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2화. < 137화. 대마도사의 무덤 (6). >
17.
NPC융.
시작의 마을을 졸업할 때 누구든 마주하게 되는 NPC, 갓워즈를 하는 모든 플레이어들이 무조건 마주칠 수밖에 없는 자.
“오랜만이군.”
그런 NPC가 자신의 눈앞에 등장했을 때 미다스는 오히려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NPC융 너머, 통로 밖을 바라봤다.
‘아.’
그러자 럭키를 비롯해 모두가 무사한 게 보였고, 그제야 비로소 NPC융을 바라봤다.
"융."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자 융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을 기억해주니 고맙군.”
“여기에 어떻게 오신 겁니까? 애들이 쉽게 들여보내주지 않았을 텐데?”
이어서 바로 질문을 뱉는 미다스의 목소리에는 어느 때보다 경계심이 가득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처음 본 NPC가 여기 등장했는데 보통 일 일 리가 없어.’
영화를 보든 만화를 보든 혹은 소설을 보든, 이런 경우는 좋든 안 좋든 범상치 않은 경우였으니까.
긴장하는 게 당연지사.
무엇보다 미다스의 눈에는 보였다.
‘그것도 레벨이 444레벨이 된 채로 등장한다면 더더욱.’
NPC융의 레벨이 처음 봤을 때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달라져 있다는 사실이.
긴장해야 마땅한 상황.
동시에 의심해야 마땅한 상황이었다.
‘얘가 혹시 최종 보스인가?’
NPC융이 이 게임의 최종 보스, 정체 모를 자일 가능성.
그러한 의심 가득한 모습에 NPC융이 미다스가 앞서 내뱉은 질문에 대답을 해줬다.
“잠시 잠재웠네.”
“잠재웠다고요?”
“내게는 유능한 동료가 많지. 사할린이라든가 혹은 아르비아라든가 하는 동료들.”
“이곳엔 왜 오신 겁니까?”
어떻게 이곳에 온 것인지 이해가 되자 곧바로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미다스.
사실 대답도 대답이지만 미다스는 시간을 끌고 있었다.
‘일단 인벤토리에 넣고.’
습득한 올마이티 클래스 스킬 카드북을 인벤토리에 넣기 위한 시간.
‘만약 공격 들어오면 바로 블링크부터 쓰자. 이후 헤이스트 써서 거리부터 벌리고…….'
그리고 이 상황에서 눈앞의 NPC융이 자신을 공격했을 때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짜기 위한 시간.
“정체 모를 자를 쫓아 여기까지 왔네.”
이어진 질문에 미다스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정체 모를 자?”
“자네도 몇 번 봤을 걸세. 이름 잃은 신의 전리품을 찾아다니는 자. 그가 이곳에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네."
“신의 무덤에요?”
“그래, 이름 잃은 신의 무덤에.”
“이름 잃은 신의 무덤?”
그때 알림이 들렸다.
[신의 무덤에 대한 진실을 깨달은 자 타이틀을 달성했습니다.]
그 알림을 듣는 순간 미다스의 머릿속에는 퍼즐이 조합됐다.
‘가만.’
이름 잃은 신의 부활을 꿈꾸는 정체 모를 자가 이름 잃은 신의 무덤에 도착했다는 것.
“이름 잃은 신이 부활한다는 겁니까?”
“조만간.”
조만간이라면 이제 곧 부활한다는 의미.
그 의미를 파악하는 순간 미다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다음 퀘스트를 알 수 있었다.
“부활을 막아야겠군요.”
각오 어린 그 말에 NPC융은 잠시 미다스를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부활을 막기에는 너무 늦었네.”
“예?”
“늦었다는 것보다는 애초에 막을 수 없는 것이었다고 해야겠지. 그가 수백 년 넘게 준비해온 것을 고작 몇 년 만에 막을 수 있을 리 만무하니까. 하물며 그가 이곳에 다시 왔다는 건, 이미 부활을 위한 대부분의 준비가 끝났다는 의미이겠지.”
그가, 그 표현에 미다스가 고개를 돌려 석관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 NPC융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마법사가 있었네. 위대한 대마도사, 이름 잃은 신의 힘마저 해석할 수 있을 만큼 너무나도 위대한 대마도사. 그러다가 결국 스스로의 이름마저 잃어버린 채 이름 잃은 신의 추종자가 되어버린 대마도사가.”
그 설명이면 충분했다.
“정체 모를 자, 그가 이름 모를 대마도사였다는 겁니까?”
이제까지 미다스가 봐온 정체 모를 자가 누구였는지.
‘그래서 관이 비어있었구나.’
여러모로 지금까지 의문이었던 부분들이 해결되는 순간.
물론 한 가지 의문은 그대로였다.
“그럼 부활한 이름 잃은 신은 어떻게 합니까?”
부활을 막을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
그 질문을 내뱉은 미다스가 곧바로 자신의 가슴팍을 바라봤다.
무언가 해답이 떠오른 모양.
그러한 생각에 NPC융이 확신을 심어줬다.
“신을 죽일 수 있는 것들 중 가장 확실한 건 그 무엇도 아닌 용이지.”
용의 알.
그게 바로 이름 잃은 신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며, 이제까지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가 용의 알을 부화케 하기 위한 과제를 주었던 이유였다.
“그게 내가 준비한 것이었지. 그리고 자네는 놀라울 정도로 훌륭하게, 내 기대 이상의 성과를 이룩했고.”
그 설명을 듣던 미다스가 곧바로 인벤토리를 활성화한 후에 그 안에 있는 용의 알을 바라봤다.
[용의 알]
!부화를 위해서는 ‘이름 잃은 신’의 힘이 필요
!부화도 : 89퍼센트
!부화도가 90퍼센트에 이르면 새로운 용의 힘 각성.
이제 부화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태.
자연스레 이제부터 미다스에게 주어질 과제가 예상됐다.
“용의 알을 부화시키는 것만이 미르수, 그를 막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방법일세.”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 항목에 새로운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그런 미다스 눈앞에 등장했다.
[이름]
- 퀘스트 등급 : Main scenario
- 퀘스트 레벨 : 444레벨 이하
- 퀘스트 내용 : 이름 모를 대마도사의 이름은 미르수. 그런 그를 막기 위해 용의 알을 부화시켜야 한다. 융이 가르쳐준 봉인된 지역으로 가자.
- 퀘스트 보상 : 없음
!퀘스트 완료 시 ‘고독한 시험’ 진행 가능
새로운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
그것을 본 미다스가 가볍게 목을 뒤로 젖혔다.
‘이제 끝이 보이는구나.’
이 기나긴 여정의 끝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
여러모로 느낌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과제 앞에서 어느 때보다 자신감이 넘친다는 것, 그 사실이 미다스를 느낌을 남다르게 만들었다.
예전이라면 이 말도 안 되는 난이도에 혀를 내두르고 비명을 내질렀지만 이제는 설렘마저 느꼈으니까.
‘할 수 있어.’
그 설렘을 품은 미다스가 다시 고개를 똑바로 한 채, 이제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NPC융을 바라보며 말했다.
“좋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망설임 없는 질문.
“이곳, 신의 무덤에는 이름 잃은 신이 남긴 유산이 하나 있네. 너무나도 강력한 나머지 파괴하는 것도 그리고 옮기는 것도 불가능해 이곳에 봉인된 유산이. 물론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없도록 결계가 있는 곳이네. 시험을 통과한 자만이 넘을 수 있는 결계.”
이어진 NPC융의 설명에도 미다스는 여전히 망설임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 시험, 제가 통과하겠습니다.”
망설임이 있을 수 없었다.
‘까짓것 박살을 내주마!’
지금 미다스의 화력과 전력이면 이름 잃은 신이나 정체 모를 자를 잡는 것만 아니면 무엇이든 가능했으니까.
“자네라면 가능하겠지.”
NPC융 역시 기꺼이 응원했다.
“문제는 자네가 그곳에 가는 순간, 미르수, 그가 가만히 있지 않으리란 거지만.”
“예?”
“말 그대로네. 미르수도 충분히 자네가 무엇을 준비하는지 눈치 채고 있을 터. 그런 상황에서 자네가 봉인된 지역을 가고자 한다면 어떻게든 방해하고자 움직일 걸세.”
“어, 그럼......."
그러나 이어진 NPC융의 설명에 미다스의 표정이 굳기 시작했다.
‘느낌이 싸하다.’
“어떻게 해야죠?”
안 좋은 느낌, 그 속에서 내뱉은 질문에 NPC융이 똑같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가 봉인된 지역에서 시험을 통과하는 동안 다른 이들이 미르수가 보낸 무리를 막아줘야지.”
다른 이.
‘젠장.’
싸한 느낌의 정체를 파악한 미다스가 대답 없이 똥 씹은 표정만을 지었고, 그 표정에 NPC융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혹시 자네를 도와줄 동료는 없나?”
“……예.”
“그럼 친구는? 친구도 없나?”
이어진 질문에 미다스는 대답조차 뱉지 못했다.
그 모습에 NPC융 역시 잠시 동안 말을 이어가지 못했고, 잠시 동안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솔로라서 문제가 될 줄이야.’
미다스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참기 힘든 침묵.
물론 정말로 친구가 없어서 문제인 건 아니었다.
‘골 때리게 됐네. 이거 결국 내가 찾아가서 부탁해야 하는데……."
문제는 이번 퀘스트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결국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는 것.
‘움직여주려나? 10대 길드들이?’
그리고 그렇게 움직여줘야 하는 이들의 몸값이 미다스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
‘미치겠네, 여기서 하필이면…… 어비스 길드랑 사이도 싱숭생숭한데.’
더욱이 어비스 길드랑 대결을 염두에 두었던 미다스 입장에서는 여기서 부탁을 하는 게 여러모로 골치 아플 수밖에 없었다.
“일단 이동하도록 하지. 그가 눈치챘을 테니까.”
“눈치 챘다고요?”
“자기 무덤에 온 자를 눈치 채지 못할 리 없지.”
그러나 미다스에게 저울질을 할 여지 따위는 없었다.
[신의 무덤에 알 수 없는 힘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놈이 눈치챘군.”
그저 행동만이 있을 뿐.
18.
그런 표현이 있다.
스타들의 스타라는 표현.
갓워즈에서는 멀린이 그 표현에 부합하는 존재였다.
투핸드, 뮤즈를 비롯해 무수히 많은 슈퍼 스타들이 모인 어비스 길드를 통솔하는 건 그 누구도 아닌 멀린이었으며, 그러한 멀린의 통솔 아래에서 어비스 길드는 단 한 번도 최고의 자리에서 물러난 적이 없었으니까.
사실상 어비스 길드의 길드 마스터.
“다들 모였군.”
그러한 멀린의 존재감은 10대 길드 중 7곳의 길드 마스터 혹은 그 대리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더더욱 뚜렷했다.
딱히 의미를 두지 않고 공평하게 원을 그리듯 서있을 따름.
“이렇게 내 앞에서 모이는 건 처음인가? 어쨌거나 와줘서 고맙군.”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린의 존재감은 이 원형의 우두머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만큼 확실했다.
반면 다른 이들의 표정에는 여유가 없었다.
있을 리 없었다.
갓워즈의 진실, 이 갓워즈의 엔딩에 걸린 것을 들은 상황.
“안 오면 이후 다시 웃으면서 볼 일 없었을 테니까.”
그런 상황에서 어비스 길드를 무시한다는 건 이제 더 이상 마주할 수 없는 적이 된다는 의미였으니까.
달리 말하면 이곳에 모인 이들은 사실상 BJ대마도사와 적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렇게 보면 놀라운 일이었다.
“소드 길드랑 불사자 길드만 빠졌군.”
빠진 두 길드를 제외한 나머지 8곳이 BJ대마도사의 적이 될 각오를 했다는 의미.
“아즈모 쪽 대우가 좋지 않았나?”
또한 아즈모에 인수됐던 길드마저 이제는 딴 마음을 품었다는 의미였다.
“마지막 베팅이니까.”
“리턴을 생각하면 리스크는 감수해야지.”
물론 이번에 걸린 것은 그러한 딴 마음을 품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그런 의미에서 보면 오히려 소드 길드와 불사자 길드가 빠진 것이 신기한 일일 따름.
“그럼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자고.”
물론 멀린은 그 사실을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 적아가 구분된 상황에서 적이 어떠한 심정으로 있는지 생각할 필요는 없으니까.
“어떻게 해야 BJ대마도사를 죽일 수 있는지.”
생각할 건 오로지 하나, 적을 말살하는 것뿐.
“내 방법은 간단해. 우리가 전부 손에 손을 잡고 BJ대마도사와 그쪽 편을 잡으러 다니는 거야.”
그에 대해 준비한 방법 역시 간단했다.
“PK를 하자고. 괜히 보스 몬스터 레이드 레이스니 그런 거 말고. 그냥 쫓아다니면서 잡는 거야. 페널티 기간이 끝나면 다시 잡고, 또 잡고. 끝이 보일 때까지 계속.”
PK.
적을 분쇄하는데 이보다 더 확실한 방법은 없었으니까.
“이 방법에 반대하는 사람?”
물론 이제까지 10대 길드가 쌓아온 명예는 바닥에 떨어질 일.
그러나 이번에 걸린 것은 충분히 그러한 굴욕을, 명예를 바닥에 던지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했다.
그때였다.
어드, 탐험가 길드의 대표로 나온 그가 손을 들었다.
의견이 있는 모양.
“체면 같은 게 신경 쓰이는 건 아니지?”
멀린의 그 질문에 어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신경 쓰이지.”
“쓰인다고?”
“여기 모두가 덤벼들었는데 BJ대마도사를 못 잡으면 그것보다 빌어먹을 일은 없을 테니까.”
그 말에 좌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저 말이 맞아. BJ대마도사를 PK로 잡는 건 결코 쉽지 않다고.”
BJ대마도사가 말도 안 되는 퍼포먼스를 보여준 상황에서 그런 그를 잡는다?
체면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할 수 있느냐, 그것이 더 중요한 일.
멀린의 생각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 당장 우리가 달려들면 잡을 수 있을 리 없지. 그러니까 두 가지를 해야 해.”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때문에 방법을 준비했다.
“하나는 팀워크를 다지는 것. 전력이 거대해진 만큼 다시 한 번 체질 개선을 해야지.”
“두 번째는?”
“스펙업.”
팀워크 그리고 스펙업.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현재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이 게임의 만렙은 450레벨 근처. 즉, 440레벨을 달성하면 BJ대마도사가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도 우리를 이길 수 없게 돼.”
모든 게임에는 그 끝이 존재했으니까.
“그렇게 되면 이곳은 신의 무덤이 아니라 BJ대마도사의 무덤이 되는 거지."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게 그 무엇보다 힘들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 순간이었다.
[신의 무덤에 알 수 없는 힘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갑자기 전체 알림이 들렸고, 그 알림에 모두가 석상처럼 굳었다.
대화는 없었다.
‘뭐가 일어났다.’
‘BJ대마도사가 뭔가 한 모양이군.’
입을 다문 채 모두가 주변을 지켜봤다.
‘어?’
‘안개가?’
그러자 신의 무덤을 자욱하게 채우던 안개가 사그라지는 게 보였다.
그와 동시에 새로운 알림이 들렸다.
[노네임드가 정체 모를 자에 의해 폭주를 시작합니다.]
폭주!
듣기만 해도 섬뜩한 단어.
그러나 반대로 이곳에 있는 모두는 반색했다.
‘폭주한다는 건 바로 모습을 갖춘다는 건가?’
‘어그로를 끌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들 입장에서는 노네임드, 그 자체가 무서운 게 아니라 언제 어떻게 등장할지 모르는 게 무서웠으니까.
그런데 그게 폭주를 하면서 모습을 드러낸다?
사냥하는 입장에서는 훨씬 쉬운 일.
[습득하는 경험치가 300퍼센트 증가합니다.]
[아이템 드랍률이 300퍼센트 증가합니다.]
그때 뒤를 이어서 들리는 알림에 더 이상 침묵은 없었다.
“미친, 경험치 300퍼센트? 그럼 4배가 증가한다는 거야?”
“드랍률도 4배!”
그 순간 멀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운이 좋군.”