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번뜩이고 있었다.
‘갑자기 멀린이 등장하더라도 죽인다.’
눈앞에 누가 등장하더라도, 그게 혹여 멀린이라고 하더라도 조금도 당황하지 않을 만큼.
그 순간이었다.
“누군가 온다!”
한 명이 접근했고, 그 사실에 모두가 바로 상대를 처치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아주모도 마찬가지였다.
바로 마법을 쓸 준비를 했다.
“정체는…… 응?”
“누구냐? 이름을 밝혀…… 어?”
그러나 등장한 인물을 보는 순간 아즈모와 아이들의 각오는 거세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융?"
NPC융, 갓워즈의 모든 플레이어가 한 번은 만나게 되는 그의 등장은 상식 밖이었으니까.
“시작의 마을 촌장이 왜? 무슨 일이야?”
아즈모도 NPC융의 등장에 경계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두 눈을 하염없이 깜빡일 정도.
당황하지 않는 건 오직 한 명뿐이었다.
“아, 저 보러 온 겁니다.”
미다스, 그만이 여유 넘치는 모습으로 말했다.
“길 좀 비켜주시죠.”
그러한 미다스의 말에 아즈모의 아이들이 저도 모르게 좌우로 갈라지며 길을 만들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길 위에서 미다스와 NPC융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때 미다스가 소리쳤다.
“이 시간부로 NPC융과 제가 나누는 대화는 극비입니다. 절대 외부 유출을 허락지 않겠습니다. 외부 유출이 될 경우 제 법무팀이 누구인지 알게 되실 건데, 부디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강력한 경고.
‘그 정도인가?’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기에?’
그 경고에 모두가 침을 꼴깍 삼켰다.
다른 누구도 아닌 BJ대마도사가 저 정도로 강력하게 경고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닐 테니까.
물론 미다스가 경고한 이유는 정말 보안이 중요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어차피 이제 볼 거 다 봐서 정보가 나가든 말든 상관은 없지만…….'
이미 게임 엔딩이 코앞에 왔는데 정보 보안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래도 이렇게 해야 뭔가 주는 것 같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위기를 잡은 건 자신을 도와주는 이들에게 생색이라도 내기 위함이었다.
날 도와주는 대가로 내가 이토록 귀한 정보를 공유해주겠다! 라는 식의 생색.
그리고 충분히 생색을 낼 만한 정보이기도 했다.
“이름 잃은 신이 부활했네, 알고 있나?”
“예."
“용의 알은? 부화했나?”
“아직입니다.”
“큰일 났군. 이대로 가다가는 이 세상이 부활한 이름 잃은 신의 분노에 먹힐 텐데.”
미다스와 NPC융이 주고받는 대화는 다른 무엇도 아닌 갓워즈의 미래에 대한 것이었으니까.
‘엄청난 이야기다.’
‘극비일 만하구나.’
듣는 모두가 입을 꾹 다문 채 숨소리마저 삼킬 정도.
“시간이 얼마 없네.”
“시간이요?”
“이름 잃은 신의 부활만으로 세상 모든 몬스터들이 들끓고 있네. 시간이 지날수록 몬스터들의 강인함은 강해질 것이며, 이름 잃은 신의 추종자들이 들고 일어날 걸세.”
“지금보다 사태가 더 심각해진다는 겁니까?”
“지금은 심각한 것조차 아니지.”
이어서 나온 내용도 등골이 오싹한 내용이었다.
‘지금 이게 시작이라고? 다들 죽어가는데?’
‘맙소사.’
아즈모 역시 마찬가지였다.
‘……극비일 만하군. 시간이 BJ대마도사의 편이 아니라는 의미이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플레이어들이 마주한 난이도가 더 급상승한다는 건 곧 BJ대마도사에 대한 플레이어들의 분노가 급상승한다는 의미. 간신히 바꾼 판이 다시 어비스 길드에 유리하게 돌아갈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이 정보가 유출되면 어비스 길드 입장에서는 정말 목숨 걸고 시간을 끌고자 할 터.
“이제 답은 하나네. 미르수, 그를 잡는 수밖에.”
“미르수를요?”
“용의 알을 부화시키기 위해서는 이름 없는 신의 힘이 필요하고, 지금 그것을 가진 자는 미르수뿐일 테니까."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 항목에 새로운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그 순간 미다스의 눈앞에 퀘스트창이 등장했다.
[부화]
- 퀘스트 등급 : Main scenario
- 퀘스트 레벨 : 제한 없음
- 퀘스트 내용 : 미르수, 그를 처치하고 용을 부화시키자.
- 퀘스트 보상 : 알 수 없음
!퀘스트 보상 : 신의 선물
그리고 뜬 퀘스트 내용을 보는 순간 미다스는 이제 보다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이게 마지막이구나.’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의 마지막 퀘스트에 이르렀음을.
자신의 눈이 말해주었으니까.
‘진짜 마지막.’
이다음 퀘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미르수도 그 사실을 알고 자네를 피해 도망칠 터. 이제부터 그를 추격해 잡아야하네. 그를 잡는 건 이 세상 무엇보다 힘든 걸세. 나조차도 그를 추격했으니 단 한 번도, 옷깃조차 잡은 적이 없었으니까.”
이어진 NPC융의 말에 미다스는 스윽 눈을 돌렸다.
그러자 보였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붉은빛 기둥이.
‘찾는 건 일도 아니고.’
당장에라도 찾아갈 수 있는 상황.
그 대목에서 미다스는 생각했다.
‘흠.’
생각과 함께 퀘스트창을 다시 바라본 미다스가 이내 굳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 이 시간부로 비상 사태를 선포합니다.”
비상 사태, 그 묵직한 단어에 아즈모와 그 아이들이 놀라는 사이 미다스가 마저 말을 이어갔다.
“미르수, 그를 잡는 게 제 퀘스트 과제입니다. 그리고 어비스 길드에는 이렇게 통보할 겁니다. 내가 이 게임을 끝내는 것을 막아보라고. 막을 수 있으면 당신들 승리라고.”
대결 방식이 정해지는 순간.
‘맙소사.’
그것을 듣는 순간 모두가 이제는 입을 벌렸다.
내가 이 게임을 끝내는 걸 막아라, 그야말로 지금 이 순간에만 가능한 세기의 매치.
그리고 정말 라스트 매치였으니까.
아즈모도 마찬가지였다.
‘그래,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정면으로 부딪치는 게 답이지.’
상식적인 대결을 요구했을 경우 어비스 길드가 그것에 순응할 가능성은 제로.
그렇다면 그냥 그들이 원하는 대로 개싸움을 대결 방식으로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럼 일단 자리부터 바꿔봅시다.”
그렇게 대결 방식을 말한 미다스가 이내 손가락으로 한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으로 가보죠.”
붉은빛 기둥이 있는 곳과 정반대 방향을.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마지막 한탕인데, 당장 끝내지 말고 시간 좀 끌어보자.’
미다스, 그가 진짜 뽕을 뽑을 생각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